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 원치 않은 회귀(1)
차에 치여 이 세계로 간다는 흔하디 흔한 소설 속 이야기.
평범하게 살아온 나는 그런 것을 꿈꾸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트럭에 치여 정신을 차렸을 때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뜨게 됐다.
보통 소설 속에서는 그런 이들이 특별한 능력을 얻고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소설과 현실은 엄연히 달랐다.
처음에는 공포와 외로움에 며칠을 울었다.
차차 적응하기 시작했을 때는 끊임없는 고통에 울었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별짓을 다 했고 그렇게 수십 년을 구르고 굴렀다.
차차 이 세계에 완전히 적응했지만, 여전히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가득했다.
그러다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때 미친 듯이 환호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년이 또 흘렀을 때, 마침내 그 방법을 손에 쥐었다.
오색 찬란한 빛을 내뿜는 수정.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는 이곳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다 필요 없었다.
여전히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신에게 지구는 따뜻하고 좋은 추억밖에 없는 곳이었다.
예쁜 여자친구, 좋은 부모님, 좋은 집안.
한시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제야 진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동안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번쩍!
순식간이었다.
눈을 뜨자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는데 그토록 보고 싶던, 이제는 낯설게 변해버린 지구의 모습이었다.
“아, 아아...”
이세계에서 지낸 그 수많은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너무도 한순간에 돌아왔지만 허무하다거나 허탈한 감정 따위 없었다.
기쁨만이 가득했다.
숨을 들이마시자 이세계와 달리 퀴퀴한 공기가 코끝을 때렸으나 이 또한 너무나도 그리웠다.
저 멀리 보이는 낯선 건물 형태는 이세계와 비교하면 아름답지 않지만, 그토록 보고 싶었던 풍경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빠앙!
“응?”
기쁨에 눈물을 흘리려던 순간 들려오는 경적에 고개를 돌렸는데 트럭이 돌진해오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을 수 없는 장면.
맨 처음 이세계로 가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
뻐억!
트럭에 부딪혀 공중에 떠올랐다가 바닥에 철퍼덕 떨어진 그는 전신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전해졌다.
투욱, 툭.
끔찍한 고통이었지만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억울함이 더욱 아팠다.
이윽고 흐릿한 시야 속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는데 그런 그들을 향해 남은 힘을 다해 손을 뻗었지만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고
그렇게 의식이 사라졌다.
어두운 우주를 걸었다.
얼마즈음 걸었을까.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보며 기뻐하며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은 진짜 죽은 거라고.
저기가 바로 천국이라고.
아니, 지옥이라도 좋다며 온 힘을 다해 달려 환한 빛으로 몸을 날렸다.
“...”
눈을 떴다.
잊을 수 없는 장소.
잊을 수 없는 나무.
다시 돌아왔다.
엿 같은 이세계로.
***
-여행하는 구름-
리톰 영지에서 인기 있는 주점으로 이곳에서 나오는 음식은 저렴하면서도 맛이 괜찮아서 특히 젊은 유저에게 제법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거기다 이곳 여사장의 미모 때문에 남자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우하하! 그렇다니까!”
“또 구라친다 이 새끼.
스페르 길드에서 너한테 권유를 왜 하냐고?”
“진짜야 개새끼야!”
“그럼 왜 가입 안 했는데?”
“그거야 내가 더 큰물에서 놀 그릇이기 때문이지!”
“에라이 미친 새끼야.
구라를 쳐도 좀 될 만한 걸 쳐라.”
“야! 팔머 저 새끼가 구라 친 게 한 두 번이냐?”
시끌벅적한 소리는 주점을 찾게 만드는 매력 포인트였다.
“사장니임~ 여기 훈제고기 하나 추가요~”
“네~ 기다려주세요~”
“아하하~ 천천히 해주세요.
제가 이번에 또 제법 괜찮게 벌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답니다!”
“어머! 그렇다면 훈제고기가 아니라 새끼돼지고기라도 시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하하하! 그것은 다음에...”
단순히 사장의 외모가 아닌 친화력도 인기를 한몫했다.
“언니! 우리 왔어!”
“어머 동상 왔어?”
그 친화력은 남성뿐만이 아닌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끌게 만든 비결이었기에 더 많은 남자 손님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곳에서 은근히 많은 짝이 이루어졌는데 이게 소문을 타서 특히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게 되었다.
덕분에 항상 이 주점은 시끌벅적함이 가득했는데, 왁자지껄 웃고 있는 소리 사이로 귀를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흑, 흐흐흑.”
“글쎄 그랬다니까?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
“흑흑, 크흐흑.”
“아 정말? 우와~ 진짜 멋있다 오빠아~”
“흐흑, 크흐흐흑.”
계속해서 사람들 대화 중간에 파고드는 음성.
