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레반하워즘 공략전 (4)
* * *
"얘가 아드레나인이라고?"
유심히 폴리모프 상태의 아드레나인을 살펴보는 나의 옆에서, 꽤나 놀라움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드래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마법진 위의 소녀를 쳐다보는 링 메이. 그녀는 자신이 알던 그 거대한 드래곤의 본체가 어린 소녀라는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이미지가 너무 매칭이 안되는데......"
턱을 긁적거리며 아리송한 얼굴을 해보이는 그녀.
하긴, 광고나 포스터, 혹은 피규어로 나올때의 아드레나인의 모습은 항상 거대한 용의 모습이었으니 어색할만도 하지. 나 또한 그녀의 폴리모프 상태는 처음보는거였음으로, 아마 여기 있는 우리 3명이 최초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너보다 세니까 괜히 성질 긁지마."
폴리모프 상태라 하더라도 아드레나인의 레벨은 여전히 2500레벨. 쉽게 말해 SSS급 시즌보스인 링 메이와 견줄 정도였으므로, 괜시리 그녀의 성질을 긁었다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경고를 날려준다.
"네네, 알겠숩다."
나의 말에, 뺀질거리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답하는 링 메이. 뭐, 썩 마음에 드는 답변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만족을 하며 나는 서서히 아드레나인에게로 다가간다.
「......」
졸려보이는 눈을 꿈뻑꿈뻑 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아드레나인. 나는 무릎을 꿇고, 마법진 위에 주저앉아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본다.
「배고프다 주군......」
"......"
검정색 단발머리 소녀의 입에서 맹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더불어 배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 나는 삐질거리는 얼굴과 함께 고개를 돌려 이시연과 링 메이를 쳐다본다.
"혹시, 먹을거 있나요."
"아뇨."
나의 물음에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젓는 이시연. 그녀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보이며 본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강조해보였다.
"......너는 혹시 뭐 있냐."
나는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그 옆의 링 메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부채로 자신의 입술을 가리며 그런게 있을리 없다고 답하는 그녀.
"지금은 당연히 없지. 집에 가서 요리라도 해줄까?"
"......아니."
한시가 급한데 미쳤다고 요리해서 밥까지 먹고가겠냐. 그냥 굶으라고 해야지 뭐.
"아드레나인."
「응......」
"조금만 참거라......"
흔하디흔한 초코바하나 못갖다주는 무능한 주인이라 미안하구나. 대신 레반하워즘에 가면 먹고싶은거 다 먹게해줄게.
「알았어......」
...그래도 사역마라고, 멍하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아드레나인. 왠지 모르게 전해져오는 귀여움에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뒤,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실거죠?"
"네, 빨리 갔다 오려고요."
무릎을 탁탁털며 일어나는 나에게 묻는 이시연. 화양연화가 알아차리기 전에 이왕이면 빨리 다녀오는게 좋겠지.
"시연씨는 화양연화가 제가 없어진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잘 조율해주세요"
어떻게든 링 메이와 인외변화자들을 죽이고 싶어하는 화양연화가, 내가 그들을 도와주려한다는 것을 눈치챈다면 꽤나 골치아파질 수 있으니, 최대한 이를 숨기기 위한 이시연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했다.
"나는?"
"응?"
이어서, 자신은 무엇을 하면 되냐는 듯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는 링 메이.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답하였다.
"도시를 지켜."
기껏 레반하워즘을 끌고왔는데 이미 인외변화자들이 다 죽어버린 상태면 조금은 허무하겠지. 내가 다시 올때까지 아리아 길드가 중재를 해줄테니 싸움이 날 확률은 희비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거니까.
"그래, 알았어."
내 명에 붉은 차이나 드레스의 요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표정의 그녀를 확인한 뒤, 다시금 시선을 아드레나인에게로 돌리는 나.
"아드레나인."
「응......?」
멍한 눈과 함께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
나는 링 메이가 건네준, 그러니까 네비게이션 역할을 해 줄 새빨간 목각인형을 공중에 띄우며 그녀에게 말한다.
"지금부터 어디를 가야하는데, 이 인형을 쫓아가줄 수 있겠어?"
「......」
레반하워즘으로 안내해줄 링 메이의 목각인형.
아드레나인은 한참동안이나 그 인형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자신의 몸을 팽창시키기 시작한다.
"오......"
처음보는 진귀한 광경에, 나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본다. 소녀의 모습이었던 아드레나인은 얼마 지나지않아 우리에게 익숙한, 검정색 비늘, 두꺼운 뿔, 거대한 날개를 지닌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형상을 바꾸어 나갔다.
