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3. 피바람이 부는 계곡(2)
“그럼 없던 일로 하죠.”
사실 카심은 딱히 역사처럼 이어진다고 해서 상관없었기에 그래서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리려고 하자 마웬이 다급히 막았다.
행동만 보면 분명하 가지고 있는 정보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뮬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바로 눈빛으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에헤이, 거 젊은이가 왜 이렇게 급한가?
좋아.
네 조건을 들어 주도록 하지.
하지만 역시 네가 참여하는 조건도 유효하다.
클리어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근접까지 가는 것으로 말이야. 위험하면 빠지도록 하고.”
“그렇게 하죠.”
카심이 이번에는 단번에 승낙하니 마웬은 왠지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카심에 의해 이곳 클리어에 관한 정보에 대해서 간략히 들었고 자세한 건 직접 하면서 말해주기로 했다.
다시 준비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뮬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거 같나?”
“놀랍네요.”
“네가 봐도 그렇지?”
“마스터 말대로 정말로 이제 막 시작한 루키로는 전혀 보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역시 방금 그 행동들 다 의도한 거지?”
“그럴 거예요.”
“크, 역시 우리 딸이 보는 눈이 있어.”
“하지만 역시 이상해요.
우리 길드로 안 된다는 말은 마치 던전을 이미 클리어해봤다는 소리인데 말이죠.”
“흐음, 그건 그래.
어쨌든 놈도 같이 간다는 조건을 받았으니 특별한 짓은. 못하겠지.
만약 정말로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스페르 쪽에서 심은 놈이라면... 죽여버리면 되니까.”
뮬은 다시한번 마리엘과 그 친구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는 카심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 그때 카심도 갑자기 고개를 돌렸고 눈이 마주치자 뮬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눈을 돌렸다.
그런 뮬을 보고 있던 카심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여기 있었군.
망하면서 왕국으로 갔었나 보네.”
“무슨 소리야?”
“혼잣말이다. 늙으면 혼잣말이 많아지거든.”
“오빠가 몇 살인데 그래?”
“22살.”
“뭐야. 누가 들으면 막 50대는 되는 줄 알겠네.”
“그런데 너희도 참여하는 건가?”
“당연하지. 이제 길드원인데.”
“위험할 텐데.”
“어머,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훅 치고 들어오는 마리엘의 행동에 카심은 피식 웃었다.
“어머 웃었네?”
“까불기는.”
레이첼과 리나, 데인은 카심이 보여줬던 그 모습이 있었기에 마리엘처럼 말을 걸지 못했다.
특히 리나는 눈도 마주치기 어려워했는데 어째서인지 이전보다 더 어려운 느낌이 확 든 것이다.
그 사이에, 준비는 모두 끝나고 칼라리스 길드가 본격적으로 피바람이 부는 계곡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스페르 길드처럼 치고 나가지 않았다.
스페르 길드는 개미들이 먼저 나오기도 전에 빠르게 진격해서 저 끝에 있는 아주 거대한 구멍에 도달하려고 했었다.
저기서 여왕개미가 나온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저기서 나온 여왕개미는 뭔가?”
“그건 수개미입니다.
여왕개미와 비슷하게 날개가 있지만 여왕개미가 아닙니다.”
“그 말은 마치 놈들이 함정을 만들었다는 소리군.”
“몬스터는 생각보다 영리합니다.
특히 이렇게 거대한 군집을 이루고 사는 개미는 그 중에서도 더 영리한 편이죠.”
“과연! 우리는 스페르 길드가 그것을 잡지 못 해서 클리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도 똑같이 당할 뻔했어.”
잠시 후, 어느 정도 던전 절벽 사이로 들어가자 구멍에서 개미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절벽은 개미로 뒤덮였고 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나 되는 몬스터의 진격은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인지 마웬은 직접 앞으로 나서서 거대한 도끼가 개미의 단단한 외피를 뚫고 박살 냈다.
콰직!
