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1. 원치 않은 회귀(3)
결국, 자신도 모르게 리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롱소드를 다시 집어넣었는데 거짓말처럼 싸늘했던공기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
<상태>
근력: 5
체력: 6
특화: 없음.
특성: 없음.
초라한 상태.
이벨리우스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신체 능력을 수치화해주는 것이었다.
단순 근력과 체력만 명시되어 있는데 저렇다 해서 근력과 체력이 높은 상대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건 아니었다.
전투에 적용되는 변수는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반응속도는 물론 경험까지.
하지만 분명히 이 세계의 강자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했다.
“상태를 보니 갑자기 허무함이 확 밀려오긴 하네.”
한숨을 내쉬다가 손을 저어 상태창을 없애고는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금술사의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는 총 6마리였다.
그중에서 키메라 오크가 가장 까다로웠다.
사실 이곳에 나오는 키메라 오크는 진짜 오크로 만든 키메라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 셋은 이미 목이며 팔이며 뜯겨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오크를 본따 만든 만큼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 중 키메라 오크가 가장 강했는데 셋은 나름대로 잘 싸웠다.
“기본기는 괜찮아.”
그의 눈에 특히 레이첼이 꽤 좋았다.
중앙에서 아주 좋은 밸런스로 동료들을 지켜주고 적절한 순간에 공격하며 시선을 확실하게 잡았다.
상당히 좋은 센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방패를 이용한 몬스터의 공격을 흘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저것은 단순히 경험이 아닌타고난 것이었다.
“저 정도면 꽤 이름 좀 알렸을 텐데.
내가 여기 그나마 활동하기 시작할 때에도 못 들어본 거 같은데.
왕국에서도 그렇고.”
하지만 그렇게 의문이 드는 건 아니었다.
이 세계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한순간에 죽었다.
그러던 와중에 생각보다 오크의 반격이 거셌는지 힘겨워하던 그때, 갑자기 레이첼의 무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 신비한 현상이 일어나자 한순간 레이첼에게서 기세가 달라졌다.
“키칵!”
키메라 오크는 그 기세에 거칠게 달려 들었다.
레이첼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흘리면서 아지랑이가 감도는 브로드 소드를 다리 쪽으로 휘둘렀다.
파앗!
그대로 다리가 날아가며 피를 흩날렸다.
아까까지와 수준이 다른 강한 일격이었다.
가볍게 생채기가 생기던 것과 달리 피부가 확 드러날 정도로 상처가 벌어졌고 지속적인 공격으로 결국 무릎을 꿇렸고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잡았다!”
“역시 이놈은 꽤 힘들 다니까.”
“내 화살이 잘 안 박혀! 나도 특화를 빨리 익혀야 하는데! 힝.”
오크가 쓰러지면서 지친 그녀들도 덩달아 쓰러지려는 그때 그가 다가오자 바짝 긴장한 얼굴로 보았다.
“고생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응접실로 간다.
작업팀은 아까처럼 대가리는 목 부분까지 단정하게 자르고.”
그가 먼저 움직이자 세 여성은 뒤따르면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근데 진짜 이게 맞는 걸까?”
“하지만 이곳에 대한 위치를 저렇게 상세하게 알고 있는 걸 보면 조금은 거기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확고해.”
“흥. 만약 거짓이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저놈 박살 낼 거야.”
리나는 말은 그리 하고 있었지만 아까 눈이 마주친 이후로 말은커녕 바라보는 것도 못하고 있었다.
응접실을 가기 위해서는 입구로 다시 돌아와 중앙 홀에서 올라가는 계단을 타고 오른쪽으로 가야 했다.
홀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려는데 그 길목에 한 유저들이 사냥하고 있었다.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그들을 본 세 여성은 다소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그리고 마침 저쪽의 여성도 고개를 돌리더니 방긋 웃으며 다가왔다.
“어라? 이게 누구야. 레이첼과 떨거지들 아니야?”
다가오는 그녀는 자신만만하고 도도한 표정만큼 장비도 화려했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철제 흉갑과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질 좋은 가죽 부츠, 특히 붉은색으로 된 무기도 눈에 들어왔다.
마리엘.
리톰 영지에서 가장 잘나가는 길드는 칼라리스 길드였다.
마리엘은 그 길드 마스터의 딸로 늦은 나이에 딸을 얻었던 터라 딸을 극도로 애지중지했다.
딸에 관한 일이라면 길드일까지 내팽개치고 달려올 정도였기에 리톰 영지에서 그녀를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는 소문이 흐를 정도로 과한 사랑을 받은 마리엘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듣자 하니 너희들 여기 던전 클리어 하려고 아주 ‘발악’중이라면서?”
말투는 물론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이미 깔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 여성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성격이 불같던 리나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그만큼 마리엘이 가지는 이곳에서의 영향력이 컸다.
“하긴 너희 같은 애들이 어떻게든 유명해지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겠지.
그런데 말이야.
겨우 너희들이? 우리 길드도 못했는데?”
“너희 길드가 못하면 다른 사람도 못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결국 참지 못한 리나는 최대한 참아가며 말을 내뱉었다.
“아하하~ 맞아 맞지. 그런데 적어도 너희는 아니지 않을까?”
그러나 마리엘은 더욱 가소롭게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내기하지.
여기를 클리어 하나 못 하나.”
마리엘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유저가 아닌 작업에 속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기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넌? 딱 봐도 작업인 거 같은데.
