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구더기짱-40화 (40/47)

〈 40화 〉 미리 말하지 못해서

* * *

여름이 끝나가고 있던 어느 날.

가을이 다가오는 걸 알리듯

하늘에는 구름 하나 없었다.

그런 날 누군가가.

집으로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렸다.

현관문을 열고

누가 찾아왔는지 본 조셉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관문을 열자 나타난 것은

검은 양복에 붉은 와이셔츠를 입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 여성은

마리안느와 닮았었다.

하얗게 빛나는 피부와

그 하얀 빛에 감싸듯

반짝이는 금발 머리가

햇빛을 받고 빛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모르는 여성이 찾아오자

조셉이 당황하는 사이에

여성은 멋대로 집안에 들어왔다.

조셉이 뭐라 할 새도 없이

거실로 걸어간 여성은

마리안느를 보자 외쳤다.

[언니!]

[베르카…?]

갑자기 나타난 여성을 본 마리안느는

놀라서 굳어버렸다.

베르카라 불리는 여성은

놀라서 꼼짝 하지 않는 마리안느에게 다가가더니

[보고 싶었어요. 언니.]

그러면서 마리안느를 꼭 껴안았다.

그러나 마리안느는

여전히 놀라서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여성은

마리안느의 여동생인 모양이었다.

조셉과 마리안느

그리고 베르카는

다 같이 식탁에 앉았다.

[여동생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갑자기 마리안느를 언니라고 부르는

여성이 찾아오자

조셉이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조셉이 알기로는

마리안느는 외동이었다.

[서류상으로는 자매가 아니거든요.]

[서류상으로는?]

[어머니가 다르거든요.]

[이복 여동생이라고?]

[예.]

식탁에 앉아있는 조셉은 다시 한번

맞은 편에 있는

베르카라는 여성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마리안느와 닮았다 생각했지만

그러나 마리안느와는 다른 점도 많았다.

귀여운 스타일의 마리안느와는 달리

어른스러운 스타일의 여성은

170cm가 넘는 큰 키를 가지고 있었고

살짝 치켜 올라간 붉은색 눈동자는,

날카로움조차 느껴질 만큼 매서워 보였다.

마리안느와는 분위기가

어쩐지 매우 달랐다.

조셉이 자신을 쳐다보거나 말거나

베르카는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이미 소식을 들었겠지만.]

베르카는 잠시 멈칫하더니

[언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소식을 들은 마리안느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마리안느를 바라보며

베르카가 말했다.

[그러니 지금 나랑 같이 장례식장에 가자.]

베르카가 다급한 듯이

마리안느에게 말하자

[알겠어...준비할게...조금만 기다려...]

마리안느는 그렇게 말하더니

조셉에게 옷을 갈아입혀달라고 부탁했다.

조셉이 옷을 갈아입히려 하자

베르카가 저지했다.

[내가 할게요.]

베르카는 마리안느를 안고

마리안느의 방으로 들어갔다.

마리안느에게 물어서

옷장에서 옷을 꺼낸 베르카는

마리안느를 갈아입혔다.

옷을 갈아입히면서

베르카가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언니, 저 남자는 누구야?]

[내 약혼자.]

[약혼자?!]

베르카가 놀라서

큰소리를 냈다.

약혼자란 소리에

베르카가 당황하자

마리안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저 사람이랑 결혼하기로 했어.]

그 말을 들은 베르카는

잠시 놀라서 정신을 못 차리더니

[그, 그렇구나. 잘됐네.]

잘됐네..잘됐어...

그 말만을 중얼거리면서

베르카는 마리안느의 옷을 갈아입혔다.

마리안느가 장례식장에 입고갈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오자

조셉이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나도 같이 갈게.]

그러나 베르카가

조셉을 막아섰다.

[우리 가족의 문제니까 저희끼리만 갈게요.]

그러자 마리안느가 말했다.

[맞아요. 당신은 집에 있어요.]

[괜찮겠어?]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별일 없겠죠.]

그렇게 베르카는

마리안느를 안고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떠나는 마리안느를

조셉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마리안느와 베르카는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

운전기사가 차를 출발시켰고

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차가 출발하자

베르카는 조심스럽게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언니...아까 그 남자 좋아해...?]

그러자 마리안느는

얼굴을 붉히면서

수줍게 대답했다.

[맞아. 좋아해..]

그러자 베르카는

더욱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마리안느에게 재차 물었다.

[그럼...그 남자 사랑해?]

그러자 마리안느의 얼굴이

아주 새빨개지더니

[응...]

그런 마리안느의 빨개진 얼굴을 본

베르카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그렇구나...그렇구나...]

베르카는 그 말만 되풀이하며

창밖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이 없어진

차량 뒷좌석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마리안느가 입을 열었다.

[...저기,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어째서 지금까지, 찾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었던 거야? 메일을 보내도 아무런 답장도 없고...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복 여동생이지만

사고가 나기 전에는

사이좋은 자매였다.

