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 초대장 (1) (64/85)

〈 64화 〉 초대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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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레키아와 싸운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중국에서의 일도 꽤나 잘 끝났고, 그 귀찮던 스토커마저 사라지니, 그제서야 나는 편안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비록 인외변화자들을 위한 캠프설치 건으로 몇번 레반하워즘에 들락거리긴 했지만, 갈때마다 베를레히리를 실컷 괴롭힐 수 있었으니 딱히 귀찮지만은 않았다.

"흐음..."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언제나 그랬듯이 핸드폰을 집어드는 나. 화면을 몇번 클릭한 뒤, 유저들의 전용 커뮤니티인 '정보회'에 접속한다. 한번 스크롤을 올릴때마다 수십개씩 업로드되는 새로운 글들.

[인천 C급 마광석 거래하실분]

[서귀포 레이드 파티원 구함]

[유용한 응급처치 모음.jpg]

"오."

아이템 거래글부터 파티원 모집, 그리고 다양한 정보 알림까지. 오늘도 정보회의 게시판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십개의 글들 중, 유독 하나의 질문이 내 시선을 끌었다.

[질문: 옥시안 출몰 조건이 뭐임?]

"...뭐?"

눈살을 찌푸리며 그 의도 모를 글을 클릭해본다. 그러자 화면에 펼쳐지는 꽤나 기다란 텍스트. 달린 댓글 또한 수십개로, 보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하였다. 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천천히 내용을 읽어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지 볼 수 있음? 지난번 잠실 애들은 대체 뭔 짓을 했길래?]

ㄴ[ㅁㄹ?]

ㄴ[코끼리코 백바퀴+앞구르기 20번 하면 나옴]

ㄴ[듣기에 시즌보스들만 나서서 처리한다던데]

ㄴ[위험구역에서만 가끔씩 볼 수 있는듯?]

ㄴ[진짜 나도 딱 한번만 보고싶음ㅋㅋㅋ]

"하......"

히든 아이템 마냥 옥시안의 출몰 조건을 묻는 글.

본문과 그 아래 달린 코멘트들을 다 읽자마자 자동반사적으로 한숨이 나왔다. 직접 아우레키아를 처리한 여파로 나에 관한 추측글들이 난무하다 겨우 사그라드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나보네.

"......"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곧바로 뒤로가기를 누른다. 이제 이정도는 익숙해진 일.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즐기고 기쁘게 여길 수 있도록 노력중이었다.

"뉴스."

...대강 게시판을 훑어본 나는 이번엔 '국제정세' 카테고리로 들어간다. 그러자 좌르륵 나열되는 오늘자의 새로운 뉴스들. 나는 맨 위의 기사부터 천천히 클릭해본다.

"길드 연합, 서/남유럽 안전구역으로 지정이라..."

신세리아 르 메이,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 알 슈타인, 청장미,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아벨리아까지. 대형 길드들이 즐비한 유럽은 마침내 괴수들을 95%까지 제거하였다고 한다.

물론 아직 완벽히 진압되지 못한 곳도 있고 번식으로 인하여 괴수들이 전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이 가능해질 정도로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다행이네."

문득, 머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영국에 계신 부모님.

문자로 안부를 간간히 주고 받고있는데다가 마음만 먹으면 전이문으로 모시러 갈 수도 있었지만, 옥시안으로 외형이 변해버린 탓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제는 딸이 되어버린 아들을 보면 부모님은 무슨말을 하실까. 그분들의 충격이 과연 수십억의 돈으로 커버가 될까. 나를 괴물이라 두려워하시면 어쩌실까. 나는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을까.

"......"

나무뿌리 마냥 나를 얽메어오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

급격히 치솟아오르는 찝찝함에, 나는 서둘러 고개를 젓는다. 뭐, 이제 유럽도 안정되었고, 부모님도 한층 더 안전해지셨을테니, 내 정체를 밝히는 것은 조금 느긋히 고민해도 되겠지.

"다음!"

나는 기합을 넣으며 쓸데없는 고민은 날려버린 뒤, 그 밑의 기사를 눌러본다. 두번째 뉴스의 토픽은 아시아의 정세.

"인도."

기사에서 먼저 초점을 잡은 것은 인도였다.

명시된 현재 인도의 상황은 말그대로 초토화.

죽은 사람을 좀비로 부활시키는 능력을 지닌 SS급 시즌보스 워하드가 출몰한 탓에, 안그래도 인구수가 많은 인도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길드 연합에서 중국의 화양연화와 2개의 길드를 추가로 지원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미 불어날대로 불어난 좀비들을 처리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한다.

이대로는 인도를 아예 포기하거나,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거나, 둘 중 하나의 시나리오로 흘러갈 것 같은데... 왜인지 불안한 기운이 등골을 따라 슬며시 올라왔다.

"다음은......"

인도 다음의 국가들은 동아시아 3국.

먼저 중국은 다량의 시즌보스들이 출몰하여 초반에 어려움을 겪었었지만, 링 메이와 인외변화자들이 레반하워즘으로 이주한 뒤부터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하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복하지 못한 영토가 너무 많아 꽤나 곤혹을 치루고 있는 상태라 하였다.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나마 상태가 훨씬 좋았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도시들을 수복하였고, 독일을 연고지로 한 상업길드이자 아리아 길드의 동맹 길드인 알슈타인이 여러 물자를 지원해줘 자원면에서도 부족함은 없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일본 또한 해상에 S급 시즌보스 레비아탄이 출몰한 것을 빼면 단 한마리의 보스급 몬스터도 나타나지 않아 수월하게 도시를 방어중이라 하였다. 오히려 랭킹 8위 길드 '파도의 우울'의 지휘 아래 독도, 쿠릴 열도 등 타국의 영토에 눈독을 들이는 중이라 하니, 대충 그들의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러시아......"

