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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화 〉 초대장 (2) (65/85)

〈 65화 〉 초대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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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대회.

어라이징 시절부터 대형 길드들의 주도 하에 열리곤 했던 꽤나 유서깊은 행사로, 유저들간의 자웅을 겨뤄본다는, 단순한, 아주 아주 단순한 취지의 대회였다.

"......근데 그 초대장이 왜 저한테 온거죠?"

허나, 나는 이시연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 '격투대회 초대장'이라는, 그다지 길지 않은 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슬리는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굳이 격투대회를 열고, 밸런스를 파괴할 것이 뻔한 옥시안을 굳이 초대한다고? 유저들간의 힘을 겨룬다는 대회의 의미가 없어질것이 뻔한데? 오히려 내 눈에는 옥시안의 전투력 측정을 위한 허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이시연의 당황한 듯 한 목소리. 그녀는 잠시 말을 더듬거리더니, 이내 다급한 목소리로 무어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그런거 절대 아니에요! 일단 이 초대장은 옥시안님이 아닌 아리아 길드에게로 온 초대장입니다!]

오해는 절대 금물이라는 듯, 황급히 해명을 하는 그녀. 초대장의 발신인이 내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럼 왜 저한테 연락하신거죠?"

이해가 안된다는 어투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한테 온 편지도 아닌데 굳이 이야기 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설마 대신 싸워달라는 것인가?

[......어, 대충 비슷하긴 한데,]

아니나다를까, 멋쩍게 웃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보는 이시연.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잠시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무어라 중얼거렸다.

[하... 혹시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통화로 하기에는 조금 긴 이야기라서...]

"그정도에요?"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하지?

기껏해봤자 겨우 사설 격투대회인데,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인가? 치솟아 오르는 궁금증에, 나는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레반하워즘에서 보도록하죠. 세리아나가 데리러 갈 것입니다."

[오!]

기왕 대화를 할거면 좁디좁은 응접실이 아닌 레반하워즘에서 마음놓고 하는 것이 좋겠지. 타인들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감,감사합니다!]

...내가 그녀의 요청을 수긍하자, 활짝 웃는 듯 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해져왔다. 이후 간단한 인사말을 전하며 대화의 끝을 알리는 그녀.

[그럼 곧 뵙겠습니다!]

"네, 네."

영혼없는 나의 답변을 끝으로, 통화가 끝이 났다. 그리고 이 좁디좁은 방에는 다시금 찾아온 침묵.

"심각한 일인가."

상체를 자리에서 일으키며, 나는 곰곰히 생각에 빠져본다. 다른 이도 아닌 나에게 무언가 요청을 했다는 건 평범한 일은 아니라는 터.

"베를레히리."

아리송한 표정과 함께 나는 눈을 감고, 이어서 레반하워즘의 신전관 베를레히리를 부른다. 그러자 곧장 머리속에 울려퍼지는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

[왜, 뭔일이야.]

자다 일어나기라도 한 것인지, 흘러나오는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 서려있었다. 허나, 저런 싸가지없는 성격이야말로 그녀의 매력 중 하나였으니, 나는 실실 흘러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그녀에게 명을 내린다.

"그, 전이문 좀 열어줘."

[귀찮아.]

"그러면서 열어줄거잖아."

[조,조용히 해!]

나의 말에, 벼락같은 그녀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윽고, [이,이번이 마지막이거든!]이라는 말과 함께 내 발밑에 펼쳐지는 조그마한 마법진.

"......"

10초정도가 지나니, 방문정도 크기의 아담한 전이문이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세리아나가 소환해내는 개선문 크기의 전이문과 비교하면 턱도 없이 작은 크기였다.

"우욱..."

문의 디자인도 음식물쓰레기를 뭉쳐놓은 듯 한 역겨운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세리아나의 전이문보다 소환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는 아주 유용한 장점이 있었다. 때문에 많은 인원을 이끌고 가는게 아니라면 웬만해선 베를레히리를 이용하는게 낫겠지.

"......"

