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사생팬 (4)
* * *
"남자친구?"
"쟤 뭐라는거야?"
"아니, 것보다 누구야?"
"......"
갑작스레 나타난 아우레키아에, 주변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허나, 그런 타인들의 반응 따위 관심 없다는 듯, 베시시 웃으며 내 쪽으로 걸어오는 SS급의 시즌보스. 남자치고는 꽤 높은 톤의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진짜 질투나게 이러실래요? 저도 못찍어본 사진을 감히 누구랑 찍으시려고요."
"......"
겁이라도 주려는 것일까. 주먹을 깍지낀 채 뚜둑 소리를 내보이는 아우레키아.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를 둘러싼 유저들은 당혹감과 함께 여러 질문을 동시다발적으로 던진다.
"옥시안님, 누군지 아세요?"
"뭐하는 새끼야?"
"같은편......?"
"미쳤냐? 갑자기 멀쩡한 사람을 쳤는데?"
"......"
아우레키아의 정체가 감이 안잡힌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들. 하기야, 평소 쓰고다니는 가면을 벗고 그 누구도 보지 못하였을 맨얼굴을 드러낸 상태였으니, 유추가 안되는 것도 당연할 터. 나 또한 염탐자와 지금까지의 상황이 없었더라면 한번에 알아보기는 힘들었을 것이었다.
"...14/15시즌 보스, 아우레키아에요."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우레키아의 정체를 잔뜩 긴장한 유저들에게 알려준다. 그러자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 나의 말에 한껏 당황하며 거리를 벌리는 그들.
"아, 아우레키아?"
"그 시즌보스?"
"그러고보니 롱코트에 저 검정 가면!"
잔뜩 경계한 채 각자의 무기를 빼든 유저들의 중얼거림이 L타워 앞 사거리에 울려퍼졌다. 근처에 있던 군인들 또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감을 인지하고 아우레키아 쪽으로 총구를 하나 둘 겨누기 시작하였다.
"......"
적대적인 시즌보스의 등장으로 얼어붙은 주변.
나는 바짝 긴장한 그들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해보이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부상자 데리고 일단 물러서세요."
어차피 아우레키아가 관심 있는 것은 나뿐이고, 괜시리 옆에 있다가는 방해만 될 요소들이었으니까.
유저들 또한 지금 상황에서 별달리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죄, 죄송해요."
"큭, 옥시안님과 같이 싸워보고 싶었는데..."
"멍청아 지금 그게 중요하냐?"
"나중에 또 뵈어요!"
"......"
가지각색의 반응을 내비치며 후퇴하는 유저들과 군인들. 그리고 아우레키아는 역시나 그들에겐 별다른 볼일이 없다는 듯, 턱을 긁적이며 멀어져가는 사람들을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후......"
...이내 주위가 고요해졌다.
근처 빌딩 몇개의 옥상에서 저격수들이 아우레키아를 노리고 있는 것을 빼면은 그와 나 둘만 남은 상황.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침묵을 뚫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나였다. 애초에 귀찮은걸 싫어하고, 딱히 인사치레를 지낼 상대도 아니었기에, 나는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었다.
"세리아나 죽인거 너 맞지?"
레반하워즘에서 세리아나를 죽였다는 우는 모양 가면의 괴인. 그리고 아주 놀랍게도 지금 아우레키아의 손에는 눈물이 그려져있는 검정 가면이 쥐어져있었다.
"세리아나?"
나의 물음에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아우레키아. 이윽고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손가락을 튕기며 경쾌한 답을 내뱉었다.
"아, 그 날개 달린 사역마요? 네! 제가 죽인거 맞아요."
"하!"
놀랍게도 당당한 그의 어조에 나는 어이없는 탄식을 내뿜는다. 그러자 아우레키아는 그런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솔직히 옥시안님을 지키는건 저 하나로 충분해요."
"......"
"만약 옥시안님 근처에 다른 사역마들이라던가, 남자들이 또다시 얼씬댄다면,"
───그녀석들도 다 죽여버릴거에요.
"......"
날카로운 목소리로 '옥시안은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아우레키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쓰레기같은 말을 듣잖니, 속이 울렁거리며 그에 대한 환멸감이 몸 속 깊은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미친새끼."
역겨움을 가득 담아 욕설을 내뱉는다.
시즌보스가 되어서 하는짓이 겨우 내 스토킹이라니, 욕이 아니나올수 없는 상황.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그에게 물어볼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내 속옷은? 그것도 너가 가져간거야?"
