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 입장 (2) (73/85)

〈 73화 〉 입장 (2)

* * *

"사무적인 일?"

"예."

내가 되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엘빈.

만난지 불과 3분도 안된 그였지만, 낯가림따위는 전혀 없다는 듯이 청산유수로 말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세간의 중심이시니까요. 많은 길드들이 내심 옥시안님을 탐내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

"특히나 이집트, 아포파스 아만호텝이란 사람이 옥시안님을 엄청 원하는데, 주의하시길 바랄게요!"

"아, 예..."

...수학 답안이라도 유출하는 마냥 조심스레 귀띔해주는 그. 나는 그저 어안이 벙벙한 채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나중에 좀 더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

그 뒤, 엘빈은 마치 바쁘다는 리액션을 취해보이며 서둘러서 자리를 벗어났다. 거의 달아났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후다닥 VIP석을 빠져나가는 그.

...푹신한 의자가 즐비한 고급 관중석에는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흥, 고작 그따위 말을 하려고 주인님의 시간을 뺏다니, 건방진 인간 같으니라구.」

그런 엘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세리아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엘빈이 빠져나간 자리를 응시하였다.

"놔둬, 바쁜가보지."

어떻게보면 대회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으니, 바쁜게 당연하겠지. 게다가 나로서는 꽤 중요한 정보도 얻었으니, 짧지만 알 찬 만남이라 할 수 있으려나.

"......"

짧은 한숨과 함께 시선을 다시금 무대로 돌린다.

어느덧 정리가 다 된 스테이지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일반 관객석.

...시합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우, 무슨 이렇게 복잡해?"

"응?"

그리고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목소리.

별다른 내색은 않고 곁눈질로 살짝 훑으니, 내 뒷편에서 기모노를 입은 한 여성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오는데 거진 하루, 헤매는데 2시간, 이거, 손해배상 청구할거시와요."

"......"

누구한테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불쾌감을 잔뜩 표출하는 여성. 더운 것인지 손에 든 부채를 연신 펄럭 거리고 있었다.

"흠..."

나는 턱을 긁적거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일반 관중석이 아니라 이곳 VIP석에 온 것을 보아 저 여성도 무언가 한 몫하고 있다는 것인데...

나는 염탐자를 발동하여 그녀의 정보를 엿보았다.

[사쿠라 요코]

종족: 인간

소속: 파도의 우울

LV. 923

'파도의 우울...!'

파도의 우울.

일본을 연고지로 한 랭킹 8위 길드로, 아리아 길드의 전형적인 라이벌 길드였다. 또한, 유일하게 길드원 전원이 도적이라는 직업으로 통일되어있는, 꽤나 독특한 길드이기도 하였지.

그리고 그럼 저 여자가 바로 그 길드장이려나.

"......음?"

"어?"

...이어서,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기가 무섭게 우리 둘의 눈이 마주친다. 걸음을 멈칫하며 얼어붙는 사쿠라 요코와, 순식간에 가라앉는 주변의 공기.

그녀는 한껏 말을 더듬으며 휘둥그레 나를 쳐다보았다.

"오,오,오,옥시안?"

"네, 옥시안인데요."

기겁하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 요코.

나의 존재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인지, 온몸에서 당혹감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다,다,당신이 왜 여,여기에?"

"그냥 구경온건데요."

나는 쭈욱 기지개를 피며 설렁설렁 대답한다.

이어서 손을 훠이 저으며 딱히 싸울 생각 같은건 없다고 그녀에게 알린다.

"안잡아먹으니까 일어나서 자리에나 앉으세요."

"크, 크흠..."

나의 말에, 그녀는 뻘쭘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벌떡 일어난다. 이후 티켓에 적힌 좌석 번호를 찾아 앉는 그녀.

놀란 기색은 줄어든 듯 하였지만, 그래도 곁눈질로 계속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

"......"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경기가 시작하지도,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추가로 오는 것도 아니여서, 불편한 분위기의 공기가 계속해서 우리 주변을 멤돌았다.

"저,"

...묘한 기운에,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나.

뭐, 꼭 아는 척을 할 필요는 없었으나, 저번에 이시연한테 들은 말이 생각나 그녀를 살짝 골려주기로 하였다.

"왜, 왜 불러요!"

내가 부르자, 깜짝 놀라며 경련을 일으키는 요코.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네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시연한테 듣기를, 길드 회의에서 그렇게 나를 토벌하자고 몰아갔다던데,

"왜 그런 거에요?"

"네,네?"

"절 죽일 자신이 있다는 건가요?"

"아니 그게, 뭔가 그때는..."

"원한다면 지금 1대1이라도 해드릴 수 있는데..."

"아니 그러니까... 그게... 그..."

내가 눈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성은 잔뜩 겁에 질린 채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그, 그냥, 실수였어요 실수! 아리아 길드가 질투나서 그런거였다고!"

"......"

나는 아무런 제스쳐도 취하지 않았건만, 무슨 상상속의 공격이라도 막으려는 듯 황급히 머리를 가리는 그녀.

'질투나서 그랬다'라고 이실직고하는 요코의 머리에, 나는 가볍게 딱밤 하나를 날린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마세요."

"흐익?!"

"생각없이 내뱉는 말이라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진짜 골치 아파지거든요."

"알, 알겠어요..."

농담 반 진심 반을 담아 날카로이 경고를 한다.

만에 하나 그녀의 입방정으로 내 토벌이 결정되었었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였다.

"대장, 여기가 관중석이다."

"응..."

"......?"

한창 요코와 투닥거리는 사이,

또다시 VIP석 입구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쿠라 요코와 동시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흰색과 금색이 섞인 멋들어진 제복을 입고있는 두명의 남녀가 서있었다.

"어? 저 여편네도 왔네?"

"......"

...나를 봤을때처럼이나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요코. 당혹감이 서린 그녀의 얼굴에, 나 또한 그 남녀를 자세히 살펴본다.

남성은 거무잡잡한 피부에 엄청난 덩치를 지녔으며, 또한 그에 걸맞는 커다란 대검을 등에 메고 있었다.

"야..."

"응? 왜?"

"가서 핫도그 사와..."

"뭐?"

"......"

허나, 그보다 나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연금발 머리의 아름다운 여성. 그녀는 마치 초승달이 걸어나온 듯 한 신비함을 내뿜고 있었다.

또한 제복에 달린 각종 배지며,

허리춤에 멘 세련 된 레이피어까지,

그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범상치않은 인물이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

호기로운 마음에,

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눈살을 찌푸리고 누군지 모를 그녀의 정체를 엿본다.

...연금발의 머리칼 위에 펼쳐지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

[세르레니아 루인]

종족: 인간

칭호: 여신의 하수인

가호: 빛의 신 아이아데스의 방어막

종족: 신세리아 르 메이

LV. 2651

"......"

꽤나, 아니,

아주 많이 놀랄만한 내용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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