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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 사생팬 (5) (63/85)

〈 63화 〉 사생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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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보스라고는 렉카챠 하나밖에 상대해보지 않아 페이즈 2의 존재를 깜빡하고 있었다. 보스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각성 단계의 발현 확률도 비례해서 높아지는데, 이를 간과하고 있던 나의 실수였다. 최소한 금빛의 재로 돌아가는 것까지는 확인 했어야 되는데 말이다.

[옥.....시...안......]

그리고 어느덧 거대한 문어와도 같이 변해버린 아우레키아는 기괴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끈적한 촉수들을 정신없이 휘두르며 주변인들을 위협하는 그.

"정신은 없는건가."

거대한 촉수 사이로 드러난 아우레키아의 흐리멍텅한 눈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의미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말과 무지성으로 날아다니는 촉수 등을 보아하니, 그에게 이제 이성 따위는 남아있지 않아보였다.

[모두 발사준비.]

"어?"

......이어서, 꿈틀거리던 아우레키아의 몸체에 수백개의 붉은점들이 박히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 새빨간 레이저들에 고개를 돌려보니, 건물 옥상에 배치된 저격수들이 일제히 아우레키아를 노리고 있었다.

"안돼....."

높은 확률로 먹히지 않을 공격을 준비하는 그들을 향해 나는 다급히 소리친다. 각성 전에도 먹히지 않았던 총기였는데 페이즈 2가 발동 된 지금 데미지를 입을 리는 만무할 터. 오히려 자신들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알려줄 뿐이 될것이었다.

[......발사.]

"아......"

허나,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인지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군인들. 이후 총알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아우레키아의 피부에 박힌다. 미약하게나마 고통이 느껴진 것인지, 피격받은 아우레키아는 몸을 떨며 거세게 울부짖는다.

[끼야아아아아아악!]

"......"

주변이 울릴 정도의 기괴한 소리를 내뿜는 아우레키아. 나는 별다른 영향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내 주변의 유저들은 물론이고 옥상의 저격수들은 곧바로 귀를 움켜쥐고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하였다.

"큭!"

"아아악!"

"귀, 귀가!!"

들려오는 그 비명이 상당히 고통스러운건지, 그들은 마음대로 몸을 겨누지 못한다. 단지 땅바닥 속에 얼굴을 파묻고 어서 이 괴음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

[......]

아우레키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촉수를 뻗어 옥상의 저격수들을 낚아챈다. 빨판이 달린 촉수로 군인들을 강력히 구속한 채 여기저기 뒤흔드는 그. 나는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씨발."

본래라면 공간붕괴로 한번에 소멸시킬 예정이었지만, 저렇게 인질이 잡혀있으면 광범위 소멸 스킬은 사용하기 애매해진다. 저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라도 근접전이 무조건 강요되는 상황.

"그러게 총을 왜 쏴서...!"

총만 쏘지 않았더라도 위치 노출이 되지 않고 인질로 잡히지도 않았을텐데, 나는 군인들의 안일한 선택에 탄식을 내뱉으며 서둘러 아우레키아를 향해 달려나갔다.

"렉타우스."

「예 전하.」

"여기와서 사람들 대피시켜."

시즌보스, 그것도 페이즈2로 각성한 SS급의 보스였으니, 전투의 파장이 클 것을 대비하여 렉타우스에게 주변인들의 대피를 명한다.

「알겠습니다!」

"......"

머리속에 울려퍼지는 그의 명쾌한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나는 허공으로 힘차게 뛰어오른다.

"으, 징그러."

자신으로의 접근을 막는 아우레키아의 촉수들에 경악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나. 끈적한 점액들을 내뿜는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잖니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

"윽,"

거기다, 아우레키아는 나를 낚아채기 위해 채찍마냥 촉수를 휘둘러대기 시작한다. 서부시대 카우보이마냥 날카로이 찔러오는 촉수를 피하며, 나는 그에게 붙잡혀있는 군인들에게로 재빨리 다가간다.

"어, 어지러워어어어!"

"아아아아악!!"

촉수와 같이 여기저기 휘둘러지고 있는 군인들이 괴성을 내지른다. 그리고 나는 촉수들을 징검다리 삼아 접근하며, 그런 그들을 속박하고 있는 촉수를 잘라버리기 위한 스킬을 전개하였다.

"그림자 칼날."

스킬명을 외치자, 내 손에 부메랑과 유사히 생긴 검정색 칼날이 쥐어진다. 각도를 잘 계산해본 뒤, 그 칠흑색의 무기를 힘차게 앞으로 내던지는 나.

"......"

날카로운 그림자 칼날은 잿빛가루를 흩날리며 내 손을 떠났고, 이내 부드러운 포물선과 함께 군인들을 잡고있던 촉수들을 베어냈다. 매끄러운 소리와 함께 잘려져나가는 그 역겨운 것들.

"으아아악!"

"아악!"

이어서 붙잡혀있던 군인들이 비명과 함께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 높은 위치가 아니었으니 떨어졌더라도 큰 상처는 입지 않았을 터. 인질들이 안전하게 풀려난 걸 확인한 나는 다시금 시선을 아우레키아에게로 돌렸다.