"아 그거요?"
내가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코트 품 속을 뒤적거려 연분홍색의 팬티 한장을 들여올려본다.
"요즘 연인들끼리는 속옷 주고받는게 유행이라길래 하나 갖고왔어요."
"......"
"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닥쳐."
그의 손가락에 들려 팔랑거리고 있는 것은 확실히 평소 입던 나의 속옷.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입술을 깨물며 그를 향해 달려간다.
"그냥 죽어라 너."
차오르는 어이없음과 황당함, 그리고 분노를 담아, 있는 힘껏 그에게 주먹을 내지른다. 어떠한 스킬도 의존하지 않은 채 휘두른 정권이었지만, 기본 신체 레벨이 워낙 높아서인지, 그 속도와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어?"
별다른 반응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얼굴을 강타당하는 아우레키아. 짧은 외마디 신음과 함께 그대로 몇십미터를 날아가 땅바닥에 박혔다.
"아악!"
그는 피가 흐르는 코를 움켜쥐며 바닥을 나뒹군다. 그의 종족이 본디 재생력이 빠른 구울인만큼, 나는 그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다음 공격을 날린다.
"변태새끼."
이번엔 오른발을 들어 아우레키아의 명치 부분을 내려찍는다. 그 충격으로 지면에 균열이 생김과 동시에, 아우레키아의 입에서 피가 왈칵하고 튀어나왔다.
"하,하하......"
"......"
...갑작스레 이어진 공격에 당황한 것인지, 실실 웃음을 흘리는 아우레키아. 나는 그런 그의 위에 올라타, 이번엔 양쪽 주먹을 번갈아가며 그의 얼굴을 강타하였다.
"너한텐 스킬도 쓰기 아깝다."
공간붕괴를 사용했다면 한번에 끝날 사항이었겠지만,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역시 직접 패는 것이 최고. 나는 희미한 웃음을 머금으며 그동안 얹힌 분을 풀기 위해 그를 때리고, 또 때렸다.
"크학! 컥,"
"......"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맞기만 하는 아우레키아. 때리던 것을 잠시 멈추자, 그는 힘겹게 고개를 치켜올린 뒤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옥시안님의 사랑의 매, 이거, 너무 좋은걸요."
"무,무슨!"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아우레키아에, 나는 환멸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생각보다 더한 그의 변태기질에 왜인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아이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어렵사리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우레키아. 어느덧 그의 전신은 피로 물들어져 있었으며, 골격 또한 여기저기 기괴한 모습으로 뒤틀려있었다.
"듣던대로 힘 하나는 장사시네요."
"......"
구울이라는 종족이 무색하지 않게, 그는 빠른 속도로 상처를 재생시켜낸다. 부러진 뼈들과 함몰되었던 광대, 심지어 구멍이 뚫리다시피 한 명치도 서서히 본래 형태를 찾아 되돌아갔다.
"웃차,"
상처가 완전히 재생되자, 그를 확인하기 위해 팔을 붕붕 휘둘러보는 그. 이윽고 완벽히 치유됐음을 확인한 것인지, 그는 다시 나를 쳐다보고는 환히 웃으며 말하였다.
"...역시 제 여자친구다워요!"
"......뭐?"
정말이지 순수한 얼굴로 그런 말을 내뱉는 아우레키아에, 나는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 그래도,"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며, 아우레키아는 점점 자신의 몸을 투명히 만들어나간다. 마치 스텔스 모드라도 가동시킨 듯, 발끝부터 점차 사라져가는 그의 모습.
"...말 안듣는 여친은 교육이 필요할 것 같네요."
단지 허무맹랑한 문장만이 허공을 맴돌뿐이었다.
"미친새끼."
...나는 경멸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특성 '염탐자'를 발동시킨다. 상대의 정보와 본질을 뚫어보게 해주는 이 염탐자라면 아무리 투명해졌더라도 그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을터. 그리고 역시나,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의 모습이 반투명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한다.
'보인다.'
마른침을 삼키며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아우레키아를 눈으로 쫓는다. 앞뒤좌우, 마치 카레이서라도 된 것 마냥 내 주위를 맴돌다, 이내 빈틈을 파고들어 재빨리 접근하는 그.
"......"
"윽?!"
