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1. 원치 않은 회귀(4)
<연금술사 던전 단트의 방>
화면이 떠올랐지만 바로 손을 저어 없애고 계단을 내려갔다.
아무런 횃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빛이 차단된 이 공간이 밝은 것은, 이곳 아벨리우스 세계인 탓이다.
다만 같은 던전임에도 어두운 곳이 있었는데 던전마다 다 달랐다.
애당초 여기에서는 기본적인 상식으로 대입해서 상황을 분석하려고 하면 안 된다.
3분 정도 계단을 내려가자 끝이 보였고 완전히 내려가는 순간 운동장만 한 공동이 나타났다.
이곳 역시 밝았는데 끝 귀퉁이 부분에는 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커헙! 무슨 냄새야.”
“너무 지독해.”
“약품 냄새 같은데.”
“역겨워.”
그런데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악취에 네 사람은 코를 막았다.
넓은 공동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자세를 잡으며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중앙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음성이 들었다.
“키히.”
그리고 모퉁이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는 게 보이더니 불쑥 손 하나가 삐져 나왔다.
그것은 거대했다.
그리고 흉측했다.
조금씩 모습이 드러내자 네 명의 얼굴은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저런...”
“흉측해.”
“징그러워.”
“...”
이곳의 보스는 바로 스스로 키메라화 된 연금술사 단트 본인이었다.
무려 3미터에 이르는 크기.
몸 곳곳에 붙어 있는 거대한 몬스터의 팔.
너무나도 기괴한 모습만으로 네 여성의 전투 의지를 상실케 했다.
연금술사 던전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던전이 아니었다.
이곳은 단순히 보스가 있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운 곳이었기에 지금까지 클리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약한 던전으로 보여도 보스만큼은 논외로 쳐야만 했다.
“카르아으앆!!!!”
괴상한 소리를 내며 괴성을 지르자 공동이 울렸고 넷은 순간 오싹함에 몸이 찌릿찌릿함을 느꼈다.
“괴성만으로도 저렇게 쫄다니.”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심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상관할 바가아니었다.
사실 던전의 클리어는 관심이 없었다.
보스에게 시선을 빼앗긴 그녀들을 무시하고 혼자 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리엘의 선두로 전투가 벌어졌지만. 시선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렇게 벽을 따라 도착한 곳은 바로 연금술사 단트가 나왔던 그림자로 덮인 뒷공간이었다.
이곳은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는데 벽을 짚고 천천히 걷다가 갑자기 멈췄다.
“여긴가?”
손끝에 닿은 것은 작은 돌기였다.
보통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정도의 크기.
다른 사람은 애당초 이곳을 조사하러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스를 보고 보스를 죽이려고 할 테니 말이다.
카심은 손에 딱 들어오는 돌기를 살며시 오른쪽으로 비틀고 위쪽으로 올렸다.
드르륵.
작게 들리는 소리.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 그 틈을 잡고 살짝 힘을 주자 조금 더 공간이 넓어졌다.
조심히 몸을 집어넣는 순간 밝아지더니 눈앞으로 창이 떠올랐다.
[연금술사 단트의 비밀 연구실]
작은 방 정도 되는 크기의 공간이었다.
탁상이 있었고 양쪽 벽에는 실험대가 놓여 있었고 안으로는 각종 병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진짜였네.”
이전 삶에서 누군가 어느 한 던전을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정보를얻었었다.
그 던전은 오래된 마법사의 던전이었는데 그곳에 적힌 내용은 이러했다.
‘연금술사 단트는 오래된 친우였다.
괴짜지만 실력이 있는 녀석이다.
특히 놈이 연구한 것 중에는 꽤 놀라운 것이 있었다.
스스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놈은 타락했다.
너무 많은 호기심이 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처리하려고 했지만 이미 알고 숨어버려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아마 비밀 연구실에 숨었으리라. 특히 그 연구만 얻을 수 있다면......’
‘결국 놈의 비밀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해 시간이...... 포기하려던 찰나 운이 좋게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내 수명은 끝났다.
그리고 그것보다 남아 있는 나의 과제가 우선이었다.
그리하여 남긴다.
혹 후세에 누군가 본다면 꼭 찾아보아라.’
그 이후 한순간 연금술사 단트 던전에 대해 관심이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확인 결과 클리어한 뒤에는 더 이상 장치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과연, 이제는 사라진 마법사란 존재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게 뭘까?”