「크르르르르륽......」
이후, 마치 자신에게 올라타라는 듯 드래곤의 신체에서 그나마 평평한 부위인 정수리를 내미는 아드레나인. 나는 급격하게 변해버린 그녀에 어정쩡한 웃음을 내뱉으며, 조심조심 그녀의 머리에 올라탄다.
"......"
아쉽게도 안전벨트가 없어서, 부족하게나마 아드레나인의 두 뿔을 손잡이 마냥 붙잡는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이시연과 링 메이.
"여긴 걱정말고 잘 다녀오세요."
"......고마워."
환히 웃는 이시연과, 씁쓸한 미소를 머금는 링 메이.
어떻게보면 오늘 처음만난 사람한테 무리한 부탁을 한거나 다름없으니 미안하긴 하겠지.
"알면 평생 감사히 여기던지!"
나는 그녀의 말에 웃으며 답해준다.
썩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고, 애초에 그녀를 도와주기 보다는 베를레히리를 보러 가는 이유가 더 컸기 때문에, 나로써는 딱히 손해보는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캬앜!」
"......!!"
허공을 향해 한번 울부짖은 뒤,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올라 하늘을 날기 시작하는 아드레나인.
"우와아아아아."
계속해서 하늘로 오르고 올라, 거대했던 건물들이 개미마냥 조그만해지자, 마치 뚜껑없는 비행기에 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시무시하구먼......"
밤하늘 밑으로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포탄소리와 괴수들의 표효소리, 그리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건물들이 풍경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생명체라고는 군인들과 변화자들, 그리고 어라이징의 괴수들밖에 없는 중국은, 이미 국가의 역할을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랭킹 5위 길드가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정도라니, 대형길드가 없는 타국들은 도대체 상황이 얼마나 난장판일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캬앜!!」
"응?"
그렇게 허공을 맴도는 붉은 목각인형을 따라 날길 약 30분, 아드레나인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치켜들어보니, 저 멀리 흐릿하게나마 거대한 무언가가, 그러니까 하늘을 떠다니는 천공섬 레반하워즘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게 레반하워즘......"
높이만 하더라도 대략 고층빌딩 하나 정도인 것 같았고, 면적은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을 보아, 그 명성에 맞게 매우 드넓은 듯 하였다.
「......」
아드레나인이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천공섬의 끄트머리에 착륙하였고, 나 또한 가볍게 점프하여 레반하워즘의 땅에 첫발을 내딛었다.
"우와......"
그런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은 드넓은 풀밭들과 꽃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피크닉을 즐기고 싶을 정도의 비쥬얼이었다.
"생각보다 조용하네."
턱을 긁적이며 중얼거리는 나.
분명 내 마지막 기억에 의하면 어느곳에나 몬스터가 득실득실거렸던 레반하워즘의 필드였는데, 지금은 밤이여서 그런것인지 너무나도 조용하였다.
「다들 주군의 기운에 눌려 숨어있다아......」
"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다시 소녀의 형태로 모습을 바꾼 아드레나인이 하품을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하찮은 쓰레기들이 대충 약 80여마리, 근처에 숨어있다아......」
"80마리나?"
피곤한 듯이 말하는 아드레나인의 말에, 나는 눈을감고 조용히 주변의 기척을 느껴본다. 그러자 그녀의 말마따나 정말로 느껴지는 다수의 생명체들의 기운.
「주군이 온 것을 알고, 본능적으로 모습을 감춘거야......」
"그렇구먼."
'공포'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무르는 모습을 보아하니, 레반하워즘의 위에서 고유적으로 생성되는 괴수들은 인간들이 변화과정을 겪으며 만들어진 괴수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다.
"좋아."
뭐, 그래도 무턱대고 무식하게 덤비기만하는 지상의 괴수들에 비하면 백만배는 낫지. 나는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어디보자....."
화면을 몇번 클릭한 뒤, 아까 이시연이 블루투스로 보내준 레반하워즘의 지도 파일을 열어보인다. 그러자 나오는 수많은 양의 PDF파일.
「후, 후아......」
옆에서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아드레나인이 눈이 부시다는 듯 황급히 뒷걸음질 친다. 그런 그녀를 뒤로 한 채 유심히 레반하워즘의 정보를 살펴보는 나.
"흐음......"
난이도 A+의 시즌보스 레반하워즘은 보스이긴하지만 '섬'이라는 무생물인탓에 스스로 전투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다. 따라서 레반하워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각구역에 각각 배치되어있는 신전관들을 각개격파한 뒤, 레반하워즘의 심장조각 다섯개를 모아 조합하는 방법.
"......"
간단히 말해, 흩어져있는 중간보스 다섯명을 찾아내어 죽이면 된다는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