그것을 시작으로 칼라리스 길드 전원이 무서운 속도로 개미를 죽이기 시작했다.
가지각색의 특화가 번쩍였고 잘 짜여진 진형으로 달려드는 개미들을 막아냈다.
“위에서 떨어진다!”
몇 마리들은 위에서 뛰어내렸다.
쐐엑!
뛰어내리는 개미는 날아온 화살을 맞고 그대로 떨어져 꿈틀거리더니 죽었다.
이윽고 순식간에 쏟아지는 화살은 벽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특히나 화살 하나는 유난히도 매서웠는데 바로 뮬의 화살이었다.
그녀의 무기 강화가 걸린 화살은 붉은빛을 내뿜으며 한 번에 두세 마리를 꿰뚫었다.
칼라리스 길드의 화살 부대는 리톰 영지에서 가장 마주치기 싫은 1순위였다.
하지만 이들의 진격은 빠르지 않아 멀리서 구경하던 이들은 의아함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스페르 길드가 보여준 포스에 비하면 사실 퍼포먼스 부분에서는 떨어졌다.
그래도 확실하게 개미를 죽여 나가며 착실히 진격해, 어느덧 중앙까지 도착했다.
그때 조금 더 큰 구멍에서 더 큰 개미가 튀어나왔다.
전투 개미.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몸에 살벌하리만치 솟아오른 턱은 강철도 찢을 만큼 힘이 강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가볍게 움직이고 있던 마웬이 다시 한번 앞으로 나섰다.
칠흑처럼 어두운 갑옷을 전신에 두르고 있는 그는 도끼 역시 검은색으로 굉장히 거대했다.
거대한 도끼를 땅에 닿은 채 질질 끌며 앞으로 걸어나갔고 끌리던 도끼 끝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붉은빛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 거대한 도끼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는 앞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타닥! 딱!
큰 턱을 부딪치며 달려오는 거대한 전투 개미와 가까워지자 마웬의 오른손이 강하게 도끼를 쥐었다.
“흐읍!”
그의 근육이 터질 듯 팽창하더니 숨을 들이마시고 한 손으로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후우웅!!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달려오고 있던 전투 개미는 속도를 멈추지 않았는데 거대한 턱이 마웬에 닿으려는 순간 갑자기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반으로 갈라지며 마웬의 양쪽으로 쓰러졌다.
“멀었나!?”
마웬은 카심을 보며 외쳤다.
그때 카심의 눈은 빠르게 움직이다가 한 곳으로 손짓했고 그것을 본 마웬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뮬!!”
외침도 전에 이미 뮬은 카심의 손짓을 봤기에 시위를 당기고 있었는데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푸른색 화살로 보통 신호를 위해 쏘는 화살이었다.
피유우웅!
화살이 날아가 박힌 곳은 한 구멍이었다.
“모두 신호 화살이 박힌 구멍으로 들어가!”
신호 소리가 울리자마자 브랜든과 같이 움직이던 30여 명이 갑자기 속도를 올려 개미를 죽여 나가더니 구멍이 있는 곳 아래쪽으로 진을 쳤다.
빠르고 능숙했다.
이런 길드가 역시 갑자기 망한 게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없다면.
“오빠! 움직여야 해!”
어느새 뒤쪽에서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마리엘은 카심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겨우 두 달 된 유저였기에 걱정이 많아서 주변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카심도 그 소리에 움직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마리엘의 눈동자가 커졌다.
“카심!!!”
그 외침에 자연스레 카심도 위를 보았다.
위에서 어느새 거대 개미 한 마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마리엘은 온 힘을 다해 카심을 향해 달려갔지만, 갑자기 이 세상이 느려지는 것처럼 답답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떨어져 내리는 거대 개미보다 더 빨리 갈 수 없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마리엘은 다급히 몸을 틀어 뮬을 보았는데 하필 뮬은 지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대로 소리친다고 해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 안 돼.”
절망에 빠진 마리엘은 마지막까지 힘을 주었지만 이미 거대 개미는 거의 머리까지 떨어져 내린 상태였다.