나는 눈을 질끈감고, 최악의 감촉을 자랑하는 문의 얇은 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숨을 참으며 젤리와도 같은 막을 통과하자, 이내 나의 주변이 울렁거리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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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도면 꽤 괜찮은데."

서해상을 떠도는 천공섬 레반하워즘.

임시로 설치된 거대한 천막 밑에 앉아 중얼거리는 나의 모습에, 이 섬을 지키는 SSS급의 시즌보스, 링 메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꽤나 살만해졌어."

간이 책상에 커피가 담긴 컵을 내려놓으며 만족감을 내뿜는 그녀. 아리아 길드에 의하여 캠프가 설치된, 상하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이 평화로워진 일상을 바라보며,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화장실같은 부분은 살짝 아쉽긴하지만, 그래도 다들 만족해하고 있어."

"......"

링 메이의 말에, 나는 대답 차가운 얼음이 담긴 커피를 홀짝인다. 확실히, 하루도 빠짐없이 공세가 이어졌던 상해에 비하면 천국이지. 편의 시설때문에 조금 불편하긴 하더라도 인외변화자들, 이제 이 레반하워즘의 주민이 된 그들은 충분히 만족해 할 것이었다.

"다 네 덕분이야."

링 메이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그리고, 얼굴과 얼굴을 맞댄 상황, 그것도 진지한 분위기에서 훅 들어오는 칭찬에 화끈 얼굴을 붉히는 나.

"뭐, 뭐!"

애써 죄없는 커피만을 들이키며,

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한다.

"너 좋으라고 그런거 아니거든? 오해하지마."

확실히, 레반하워즘을 공략한 이유는 링 메이 때문이 아닌 차별받는 인외변화자들 때문이었으니, 틀린말은 아니지.

"네, 네, 알겠어요."

그런 나의 반응에, 그 요괴 여성은 웃음섞인 대답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 뒤, 자신의 컵에 담긴 음료를 홀짝이며 내게 묻는 그녀.

"그나저나, 무슨일이라고? 격투대회?"

"응."

아리송한 표정으로 묻는 링 메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나도 무슨 일인지 확실히 모르겠으니, 자세한 건 이시연이 직접 얘기 해줘야지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옥시안님!"

"응?"

......그리고 그때, 타이밍 좋게 열리는 거대한 전이문과, 그 속에서 나오는 두명의 여성.

「주인님, 말씀드린 여성을 데리고 왔사와옵니다.」

하나는 새빨간 머리칼에 매혹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내 사역마, 세리아나였고,

"많이 기다리셨나요? 늦어서 죄송해요!"

......다른 하나는 새하얀 제복을 걸친 긴 흑발의 여성, 랭킹 4위 아리아 길드의 길드장, 이시연이었다.

"이야, 이거 쉬시는데 불러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천막 안으로 들어오며 말하는 이시연.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뿐이니, 딱히 힘들 것도 없으니까.

"여기."

"아! 감사해요!"

허리춤의 롱소드를 비롯한 무장을 푸는 그녀에게 음료를 건네는 링 메이. 이시연은 환히 웃으며 하얀 머그컵을 건네 받았다.

"으아! 살 것 같네!"

몸을 가볍게 한 그녀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며 단숨에 음료를 들이킨다. 꽤나 털털한 성격의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조심스레 이야기의 스타트를 끊어본다.

"그나저나, 부탁할게 뭐죠? 격투대회는 또 뭐고요."

"아!"

나의 물음에, 그제서야 자신이 여기 온 이유가 기억났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이시연. 그녀는 컵에 남은 음료를 완전히 삼킨 뒤, 서둘러 품 속을 뒤져 편지 하나를 내 쪽으로 건네었다.

"그게 격투대회 초대장이에요."

"......"

검정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아주 고급스러운 초대장.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편지 봉투를 열고, 조심스레 빳빳한 재질의 편지지를 펼쳐보았다.

"음,"

......그곳에 적혀있는 것은 꽤나 단출한 내용.

"아리아 길드를 초대합니다......"

일시는 2주일 뒤,

장소는 이탈리아 로마,

스티디오 올림피코(Stadio Olimpico).

