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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화 〉 사생팬 (3) (61/85)

〈 61화 〉 사생팬 (3)

* * *

「또, 엄지손톱을 피가 나도록 물어 뜯고있습니다.」

"......"

내 사역마조차 샘하여 죽이는 스토커였는데, 이렇게 일반인 수십명한테 둘러싸인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겠지. 게다가 렉타우스의 보고를 들어봤을 때 심리적 동요 또한 있는 것이 확실하였으니, 이대로만 간다면 제 발에 못이겨 스스로 내 앞까지 모습을 드러낼 확률이 컸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잡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워낙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니 내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곧바로 숨거나 달아날 터. 내가 직접 그를 찾아 나서는 것은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이행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알겠어. 계속 지켜보며 보고해줘."

「예, 알겠습니다.」

눈을 감고 렉타우스에게 마지막 염문을 보낸다. 이후 자신에 찬 그의 답변이 들려오자, 나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있는 그들. 동시에 갖가지 말소리와 소음들이 어우러져 내 귀를 콕콕 찌르기 시작하였다.

"저희 도와주실건가요?"

"저희랑 파티 맺어요!"

"아니, 저희 클랜에 들어와주시면 안될까요?"

"아......"

여기저기 쏟아져 내리는 무수한 요청들에, 나는 삐질거리는 표정을 짓는다. 물론 이들과 함께 레이드를 진행하며 스토커를 애태우는 것은 환영이지만,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요청이 들어오니 어찌 해야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모두 여기서 뭐하시고 계십니까!"

"......!!"

...그리고 그때, 나를 둘러싼 인파를 비집고 들어오며 소리치는 한 군인. 그는 다급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러고 있을때가 아닙니다! A급 몬스터가 나왔어요! 빨리 지원을......"

"......"

...그때, 거친 숨을 몰아내쉬며 소리치던 그와,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나의 두 눈이 마주친다. 그러자 마치 못볼 것을 봤다는 듯 떨려오는 손 끝과, 떨려오기 시작하는 목소리.

"어? 옥, 옥시안?"

"네, 옥시안인데요."

"여긴 어쩐일로......"

"도와주러 왔어요."

"도와주러......"

...군인은 눈앞에 보이는 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잠시동안 멍을 때리며 상황을 파악한 그는,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뒤 서둘러서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그러면 지금 당장 지원이 필요합니다! 저기 L타워에 A급 괴수가 나타났습니다!"

"L타워?"

그의 손끝이 향한 곳은 잠실을 넘어 한국의 랜드마크라고도 불리는 초고층빌딩 L타워. 유리창이 몇개 깨진 것 빼고는 아무 이상이 없어보이는 그 거대한 건물이었지만,

[키야아아아아앜!!]

"......"

...그건 그저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듯, 이내 거대한 이무기가 마치 기생충처럼 건물 벽을 뚫고나오며 빌딩을 휘감아 오르기 시작했다.

"미쳤다..."

"버섯말이 이무기...!"

"드디어 나온건가, A급 괴수!"

몸길이 약 50m.

거대한 뱀의 모습을 띈 버섯말이 이무기.

시즌 보스의 바로 아래라고 볼 수 있는 그 강력한 A급 몬스터의 등장에, 내 근처 모든 인물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키야아아아아아앜!!]

빌딩을 휘감은 채, 엄청난 괴성을 내지르는 이무기.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헬기가 총구를 겨누며 이무기를 향해 접근하였다.

"......발포."

[캬아아아아앜!!]

불꽃을 내뿜으며 사격을 시작하는 헬기.

허나 총알조차도 그 괴물의 두꺼운 껍질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그저 이무기를 주춤거리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키에에에에에엨!]

"......"

쏟아지는 총알세례 속, 이번엔 자기 차례라는 듯, 머리를 길게 뒤로 빼는 이무기. 그리고는 마치 새총마냥 덤벼들어 나름 거리를 두고있던 헬기를 덥썩 물어챈다. 이어서 곧바로 땅바닥으로 기체를 던져버리는 그 A급의 괴수. 헬기는 충격을 이기지 못한채, 끝내 거대한 화염과 함께 폭발하였다.

"세상에..."

"맙소사..."

"......"

의기양양하게 등장했던 헬기가 너무나도 쉬이 가버리자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유저들. 나는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레에게 달려왔던 군인에게 물었다.

"저기,"

"예? 예!"

"L타워, 무너져도 상관없나요?"

A급 괴수정도야 운석 하나 정도면 간단히 끝날 일. 다만 녀석이 휘감고있는 빌딩도 같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기에 군인에게 조심스레 물음을 던져보았다.

"아, 아뇨, 그건 안됩니다!"

허나, 격하게 고개를 젓는 그. 울먹이는 표정과 함께 다시금 손가락으로 타워를 가리켜 보였다.

"지금 소수의 사람들이 작전을 위해 타워 내부에 짐입해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건물은 무너뜨리면 안됩니다!"

"아......"

건물 안에 사람이 있는거면 어쩔 수 없지.

연습도 해볼겸 이번엔 다른 기술로 퇴치를 해보자.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인 뒤, 찌뿌둥한 몸을 풀고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

나는 스킬 '하늘걷기'를 발동한 뒤 조심스레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놀란 유저들을 밑에 둔 채 점차 고도를 올려 이무기 쪽을 향해 날아갔다.