그랬던 여동생이

사고가 벌어지고

몇 번 병문안을 오더니

어느 순간 찾아오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자

마리안느는 조셉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버림받은 외톨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갑자기

베르카가 찾아오자

마리안느는 왜 여태껏 연락도 없었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리안느의 물음에도

베르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베르카가 아무 말이 없자

마리안느가 이어서 말했다.

[....아니면 너도 내가 싫어진 건...]

[아니야!]

갑자기 큰소리로 외친 베르카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긴 침묵 끝에

베르카가 입을 열었다.

[믿기 싫었어...아니...믿을 수 없었어...언니가...그렇게 변한 사실을...]

베르카는 떨리는 입술로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니가 사고를 당하고...나는 어찌할지 몰랐어...]

베르카는 언니를 좋아했다.

활발하고 밝고 상냥한 성격

성적도 우수해서 명문대에 진학했으며

연주를 잘해서 상도 많이 타고

자랑스러웠던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랬던 나의 언니가

한순간의 벌어진 사고로

팔다리가 없는

처참한 꼴로 변하더니

그러자,

더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지고

성격도 점점 어두워지더니

짜증과 화만 내고

이런 건 내가 알던.

나만의 언니가 아니었다.

그렇게 변한 언니를

베르카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믿지 않으려 했으나

사지가 없는 마리안느를 보면 볼수록

휑한 몸뚱이가 눈에 들어와서

베르카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여태껏

마리안느를 찾아오지도

연락하지도 못했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마리안느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의 속마음을

마리안느에게 전한 베르카가

마리안느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언니...여태 찾아오지도 않아서...누구보다 힘들고 괴로웠을 언니를...혼자 내버려 둬서...정말로 미안해요...]

차량 뒷좌석

마리안느의 옆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과하는 베르카를

마리안느는

[괜찮아. 베르카.]

예전에 베르카가 기억하던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미소를 본 베르카는

눈물이 멈추지 않더니

[언니야!]

마리안느의 짧은 허벅지의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언니...미안해요..미안해요...내갸...내가 잘못 했어요…정말로.... 정말로...잘못했어요...]

[괜찮아...그러니까 이제 뚝 그치자?]

마리안느의 짧은 허벅지에

얼굴을 파묻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베르카는

그 때 그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도 이렇게 울면

자신을 상냥하게 달래주던

그 때 그 목소리가 말이다.

그렇게 베르카는

마리안느의 짧은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잠시동안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런 여동생을

언니는 상냥하게 달래주었다.

베르카가 울음을 그치고

진정이 될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달리던 차량은

어떤 외곽에 있는

작은 창고에 도착했다.

멈춘 자동차 유리 너머로

창고를 본 마리안느가

베르카에게 물었다.

[여기는 장례식장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베르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맞아. 장례식장.]

어리둥절해 하는 마리안느를

베르카가 품에 안고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는 베르카의 부하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베르카가 손짓을 하자

부하들은 드럼통을 굴려서

베르카 앞에 가져왔다.

[언니 저 안에 뭐가 들어있다고 생각해?]

베르카가 드럼통을 가리키며 묻자

무언가 불안감을 느낀 마리안느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어...타르타르 소스?]

마리안느의 대답을 들은 베르카는

꺌꺌 웃더니

드럼통을 차례로 걷어찼다.

그러자 드럼통이 밀려서 넘어졌고

그 안에서 나온 것들은

사람이었다.

피투성이로

꽁꽁 묶인 사람들이

드럼통에서 나왔다.

[짜잔! 어때 언니?]

갑작스럽게

드럼통 속 내용물을 보여준 베르카는

자랑스러운 듯이

그렇게 말했다.

[ 뭐야...이건...]

믿기 힘든 광경을 지켜본 마리안느는

떨리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3개의 드럼통에서 나온 사람들은

왼쪽 2명은 중년의 남성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왼쪽에 노친네들은 우리 회사 임원들이야.]

피투성이의 중년의 남성들은

신음을 하며 쓰러져 있었다.

[언니를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이려 했던 쓰레기들이지.]

갑자기 베르카가

그런 사실을 알려주자

마리안느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충격적인 소식을 듣자

머리가 그만 멈춰버린 것 같았다.

[이번에 언니 어머니를 죽인 것도 이 녀석들이야.]

[대체...왜..?]

마리안느가 겨우겨우

힘을 짜내서 말하자

[쟤 때문이지.]

베르카가 중년 남성들 옆에 엎어져 있는

꼬맹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꼬맹이는 누굴 거 같아?]

꼬맹이는 옆에 두 사람과 달리

피투성이도 아니었고

눈가리개와 입마개를 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베르카는

꼬맹이에게 다가가더니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정답은, 우리 남동생이야.]

남동생이라니

마리안느는 남동생이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맞아. 우리 그 망할 아버지의 숨겨둔 자식이지.]

몰랐던 남동생의 존재를

알게 된 마리안느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태연하게 말하는 베르카를 보면서

마리안느는 저 얼굴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다.

마리안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 남자의

예전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어딘가 미쳐있는

그런 모습이 말이다.

서로 다른 어머니를 가진 삼 남매는

오늘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장녀는 팔다리가 없었고

차녀는 미쳐있었고

막냇동생은 죽을 위기에 놓여있었다.

최악의 만남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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