"뭐야 이게."

단순하다 못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초대장.

결혼식 청첩장도 못한 성의없는 초대장에,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적힌 내용에 비해 쓸데없이 고급진 편지지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나는 이시연에게 말하였다.

"이거 가지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요."

하다못해 대회에 대한 설명이라도 적혀 있으면 모를까, 단순히 날짜와 장소만 적혀 있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이시연 또한 나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그럴 것이 당연해요. 저도 처음엔 똑같이 어이없었고, 자세한 건 주최측으로부터 따로 전달받았으니까요."

"......"

초대장은 의미없는 단순한 형식적인 것이었다며, 이내 본인의 입으로 직접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 그녀. 한쪽 눈썹을 치켜 세우며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먼저, 현 유럽의 상태는 아시는가요?"

"당연히 알죠."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

유럽에 관한 기사를 본 것이 불과 몇시간 전이었다.

"모든 대륙을 통틀어 유일하게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면서요."

내로라하는 대형 길드들이 줄줄이 위치한 탓에 괴수 박멸을 완벽히 성공한 유럽 대륙. 특히나 남유럽과 서유럽은 완전히 일상을 되찾았다고 하였다.

"......예, 타대륙에 비하여 형편이 많이 나아서인지, 전 세계인의 사기 증진을 위한 격투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하더라고요."

"......"

"티켓료등 모든 수익금은 기부할 것이고, 월드컵과 비슷한 개념의, 이벤트성 대회래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이시연. 그녀는 고민이 많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들의 사기증진을 위한 단기성 대회이다보니, 역시나 참가자도 극소수, 상위 4개 길드에서 대표 한명씩을 뽑아 내보내서 토너먼트를 치른다네요."

"아, 예, 그렇군요."

그녀의 말에 멍하니 답하는 나.

하긴, 일반 유저가 아니라 극상위권 길드에서만 참가자를 받는다면 격투의 퀄리티는 확실히 높아지겠네. 인지도가 있는 자들의, 어쩌면 길드대항전이 될 수도 있는 대회이니 사람들의 반응도 확실할 것이고 말이야.

"근데 그게 왜요?"

그녀 말을 차근히 곱씹은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여기까지만 들어서는 별로 문제될것이, 적어도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만한 것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하, 그게 말이죠......"

허나, 내 예상과는 달리 아주 극심한 문제가 있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뱉는 그녀. 걱정근심이 가득 찬 목소리가 이 간이 천막에 울려퍼졌다.

"저희 길드에 뽑을만한 인재가 없더라고요."

"네?"

"아니, 그게 말이죠,"

랭킹 1위 길드, 신세리아 르 메이. 그리고 2위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와 랭킹 3위 자유를 위하여. 이 상위권 3개 길드는 모두 엄청난 인재들을 보유한, 말그대로 초대형 길드였다. 아마도 대표를 내보낸다 하더라면 적어도 1천레벨이 훨씬 넘는, 랭커에 몸을 담고있는 이들을 내보내겠지. 하지만, 랭킹 4위 길드, 아리아 길드는 그런 인재가 없었다.

"애초에 저희 길드는 조직력과 정보력으로 승부하는 걸 즐기는 길드라, 이름있는 랭커들을 딱히 영입하지 않았어요."

"......"

"랭킹에 이름을 올린건 제가 유일한데, 규정상 길드장은 출전금지라 적혀있고, 그렇다고 불참을 선언하기엔 자존심이 조금 상하고요."

간접적인 길드 대항전이 될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뜻은 자신들의 세력이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 서로가 서로의 권력을 호심탐탐 노리고 있는 지금, 괜시리 쓸데없는 약점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더군다나 주최측이 동맹 길드 알슈타인이여서, 그들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어려운 상황.

"......저기, 그래서 말인데,"

"네, 네?"

......손가락을 베베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시연. 얼굴을 붉히며 내게 다가오는 그녀에, 문득 불길한 예감이 내 등골을 따라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

"옥시안님이 저희 길드 대표로 참가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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