자신의 모습이 감춰졌다 생각하고 다가온 그였겠지만, 염탐자를 발동한 이상 이건 그냥 자신을 가져다 바치는 자살 행위. 나는 다가오는 그의 목을 꽉 잡은 채 그대로 땅바닥에 꽂아버린다.
"크악!"
또다시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 아우레키아.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엄청난 당혹감이 그의 표정에 서려있었다.
"어, 어떻게...!"
그는 모든 몬스터들 중 가장 스텔스에 최적화 된 자신을 정확히 잡아낸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더듬거린다. 나는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그 갈색 머리 청년의 귀에 조용히 속삭여준다.
"너하고 나하고 레벨차이만 1300이야."
"......"
"이번엔 반죽이 되도록 패줄게."
...그 하찮은 재생 능력도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야.
***
.
.
.
.
.
"흐아......"
어느덧 저녁빛 노을이 잠실을 비추고,
나는 찌뿌둥한 몸을 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끄윽, 끄윽......"
"......"
그리고 내 밑, 몸의 '입체감'이라는 것이 사라진 채 완전히 묵사발이 나있는 아우레키아. 재생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가 중간중간 저항도 해서 살짝 힘든감이 적지않게 있었지만, 그래도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도 없을정도로 찌그려뜨리는데에 성공했다.
"꺽, 꺼억,"
그의 그 질기고 질겼던 생명력도 곧 빛이 다해가는 듯, 점점 가빠오는 숨소리. 이내 온몸이 축 늘어지며, 그나마 이어지던 호흡 또한 멈추게 되었다.
"......개새끼."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는다.
세리아나를 죽인 것도 충분히 화나는 일이었는데 속옷을 훔치고 여자친구 운운하며 다니다니, 사태 이후로 가장 화나지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옥시안님!"
"괜찮으신가요?"
"......?"
한껏 뭉개진 아우레키아의 시체를 감상하던 도중,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만났던 유저들이 황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어요! 완전 미쳤던데요?"
"스킬하나 사용하지않고 무투로 압도하다니..."
"진짜 사랑해요......"
"아, 예..."
흥분에 가득 찬 그들의 반응에 삐질거리는 표정을 짓는다. 하기야, 무투 시즌보스의 대명사급인 아우레키아를 스킬 하나 안쓰고 손쉽게 압도했으니 이럴만도 하지.
"별거 아니었어요."
"이게 별거 아니면 진심은 어떤거길래..."
"제발 다른마음은 먹지 말아주세요..."
멋쩍게 웃으며 답하자 더더욱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그들. 그렇게 오순도순 담소를 나누는 와중, 어느 유저 하나가 아우레키아의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히 죽은거 맞죠?"
"예?"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묻는 남성 유저. 그의 물음에 나는 걱정하지말라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하죠."
척보기에도 알 수 있겠지만, 몇수천번을 내리찍으며 아예 반죽을 만들어놓았으니까. 신이 오더라도 이것을 되살리기엔 부족할 터.
"완전히 해치웠으니, 걱정하지 마세,"
"......어? 어? 아아아아아아악!!"
"......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하던 와중, 갑작스레 괴성을 지르며 몇십미터를 날아가는 유저. 무언가에 맞은 듯한 그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본다.
[옥.......시....안...님......]
"뭐, 뭐야?"
분명 형체도 남지 않았을 아우레키아였을턴데, 그가 쓰러졌던 자리에서 무언가 거대한 촉수같은 것이 꿈틀거리며 점점 길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사......랑.....해요......]
"미친......"
"세상에......"
반죽 같았던 그의 시체가 팽창하더니, 이내 수십개의 기다란 촉수를 꿈틀거리는 문어같은 모습으로 형체를 변화시킨다. 저층아파트의 크기 정도로 급격히 크기를 키워나가는 그.
"씨발 뭐야."
분명 구울의 압도적인 재생능력도 무색할정도로 곤죽을 내놓았는데 되살아나다니, 이건 결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나는 눈살을 찌푸린 뒤, 염탐자를 다시 발동하여 그 괴생명체의 정보를 꿰뚫어본다. 그러자 아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방대해진 머리위의 텍스트.
[아우레키아]
※PHASE 2※
직위: 시즌보스
종족: 구울
이명: 갈구하는 자
레벨: 2463
"아."
시즌보스가 극한의 상태에 몰렸을때 일정 확률로 나타난다는 페이즈2, 일명 '각성 단계'.
[영원...히....함께....하자....]
"......"
......뭐 어찌됐든,
더이상 그는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