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꽃의 잔향 (3)
* * *
「주군...!」
이시연이 예약해 준 고급스러운 호텔.
옥시안의 이름값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호텔측에서 스스로 나서 무려 아예 한 층을 채로 대관해주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넓디 넓은 층의 수많은 방 중, 1702호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내게 안기는 아드레나인.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무어라 웅얼거렸다.
「내가, 이겼다아...!」
이어 젠시야를 이긴 것을 칭찬해달라는 듯 머리를 내쪽으로 쑤욱 내민다. 나는 어정쩡한 미소와 함께 가벼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잘했어."
「헤헤...」
간단한 한마디일 뿐이었지만 아드레나인은 세상을 전부 가졌다는 듯이 활짝 웃어보였다.
「전하, 들어가서 좀 더 편히 말씀 나누시지요.」
"응."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렉타우스가 청하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에서 떠드는 것보다는 편안한 방 안에서 얘기하는게 백배 낫겠지.
"......"
필기체로 호수가 적힌 멋들어진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러자 나오는 대리석 바닥과 대략 60평은 넘어 보이는 거실. 세련된 샹들리에와 고급진 침대 또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아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푹 주저앉는 나.
이후 내 허락이 떨어지자 사역마들 또한 각자 제 자리를 찾아 앉기 시작했다.
"뭐, 일단..."
모두가 편안히 의자, 침대에 앉는 것을 확인하자,
나는 큼 헛기침을 하며 입술을 떼었다.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은 아드레나인에 대한 칭찬.
"오늘 수고했어, 아드레나인."
질 것이라 생각은 안했지만, 그래도 골치 아플 수 있는 그 허망급 아이템을 완벽히 파훼해냈으니, 그것만큼은 칭찬해도 마땅하겠지.
「...나, 절대 안진다.」
나의 말에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쭉 펴는 그녀.
아직은 덜 자란 작은 언덕 두개 또한 그 존재감을 표출해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어본 뒤,
옆에 식탁 의자를 끌고와 앉아있는 렉타우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렉타우스."
「예, 전하.」
"아까 분석한거 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까 호텔로 걸어오면서 듣기를, 렉타우스 본인이 아드레나인과 에데르타인의 전투 스타일을 분석했다 하였으니, 한 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나의 말에, 렉타우스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드레나인한테도 유용한 정보가 될 테니, 한번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응."
「크흠,」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가다듬는 렉타우스.
잘빼입은 양복이며, 정중한 몸짓까지, 마치 어딘가의 학원 강사를 보는 듯 하였다.
「너가 뭔데 나를 평가해...?」
"응?"
...허나 그때,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던 아드레나인이 렉타우스에게 날카로이 말하였다.
다크 드래곤 로드.
옥시안 최강의 사역마.
SSS급 시즌 보스 링 메이를 능가하는 무력.
하기야, 이러한 호칭들을 지니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약한 렉타우스에게 지적 같은 걸 받고싶지는 않겠지.
하지만, 현재 아드레나인은 폴리모프 상태로 전력이 약화되어있는 상태이고, 렉타우스 또한 기껏 열심히 분석했다는데, 어쨌거나 들어는 보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아드레나인."
「...응.」
"한번 들어보자."
「알겠어......」
나의 한마디에 곧바로 수긍하는 그녀.
반항 한 번 없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빠른 수긍이었다.
「...그럼, 한 번 시작해보겠습니다.」
아드레나인이 뚱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잡자, 렉타우스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솔직히 큰 내용이 있으리라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사역마의 분석이니 나 또한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을 한다.
「먼저 아드레나인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면, 한마디로 무언가 '작전'이라는게 필요합니다.」
"작전?"
「네, 아드레나인의 싸움은 극단적으로 말해 너무나도 무식해보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아드레나인에게 묻는다.
「아드레나인.」
「응...?」
「아까 싸울때 무슨 생각으로 싸웠지?」
「아까, 싸울때...?」
렉타우스의 물음에 곰곰히 턱을 긁적이는 용인 소녀.
이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리송한 답변을 내뱉었다.
「맞고... 때린다...?」
"......"
소녀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르는 호텔방.
'막고 때린다'도 아니라 '맞고 때린다'라니, 작전이 없는건지, 사실 자신의 맷집을 극대화하는 고도의 작전인건지, 어느쪽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뭐, 네정도의 맷집이면 그 무식한 방식도 별 문제는 없겠지. 다만 거기다가 전투 센스까지 포함된다면 조금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전투 센스...?」
「그래, 상대방의 동작을 이용한다던지, 예상치 못하는 페이크를 넣는다던지, 그런거 말이야.」
"......"
하긴, 지금도 좋지만 센스같은게 추가되면 더 좋긴 하겠군. 똑똑한 아드레나인이라니, 물론 상상이 안되긴 하지만 말이다.
「제일 쉬운 것은 상대방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인데, 뭐,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가 이따가 알려주도록 하지.」
어깨를 으쓱이는 렉타우스.
그는 쭉 찢어진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허나 지금 너가 알아야 될 것은 그게 아니다. 바로 상대방의 약점이지.」
"......"
아드레나인의 결승전 상대.