낄 때 안 낄 때 구분해야 할 거 아니니?”
“자신 없나 보네.
말 많은 거 보니.
자신 없으면 꺼져.
지나가야 하니까.”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오히려 더 놀란 것은 같이 있던 세 여성으로 셋은 입을 쩍 벌린 채 그를 보았고 마리엘 역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눈동자가 살며시 떨렸다.
정적 사이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뒤쪽에 있던 두 남성이었다.
“별 미친놈이 다 있네.”
“감히 누군 줄 알고...”
그들은 기세를 내뿜으며 걸어오자 마리엘이 손을 들어 둘을 막았다.
“잠깐만, 재미있는 놈이네.
그래 좋아. 내기.
그거 재미있겠네.
그런데 말이야.
보통 내기라는 건 서로가 받을 게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감히 너희들 따위가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을까?”
진짜로 내기가 이루어지려는 것을 보자 세여성은 당황해했다.
“자, 잠시만. 왜 우리 의견은 상관없어.”
“맞아!”
“조건을 알아도 클리어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거잖아.”
그 말에 마리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설마지금 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소리 같은데.”
어느덧 비웃음에서 흥미로움이 섞였다.
그는 다시 마리엘을 보며 말했다.
“뭘 줄 수 있냐고 했나?
클리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너무도 당당한 말에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다.
“풉, 푸하하! 뭐라고? 진짜 재미있네.”
웃던 마리엘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내기 조건이 너희들이 클리어 하는 게 아니었나?”
“싫으면 말고, 야 너희들은 친구 없냐?
생각해보니 솔직히 너희들로는 못 잡을 거 같은데.”
돌아서서 세 사람과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마리엘은 이상하게 조급함을 느꼈다.
저 당당함.
누가 보아도 진짜 알고 있는 사람의 행동이었다.
연금술사의 던전.
수많은 길드가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도저히 보스가 있는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성공하게 된다면?
자신은 이곳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왕국에도 진출할 가능성이 열릴 수 있었다.
“잠깐.”
마리엘은 어느덧 진지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
“좋아. 받아들일게. 하지만 거짓이라면 너 좀 큰일 날 거야.”
팔짱을 끼며 기회를 주겠다는 눈빛에 그는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 하나?”
“응?”
“내기가 성립이 된 건 아니다.”
“그거야말로 무슨 소리지?”
“난 너에게 기회를 주었고 너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마리엘은 당황하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우리 길드에서 보관하고 있는 장비 중 하나를 선택할 수있게 해줄게.”
그는 뒤를 돌아보니 세 여성은 놀라고 있었다.
칼라리스 길드가 가지고 있는 장비에는 이 영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도 많았기 때문에 아주 훌륭한 보상이었다.
“반응 보니 괜찮은 거 같네.”
“잠깐, 그런데 네 말이 진짜가 아니면?
나를 우롱했으니 그 죄는 어떻게 갚을래?”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죽이든 뭘 하든 마음대로 해.”
그리고는 지나쳐 걸어갔고 마리엘은 황당한 얼굴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왜인지 서서히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잡혔다.
“재밌네.”
***
연금술사 던전의 응접실.
그곳에는 몇 가지 조각상과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워낙 오래된 탓에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만큼 훼손되어 있었다.
“이봐 당신. 여기는 왜 들어온 거야? 아니 그전에, 당신 이름 뭐야?
계속 당신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
마리엘이었다.
같이 다니던 두 남성은 길드 보고를 위해 보낸 상태였고 그녀와 함께했던작업팀 역시 보낸 뒤였다.
“별로 그렇게 불러도 상관은 없지만 카심이다.”
“카심? 멋진 이름이네.
어쨌든 어째서 여기에온 거지?
설마 여기에서 보스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카심은 대답도 하지 않고 작업팀을 불렀다.
“여기 아래 보이는 그림 보이지? 여기에는 고블린 저긴 코볼트 순으로 머리 놓아라.”
자연스러운 하대였지만 작업팀은 그 누구도 불만을 내뱉지 않고 순순히 따르고 있었다.
그것들을 보던 네 명의 여성은 궁금함을 참지 못해 다시 물으러 다가오자 먼저 카심이 말했다.
“미친 연금술사 단트.”
네 여성은 그 손짓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허름해진 조각상 하나가 있었는데 누군가의 얼굴을 본떠 만든 것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이곳에 처박혀 살면서 연구에 미쳐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
자기가 이렇게 열심히 연구하고 멋진 것들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모르면 무슨 의미냐고.
그래서 이 미친 새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봐주기를 원했지.”
머리를 모두 바닥에 그려진 작은 문양 위에 올리자 갑자기 석상의 눈동자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
“헛!”
“우와!”
“...”
네 사람은 갑작스러운 현상에 화들짝 놀라자 드르르 소리를 울리더니 살며시 움직였다.
“뭐해? 빨리 석상 밀어. 나 힘없으니까.”
멍한 표정으로 있던 그녀들은 다급히 와서 석상을 밀자 밑으로 한 사람씩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여, 여기가.”
“보스 존.”
“...”
레이첼은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지, 진짜였네요.”
“...”
“와아... 우리 진짜 연금술사 던전 클리어 하는 거야?”
레이첼과 리나 데인은 잔뜩 들뜬 얼굴이었다.
“정말이었네?”
카심은 마리엘이 놀랍다는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무시하고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섰는데 앞으로 창이 하나 떠올랐다.
<연금술사 던전 단트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