점점 거슬리는 소리에 하나, 둘 신경이 쓰이던 찰나 결국, 누군가 참지 못하고 책상을 탁! 치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이 씨발! 이렇게 기분 좋은 곳에서 누가 이렇게 질질 짜는 거야!”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한순간 조용해졌다.
다른 이들도 그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라 그 행동을 무례하게 여기기는커녕 같이 찾고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때 한 명이 구석에서 일어났다.
“나다 씹새끼야.”
한 남자가 일어났는데 분명히 펑펑 울던 것과 달리 얼굴은 전혀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저 시뻘겋게 변할 정도로 취해 있었으며 복장이 굉장히 독특했다.
“이 새끼가 미쳤...”
한 덩치를 자랑하던 사내인 팔머는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다가가려 하자 사장이 다가와 막았다.
“어머! 싸우면 두 번 다시 우리 가게 못 와요!”
사장이 예쁜 얼굴로 들이밀자 팔머는 자연스레 멈췄다.
거기다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다 보니 가슴골이 살며시 보여 얼굴을 붉혔다.
“크흠! 누님!
이 멋진 가게에 초를 치고 있잖습니까!
제가 데리고 나가서 혼꾸멍을 내주겠습니다!”
“그래도 우리 손님끼리는 싸움 금지! 싸우면 다음에 오면 맛없게 해줄 거야!”
그녀는 막으려 했지만, 분위기를 망치며 울던 손님이 터덜터덜 걸어와 마주 섰다.
“나와 돼지 새끼야.”
화끈한 선전포고에 술을 먹던 이들은 재미있는 구경이 난 것에 즐거워하며 그들과 함께 뒤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팔머와 울던 사내는 골목에서 서로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말 존나게 많네. 돼지 새끼야. 적당히 꿀꿀거리고 들어와.”
“이런 씨발놈이!”
결국, 주먹이 날아들었다.
우악스러운 주먹은 그의 입장에선 어설픈 공격이었지만 피할 생각도 없이 맞았다.
퍼억! 우당탕!
그는 그대로 쓰레기통을 뒹굴면서 바닥에 쓰러졌고 팔머는 자신의 주먹에 힘없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더욱 거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맞고 쓰러진 이는 어떠한 저항은커녕 손으로 얼굴을 보호하지도 않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맞았다.
일방적인 구타에 구경 온 이들은 실망하며 하나, 둘 다시 주점으로 돌아갔다.
“별것도 아닌 새끼가. 기분만 잡치게 퉤!”
“아~ 뭐야. 재미있는 구경이 될 줄 알았더니.”
“그러게 술이나 먹자.”
쓰레기더미에 쓰러져 있는 그는 들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모두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힘없이 시선을 위로 옮겼다.
좁은 골목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
허무했다.
이 어둡고 더럽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벗어나 저 하늘을 누볐었는데 눈을 감고 떠보니 다시 이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꿈처럼 모든 게 사라졌다.
지구도 돌아가지 못했고 그 모든 노력도 사라졌다.
그런데 더 비참한 것은, 그렇다고 죽을 용기도 없다는 것이다.
잠시 멍한 얼굴로 누워있던 그는 몸을 뒤척이는순간 욕을 내뱉었다.
“하아, 씨발.”
통증 때문에 욕을 내뱉은 게 아니었다.
맞으면 조금은 나을 줄 알았건만 오히려 더 비참함이 느껴진 것이다.
몸을 일으켜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골목을 나와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
“괜히 다른 길드에서 못 깬 게 아닌가 봐.
별짓을 다 해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연금술사의 던전이 그렇게 짜증 난다더니 진짜였네.
제일 가능성 있는 게 역시 그래도 침실 아냐? 거기 그림이 의심스럽다니까.
아무리 때려도 안 찢어지고 그렇잖아.”
흰색 레더 아머를 입고 있는 두 여성은 작은 개울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며 투덜거렸는데 그 소리에 그곳에서 잠을 자고 있던 남성이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그 쉬운 거를 모르나?”
“뭐야 당신? 방금 당신이 한 말이야?”
“끄응. 잘 자고 있는데 시끄러워서 깼네. 흐암.”
“아저씨 무슨 소리죠?”
그는 하품을 쩍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아니고 오빠.”
“푸흡! 거지 주제 무슨 오빠야!”
붉은 머리 여성의 비웃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
“뭐?”
“돈 주면 가르쳐준다고.”
“또라이 새끼 아냐? 레이첼 가자!”
두 여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고 그 역시 그것을 보고 별 관심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런데 문득 스물스물 올라오는 냄새에 옷에 대고 킁킁 맡았다가 악취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바로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가에 터벅터벅 들어가더니 그대로 물에 쓰러지듯 누웠다.
첨벙!
시원함이 머릿속을 깨웠고 물 위를 동동 떠서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 짜증과 답답함이 치솟았다.
