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준비 (2)
* * *
"흠."
김용용이라는 정말 엄청난 이름으로 엔트리를 신청한 이시연을 추궁한 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보다 단초로운 대회 대진표를 바라보았다.
"젠시야라......"
아드레나인의 첫 상대는 랭킹 2위 길드,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의 부길드장 젠시야 슬레이니브. 저번 아벨리아와의 싸움때 잠시 만났었던 인물로, 허망급 아이템 '해신의 우산'의 소유주이기도 하였다.
"......"
레벨도 일단 1천이 넘어가는데다가 전투 경험 또한 숱해보이니 아주 압승을 거두는 경기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현존하는 모든 무구들 중 가장 강력한 내구도를 지닌 해신의 우산이 가장 큰 변수이기도 할 터.
「주군, 배고프다.」
"......"
뭐, 이것도 아드레나인이 드래곤인 상태였다면 전혀 문제가 안될 요소들이었겠지만, 경기는 인간 상태로 치르게 될 테니, 위험이 될만한 것은 최대한 분석해야되겠지.
"시연씨."
"예?"
"젠시야에 대해서 아는만큼 설명 좀 해주세요."
"젠시야요?"
짧은 고민 끝, 옆에 앉아있던 이시연에게 묻는 나.
아무래도 평범한 유저였던 나보다는 같은 길드 연합의 일원인 그녀가 조금 더 알고있는 정보가 많을 것 같았다.
"젠시야......"
턱을 긁적이며 잠시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한 그녀. 이어서 할 말을 정리했다는 듯 경쾌한 손뼉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신의 우산 빼면 할 수 있는게 없는 호구?"
"네?"
그녀의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얼빠진 목소리를 내뱉는다. 우산이 없으면 할 수 있는게 없는 인간이라고? 다른 특화된 스킬이나 독특한 직업을 지니고 있다는 건 아니란건가?
"맞습니다. 허나, 그 스킬들을 뺨칠 정도로 우산을 정말 잘 쓴다는게 문제에요."
허나 또 마냥 쉽다는 것만은 아닌 듯 고개를 젓는 이시연. 그녀는 우산을 슝슝 휘둘러보는 제스쳐를 취해보인다.
"공격과 방어, 둘 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하고, 특히 방어할때는 우산을 펼쳐 온몸을 가리기 때문에 데미지를 넣기가 조금 힘들거에요."
"......"
"아마 중요한게 있다면 그 방어를 어떻게 파훼하는지겠죠."
"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듣자하니 아무래도 방어 위주로 싸움을 풀어나가는 스타일인 것 같은데,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는 걸.
"......렉타우스."
...잠시 고민을 한 나는, 사역마 렉타우스를 떠올려낸다. 그는 분명 루마니아에서 직접 젠시야를 상대해봤으니, 조금 더 생생한 증언을 해줄 수 있겠지.
"졸지마 이 년아."
「후엑!」
꾸벅꾸벅 졸고있는 아드레나인의 머리에 딱밤을 날리며, 나는 렉타우스를 소환하기 위해 오른손을 뻗는다. 그러자 앞에 새겨지는 검붉은색 마법진.
「...부르셨습니까 전하.」
그리고 그 속에서 검은 정장 차림의 악마가 솟아오른다. 무릎을 꿇고는 공손히 내게 말하는 하프 데빌, 렉타우스.
「어떤 명이든 내려주시옵소서.」
무엇이든 맡겨달라는 듯,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나는 그런 그에게 턱을 긁적이며 몇가지 질문을 날렸다.
"아, 별건 아니고, 너 젠시야라는 애 기억나냐."
「젠시야...」
'젠시야'라는 이름을 듣자, 허공을 응시하며 무언가를 곰곰히 떠올려보는 듯 한 그. 이어서 "아 그 특이한 우산을 지녔던 꼬맹이 말입니까."라는 답과 함께 입을 열었다.
「움직임이 날카로웠긴 했지만 공격이 눈에 보일정도로 느렸습니다.」
"음..."
확실히 특출난 상대는 아니라는건가.
그러면 아드레나인과 비교해봤을땐?
문제 없겠지?
「과분한 걱정이옵니다. 아무리 아드레나인이 무식하다 하더라도, 그정도 인물을 이기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 알았다."
하기야, 옥시안의 사역마 중 최고 레벨을 지닌 아드레나아인데 걱정을 하는 건 말이 안되지. 인간 상태로 전투에 임하는 건 그냥 핸디캡을 하나 줬다고 생각하자.
"오키, 그러면 4강은 무난무난하게 넘길 것 같고,"
나는 잔주름이 그어진 대진표를 빳빳하게 펼치며, 결승에서 만날 상대를 위해 4강의 다른 경기를 분석해본다. 랭킹 1위 길드 '신세리아 르 메이'와 3위 길드 '자유를 위하여'간의 대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각각 게르나 에데르타인과 사무엘 피치스라는 인물이었다.
