소설리스트

나만의 구더기짱-36화 (36/47)

〈 36화 〉 나는 너와 같이 지낼 수가 없다

* * *

여름이었다.

조셉은 마리안느와 놀러 가기 위해

개인수영장을 예약하려 했으나

괜찮은 곳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예약할 곳이 없네.]

마리안느와 함께 수영하려면

아무 곳이나 빌릴 수는 없었다.

우선 마리안느와 단둘이서만

사용이 가능해야 했으며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했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성수기에

괜찮은 곳은 남아있지 않았다.

노트북을 보며 고민하는 조셉에게

마리안느가 말했다.

[그럼 내가 아는 데로 갈래요?]

[아는 곳이 있어?]

[번호 알려줄 테니까 전화 걸어서 나한테 바꿔줘 봐요.]

마리안느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해서

마리안느에게 바꿔주자

마리안느는 누군가와 통화했다.

통화하던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말했다.

[내일이라도 가능하다는데. 어쩌실래요?]

[그럼 내일 가자.]

[알겠어요.]

통화를 마친 마리안느에게

조셉이 물었다.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내가 자주 놀러 가던 곳이에요.]

이때까지만 해도 조셉은

그냥 작은 별장이라도 가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Akro 호텔이라고 쓰여 있는

거대한 호텔이었다.

대도시에 있는

거대 호텔은

그야말로 호화스러웠다.

조셉과 마리안느가 타고 온

흔히 볼 수 있는 SUV 차량은

고급 외제차들 사이에다 주차되자

그런 평범함이 오히려 튀어 보이게 만들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업고 차에서 내리자

마리안느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호텔 지배인이

호텔 로비까지 나와서

두 사람을 맞이해 주었다.

별도의 체크인도 없이

마리안느를 업은 조셉은

호텔 최상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받았다.

안내받은 곳으로 들어가자

꼭대기 층을 전부 사용하는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객실이 나왔다.

마리안느를 업고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여러 개의 방들이 나왔다.

회의실, 응접실 같은

특이한 용도의 방들도 있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킹사이즈 침대에다 내려놓고

찬찬히 객실을 살펴보았다.

창밖으로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도시의 탁 트인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급 목재로 만들어진 가구들과

유화 그림들이 벽에 걸려있었다.

조셉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천장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벽지가 아닌

사람 손으로 그린 그림이 말이다.

객실 분위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조셉에게

마리안느가 말했다.

[얼른 수영하러 가죠.]

그 말을 들은 조셉은

마리안느의 옷을 벗기고

수영복을 가방에서 꺼내서

마리안느에게 입혀주었다.

[그러고 보니 수영장은 어디로 가야 하는데?]

[여기 바로 위층이에요.]

[여기 바로 위라고?]

마리안느가 알려준 대로

마리안느를 안고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옥상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파라솔과 썬배드들이 놓여있었고

수영장 난간 너머로는

고층빌딩들이 내려다보였다.

[정말 여기를 우리끼리만 쓰는 거야?]

[오늘 하루 동안이지만요.]

놀라운 광경에 압도된 조셉은

마리안느를 안고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호텔 옥상에 자리 잡은 수영장에서

난간 너머를 바라보니

대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고층빌딩을 내려다보며

수영을 할 수 있다니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풍경에

조셉은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품에 안고

잠시동안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마리안느.]

[왜요?]

[내가 꿈을 꾸고 있니?]

[꼬집어줄까요?]

[해봐.]

그 말을 들은

마리안느는

조셉의 볼을 깨물었다.

[아프잖아!]

[꼬집어달라면서요.]

[그건 깨무는 거지.]

조셉이 불평하자

마리안느가 웃었다.

그런 마리안느를 본 조셉은

슬그머니 마리안느를 놓으려고

손을 놓기 시작했다.

[놓지 말아요! 놓으면 안 돼요!]

조셉이 자신을 놓으려고 하자

마리안느가 화들짝 놀라면서

조셉에 품으로 파고들었다.

1.5m 깊이 밖에 안되는

얕은 수영장이었지만

마리안느에게는 깊은 수영장이었다.

마리안느가 안심하고 수영하려면

유아 풀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혼자서 수영 못해?]

[예전에는 잘했지만 지금 내가 어떻게 수영해요.]

[그럼 한번 해보자.]

[어떻게요?]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있어봐.]

[그러다 빠지면 어떡해요...]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조셉은 마리안느를 느슨하게 잡고

등을 살며시 떠받들었다.

[자, 지금 이 상태에서 천천히 힘을 빼는 거야. 천천히.]

[무서워요...]

[물속에 빠져도 당황하지 마 바로 건져줄 테니까.]

마리안느는 몸에 힘을 빼고

수평을 유지했다.

그러자 조셉은 천천히

마리안느 몸에서 손을 땠다.

그러자 마리안느의 몸이

물에 둥둥 떠 올랐다.

[내가 떠오르고 있어요!]

자신의 몸이 떠오르자

마리안느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러면서 몸을 버둥거리자

그만 꼬르륵 가라앉고 말았다.

조셉이 바로 마리안느를 건져주었다.

물에서 마리안느를 꺼내자

물을 먹었는지

마리안느는 콜록거렸다.

[봤어요? 나 물에 떴어요!]

콜록거리면서도

마리안느가 흥분해서 말했다.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다시 해보자.]

[네!]

그렇게 말하는

마리안느는 신나서 웃고 있었다.