[끄윽, 끄아악......]

"응?"

촉수를 잘라내자 발작을 일으키는 듯 한 이상한 신음을 내기 시작하는 아우레키아. 그와 동시에 절단된 촉수의 단면에서 거품이 일더니, 그것들은 이내 놀라운 속도와 함께 다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재생 능력은 그대로인가보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내 눈살이 자동적으로 찌푸려진다. 어째 인간의 형태였을 페이즈 1때보다 그 재생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진 것만 같았다.

"......"

초단위의 재생능력을 지닌 이상, 한번에 처리하지 않을 시 끊임없이 몸을 재생시키며 나를 괴롭힐 터. 이제 인질도 없겠다, 아예 광범위 소멸 스킬을 전개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캬아아아악!]

"이크,"

허나, 그 스킬을 전개할 틈 조차 주지 않겒다는 듯 연속적으로 촉수를 휘둘러대는 아우레키아. 촉수에 뾰족뾰족한 가시를 세워놓은 것을 보아, 한번 잡은 뒤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심상인 것 같았다.

"으......"

...뭐, 대상이 다른이도 아니고 옥시안이었으니 잡혀도 곧바로 탈출할 수는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촉수에서 흘러나오는 끈적한 점액이 온몸에 묻어나올 터.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느끼고 싶지도 않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었다.

"더러워."

각성 전이나 후나 여전히 더러운 짓만 해대는 아우레키아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며, 나는 전개할 스킬에 대하여 고심하기 시작한다.

"음......"

이왕이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은데, 주로 사용하는 공간붕괴와 메테오는 고통을 주지않는 원턴킬 스킬. 전신에 화상을 입히는 흑염탄은 상처를 재생시켜버리는 아우레키아와는 상성이 좋지 않아보였다.

"또 뭐가 있었지."

날아오는 촉수를 비틀어 피하며 생각을 이어나가는 나. 근접전 스킬들 또한 시간벌이만 될 뿐 목숨을 끊지는 못할테니, 조금 더 강력한 색다른 것이 필요하였다.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 원턴킨 스킬이라......"

주로 한방컷이 가능한 것은 폭발계열의 스킬이었지. 분명 며칠전에 메테오의 위력 버금가는 폭발 스킬을 본 것 같았는데.

"으, 뭐였더라?"

[끼아아아아악!]

생각 도중 찔러오는 촉수를 붙잡은 뒤 손날로 잘라버린다. 하지만 역시나 곧바로 상처를 재생시켜버리는 아우레키아. 수십개의 촉수가 철퇴마냥 나를 향해 휘둘러진다.

"아."

......그렇게 공격을 회피하며 이어진 짧은 고민 끝에 한가지 단어가 내 머리속을 스쳐지나간다. 이어서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새하얀 손을 앞으로 뻗은 뒤, 조용히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대폭발."

3음절의 짧은 영창.

그리고 그것이 끝나자마자 새겨지기 시작하는 연주황빛의 마법진.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면 땅바닥도, 하늘도 아닌 아우레키아 본체에 새겨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

엄청난 속도로 마법진의 전개가 끝나자, 아우레키아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일제히 휘두르던 촉수를 멈춰버린다. 이어서 마치 딸국질을 하듯이 규칙적으로 몸을 떨어오는 아우레키아.

[끄, 끄야이악...!]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경련은 더욱 심해지더니, 이내 10초 정도가 지났을 무렵엔 거대한 심장마냥 온 몸 여기저기가 두근대기 시작하였다.

[끄어, 끄어어아악,]

몸이 떨릴때마다 붉으스름한 빛을 내뿜는 그.

마침내 시간이 흐르고, 문어같던 몸은 점점 부풀어올라 부피를 키워나갔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풍선처럼 팽창하는 몸과 더불어 빨갛게 달아오르는 피부에 아우레키아는 괴성을 내지른다. 아마도 속이 불타오르는 듯 괴로워서 그런거겠지. 이건 그런 스킬이었으니까.

[끼약! 끄야이야아아이악!!]

여전히 딸국질을 하 듯 몸을 떨며, 그는 분노에 찬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이어서, 마지막 힘을 짜내 휘둘러보는 하나의 촉수. 허나, 그 최후의 발악이 나에게 닿기 전에,

[끄꺄이끼야이아아아아아아아악!!]

"......"

아우레키아의 몸이 먼져 터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수류탄을 삼킨 듯, 미사일을 삼킨 듯, 빨갛게 과열됐던 그의 온몸이 조각조각나며 하늘로 튀어올라 나갔다.

"오."

폭죽 비스무리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불꽃놀이 마냥 튀어오르는 그의 몸 조각들. 어느덧 별빛이 가득해진 밤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촉수들은, 금색 가루가 되어 허공의 숨결 속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멋있네."

...금빛의 재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완전히 사망하였다는 뜻. 은하수마냥 흩날려져오는 스토커의 마지막 유산을 감상하며, 나는 환히 미소지었다.

"......"

처음으로 아우레키아가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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