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꽃의 잔향 (5)
* * *
"초, 초월급이요?"
얼떨떨한 말투로 내게 되묻는 이시연.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
순백의 제복을 입은 그녀는 잠시 머리를 긁적거리며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잘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송구하다는 듯 말하는 그녀.
딱히 기대한 건 아니었다만, 그래도 피스티쳐 얘기한 말의 진위여부를 가릴 수 없어서 내심 아쉬웠다.
...하긴, 피스티쳐 본인의 말에 따르면 퀘스트로 얻은 희귀한 아이템이라 그랬으니, 이시연이 모를법도 하지.
나는 괜찮다는 듯이 손사레를 치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아니에요, 저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거라 호기심에 여쭤본거에요."
차마 피스티쳐가 말해준 사실이라고는 얘기할 수 없었기에, 나는 적당히 웹서핑을 하다 본 것이라 둘러댄다.
"아, 예, 예... 그렇군요..."
...얼떨떨한 얼굴로 답하는 이시연. 이어서 그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럼 저,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내일 봬요!"
"......"
순식간에 낯색이 변한 채, 자신의 물건들을 챙겨 호텔 방을 빠져나간다. 무어라 배웅을 할 틈도 없이 후다닥 뛰어나가는 그녀에, 우리는 그저 벙찐 표정을 지어 볼 뿐이었다.
「흥! 무엇인가요, 저 예의없는 태도는.」
그런 이시연을 바라보며 세리아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렉타우스 또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조금 이상하긴 했사옵니다. 전하께서 초월급 아이템을 언급하자마자 낯빛이 변하던데, 아무래도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
초월급 아이템을 언급하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떠난 이시연에 대해, 내 사역마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들의 말에 나는 기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거 같기도 하고..."
...확실히, 지금도 그렇고, 멋저번 레벨 하락에 대해서 물었을때도 황급히 자리를 뜨려 했었지. 별 생각이 없었건만, 깊게 파고 들어가보니 왜인지 모를 의심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뭐, 나중에 다시 물어보면 되겠지."
사역마들의 이야기에,
나는 끝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찝찝하긴 하였지만, 지금 당장 이시연을 찾아가 강압적으로 따질 정도로 급한 일도 아니었고, 내일 다시 만나 한번 더 물어보면 충분할 일이었다.
"...내일도 시합인데, 쓸데없는 고민 하지말고 너네도 각자 편하게 쉬어, 특히 아드레나인."
「알겠다아...」
...오히려 그것보다는 내일 펼쳐질 격투대회 결승이 더욱 중요하지. 내가 사역마들한테 휴식을 명하자, 그들은 굳게 고개를 끄덕여보인 후 마법진을 펼쳐 점차 그 속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에효......"
이윽고 이 넓은 방에 남은 것은 나 혼자.
넓디 넓은 푹신한 침대에 뛰어들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생각할게 많아졌네..."
갑자기 내게 전령을 보내 온 S급의 시즌 보스, 피스티쳐부터, 그녀가 언급한 초월급 아이템, 그리고 수상하리만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려했던 이시연까지.
큰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만, 그래도 그것들 사이에 무언가 연관점이 있음을 왜인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일 제대로 물어봐야지."
잠시 고민은 가슴 저 편에 묻어둔 채,
나는 솟아오르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이내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
.
.
"허억, 허억,"
...이탈리아 로마의 어느 호텔.
자신의 방으로 돌아 온 아리아 길드의 길드장, 이시연은, 현관문을 뒤에 두고 주저앉으며 깊은 숨을 몰아내쉬었다.
"미친..."
떨리는 동공을 억지로 다잡는 그녀.
온갖 혼란이 태풍마냥 그녀의 머리속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안거야...?'
방금 전, '초월급 아이템'에 대해 언급한 EX급 시즌보스, 옥시안. 그 누구도 알지 못해야 할, 그 전대미문의 아이템에 물은 그녀에, 이시연의 손이 벌벌 떨렸다.
"혹시 알아챈거야?"
그녀는 다급히 오른손을 허공에 휘둘러, 자신에게 남몰래 발현 된 히든 퀘스트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
《퀘스트》
名: 세계 정복
내용:
1) 길드 랭킹을 1위로 상승시키시오(현 4위)
2) 모든 허망급 아이템을 수집하시오(현 1/7)
제한시간: 195d 2h 12m 56s
보상: 초월급 아이템 '별의 눈물'
실패시: 플레이어의 데이터 소거
***
"......"
자신의 욕망에 기초하여 나타난 퀘스트와, 그 난이도에 비례하여 배급되는 보상.
