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구더기짱-44화 (44/47)

〈 44화 〉 지금까지 고마웠어

* * *

세리자와가 알려 준 정보를 따라서

마리안느를 찾아다니던 조셉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로에 위치한 CCTV에서

마리안느가 어디로 갔는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조셉은 마리안느의 자취를 놓치고 말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조셉은 알지 못했다.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도로에서 시간만 낭비하던 중

핸드폰에서 소리가 울렸다.

메일이 왔다는 알람이었다.

세리자와가 무언가 알아내서 보낸 건가 싶어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자

조셉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조셉에게 메일을 보낸 사람은

마리안느였다.

조셉은 다급하게 핸드폰을 열고

마리안느가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에버그린 테라스 742번지

이메일에 적힌 것이라곤

달랑 주소 한줄 뿐이었지만

조셉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뜻이었다.

마리안느의 구조신호를 알아차린 조셉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핸드폰에다가 주소를 검색했다.

주소를 검색하자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콘도가 나왔다.

여기서 대략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곳이었다.

조셉은 모즈와 세리자와에게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리고

재빨리 차에 올라타서

마리안느가 보낸 주소를 향해서 차를 몰았다.

가는 도중에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자동차 배기음 뿐이었다.

달리는 내내 도로 위로자신의 차 말고는

다른 차는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산속에 있는 콘도로 향하던 중

무언가 연달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총소리였다.

콘도 쪽에서

총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총소리를 들은

조셉은 더욱 빨리 차를 몰고 콘도로 향하자

그곳에 나온 것은 아수라장이었다.

콘도 안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이

서로에게 총을 쏘면서 싸우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베르카와 함께 이동하던 마리안느는

아버지가 보낸 용병들에게 습격당하고

베르카와 떨어지고 말았다.

용병들에게 붙잡힌 마리안느는

자동차에 태워져서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용병들은 마리안느를 묶지 않았다.

팔다리가 없는 사람을 묶을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차를 타고 약 한 시간 산으로 올라갔다.

자동차는 빠르게 달려서

산속에 있는 콘도로 도착했다.

여기는 예전에 회사에서 투자했다가 망해 버린 콘도였다.

이 근방에 올 관광객을 노려서

콘도를 건설했지만 관광객은 생각보다 적었고

콘도는 영업을 중단하고 문을 닫았고

매년 무의미하게 노후화만 진행되고 있었다.

마리안느는 용병들에게 붙들려서

콘도 안으로 들어갔다.

콘도 안에는 아직 전기가 끊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빛바랜 조명이지만

아직은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용병들은 회의실로 보이는 방으로 마리안느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건

[오랜만이구나.]

마리안느의 아버지였다.

회의실에 있는 의자 중 하나에다가

마리안느를 앉혀놓은 아버지는

부하들을 회의실에서 내보낸 다음

마리안느에게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너의 모든 재산을 넘긴다는 서류다. 여기에 싸인해라.]

너무나도 냉정하게

이런 짓을 벌이는 자기 아버지를 보자

마리안느는 어이가 없었다.

마리안느는 떨리는 입술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대체....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왜긴 돈 때문이지.]

[돈 때문에 이런 짓까지 하는거야...? 돈 때문에 나를 이런 꼴로 만들고..? 자기 딸들을 죽이려고...?]

마리안느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마리안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돈 때문이라니? 돈이 얼마나 중요한데? 팔다리가 없는 네가 최소한의 품위는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전부 돈의 힘 덕분이잖아?]

사지가 없는 마리안느가

장애인 보조금이나

그런 것에 의존하지 않고

물질적으로나마

나름대로 풍족하고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전부 돈 덕분이었다.

그것이 돈의 힘이었다.

[사인만 하면 죽이지는 않으마. 그러니 어서 사인해라.]

아버지는 마리안느에게 펜을 내밀고

어서 싸인하라고 재촉했다.

그로나 마리안느는 사인하지 않았다.

사인하는 대신 아버지에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사인하는데?]

당연한 사실이지만

마리안느는 펜을 잡을 손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아버지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러게...?]

아버지는 내밀었던 펜을 손에 쥐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없으니 지장도 못 찍잖아....입으로 싸인하라 해야 하나? 아니면 팔꿈치 사이에 끼어서...? 손이 없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싸인을 받아 내야 하지...?]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변호사랑 얘기 좀 하고 올 테니까.]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마리안느는

혼자 회의실에 남겨졌다.

혼자 남겨진 방안은 차가웠다.

기온 때문인지 이런 상황이라 그렇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마리안느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팔다리를 잃은 마당에

목숨마저 잃는 게 뭐가 문제일까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후

나는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미래도 희망도 꿈도 없이

말 그대로 바닥을 기어 다니며

추하게 살아가던 구더기 같은 삶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나타나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처음 그 남자를 봤을 때는

그야말로 악마 같았다.

발로 차이고

두들겨 맞고

개밥그릇에다 밥을 먹고

개 목걸이를 차고

무의미한 회색빛의 나날들이 그리워질 만큼

아프고 비참한 피로 물든 새빨간 나날이었다.