"게르나 에데르타인이라..."
게르나 에데르타인.
묘하게 낯익은 그 이름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상당히 억양이 강해 거칠거림이 느껴지는 이름.
"......"
종이가 찢어져라 뚫어지게 대진표를 쳐다본 끝에, 문득 폭군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맞다."
네덜란드의 폭군.
미친년 게르나 에데르타인.
단신의 몸으로 시즌보스를 격파해 한창 화제가 되었던 인물. 1m가 넘는 망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괴력의 소유자.
"어쩌면 얘가 더 위험하겠는데..."
턱을 쓰다듬으면서 입술을 깨무는 나.
평이 애매모호 한 젠시야와는 달리 에데르타인은 그 명성이 자자한 탑급 랭커였다. 경험 또한 숱할테니, 과연 드래곤인 아닌 인간 상태의 아드레나인이 이겨낼 수 있을까.
"글쎄요."
나의 의문에 이시연이 옆에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질 것 같지는 않다만, 그녀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수치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에데르타인에 관해서는 의외로 딱히 아는게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 만나본 적이 없으니 내 사역마들 또한 알 턱이 없을 것이고, 그러면 남은 것은...
"응? 왜,왜? 왜 나를 봐?"
내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한껏 당황하는 링 메이. 새빨간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깊은 한숨과 함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너도 애지간히 해라. 네 사역마를 좀 믿어! 그 옥시안의 사역마인데 유저 나부랭이가 상대가 되겠냐!"
"......"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린다.
벼락처럼 날아드는 그녀의 잔소리에, 나는 움찔거리며 어정쩡하게 웃어보였다.
"그래..."
어딘가 맹한 행동과 인간 상태라는 편견 때문에 너무 걱정한거겠지. 길드 하나를 괴멸시킬 정도의 아드레나인인데, 무슨 문제가 있으랴. 이제 분석 따위는 집어 치우자.
"그럼 이제 마음 놓으신건가요?"
"네."
커피를 홀짝대며 묻는 이시연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무엘에 대해서도 분석했으면 좋겠지만, 굳이 별 위협이 안되는 그까지 조사할 필요는 없겠지.
"뭐, 그러면,"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이시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쪽에 고이 모셔두었던 롱소드를 치켜들며 말하는 그녀.
"마침 할 것도 없는데, 제가 아드레나인씨랑 대련이라도 해드릴까요?"
"엥? 진짜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그녀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뜬다. 역시 본인 길드 일이다보니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건 찝찝하다는건가.
"저도 나름 랭커이니, 조금이나마 도움은 될거에요. 저희 길드 일인데 아무것도 안하는 것도 조금 그렇고요."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쭉 내미는 이시연.
고개를 돌려 아드레나인을 바라보니, 그녀 또한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나한테 도전하는거야......」
"아뇨, 도전까지는 아니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는 아드레나인에, 이시연은 삐질거리며 답한다.
"재밌겠네."
조용히 앉아있던 링 메이도 기대된다는 투로 중얼거렸고, 이후 그녀들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넓은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안봐준다, 인간.」
"에이, 그래도 살살해주세요."
살벌한 목소리로 말하는 아드레나인과,
머리를 긁적거리며 능청스러이 말하는 이시연.
이어서 아드레나인은 상체를 숙이고, 이시연은 자신의 검을 뽑아든다.
"부탁인데 안다칠정도로만 하세요오..."
그리고 걱정되는 말투로 외치는 나.
누구 하나 다치면 심히 곤란해지는 상황이니, 부디 대련은 대련답게 해줬으면 좋겠건만...
"준비되면 말하세요."
"......"
...이어서, 나는 손목을 돌리며 몸을 풀고있는 이시연을 바라본다. 그녀의 레벨이 어떻게 됐었더라, 딱 1200레벨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
눈살을 찌푸리고는 타인의 각종 정보를 엿볼 수 있는 특성 염탐자를 발동하자, 이시연의 머리 위에 주르륵 나열되는 기다란 글자들. 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 숫자와 한글이 혼합된 스테이터스 창을 빠르게 훑어본다.
[이시연]
종족: 인간
소속: Guild 'AriA'
LV. 1195
"......어?"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1195'라는 낯선 숫자.
"......"
[이시연]
종족: 인간
소속: Guild 'AriA'
LV. 1195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보아도, 그녀의 상태창에는 본래 있어야 할 1200이라는 숫자가 아닌 1195라는 숫자가 위치하고 있었다.
"말도 안돼."
분명 '이시연의 레벨은 1300레벨인 세리아나보다 딱 100레벨 적다'라고 외워두었기 때문에 결코 틀릴 일이 없을텐데? 이게 내가 잘못 기억한게 아니라면,
"......레벨이 줄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