갑자기 몸이 찌릿찌릿했다.
본래라면 알 수 없었던 단트의 비밀 연구실.
그런데 돌아오게 됨으로써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럴 것도 없이 이전 삶에 가졌던 것을 미리 얻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며 헛웃음을 냈다.
자신은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고 그게 실패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재밌겠다니? 즐거울 거 같다니? 흥미로울 거 같다니?
스스로가 이리도 간사한 인간이었나 한심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당장은 흥미로웠기에 이곳을 살펴보려 탁상 쪽으로 다가갔는데 실험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였고 연금술사답게 온갖 액체가 담긴 병들만 가득했다.
양옆 실험대 역시 액체가 담긴 것들이 있었는데 하나를 집어서 확인을 해보았다.
[오크와 고블린 혼합물]
오크와 고블린의 뇌수와 피를 적절히 섞어 만든 것.
마시게 되면 한 순간 굉장한 힘을 낼 수 있지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다만, 지금은 오래돼서 효과는 거의 없고 독성만 남아있다.
대부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해서 효능이 없었다.
“흠.”
하지만 카심은 몬스터 전리품을 담은 주머니에서 키메라 가죽을 모조리 버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담았다.
한쪽 선반에 있는 것을 모두 담았다.
그래 봐야 깨지지 않은 게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왼쪽에는 5개 밖에 없었다.
“... 음.”
더 이상 뭔가 보이지 않아서 의아함이 가득했다.
설마 마법사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게 이런 것들일 리가 없었다.
분명히 다른 게 있어야 했다.
“어딘가...”
한참을 주위를 바라보던 중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이것은 이전 삶에서 얻었던 수많은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은 놀랍게도 정확히 위치를 잡아냈다.
그곳에는 일반적으로 벽과 전혀 다름없는 모습으로 아무리 보아도 틈이 보이거나 뭔가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벽을 향해 병을 던지자 깨지며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그 내용물은 벽을 따라 흐르다가 갑자기 툭 끊기듯 사라졌다.
“찾았군.”
액체가 사라진 그 벽을 향해 손을 집어넣자 놀랍게도 손이 벽을 관통했다.
안에서 나온 것은 유리병 하나와 낡은 양피지였다.
먼저 양피지를 펼쳤지만, 전혀 알 수 없는 문자였기에 버리려는 순간 자연스레 눈앞으로 창이 떠올랐다.
[단트의 유언장]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난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이 세계다.
“...”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는 자기 합리화만 하는 게 유언장이랍시고 써넣은 것을 보면 제대로미친놈이었기에 바로 뒤로 던졌다.
그리고 유리병을 보았는데 실험대에 있던 일반적인 유리병이 아닌,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된 유리병이었다.
무엇보다 안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액체가 들어있었다.
“이거네.”
바로 마법사가 찾던 것임을 직감하고 가까이 다가가 정보를 확인하겠다고 생각하자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최초의 엘릭서]
연금술사 엘렌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엘릭서.
본래는 다른 용도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며 완전히 다른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
최초로 만들어진 엘릭서로 섭취 시 육체를 재구성한다.
“어...”
정말로 너무나 놀랐다.
한순간 사고가 정지해버릴 정도로 놀랐다.
엘릭서.
이전 삶에서도 딱 한 번 그것도 다른 이가 들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니크했다.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지만, 엘릭서는 꽤나 많은 종류가 있었는데 근력을 영구적으로 올려준다든지 혹은 체력이나 또 다른능력치를 올려주는 엘릭서가 있었다.
또한 어떠한 부상이라도, 설령 죽기 직전의 부상이라도 모든 회복을 해주는 것도 있었다.
하나하나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상품이었다.
그런데 육체의 재구성이라니? 이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특히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엘릭서 앞의 수식어였다.
“최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입으로 털어 넣었다.
분명히 액체였는데 입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삼키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
당황스러움을 느끼려던 찰나 다시 눈앞으로 창이 떠올랐다.
<아벨리우스 시스템>
최초의 엘릭서를 섭취했습니다.
지금부터 육체 재구성을 시작합니다.
도중에 정신을 잃게 되면 거기서 끝나게 됩니다.
“재구성? 괜찮겠...”
