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2. 이래도 되나?(3)
“내 알 바 아니지.”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곧바로 마을로 돌아와 창을 얻었으니 나머지 필요한 장비를 구하기 위해 상점으로 들어왔다.
돈이 꽤 있어서 좋은 장비로 구해도 되었으나 저렴한 레더 아머류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무려 1골드나 빠져나갔다.
장비 상점을 나온 이후에는 주저 없이 잡화점에 들렀다.
“어서오슈.”
“무한의 가방 있습니까?”
아티팩트는 단순히 장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생활필수품에 관련된 것들도 많이 있었는데 이런 형태는 물량이많이 풀려 있었다.
“7칸짜리 있수다.”
카심은 얼만지 묻지도 않고 15골드를 주었고 다른 몇 가지 물건도 샀다.
무한의 가방.
어떠한 물건도 일정 수준의 무게와 길이도 상관없이 집어넣을 수 있는 가방으로 아무리 무거운 것을 집어넣어도 가방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아서 유저에게는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칸수에 따라서 그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무한의 가방을 사고 바로 식료품점에 들러 필요한 식기 도구와 음식 재료를 샀다.
식기 도구의 경우 큰 통에 담겨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한 칸에 집어 넣을 수 있었다.
음식 재료 역시 같은 방법으로 집어넣어서 많은 재료를 가져 갈 수 있었다.
거기다 무한의 가방에 들어간 식재료는 썩지 않았다.
괜히 신비한 힘을 가진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준비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아벨리우스 세계로 향했다.
이번에는 던전이 아닌 필드 사냥터였고 가장 위에 있는 곳을 선택했다.
파앗!
한순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이곳은 사냥터라고 하기에는 아주 아름다운풍경을 가진 곳이었다.
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들판.
그리고 뒤쪽으로는 산이 있었고 왼쪽으로 보면 꽤나 큰 강이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만약 저기 들판에 뛰어다니는 몬스터만 없다면 말이다.
카심은 오자마자 구경은커녕 고민도 하지 않고 강으로 향했고 강 근처 주변을 살피다 제법 큰 바위가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몇 유저들이 지나는 게 보이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바위 근처를 살피다가 그 사이로 괜찮은 공간을 찾았다.
허리에 찬 다용도벨트에서 벌레를 쫓는 물약을 꺼내 주변에 뿌리고 나뭇가지를 정리하고는 다시 무한의 가방에 손을 넣었다가 빼니 꽤 큰 담요가 쑤욱 빠져 나왔다.
무심히 담요를 던진 이후에 주변을 다시 살폈다.
강의 수심은 앞쪽까지는 그리 깊지 않았고 중앙은 제법 깊었다.
너무도 깨끗해 안에는 많은 생물이 살았다.
물론 이런 강에도 몬스터가 살고 있었기에 함부로 들어가면 위험했다.
“적당하네.”
유저들이 지나가며 훤히 보이긴 했지만, 카심은 그런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주변을 보던 카심은 상태창을 띄웠다.
<상태>
근력: 15
체력: 16
특화: 없음
특성: 완벽한 육체
특화.
특화는 유저라면 누구나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힘이었다.
먼저 레이첼과 마리엘이 보여준 것처럼 무기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것은 무기 강화였다.
특화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먼저 무기 강화의 경우에는 보통 날이 있는 무기를 사용하며 전방에서 공격 포지션을 담당했다.
신체 강화도 있다.
말 그대로 신체의 능력을 올리는 특화 능력으로 무기 강화와 달리 날보다는 타격이 가능한 둔기류를 사용하며 방패를 들어 역시나 전방에서 주로 포지션을 잡는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해서 그에 맞게 할 필요가 없었다
레이첼의 경우에도 무기 강화 특화임에도 방패를 들고 행동한 것처럼 신체 강화 역시 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기 강화와 신체 강화가 가장 많은 특화였고 대부분 유저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 다른 특화도 있었다.
파워 강화.
스피드 강화.
말 그대로 파워 강화는 파워만 올려주며 스피드 강화 역시 스피드만 올려주었다.
한 가지만 올라가는 것만큼 신체 강화보다 높은 효과를 가지고 있으나 밸런스가 좋지 않아서 원하지 않는 유저들이 많았다.
파워강화는 사냥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대장장이들이 보통 많이 얻게 되는 특화 중 하나였고 스피드는 암살자들이 많이 얻는 특화였다.
역시나 파워 강화나 스피드 강화임에도 유저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수한 것도 있었다.
특화 강화로 말 그대로 상대의 특화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일종의 버프로 스스로에게는 걸 수 없었다.
가장 적은 특화로 직접적인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사냥에 아주 큰 도움을 주는 귀한 인재들이었다.
하지만 특화는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얻을 수 없었다.
한순간 깨달음으로 얻을 수 있게 되는 특화는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형태로 부여 된다.
스스로 무기 강화라고 생각 하더라도 뜬금 없이 특화 강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특화를 배우지 못한 유저는 유저 취급도 해주지 않았기에 어떠한 특화라도 익히고 싶어 했다.
파워 강화나 스피드 강화로도 유저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
그런데 카심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이 특화를 빠르게 익히려 했다.
이전의 경험이 있으니 특화 자체를 얻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라리 조금이라도 빨리 이전 삶에서 사용한 특성을 얻고자 했다.
“5년이 걸렸던가?”
이전 삶의 특성을 얻을 때 무려 5년을 소비했기에 조금이라도 그시간을 당겨야했다.
이번에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몰랐지만 어떻게 해서든 얻어야만 했다.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줬던 이유가 바로 이 특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험이 있으니 이번엔 1년 안으로 해결해보자.”
