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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화 〉 꽃의 잔향 (7) (85/85)

〈 85화 〉 꽃의 잔향 (7)

* * *

"......"

변화자는 가게에서 나가라 말하는 노인.

뭐, 그 생김새가 자신과 다르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게 인간이라고, 어라이징을 하지 않은 본인이었기에 변화자의 출입을 금하는 것 같았다.

또, 게임과는 거리가 멀 나이대의 노인이었으니, 지금 자신이 누구한테 저리 당당하게 소리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

그는 내가 자신의 식당에 있는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드는 건지, 연거푸 얼른 나가라고 훠이훠이 손짓을 해보였다.

"인외종과 얽히면 좋을게 없다고 하더군, 어서 나가나 보쇼!"

"......"

...고개를 돌려서 주변을 바라보니, 정말 식당 내에 단 한명의 이종족들도 없었다. 오로지 인간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을 뿐.

"어......"

식당 주인의 말을 듣자, 이시연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더불어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 또한 우리쪽으로 집중된다. 이어서 하하호호 떠들던 잡담소리가 뚝 끊기고, 웅성거림이 그들을 휩쓸었다.

[뭐야, 누구야?]

[핑크머리? 옥시안아님?]

[옥시안이 여길 왜 와]

[아니 근데 생긴게 진짜 옥시안인데?]

"......"

나를 보며 중얼거리는 손님들.

그리고 그들뿐만이 아닌, 나를 뒤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 온 사역마들의 얼굴도 뻣뻣이 굳어버렸다.

「무례한 놈...!」

「감히 전하에게 명령을 내리는건가...」

「......」

"...진정해."

당장이라도 노인을 죽이고 식당을 박살내버릴 것만 같은 그들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들을 말린다.

"......"

가게 주인의 원칙이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손님이 따라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인간과 인외종을 차별화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은 사상. 그러한 사상들 때문에 괜시리 패가 나뉘어 싸움이라도 난다면 몹시 귀찮아질 터였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데스크에 앉아있는 가게 주인에게로 다가갔다.

"...왜, 왜 그러는 것이오? 빨리 나가라니까?"

"......"

내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걸어가자, 당황한 듯이 소리치는 노인. 가장 좋은 방법은 주먹으로써 새로운 사상을 주입해주는 것이겠지만, 보는 눈도 많은 지금 그랬다가는 '옥시안 민간인 폭행!'이라며 고스란히 인터넷에 박제될 터.

"흠..."

무언가를 짧게 고민한 나는, 이내 손바닥을 펼치고 아이템 하나를 현세에 구현해낸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은색빛깔이 나도는 아주 날카로운 송곳니. 먼젓번에 잠실에서 만났던 A급 몬스터, 버섯말이 이무기를 죽이고 얻은 보상이었다.

"뭐, 뭐요?"

내가 이무기의 송곳니를 데스크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자, 노인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상한 물건을 준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였다.

"이런 요상한거 준다고 봐주는거 아니유, 어서 다른 식당이나 찾아보시오."

"하아."

A급 마수를 죽이고 나온 보상을 겨우 '요상한거'라고 지칭하는 그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못잡아도 수백억 가치야 이거."

슬라임이나 달팽이도 아닌 무려 이무기를 사살한 후 받은 아이템. 정보회의 거래 페이지에 내놓는다면 못해도 500억 정도의 가치는 측정받을 터.

[야 저거봐, 이무기 이빨임.]

[미쳤다 그걸 잡았다고?]

[저거 우리 길드 총동원해서 겨우 잡았던건데]

"......"

손님들 또한 아이템의 낯이 익다는 듯, 버섯말이 이무기의 송곳니를 보자 한차례 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뚝뚝한 얼굴로 노인을 향해 말을 이어나갔다.

"이걸 줄테니, 앞으로 변화자, 인간, 차별하지말고 식당에 받아줘. 인종차별하고 다를 것 없다는거 알고 있잖아."

"......"

나름 멋있게 말했다고 생각한 나지만, 식당 사장은 그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게 얘기했다.

"수백억? 이 애들 장난감같은게?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건가?"

"......"

가게에서 나가라는 자신의 말은 듣지 않고, 이상한 물건이나 감정질하고 앉아있자 화가난 듯이 말하는 그. 그런 그의 의구심에, 여태껏 조용히 있던 이시연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아뇨! 이 아이템의 가치는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

무언가 삼류 사기꾼 같은 대사를 치며 힘차게 소리치는 이시연. 그녀는 자신의 신분증 같은 것을 노인에게 내밀며 당당히 말하였다.

"세계 길드 연합 소속이자 랭킹 4위 길드 아리아의 수장의 이름을 걸고, 여기 이 아이템은 실제 최소 300억의 가치를 띈 초 희귀한 물건이니, 주인장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늘 그랬듯이, 쾌활하고 발랄한 목소리로 식당 사장에게 말하는 이시연. 하지만 흰머리가 지긋한 노인은 혐오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그녀를 쳐다보았다.