[키야아아아아아앜!!]

"......"

자신을 향해 점점 다가오는 나를 보고는 표효하는 이무기. 나는 그의 코앞에 둥둥 뜬 채, 턱을 긁적이며 무슨 기술을 사용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해본다.

"공간붕괴는 많이 써봤고......"

블러드 스피어와 혈권으로는 한방컷이 불가능. 근접전과 관련된 스킬보다는 무언가 크나큰 폭발을 주는 스킬이 좋을 것 같다만......

"좋아!"

...그렇게 짧은 생각을 끝마친 나는, 이내 손가락을 튕기며 이무기에게 사용할 스킬을 전개한다. 내 앞에 펼쳐지는, 그것도 평소와는 다른 거대한 검붉은색의 마법진.

[키야아아아아앜!!]

"......"

이무기는 전개되는 마법진을 보고는 기분 나쁘다는 듯 커다란 표효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방금 헬기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덮치기 위해 길게 고개를 내빼는 녀석.

[캬아아아아아앜!!]

"......."

잠시간의 정적 후, 녀석은 마침내 엄청난 속도와 함께 입을 벌리며 내 쪽으로 머리를 뻗어왔다. 동시에, 사악한 미소가 내 입가를 스쳐 지나간다.

"......흑염탄(???)."

[키엨?!]

완성된 붉은 마법진이 점차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엄청난 크기의 화염구가 이무기쪽을 향해 발사된다. 오히려 화염구 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갖다 댄 꼴이 되버린 A급의 마수. 곧이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녀석의 머리를 시작으로 온 몸에 불이 붙어나가기 시작했다.

[키얔! 키야아아앜!]

"......"

고개를 흔들어보며 몸에 붙은 불을 꺼보려하지만, 흑염탄의 설정은 지옥에서 타오르는 불꽃들을 이용한 스킬. 아무리 물을 들이부어도 결코 꺼질 일은 없을 것이었다.

[키에에엨......]

"......"

그렇게 머지않아 힘없는 소리와 함께 금빛 가루로 변해 죽음을 맞이하는 이무기. L타워를 휘감고 있던 그 거대한 괴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흥."

새침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나는 고도를 낮추어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려온다. 그러자 열광적인 반응으로 나를 반겨주는 유저들과 군인들.

"와아아아아!"

"방금 그거 무슨 스킬이었어요?"

"이게 옥시안? 미쳤네......"

"아......"

또다시 수많은 질문들과 함께 나를 둘러싸는 유저들. 아까와 다른점이 있다면 이번엔 핸드폰도 같이 들이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 사진 찍어주세요!"

"남는건 사진이지."

"SNS에 올려도 되나요?"

"그,그게, 잠,잠시만, 한,한명씨익......"

나는 한껏 당황한 얼굴과 함께 일단 가장 가까이 위치한 남성의 카메라를 들어준다. 그러자 엄청나게 감격적인 표정으로 내 곁에 다가오는 검정 스포츠 머리의 유저.

"와, 방금 진짜 멋있었어요."

"감, 감사합니다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을 날리는 유저에,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의 핸드폰 '촬영'버튼에 손가락을 가져다댄다.

"자, 하나, 둘,"

"......"

...카운트다운을 세고,

손가락에 압력을 넣어 버튼을 누르려는 그 순간,

「전하!」

"......응?"

「큰일났습니다!」

......갑작스레 머리속에 울려퍼지는 렉타우스의 염문.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릴 시간도 없다는 듯 황급한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한다.

「괴한이 갑자기, 정말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위치파악이 안됩니다! 조심하십시오!」

"......뭐?"

예상치도 못한 그의 말에,

나는 곧바로 핸드폰에서 손가락을 내리며 주변을 살피었고,

"어? 으, 으아아아아아악!!"

"......!!"

...동시에, 내 옆의, 같이 사진을 찍으려했던 남성이 갑자기 피를 내뿜으며 몇m나 뒤로 날아가 자빠졌다.

"꺄아아아아악!"

"뭐, 뭐야?"

"갑자기? 뭐야?"

난데없이 선혈을 흩날리며 땅바닥을 나뒹구는 스포츠머리의 남자를 보자, 나를 둘러싸고있던 주변 사람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혼란에 빠졌다.

"......"

......허나, 어리둥절 알수없는 표정을 짓는 그들과는 달리, 나는 볼 수 있었다.

"크흣, 푸흣, 푸흐흡!"

묘하게 울렁이는 허공.

동시에 들려오는 높은톤의 웃음소리.

"옥시안님! 감히 누구랑 사진을 찍으시려고 그래요."

"......"

마치 스텔스 모드를 해제하기라도 하듯,

울렁이던 그 투명한 허공에서 점차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검정색 코트의 남성.

"진짜 섭섭하게 이러실거에요?"

갈색의 머리칼,

윤기나는 검정색의 롱코트,

왼손에 쥐어진 검정색의 가면.

더불어 그의 머리 위에 새겨지는 글자들.

"......"

[아우레키아]

직위: 시즌보스

종족: 구울

소속: 없음

레벨: 2200

난이도 SS급의 시즌보스, 아우레키아.

그러니까 그 지저분한 스토커는, 광기에 찬 웃음과 함께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네었다.

"이렇게 멋진 남자친구가 버젓이 있는데 말이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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