특화보다 이 특성이 더 급했으니 곧바로 바위 사이에 다시 들어가 담요 위에 앉았다.
가부좌 자세로 이세계인들은 굉장히 불편해하는 자세였지만 그는 너무도 편하게 앉았다.
“... 처음엔 분명 엄청 힘들었는데.”
완벽한 육체의 영향인 듯싶었다.
어찌 되었든 잘 되었다.
맨 처음 이 자세로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리곤 눈을 감고 아주 천천히 들숨과 날숨의 비율이 달라지면서 순식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완벽한 육체.
이 특성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
피바람이 부는 계곡.
거대한 산 사이로 난 길은 양쪽으로 높게 솟아 오른 절벽이 있었다.
절벽 끝엔 원래 폭포가 내리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물이 말라버리면서 몬스터가 자리 잡으면서 이곳은 필드형 던전으로 변했다.
몬스터는 거대 개미.
여러 거대 개미 중 바위 거대 개미라는 개체였다.
최근에 생겨난 곳이니만큼 리톰 영지에서 활동하는 길드는 너도나도 이 던전을 먼저 클리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야! 저 길드 어디야 제법 많이 갔는데?”
“오. 그렇네. 스워드 길드네. 역시 명불허전이구만.”
피바람이 부는 계곡 던전은 양쪽 절벽에 난 구멍에서 거대 개미가 나온다.
절벽 끝엔 10미터가 훌쩍넘는 구멍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향해 진격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양 절벽에 생긴 구멍만 해도 족히 100개는 훌쩍 넘었고 지나가는 순간 그곳에서 나오는 개미의 수는 정말로 끝이 없었다.
지금까지 최대로 멀리 간 이들이 겨우 반밖에 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렸다.
“스페르 길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반 밖에 가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두 길드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스페르와 칼라리스 길드였다.
스페르 길드는 유일하게 칼라리스 길드를 상대할 수 있는 길드로 리톰 영지에서 두 번째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던전 클리어에 칼라리스 길드보다 집중하고 있었는데 최대한 정보를 모으되 칼라리스 길드보다 빨리 도전해야만 했고 그게 오늘이었다.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금빛 갑옷을 입은 채 선두에 섰다.
그 강인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던전 바로 앞에 마주 선 그는 드높게 솟아오른 절벽을 보았다.
족히 수천 미터에 이르는 높은 절벽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었다.
“간다.”
스페르의 몸에서 붉은 빛이 흘러 나왔다.
신체 강화.
그것은 마리엘이 보여준 레벨과는 아득히 다른 수준이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붉은빛 사이로 푸른색 기류가 허리 부근에서 띠를 이루고 있었는데 바로 특화 강화 버프였다.
그의 옆에도 각각 특화를 내뿜었고 각각 버프를 받은 이들 다섯이 나란히 섰다.
파앗!
앞으로 달려나가는 그는 마치 쏘아진 화살과도 같았다.
그의 양옆으로 넷도 바짝 뒤쫓았고 또 그들뒤로 스페르 길드 전원이 진형을 갖춘 채 달렸다.
달려가든 그들의 앞으로 창 하나가 떠올랐는데 피바람이 부는 계곡 던전임을 알리는 창이었다.
무시하고 달려 마침내 절벽 사이로 들어왔다.
절벽 사이로 들어오자마자 보인 것은 양옆 절벽에 난 수많은 구멍이었다.
그 구멍을 보자마자 자신넘치던 스페르 길드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럴 것이 구멍에서는 두 개의 더듬이 같은 것이 튀어 나오더니 이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개미였다.
다만 그 몸이 1미터나 되는 거대 개미였다.
그리고 그 개미가 수십, 수백 개나 되는 구멍 사이에서 솟아 나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양 절벽에는 개미들로 뒤덮였다.
***
<상태>
근력: 15
체력: 16
마력: 5
특화: 없음
특성: [완벽한 육체] [미지의 힘]
“...”
카심은 멍한 얼굴로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떨리는 손으로 완벽한 육체 옆 미지의 힘 특성을 눌렀다.
[미지의 힘]
세상을 이루는 본질적인 기운.
그것을 다루는 힘.
이전 삶에서 얻은 특성이 바로 이것이었다.
미지의 힘을 깨닫게 되면서 능력치 자체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바로 마력이었다.
마력.
서양에선 마나, 동양에선 기, 인도에서는 차크라라 불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특화가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마력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지구인인 자신도 처음에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마법사라는 던전 보스 몬스터와 싸우게 되면서 문득 떠올렸고 장난삼아 시작했던 명상이 생각 외로 도움이 되자 어느 순간에는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5년이 되는 날 이 특성을 깨우칠 수 있었다.
무려 5년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명상을 통해 깨달은 기간이 말이다.
물론 이번에는 그 경험이 있기에 빨리 얻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겨우 15일 만에 될 줄이야.”
그 경험이 분명히 이론과 그리고 감각이 아직 손에 잡힐 것처럼 남아 있다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아마 완벽한 육체 때문이겠지.”
마력을 받아들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뛰어다니는 움직임을.
이전 삶에서도 이토록 마력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했었다.
다시 상태창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이거 이래도 되나?”
그러면서 천천히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러면 진짜 끙끙 앓았던 게 무색해지잖아.”
손을 저어 창을 없애고 몸을 일으켰다.
“원하는 특화만 익히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더라도 지금이라면 사실 상관없지.”
이렇게 된 이상 더욱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까워졌기에 곧바로 특화를 익히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