...이시연 자신에게 발현 된 퀘스트의 난이도는 어려움을 넘어 일반적인 유저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내용이었다. 허나, 그 난이도만큼, 주어지는 보상란에 적혀진 보상의 이름은 '초월급 아이템, 별의 눈물'.
사태 이후 2주째 되던 날, 처음 이 퀘스트를 받았을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인터넷 구석구석을 찾아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저 아이템은, 필히 허망급 아이템들 그 전체를 합한 것 이상의 힘을 주리란 것을.
"말도 안되지..."
헌데,
이미 자신이 충분히 조사하여,
인터넷 그 어느곳에서도 초월급 아이템 그 존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
[저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거라서요.]
"거짓말..."
인터넷에서 그 아이템의 이름을 보았다?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
옥시안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들은거냐..."
이시연 그녀가 남이 있을 때 퀘스트 창을 펼쳐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 자신에게서 그 정보를 얻었을 확률은 0.
그렇다면 다른 어디선가 그것의 존재를 찾았다는 것인데, 인터넷에는 그 어떠한 정보도 없음을 이미 이시연이 직접 확인한 바. 그럼 남는 시나리오라고는...
"...퀘스트가 발현됐다."
...옥시안 그녀한테도 자신처럼 초월급 아이템이 보상으로 걸린 퀘스트가 발현되었다는 것과, 혹은,
"제3자의 퀘스트를 엿보았다."
같은 내용의 퀘스트가 발현 된 제3자의 퀘스르 화면을 우연히 보게된 것.
"씨발......"
어느쪽이 되든 이시연으로선 결코 반가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초월급 아이템이 2개라면 그 희소성과 희귀성이 조금이나마 줄어드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왕은 한명이면 된다..."
이를 악물며 중얼거리는 그녀.
모든 길드를 재패하고 7개의 허망급 아이템을 전부 얻어, 초월급 아이템과 함께 세상 위에 군림할 자는 이시연, 그녀 하나면 됐다.
피조물들한테, 우매한 인간들한테,
...주인은 단 하나여야 했다.
"...시간이 없다."
옥시안 본인인지, 아니면 타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누구든지 초월급 아이템을 손에 얻는다면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확률은 점차 줄어들 터.
초월급 아이템이 걸린 만큼, 발현 된 퀘스트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을테니, 어떻게든 그 누군가가 미션을 성공하기 전에 자신의 임무를 먼저 끝마쳐야 하였다.
"......"
...이시연은 끝내, 천천히 주머니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든다. 더 이상 죽치고 앉아있기엔 변수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의 전원을 켜고, 손가락으로 그 반짝거리는 화면을 몇번 터치하여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이어지는 잠깐의 통화 대기음과, 곧이어 들려오는 한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
...그 남성은 공손한 어투로 자신의 대장에게 물었다.
[길드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아..."
그의 물음에 잠시 깊은 한숨을 내쉬는 이시연.
상당히 급한 성질의 그녀였기에, 서론을 스킵하고 바로 자신의 본론을 꺼내었다. 무뚝뚝한 목소리가 이 호텔 방 안에 울려퍼졌다.
"지난번에, 옥시안의 부모 조사한 건 어떻게 됐어?"
...멋저번, 자신의 부하에게 시켰던 EX급 시즌보스 옥시안의, 정확히 말하자면 옥시안으로 변한 그 '누군가'의 신변조사. 자신의 계획의 중심에 서있는 옥시안인 만큼, 개인사 조사는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질문을 들은 남성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하였다.
[이미 조사를 끝내 놓았습니다. 그자의 개인정보는 물론 가족관계까지요.]
"그럼 지금 옥시안의 부모는 어디에 있지? 이미 죽었나?"
한쪽 눈가를 치켜올리며 말하는 이시연.혹여나 변화과정을 지니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이미 괴수들에게 죽었을 가능성이 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허나 남성은 그녀의 추측이 'X'라고 답하였다.
[아니요, 현재 영국에 체류 중이라 합니다.]
"......!!"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성의 답에, 이시연은 일이 쉽게 풀린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내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자신의 부하에게 명하였다.
"...최대한 빨리 그들의 암살 계획을 세워놔."
[예?]
꽤나 갑작스럽고 뜻밖인 이시연의 명에, 남성은 놀란 듯한 눈치를 보인다. 이시연은 차가운 말투로 그런 그에게 다시금 자신의 명령을 상기시켜 주었다.
"영국에 있는 옥시안의 부모를 어떻게 죽일지 생각해 놓으라고."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소행이 아닌 것처럼,
오히려 영국을 지키는 검은 고양이들의 축제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울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그녀가,
"......진심으로 분노할 수 있도록."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