몇 번의 시도를 하면서

마리안느는 자연스럽게 물에 떠 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수면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마리안느는 마치 노를 젓듯

짧막한 팔과 허벅지를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배가 나아가듯

수면에서 천천히 헤엄쳤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조셉도 천천히 따라갔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대도시를 눈 밑에 두고

마리안느와 수영을 하고 있으니

세상 위에 올라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물속에서 놀았더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물이 차다. 이제 슬슬 들어가자.]

조셉은 바스타올로 마리안느를 감싸서

바로 아래층에 있는 객실로 들어갔다.

객실로 들어가서

마리안느가 입고 있는 수영복을 벗긴 다음

마리안느를 가볍게 씻겼다.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려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자

마리안느가 뽀송뽀송해졌다.

온종일 물속에 있었더니

오늘따라 유난히 뽀송뽀송한 모습이었다.

조셉이 마리안느를

침대 위에 눕혀주자

마리안느가 하품했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마리안느는 피곤해 보였다.

오랜만에 수영한다는 사실에 즐거웠는지

신나서 물장구치며 놀더니

그만 지친 모양이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마리안느를 보면서

조셉이 말했다.

[나는 잠깐 나가서 뭐 좀 사 올게.]

[...나도...같이 갈래요...]

마리안느가 졸린 기색을 하면서

따라간다고 말했다.

[한숨 자고 있어. 바로 올 테니까.]

[같이...]

마리안느가 반쯤 감긴 눈으로

그렇게 말하자

조셉은 마리안느 옆에 눕더니

마리안느의 배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렇게 나란히 누워서

아기를 재우듯

마리안느를 토닥여주자

잠시 뒤

마리안느는 잠들었다.

마리안느가 잠든 걸

확인한 조셉은

조용히 방을 나왔다.

마리안느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호텔 밖으로 나오자

도시의 해가 저물고 있었다.

조셉은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보석 가게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 뒤에 점원이 인사했다.

[여성에게 선물할 목걸이를 좀 보고 싶은데요.]

[이런 건 어떤가요?]

점원은 진열대에서

진주목걸이 같은

화려한 목걸이들을 보여주었다.

중년 여성들이나 할 것 같은

그런 목걸이들이었다.

[이런 것 말고 좀 더 차분한 목걸이는 없나요?]

[그럼 이쪽으로 와보시죠.]

점원이 안내를 받으며 따라간 곳에는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심플한 목걸이들이 있었다.

[한번 골라보시죠.]

조셉은 목걸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금목걸이는 마리안느의 머리카락 색과 겹쳐서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유심히 살펴보던 중

괜찮은 목걸이가 보였다.

백금으로 만들어진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저 목걸이를 보여주시겠어요?]

조셉이 손으로 가리킨 목걸이를

점원이 전시장에서 꺼내서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목걸이는 가게 조명을 받고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고 은은한 광채가 나고 있었다.

마리안느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조셉은 목걸이를 하고 있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마리안느의 가냘픈 목선에

목걸이가 걸려있는 모습을 말이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조셉은 계산을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가려던 중

진열대에서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작지만 선명한 광채에

눈이 끌려서 바라보니

진열대 안에는

작은 다이아 반지가 있었다.

조그만 다이아 반지가

아름다운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반지는 조셉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작지만 강렬하게

반짝임을 호소하고 있었다.

조셉은 잠시 고민하며

반지를 바라보다가

보석 가게를 나와 호텔로 걸어갔다.

보석 가게를 나오자

해가 저물어서

도시는 어두웠다.

조셉은 호텔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여름이라 날씨는 춥지 않을 텐데

어쩐지 모르게 춥게만 느껴졌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느새 호텔 앞까지 도착했다.

밤이 되자 호텔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까 봤던 반지보다

훨씬 더 화려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러자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그것은 불안감이었다.

마리안느와 함께

오늘 하루 동안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더니

그런 생활에 압도되어서

과연 자신이

마리안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마리안느와 함께 살면서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마리안느와 나는

살아온 환경이 너무나도 달랐다.

고층빌딩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마리안느에게는 당연하단 것을

나는 깨닫고 말았다.

변변찮은 재산도 없이

마리안느에 집에서 사는 내가

마리안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마리안느는 나에게 있어서

하늘에 내려온 작은 별이었다.

반짝이는 작은 별이

불행한 사고로

나에게 내려왔을 뿐

마리안느와 나는

사는 세계가 달랐다.

그런 마리안느를 내가

과연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마리안느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소위 말하는

가스라이팅의 결과물이 아닐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조셉의 머릿속으로

점점 퍼져나갔다.

사지가 없는 사람을

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럴 능력이

정말 나에게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망설이며

호텔을 서성이던 조셉은

호텔 꼭대기 층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마리안느가

곤히 자고 있을 것이다.

일어났더니 혼자 남아있어서

엉엉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리안느를 떠올리면서

호텔을 바라보았더니

호텔은 여전히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답지는 않았다.

마리안느의 웃는 얼굴에 비하면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마리안느의 웃는 얼굴이

저따위 전깃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런 사실을 깨닫고 나자

그러자 조셉은

아까 지나왔던 길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마리안느에게 말할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하자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조셉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반지를 선물하면

마리안느는 웃어줄 것이다.

마리안느가 웃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조셉은 깨달았다.

일단 목적이 정해진다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는 것이

이 남자의 특징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지가 없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찾아왔고

이제는 그 여자가 웃을 수 있도록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가게가 열려있기를

간절히 빌면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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