마지막 국가는 러시아.

대형 길드인 클랜 블리자드에다가 기본적으로 국방력이 강한 나라였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오히려 타국들보다 큰 난관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피스티처."

블라디보스토크에 출몰한 난이도 S급의 시즌보스, 피스티처. '도플갱어'란 희귀 종족인 그녀는 주특기인 최면술로 국민들을 세뇌시켜 자신만의 군대를 만들었고, 그렇기에 그녀를 진압하는데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하기야, 자칫하면 자국의 국민을, 누군가의 아버지를, 여동생을, 친구를 죽이는 일이었으니, 섣불리 행동하기가 힘들겠지. 정부의 힘과 국민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약해진 지금같은 시점에는 더더욱 말이야.

"똑똑한 년일세."

기사를 보는 나의 입꼬리가 히죽거린다.

어라이징 시절 보스토벌전 때는 그저 그랬을 능력이지만, 그것이 현실에 겹쳐진 지금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능력은 최상의 능력. 과연 그 힘을 지니고 무엇을 이루어낼지 내심 궁금해지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어느덧 남은 것은 아프리카와 미국 등 기타 대륙에 관한 마지막 기사. 쉬이 접할 수 없었던 아프리카의 소식도 실려있어, 나는 호기로운 표정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미국."

먼저 미국.

군사대국이라는 이미지답게 샌프란시스코 등의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전 국토를 수복했다고한다. 다만 C급 몬스터인 '매운 메뚜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하였다.

"......별거 없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나은 상태의 미국이었다.

뭐, 풍부한 전력과 랭킹 3위 길드까지 버티고 있으니 무서운게 뭐가 있으랴. 아마 그쪽은 게임을 즐기는 마인드로 괴수들을 퇴치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프리카."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은 아프리카.

사태 이후 처음 접하는 그 넓은 대륙의 소식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꽤나 간결한 텍스트.

"이집트, 홀로 고군분투 중이라......"

...유저들이 수가 워낙 적은 아프리카여서, 대형 길드가 위치한 이집트가 대륙 전역을 수호하고 있는 비참한 형국이라 하였다. 허나 그마저도 인원수가 너무나도 부족했기에 아프리카의 피해는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라고 뉴스는 말하고 있었다.

"잘 이겨냈으면 좋겠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드는 동정심에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나라가 완전히 정리되면 그쪽으로 지원을 한번 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선택일 터.

"하......"

나는 핸드폰을 내던진 뒤, 다시금 침대에 대(大)자로 벌러덩 드러눕는다. 푹신한 배게에 머리를 파묻는 나. 이 옥시안이란 캐릭터는 정말 완벽했지만, 머리에 돋아난 뿔 때문에 옆으로 누워 자지 못한다는게 옥의 티였다.

[우우우웅]

"뭐야."

포근한 매트리스와 동화되가던 그때, 묵직한 진동이 침대 전체에 울려퍼졌다.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진동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방금 던져놓은 스마트폰이 우렁차게 자신의 몸을 떨고 있었다.

"이시연...?"

아리아 길드의 길드장, 이시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있는 핸드폰. 근 1주일간 아무 소식이 없던 그녀에게서 온 전화에, 나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통화 수락'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들려오는 활기찬 목소리.

[이야! 옥시안님, 잘 쉬고 있으셨나요?]

"아, 예."

기복없이 항상 밝은 듯한 그녀에,

나는 삐질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답하였다.

"잘지내고 있긴 한데... 무슨 일이죠?"

사적인 일로 구태여 전화까지 할 필요는 없을터이고, 설마 또 의뢰가 들어온 것인가? 중국에 다녀온지 1주일밖에 안지났는데?

[아! 의뢰는 아니고요, 알려줄 것이 하나 있어서요.]

수화기 너머로 걱정하지 말라는 이시연의 목소리가 전해져온다. 그리고 알려줄 것이 있다는 의외의 소식에 턱을 긁적이는 나.

"알려줄 것이요? 뭔데요?"

뭐지?

이시연, 그러니까 아리아 길드의 길드장으로부터 내가 전해 들어야 할 정보? 혹시 대통령이 보자고 한건가? 아니면 길드 회의에서 호출? 어느쪽이 됐든 몹시 귀찮은 일인데......

[아, 아뇨, 별건 아니고,]

[초대장이 하나 와서요.]

"......예?"

...허나, 이시연의 입에서 나온 건 생각치도 못했던 발언. '초대장'이라는 익숙치 않은 단어를 듣자, 내 표정이 자동반사적으로 찌푸려졌다.

"초대장? 무슨 초대장이요?"

나를 초대한다고? 어디에?

설마 정말 청와대 만찬에라도 초대하려는 것인가?

[아뇨, 유럽에서 온 것입니다.]

"유럽?"

스피커로 전해져오는 그녀의 말을 듣자 나는 눈살을 찡그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유럽? 차라리 아프리카나 인도면 모를까, 불과 5분전에 본 뉴스에 따르면 안전지대로 선정되었다는 그 유럽? 전투 인원들도 넘쳐나는 그들이 왜 구태여 옥시안을 초대하는거지?

[어, 그게,]

"그게?"

나는 무언가 뜸을 들이는 듯한 이시연을 서둘러 재촉한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오는, 잔뜩 긴장한 듯 한 떨리는 목소리.

[어, 그러니까, 그게...]

[격투대회 초대장이여서요...]

"예?"

......이시연의 통화를 받은지 30초.

말문이 막히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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