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준비 (1)
* * *
"젠시야."
"예, 보스."
런던,
길드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의 사무실.
다크서클이 깊게 내려앉은 길드장 카일 해리스는 옆에서 막대사탕을 빨고 있는 자신의 부길드장을 부른다.
"말씀하십시오."
한손으로는 알록달록한 사탕을 햝고, 다른 한손으로는 파란색 장우산을 꼭 쥔 채 답하는 부길드장, 젠시야 슬레이니브. 그녀는 간이 침대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자신의 상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청()색의 포니테일을 흩날리며, 그녀는 아리송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소녀의 반응에 깊은 한숨을 내쉬는 카일.
"이전에 말했던 격투대회말이다."
"예."
그는 품 속에서 금색과 검정빛이 어우러진 초대장 하나를 꺼내보인다. 상업 길드 '알 슈타인'의 주최로 열리는 길드 대항 격투대회. 굳이 인력낭비, 시간낭비 뿐일 그런 대회를 왜 여는지 카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월드컵 마냥 벌써부터 많은 유럽 사람들의 기대를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을 보면 참여하지 않기도 애매해진 상황이었다.
"...대진표가 나왔다."
뭐, 어찌됐든 참가를 결정한 이상 최선을 다해야지.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신세리아 르 메이한테는 몰라도, 자신들보다 순위가 낮은 자유를 위하여나 아리아 길드 한테는 질 수 없지 않은가.
"......"
카일이 무뚝뚝히 건네는 흰 색 종이를 젠시야는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상당히 단초로운 대진표를 바라보는 그녀.
***
4강 제1경기
게르나 에데르타인 (신세리아 르 메이)
VS
사무엘 피치스 (자유를 위하여)
4강 제2경기
젠시야 슬레이니브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
VS
김용용 (길드 아리아)
***
"김용용...?"
대진표에 적혀있는 꽤나 낯선 이름에 눈썹을 찡그리는 젠시야. 그녀는 곧장 고개를 들어 자신의 길드장을 바라본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격투대회에 출전할 정도면 최소 길드의 간부급은 될 강자일 터. 허나 '김용용'이라는 이름은 듣도보도 못하였다. 그녀의 의문에 어깨를 으쓱거리는 카일.
"나도 모른다."
그 또한 대진표를 받은뒤, 의아한 마음에 조사를 해보았지만, 아리아 길드의 간부 목록은 커녕 상위 100명의 랭커 명단 중에서도 그런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말단 길드원이거나 용병이겠지.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카일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젠시야에게 답한다.
애초에 내보낼 수 있는 인재의 폭이 한없이 좁은 아리아 길드다. 그 누가 나오더라도 1000레벨을 넘는 젠시야를 꺾을 수는 없겠지. 첫번째 날의 경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
......허나,
"게르나 에데르타인과 사무엘 피치스. 이 둘은 조심해야 된다."
"......알고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젠시야.
현재 유저 랭킹 8위를 달리고 있는 게르나 에데르타인. 신세리아의 길드장 세르레니아 루인이 직접 캐스팅 해 올 만큼 강력한 인물이었으며, 최하급 시즌 보스 정도는 단신으로 잡을 정도의 저력이 있었다.
"......"
그에 대항하는 사무엘 피치스 또한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인물. 자유를 위하여의 서열 3위인 그는, 어라이징 내에서 유일하게 민첩성 스탯을 가득 채운 기록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쪽이 올라오더라도 이상하지 않겠지. 너는 그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여 준비하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에데르타인과 사무엘.
둘 다 강력한 상대였지만, 그렇다고 젠시야가 밀린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녀도 나름 4자리 숫자의 레벨을 지니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참가자 유일 '허망급' 아이템의 소유자였으니까.
"......"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파란색의 장우산을 멍하니 살펴본다. 현존하는 모든 아이템들 중 가장 높은 내구도를 자랑하며, 동시에 24시간에 1번, 그 어떠한 공격도 막아주는 능력을 지닌 '해신의 우산'.
그 옥시안의 공간 붕괴마저 파훼해버리는 우산인데, 일개 유저들 따위야 가볍게 이겨낼 수 있을 터. 카일의 우려와는 달리 젠시야는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스."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말하였다.
"어차피 우승은 저일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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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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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대장!"
"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산더미같이 쌓인 미노타우르스들의 시체 위에 앉아있는 한 여성을, 게르나 에데르타인은 불렀다.
"이거 봤어?"
"......"
