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2화 〉 입장 (1) (72/85)

〈 72화 〉 입장 (1)

* * *

"옥시안?"

"저거 옥시안 아님?"

"옆에 세리아나하고."

"와 미쳤다."

"......"

격투대회 당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탈리아 로마의 종합운동장 앞.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근데 옥시안이 왜 와?"

"내가 어떻게 알아."

"이따 사진이나 찍자."

사태 이후 처음 열리는 대형 축제이다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유저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들 모두 게임 속 복장 그대로의 모습이다보니, 마치 정말 어라이징에 접속한 것만 같은 향수가 들었다.

"......"

나는 사전에 건네받은 티켓을 유심히 살펴본다.

자리는 호텔방과도 유사하게 이루어졌다는 특VIP석. 내가 온다고 하니 알슈타인측에서 손수 준비해주었다고 했다.

"여행온 것 같네."

현 유럽의 분위기는 괴수의 'ㄱ'자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 한국도 꽤나 안전한 편에 속하긴 하였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일상 그 자체였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잔뜩 만끽하며 경기장 안으로 입장한다. 나에 대해 수근거리는 소리 또한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아직까지 직접 다가온다던가 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니폼 팝니다!"

"응원봉 팔아요!"

"햄버거! 피자! 민트초코!"

"......"

경기장 내부에는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굿즈부터 각종 간식까지,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아드레나인 그 멍청이가 잘 할 수 있으련지 걱정되옵니다.」

「너보다는 잘할거다 세리아나.」

「뭐,뭣? 지금 말 다한겁니까 렉타우스?」

'김용용'이라 새겨진 응원 깃발을 보고 중얼거리는 내 사역마들. 세리아나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뱉자 렉타우스가 일침을 날린다.

「주군, 링 메이 공 께서는 어째서 안오신겁니까.」

...그런 그들을 뒤로 한 채, 육중한 갑옷으로 온몸을 덮은 듀랑발이 내게 물었다.

"링 메이?"

링 메이.

녀석도 나들이겸 나오고 싶다 아주 난리를 쳤지만, 아무래도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워낙 안좋기 때문에 그냥 레반하워즘에 그냥 놔두고 왔다. 아마 지금쯤 베를레히리와 같이 TV로 생중계를 보고 있겠지.

"괜히 데리고 와서 보스 토벌전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

「하긴, 그렇겠사옵니다.」

나의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이는 듀랑발.

그가 대답에 흡족해함을 확인하자, 나는 VIP석으로 가는 엘레베이터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신의 선수에게 배팅하세요!]

"어?"

걷다보니, 이번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환전소와도 비슷하게 생긴 시설. 자세히 살펴보니 승부에 대한 배팅을 거는 일종의 카지노 같은 곳이었다.

"......"

아까 기념품과는 달리 이번에는 흥미를 갖고 그곳에 가까이 다가간다. 이미 배팅을 위해 몰려있는 수많은 사람들.

"에데르타인에게 100코인!"

"젠시야에게 50코인!"

"무조건 젠시야!"

"에데르타인에게 25코인."

"젠시야가 인기가 좋네......"

4강 1경기,

에데르타인과 사무엘의 대결은 에데르타인이 승리 확률 65%로 점쳐지며,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반면 4강 2경기, 젠시야와 아드레나인의 대결은 무려 95대5로, 압도적으로 젠시야에게 올인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젠시야가 허망급 아이템 소유자로 조금 유명하다 하더라도 이건 조금 심한 거 아닌가. 자신이 이렇게까지 무시당하고 있는 걸 알면 아드레나인이 분명 노발대발할텐데.

"젠시야! 올인!"

"젠시야 누님 믿습니다...!"

"......에효,"

불과 몇시간 뒤 땅을 치고 후회할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부디 결승때는 아드레나인한테 올인했으면 좋겠구만.

「주인님, 저쪽이와요.」

싸움구경을 앞둬서인지, 잔뜩 신난듯한 사역마들의 안내를 받으며, 나는 어느덧 VIP관중석 입구에 다다렀다.

"옥, 옥시안?"

"뭐요."

나를 보고는 흠칫 뒷걸음질 치는 안내원에게 티켓을 보여준 뒤,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와도 같은 VIP석에 입석한다.

딱딱한 일반 의자대신 영화관 의자같은 푹신한 의자가 대신 위치해있었으며, 팔걸이에는 미니 TV가 달려있어 경기장의 상황을 한층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좋네."

안락한 좌석에 만족감을 표해내며, 나는 편안히 자리에 착석한다. 갑옷 때문에 비좁은 자리에는 앉지를 못하는 듀랑발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두 사역마도 나를 따라서 자리에 착석한다.

「아드레나인 녀석, 지기만 해봐라. 죽여버릴테야.」

경기 시작 전의 경기장을 분주히 뛰다니는 스태프들을 보며 중얼거리는 세리아나. 어지간히 대회에 나가는 아드레나인이 부러운 듯 하였다.

"그래도 응원은 해주자."

씩씩거리는 세리아나를 향해 나는 삐질거리며 말했다.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2차 대회가 열린다면 거기엔 꼭 너가 나가기로 하고 말이야.

"......어라? 설마 거기 옥시안님이에요?"

"응?"

...그리고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아리송한 표정과 함께 뒤를 돌아보니 갈색 코트를 입은 젊은 청년 하나가 입을 떡 벌리며 서있었다.

"와 진짜 옥시안님이네요! 오신다는 말 들었는데, 이제서야 뵙네요!"

"죄송한데 누구..."

너무나도 태연히 웃으며 내 앞에 다가오는 그.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서둘러서 그의 정보를 스캔하였다.

[엘빈 람]

종족: 인간

소속: R;stein

LV. 1087

'엘빈 람...'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 익숙한 이름과 길드.

알슈타인은 분명 이 대회를 개최한 초대형 상업길드이고, 엘빈은 그 길드의 길드장 이름이었는데...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엘빈 람, 알슈타인의 회장을 맡고 있어요."

"아, 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자신을 알슈타인의 길드장이라 소개한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가 내민 손을 맡잡는다.

"시연씨한테 얘기 자주 들었어요. 솔직히 그 옥시안과 이렇게 대화할 수 있다니, 조금 믿기지가 않네요."

엘빈은 영광이라는 제스쳐를 취해보이며 능청스러이 말을 이어나간다. 나 또한 사무적인 어투로 그에게 무뚝뚝히 답하였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그래도 나름 공짜로 VIP석 초대권을 준 인물인데, 너무 쌀쌀맞게 굴면 안되겠지. 적당히 예우는 갖춰주자.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신가요?"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묻는 나.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사레를 친다.

"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VIP석을 점검하러 왔는데 떡하니 계시길래... 별 용건은 없어요!"

"참 다행이네요..."

난 또 무슨 부탁이라도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만약 무슨 요구나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바로 짐싸서 돌아갔을 것이었다.

"하하... 저는 괜찮다만은,"

엘빈은 나의 말에 멋쩍게 머리를 긁적인다.

조심스레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 몇마디.

"곧 VIP석에 착석하실, 그러니까 타 길드장분들은 옥시안님을 꽤 뵙고 싶어하시더라구요."

"......예?"

"그것도 조금, 사무적인 일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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