그 순간 전신에서 불이 타는 것처럼 엄청난 통증이 전해졌다.
“끄으으윽!”
한순간에 정신이 끊어질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정신을 잃게 되면 끝난다는 말이 자꾸 눈에 밟힌 것이다.
이제 시작했는데 바로 정신을 잃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고통은 당장이라도 정신을 아득하게 멀리 날려버릴 만큼 엄청났다.
“크으으. 끄으으으.”
참기 위해 힘을 주고 있는 입에서는 어느새 잇몸이 무너질 정도로 힘을 줘서 피가 질질 흘러나왔다.
“끄으, 끄으으.”
눈동자가 점점 흰자위가 많아지기 시작했고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이전 삶을 떠올려도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을 때 갑자기 다시 동공이 돌아왔다.
“씨발! 없긴 왜 없어.”
이전 삶이 아니라 오히려 이번 삶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육체 고통 따위, 별 것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깨졌을 때 그 고통에 비하면 이따위 고통은 정말로 별 것 아니었다.
“씨, 이, 빠알. 씨발! 씨발!!! 왜! 왜에!!!”
오히려 그때 일이 떠오르면서 저 깊은 가슴 속에서부터 분노가 치솟아 올라 몸을 일으켰다.
“으아아아!!!”
모든 분노를 내뱉듯 괴성을 내지르며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그 울분은 이전 삶에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졌을 때 터뜨렸던 것보다 더 컸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수십 시간은 지난 것만 같았다.
아직도 통증은 계속되고 있었다.
보통 고통이 유지되면 익숙해지는 것인데 오히려 아까보다 심했다.
욕을 하며 고통을 이겨낼 것처럼 소리친 게 무색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침을 질질 흘리며 가까스로 정신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고통은 정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이제는 오히려 정신을 잃고 싶었지만, 본능이 그 가느다란 실을 잡고 있었다.
동공은 눈썹 끝자락에 겨우 걸쳐 흰자위만 거의 보였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서 더 이상 참지 못해 기절하려던 찰나 눈앞으로 창이 하나가 뜨는 것을 간신히 보았다.
<아벨리우스 시스템>
경이로운 정신력으로 신체 재구성을 완벽하게 이루어 냈습니다.
지금부터 육체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번쩍하는 순간 그동안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당장 일어서지 못했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다 갑자기 사라지니 당황한 것이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는데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에 어색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손이 눈에 들어왔는데 완전히 시꺼멓게 변해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
정말 불타는 고통이었기에 혹시나 살이 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급히 만졌는데그 시꺼먼 것들이 투둑 떨어져 내리며 새하얀 속살이 보여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몸에서 나온 건가? 도대체 뭐가 나왔기에 이런... 크윽, 냄새는 또 왜 이리 지독해. 당장 씻을 수도 없는데.”
우선은 상태창을 띄웠다.
<상태>
근력: 15
체력: 15
특화: 없음
특성: [완벽한 육체]
이전과는 달라진 상태창에 깜짝 놀랐다.
우선 눈에 띄게 근력과 체력이 올랐다
실제 근력과 체력이 1이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비록 낮은 수치라 처음에는 금방 올릴 수 있다지만 그래도 한 번에 10이 오른 것은 정말로 놀랄 만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끽해야 겨우 15.
여전히 평범한 유저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다만, 그것보다도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완벽한 육체?”
특성은 엄청난 행운이 아니면 얻을 수 없었다.
그 유명한 유저들 조차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으로 그야말로 천운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특성이었다.
나름대로 꽤 많은 특성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런 특성은 이전 삶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특성을 선택하자 설명이 나왔다.
[완벽한 육체]
경이로운 신체 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설명.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다시 가볍게 몸을 움직였을 때 느껴지는 감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거... 단순히 능력치가 늘어난 게 중요한 게 아니네.”
몸이 가벼운 것은 물론 손과 손이 움직일 때 느껴지는 이 힘의 전달은 이전 삶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하물며 청력, 시력 등 모든 감각까지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육체의 상태.
정말로 완벽했다.
순수하게 육체의 상태만 본다면 이전 삶보다 완벽했다.
만약 이전 삶의 특성까지 얻게 된다면?
“이것 봐라.”
다시 느껴지는 흥미로움.
더 이상 이 흥미로움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얼굴에는 이제 확실하게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