“하. 나 뭐하냐 진짜.”
벌써 보름이 지났다.
뭔가를 하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럴 의욕이 전혀 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아무리 해도 그 답을 떠올릴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억울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낼 수 없었기에 멍하니 물에 떠다니다 잠시 후, 몸을 일으켰다.
옷까지 잔뜩 젖은 상태였지만 그 상태로 나와 근처 바위에 누워 그대로 다시 한숨 청하려 했다.
꼬르륵.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에 주머니를 뒤지니 동전 몇 개가 손에 딸려 나왔다.
이 정도면 당장은 길거리 음식으로 가볍게 배를 채울 수는 있었다.
“돈이나 벌자.”
노점상에서 길거리 음식을 하나 사고 곧바로 인력소로 향했다.
보름 동안 그나마 배를 채웠던 이유가 바로 이 인력소를 이용했던 것으로, 이곳은 자신과 비슷한 처치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몇 개의 대기 줄에 섰는데 이런 것을 보면 지구나 여기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잠시 후, 차례가 왔다.
간단히 인적 사항을 적고 희망 사항에 해체라고 적혀 있는 칸에 체크했고, 패를 받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 앉았다.
“짐꾼 있나!? 짐꾼! 힘 좋은 놈으로!”
“예! 있습니다!”
“저도요!”
“여기도 있습니다!”
“너, 너 그리고 너까지. 따라와!”
짐꾼은 가장 단순한 노동이라서 신청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뽑히지 못한 이는 한숨만 내쉬었다.
“진짜 오늘도 허탕이야? 나도 해체를 배워야 하나?”
“아이고 형씨. 해체는 아무나 하나?
그거 잘못 했다가 유저 새끼들 욕은 기본에 질 나쁜 놈은 패기까지 한다니까?
괜히 해체는 전문 작업팀을 고용하는 게 아녀~”
“맞아. 옛날처럼 인력소에서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유저랑 계약해서 하는 거였으면 돈도 못 받았어~”
그러는 사이 잠시 후, 또 유저가 찾아왔는데 이번엔 여성이었다.
“해체할 분 찾고 있어요.
이미 작업팀이 있는데 그쪽에서 한 사람이 지금 부족하다고 해서요.”
일단 남성 유저보다 여성 유저와 함께 하는 게 좋기에 짐꾼 인부들은 해체 인부들을 부러워했지만, 해체에 있는 인부들은 작업팀이 있다는 소리에 왜인지 손을 들기 껄끄러워하며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중에서 한 명이 손을 들었는데 바로그 남자였다.
그녀는 영 비실 한 모습이었기에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 어차피 전문 작업팀이 있기에 인원만 맞추면 되었고 애당초 이것은 자신이 신경 쓸 부분이 아니라서 데리고 이동했다.
그녀를 따라간 그는 그들의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세 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유저였고 뒤쪽엔 작업팀인 다섯이 있었다.
전문 작업팀답게 다른 짐꾼 인부들과 달리 이들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제대로 된 장비는커녕 해괴한 옷을 입고 최하급 해체 칼 하나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작업팀 리더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어이. 잘 하자고. 내가 인력소장이랑 친하거든?
못 하면 너 돈도 못 받을 줄 알아.”
“예.”
건방진 눈빛이었지만 어차피 인력소에서 온 놈 중에 제대로 된 놈이 없었기에 리더도 그러려니 하고 유저를 뒤따랐다.
그들은 영지의 광장으로 향했는데 광장에는 굉장히 독특한 구조물 하나가 있었는데 약 3미터 정도 높이에 이르는 마름모꼴 붉은 수정이었다.
수정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닌, 아주 오묘하면서도 이상한 것이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주위로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고 이들도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연금술사 던전으로 와주세요.”
그녀들은 수정 앞에 서서 말하고는 손을 올리더니 작은 손짓하다가 말했다.
“로그인.”
그 말과 동시에 사라졌다.
처음 보는 사람이 보면 화들짝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자 우리도 가자.”
보조 리더가 걸으면서 그도 뒤따라 수정 앞에 섰다.
“...”
이것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옆으로 지나가던 작업팀 일원이 어깨를 툭 쳤다.
“어이, 잘해라 어? 못 하면 뒤질 줄 알고.”
“야야 벌써 그러면 쫄아서 튄다고.”
비아냥에도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천천히 수정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눈앞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아벨리우스 세계>
(리톰)
[필드 사냥터]
[던전]
익숙 한 듯, 던전에 손으로 누르자 투명한 창의화면이 바뀌었다.
[던전]
연금술사의 던전
슬라임 양식장 (클리어)
피바람이 부는 계곡
용암 늪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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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떠오른 화면을 보더니 갑자기 갸웃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시기에 이게?”
지금 있어서는 안 될 던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