랭킹 1위 길드 신세리아 르 메이의 대표,
게르나 에데르타인.
「단 한경기뿐이여서 잘은 모르겠다만, 상대방은 지면을 흔들어 균형을 잃게한 뒤 기습하는 전법을 주로 쓰더군. 실제로 땅고르는 기술만 두번을 썼고 말이야.」
"흠."
분명 '천재지변'이라는, 상대방이 서있는 땅을 갈아버리는 기술이었지. 확실히 폴리모프 상태여서 날 수 없는 아드레나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보여줬던 그 스킬, 그 정도 위력이라면 약간이나마 너한테도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 항상 조심하도록.」
"마지막?"
에데르타인이 마지막에 보여줬던 스킬...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생각나는 에데르타인이 소환했던 거대한 정령. 하기야, 그정도의 위력이라면 아무리 아드레나인이라도 데미지를 입기엔 충분해보였다.
"렉타우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렉타우스를 부른다.
그러자 환히 웃으며 이쪽을 쳐다보는 그.
「예, 전하.」
"그럼 에데르타인의 약점은 뭐지?"
「아, 마침 지금 설명하려 했습니다.」
나의 말에 렉타우스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꾸벅 숙여보인다. 이어서 다시금 시선을 아드레나인을 돌리는 아크 데빌.
「경기를 본 결과, 녀석은 둔하다.」
「무언가를 피하기 보다는 카운터 기술로 맞대응하는 스타일. 때문에 변칙스런 기술이 더더욱 필요하다는거다.」
"오..."
민첩 스탯 만렙을 찍은 사무엘이 상대여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에데르타인은 스피드보다는 파워, 그리고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고 때리는 카운터 기술을 주로 날렸었다.
따라서 애초에 카운터를 맞지 않도록 창의적인 플레이를 해보라는 렉타우스의 의견. 허나 아드레나인은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흥!」
단발머리의 소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렉타우스에게 말한다.
「그런거 생각안해도, 이길 수 있다...」
이어 하찮다는 눈으로 그 아크 데빌을 깔보았다.
「난 너같은 겁쟁이가 아니다.」
「......」
키득 웃어보이는 아드레나인.
그런 그녀의 말을 들으며, 렉타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인다.
「멍청한년. 그러니까 너가 무식하다는 말을 듣는거다, 생각이라는 걸 조금은 해보란 말이다.」
「흠......」
렉타우스가 말하자, 아드레나인은 침대에서 내려와 서서히 그의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너, 아까부터 기분 나쁘다.」
잔뜩 눈살을 찌푸리는 똑단발머리의 소녀.
렉타우스도 그에 지지않고 근엄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아드레나인.」
"저, 얘들아...?"
한껏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기 시작하는 호텔방.
듀랑발과 세리아나는 또 시작이라는 듯 고개를 젓고 있을 뿐이었다.
「꼬리가 뽑히고 싶은거야...?」
「...설마 그 몸으로 나에게 덤비겠다는 건 아니겠지.」
"......"
일촉즉발의 상황.
옥시안의 사역마들은 강력했지만,
그에 비례하여 자존심 또한 하늘을 찔렀다.
듣는 명령은 오로지 주인의 명령 뿐, 설사 같은 사역마라 하더라도 기분이 나쁘다면 가차없이 그 감정을 표출했다.
...지난번엔 격투대회 후보를 정하기 위해 어쩔수없이 싸움을 허락해주었지만, 더 이상 이런게 반복되면 곤란하지.
"하아......"
나는 얼굴을 잔뜩 일그리며 기싸움을 벌이는 그들을 향래 입을 열었다.
"너희, 누구 앞에서 그러고 있는거냐?"
「.....!!」
"싸움구경은 오늘 충분히했는데, 부족했을까봐 보너스 경기라도 보여주려는거야?"
내가 한껏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자, 렉타우스와 아드레나인은 동시에 무릎을 꿇는다. 이어서 들려오는 진심어린 사죄.
「죄,죄송합니다 전하.」
「미안하다, 주군......」
"......"
이럴때만큼은 아주 합이 잘맞는 그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근심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행동은 실망이 좀 큰데......"
「.....!!!」
「아...?」
나의 말에 렉타우스와 아드레나인은 방금보다 더욱 심하게 얼어붙는다. 고작 생각없이 한마디 내뱉었을 뿐인데 몸을 덜덜 떨기까지 시작한다.
「...주인님을 실망시키다니, 이거 사역마 실격인거시와요.」
「음. 처벌받아 마땅하다.」
거기다 한마디씩 거드는 다른 두명의 사역마들.
뭐지, 쟤들한테는 이런 말 한마디가 그리 크게 영향을 끼치는건가.
[띵동]
"음?"
...무어라 다시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방 안에 경쾌히 울려퍼지는 초인종 소리.
"......"
나는 듀랑발에게 확인하라고 오라는 듯 고개를 까닥여보인다. 이어서 그 육중한 갑옷 몸을 이끌고 도어락 쪽을 향해 걸어가는 그.
「흠......」
도어락을 향해 초인종을 누른 인물을 확인한 그 데스나이트는, 이내 나를 향해 말하였다.
「이시연공이 왔사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