그러나 무지개는 빨간색으로 시작했다.

그 남자와 같이 지내면서

알록달록한 무지갯빛 같은 나날들이 펼쳐졌다.

갑자기 나에게 찾아온 그 남자는

팔다리가 없는 나를

징그럽다 말하며 외면하지도 않았고

팔다리가 없는 나를

불쌍하다며 짦막한 호의를 베풀지도 않았다.

그저, 나와 같이 있어 주면서

나와 함께 살아가 주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소설을 쓰고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바다를 거닐고

남자와 데이트하고

팔다리가 멀쩡했을 때는 해 본 적도 없는 일들이었다.

언젠가 읽었던 웹소설 주인공처럼

새로운 힘을 얻거나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그런 꿈만 같은 일은 없었지만

나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곧 죽는다.

나에게는 새로운 삶이 허락되지 않는 듯했다.

죽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그렇지만...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이제 와서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그 남자와 함께 바다를 보고 싶다....

그의 등에 업혀서 해변가를 거닐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쇼핑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다시 한번 내 머리카락을 그가 빗겨 줬으면 좋겠어

다시 한번 그가 차려 준 식사를 먹고....

다시 한번 그와 입을 맞추고...

다시 한번 그의 품에 안기고....

마지막이라도 좋으니

단 한 번만....

그 사람을 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팔다리가 없는, 아니 팔다리가 있어도

이런 상황에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다 끝이다...

마리안느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흘러 나왔다.

죽는다는 공포감 때문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 운명이

너무나도 서글프게 느껴졌다.

손이 없는 자신은

소중한 것들을 꼭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게 자신의 운명이라니...

마리안느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운명을 한탄하며

조용히 눈물만을 흘렸다.

곧 다가올 자기 최후를 기다리며

마리안느는 조용히 울었다.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던 마리안느는

눈물로 흐려진 시야 속에서

무언가 반짝이고 있었다.

눈물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자기 목에 걸린 반지가 눈에 보였다.

작은 반지는 작지만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남자가 자기 목에 걸어 준 반지였다.

이런 순간에도

반지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마리안느는 우는 것을 멈추고

반짝이는 반지를,

그 남자가 자신에게 선물해준 그 반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리안느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팔다리는 없지만

마리안느는 너무나도 살고 싶었다.

이대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살아서 다시 한번 그 남자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니 살아야겠다고.

마리안느는 생각했다.

그러나 팔다리가 없는 마리안느가

아니 팔다리가 있든 없든

납치당해서 죽을 위기에 놓인 이런 상황 속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리안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아날 방법을 찾기위해

마리안느는 회의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리안느는 방안을 둘러보던 중

방 한쪽에 있는 책상이 보였다.

책상 위에는 각종 필기구와 서적, 그리고 노트북이 있었다.

마리안느는 조심스럽게 의자 밑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데굴데굴 굴러서 책상 근처로 굴러갔다.

책상 밑으로 기어간 마리안느는

힘겹게 몸을 밀어 책상을 넘어트렸다,

그러자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리안느는 바닥에 떨어진 펜을 하나 입에 물고

노트북 전원을 켰다.

다행히 노트북의 전원은 켜졌다.

노트북은 무선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다.

콘도는 영업을 중단했지만 전기와 인터넷은 끊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리안느는 입에 문 펜으로

콘도 주소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콘도주소를 알아낸 마리안느는

조셉에게 자신의 위치가 담긴 메일을 보냈다.

마리안느는 조셉의 전화번호는 모르지만 전에 한번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기에 조셉의 이메일주소가 기록에 남아 있었다.

마리안느는 입에 볼펜을 물고 자판을 꾹꾹 누르면서

자기 위치가 적힌 이메일을 조셉에게 보냈다.

이메일을 길게 작성할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마리안느는 회의실 문을 몸으로 밀어서

문밖으로 나갔다.

문밖에는 총을 들고 있는 사내들이 보였다.

아마 이번 일을 위해 고용한 용병들이겠지

마리안느가 방에서 나오자

용병들은 놀란 눈치였다.

[저기…나오시면 안 되는데...]

용병들은 팔다리가 없는 마리안느가 나오자

상당히 놀라서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할 말이 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안느는 용병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안을 하나 할게요.]

자기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마리안느의 아버지가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용병들도

마리안느도

아무도 없었다.

어이없는 상황에 놀란 마리안느의 아버지는

부하에게 소리쳤다.

[지키고 있던 애들 어디 갔어? 빨리 연락해 봐!]

마리안느의 아버지가

부하 중 한 사람에게 재촉하자

부하는 핸드폰으로 용병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용병들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애네들 연락을 안 받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연락을 안 받는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팔다리가 없는 자기 딸이 스스로 도망갔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놈들이 데리고 간게 분명하다.

설마 이 자식들 따른 꿍꿍이를?

마리안느의 아버지가 그런 생각하던 중

복도 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이야..!]

총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놀라던 중

다급하게 다가온 부하 중 한 사람이

마리안느의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 난 건 이미 알고 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반란입니다! 용병놈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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