새하얀 종이를 펄럭거리며 나불거리는 자신의 부하를, 랭킹 1위 길드의 길드장, 세르레니아 루인은 멍하니 쳐다보았다.
"......"
눈살을 찌푸리고 자세히 바라보니 종이에 적혀있는 것은 무언가의 토너먼트 대진표. 그제서야 루인은 얼마전에 자신이 무슨 격투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
머쓱게 턱을 긁적이는 그녀.
몬스터들을 죽이는 것들을 제외한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루인이었으니, 대회 신청을 하자마자 곧바로 기억의 저편으로 날려버렸었다.
"아니! 다른 길드들은 길드장들이 솔선수범 자기 길드원들을 챙기는데! 우리는 왜 반대로 부하들이 길드장을 챙겨야되냐고!"
자신이 출전하는 대회인데 까먹은 것이 섭하다는 듯, 에데르타인은 2m가 넘을 법한 망치를 붕붕 휘두르며 루인에게 소리친다.
"미안."
가볍게 시체들의 산에서 뛰어내리며 중얼거리는 루인. 정확히 에데르타인의 앞에 착지한 그녀는, 곧바로 대진표를 낚아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1경기 사무엘 피치스, 2경기 젠시야와 김용용."
4강 라인업을 훑어 본 그녀는 깊은 생각에 빠진다.
자유를 위하여의 서열 3위 사무엘 피치스,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 부길드장이자 허망급 아이템의 소유자 젠시야 슬레이니브,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인물, 아리아 길드의 김용용까지.
"사무엘 정도야 내가 가볍게 이길 것 같고, 역시 젠시야만 조심하면 되려나?"
"......"
대진표를 분석하는 루인의 옆에서 당당히 소리치는 에데르타인. 사무엘이야 그저 속도만 빠른 애송일 뿐이고, 김용용은 듣도 보도못한 잡것. 그나마 경계해야 될 것은 역시나 허망급 아이템을 지닌 젠시야려나.
"......자만하지마."
...허나, 루인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에데르타인의 입을 다물게 한다. 그녀는 대진표를 다시금 자신의 부하에게 돌려주며, 조언 몇마디를 덧붙였다.
"너가 조심해야 될 건 사무엘도, 젠시야도 아니야."
"엥? 뭔 소리를 하는거야."
사무엘과 젠시야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김용용이라는 아리아 길드의 잡 것 뿐인데, 그런걸 왜 조심해야한다는거지? 에데르타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루인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
"아리아 길드의 길드장은 영악한 년이야."
이시연.
길드 회의 때 한번 만나보았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 흑발의 여성은 자신의 야망을 감춘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다고. 이번에도 차라리 대회 기권을 하면 했지, 괜시리 어중간한 인물을 내보내서 창피를 당할 성격의 소유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타 참가자들과 비빌 수 있을만한 인물이니까 내보낸 것이겠지.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어."
아리아 길드의 간부도 아니고, 유저 랭커도 아니다. 그러면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강자라는 것인데, 경계를 할 지언정 결코 방심은 해서는 안되었다.
"......뭐,"
그래도, 이건 나름 길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니,
"넌 우승 못하면 나한테 죽는다."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하에게 명하는 루인. 그녀의 살벌한 명령을 들은 에데르타인은,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의 가슴을 쭉 내밀었다.
"설마,"
유저 랭킹 8위.
단신의 몸으로 B+ 시즌보스 '거대 달팽이'를 잡아낸 네덜란드의 수호자, 게르나 에데르타인.
"그 누가 나를 이기겠다고."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무기, 희귀급 아이템 '먹구름의 전퇴망치'를 고쳐 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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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씨."
천공섬 레반하워즘.
나는 울상을 지은 이시연을 무릎 꿇린다.
울먹이며 중얼거리는 이시연.
"아니, 고의는 아니었어요 진짜."
자신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듯 말하는 그녀. 나는 황당한 미소를 지으며 격투 대회 대진표를 그녀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진표 한가운데에 적힌,
'김용용'이라는 이름.
"어떻게 사람 이름을 이렇게 지을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후..."
그녀의 거듭되는 사과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격투대회 참가를 위해서는 아드레나인의 가짜 신분을 만들어야했고, 이시연이 이름 짓는건 자신 있다면서 그녀에게 전적으로 맡겨놨더만,
"어떻게 사람 이름이 김용용......"
격투대회의 무대가 될, 로마의 종합경기장 스타디오 올림피코에 울려퍼질 '김용용'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니, 정말이지 가슴이 아니 웅장해 질 수 없었다.
"하아......"
어째,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