"......미친년인가?"

***

.

.

.

.

.

"...이시연과 옥시안의 위치가 파악 됐습니다."

한 어두컴컴한 방.

짙은 보라빛 제복을 입은 한명의 남성이 말하였다.

"그럼 모든 요주인물의 위치는 다 파악 된건가?"

...이제는 이름밖에 남지않은 길드 아벨리아.

그런 아벨리아의 2대 길드장 로슈포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성을 향해 되물어보였다. 그녀의 직속 부하격인 남성은 보고있던 컴퓨터 화면을 로슈포르에게 공유하며 답하였다.

"예, 화양연화의 길드장 웡 치챠오와 블리자드의 길드장 빅토르를 제외하고는 모든 길드장들이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옥시안같은 경우는 이시연과 함께 시내의 식당에 있고요."

"......"

부하의 말에, 로슈포르는 말없이 입술을 깨문다.

이번 자신이 계획한 스타디오 올림피코 테러의 목표는 아벨리아를 나락으로 빠뜨린 세계 길드 연합의 일원들을 전부 사살하는 것.

...몇달간에 걸친 치밀한 준비와 설계로 완벽히 그들을 사살할 계획을 세웠건만, 그런 준비를 허투루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갑작스레 개입해버렸으니, 바로 옥시안이었다.

"옥시안......"

아무리 격투 대회를 관람하러 온 관객들의 목숨을 인질로 잡는다해도, EX급의, 규격 외의 힘을 지닌 그녀가 이번 계획에 말려든다면, 과연 자신들의 목표가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최대한 변수를 없애고 싶은 로슈포르 입장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해야 옥시안이 자신들의 일에 끼어들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옥시안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지 않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

아무래도 그렇기 위해서는 테러가 일어날 스타디오 올림피코에 오지 않게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로슈포르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자신의 부하에게 물었다.

"지금 옥시안이 어디라고 했지?"

"로마 시내의 한 유명한 식당입니다!"

"......"

자신의 물음에 힘차게 대답하는 보라색 제복의 남성.

그는 컴퓨터에 GPS를 띄어 조금 더 세밀하게 옥시안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흠..."

현재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로마에서도 손꼽히는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 아직 이른 아침이기는 해도 분명히 많은 손님들로 우글거리고 있을 터였다.

식당.

많은 손님들.

옥시안.

그리고 그녀의 발을 묶어 둘 방법.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 로슈포르는 이내 남성을 다시한번 불러보았다.

"....안드레이."

"예, 총주."

"지금 당장 기용 가능한 인원과, 사용 가능한 잔여 폭탄이 얼마나 되지?"

테러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사용 가능한 잉여 병력과 폭탄이 얼마나 되는지 묻는 그녀. 안드레이라 불린 남성은 컴퓨터를 몇번 두들겨보더니,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답하였다.

"지금 당장 기용 가능한 인원은 여섯, 잔여 폭탄은 마력을 이용하는 마력탄 3개가 남아있습니다."

"......좋아."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던것인지, 히죽거리며 웃는 로슈포르. 그녀는 이어서 곧바로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그 인원들을 동원하여 옥시안이 있는 식당을 테러해."

"지, 지금요?"

"그래."

갑작스러운 명에 얼떨떨해하는 안드레이에, 로슈포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답하였다.

...지금 옥시안이 있는 식당에 폭탄 테러를 한다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3가지.

첫번째는 옥시안이 그 폭탄에 맞아 죽는 것.

가장 좋을 시나리오겠지만, 천하의 옥시안이 겨우 폭탄에 맞아 죽지는 않을 터. 로슈포르가 기대하는 것은 그 폭탄 테러로부터 파생 될 나머지 2개의 경우였다.

"......"

두번째는 테러 주동자로 옥시안이 의심받아 경찰이나 길드에게 압송되어 조사를 받는 것이었다.

인외자에 대한 차별이 막심한 지금, 많은 사람들을 헤치는 테러가 일어난다면 충분히 그 범인으로 의심받을 수 있을 것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조사를 받느라 스타디오 올림피코에도 오지 못할것이었으니, 자신의 계획은 큰 차질없이 무사히 성공할 것이었다.

"마지막..."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아마 가장 가능성 높을 시나리오.

폭탄 테러를 당한 옥시안과 그 사역마들이, 곧바로 눈에 불을 키고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들, 즉 자신의 길드원들을 추격하는 것.

"......"

...만약 여섯명이나 되는 인원이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최대한 멀리 달아난다면, 아무리 옥시안이라 하더라도 추격하는데 애를 먹을 터. 그들을 잡고 오거나 도중에 포기하고 오더라도 이미 '계획'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 벌이는 충분히 될 것이었으니, 이또한 로슈포르가 원하는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빨리, 지금 당장 시행해."

"예, 옙...!"

물론 그 서슬에 죄없는 민간인들도 몇명 죽을것이 분명하겠지만, 뭐,

"옥시안......"

...자신들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딱히 상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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