사실 뮬은 이미 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웬이 몰래 뮬에게 부탁을 해놓은 것이었는데 바로 카심이 위험에 빠지는 순간 돕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두 달 된 유저인데 위험하지 않냐는 말에 마웬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 두 눈을 뽑아버리지.’
자신만만한 마웬이었지만 뮬은 혹시나 싶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순식간에 몸을 틀어 활을 쏘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카심이 움직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솟아오르는 카심의 창이 그대로 떨어지는 개미의 미간을 꿰뚫고는 그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고 거대 개미는 카심이 있던 자리에 철퍼덕 떨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너무나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에 뮬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입을 벌렸다.
그러다가 뒤쪽에서 들려오는 부하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고 다급히 화살을 쏘며 달려나갔다.
그렇게 하나 둘 구멍으로 빠르게 들어갔고 마웬이 가장 마지막으로 구멍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피바람이 부는 계곡]
바위 개미 굴 입구를 찾았습니다.
“허, 진짜였군.”
이미 마웬은 사전 조사를 통해 다른 구멍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런 창이 떠오르지 않았었다.
“설마 믿지도 않았으면서 저 말을 따른 거예요?
거짓이었으면 타격이 장난이 아니었을텐데.
내가 그런 멍청한 마스터 밑에 있다니.”
뮬이 올라오는 마웬을 보자마자 잔소리했다.
“크흠, 내 눈을 믿은 거지! 어쨌든, 그래서 소감은?”
“솔직히 말하면... 놀라워요.”
“역시.”
“그러니까요.
깔끔했어요.
군더더기 없었고.
역시 전혀 긴장한 거 같지도 않았어요.”
마웬은 역시나 자신이 잘 봤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길드원 한 명이 빠르게 달려와 브랜든과 이야기하더니 브랜든이 다가왔다.
“마스터. 앞쪽에 큰 공간이 있고 그쪽에 개미들이 모여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왕개미는 보이지 않다는데...”
여전히 의심하는 브랜든을 보며 마웬은 혀를 찼다.
“인마. 이 창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
“쯧. 그리고 아직도 못 느꼈냐?
우리가 여기 온 뒤로 뒤쪽에 있던 개미들이 이쪽으로 들어오지도 않는 거.
다른 구멍에 갔을 때는 밖에 있던 놈들도 우르르 들어왔었잖아.
그 말은 여기가 진짜라는 거지.”
마웬은 주위를 둘러보며 카심을 찾고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카심이라 했던가?”
“예.”
“좋아. 어떻게 여기를 안 거지?
그렇게 많은 구멍 중에 말이야.”
카심은 그들에게 자신 있게 구멍 중 위치를 안다고 말했었다.
수백 개나 되는 구멍 중 진짜 위치가 있다고 말이다.
“죽을 위기에 처한 개미는 본능적으로 진짜 굴로 도망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허, 그런 건 또 어찌알고?”
“잠깐, 그런 놈은 많았는데요?”
마웬의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뮬이 끼어들었다.
카심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너무나 당당히 말했다.
“내가 운이 좋았나 보죠.”
“그, 그게 무슨...”
“푸하하! 그래 됐다.
어차피 진짜로 제대로 왔고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래서 아직 묻고 싶은 게 있다.”
마웬은 진지한 눈빛으로 카심을 보았다.
“우리 길드로 안 될 거 같다고 했지? 어째서 그런 말을 했나?”
그때 뮬도 말을 덧붙였다.
“저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 말을 한 이유는 마치 여기 던전을 클리어 해 본 것과 같아요.
이렇게 위치를 제대로 찾는 것도 그렇고.
운이 좋았다는 말로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줘요.”
그렇지 않아도 그 누구도 몰랐던 연금술사의 던전에 대해서 알았던 인물이었기에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카심에게 시선이 쏠렸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건...”
천천히 입을 열자 자연스레 집중했다.
그리고 카심은 마웬과 뮬을 보며 말했다.
“알 거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