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3. 피바람이 부는 계곡(3)
“알 거 없습니다.”
두 사람은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았고 카심은 여전히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것을 말해 줄 이유는 없습니다.
내가 말해줄 건 이곳에 대한 정보지.”
단호했다.
사실 지금 이 장소는 당장이라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오만한 느낌이 없으니 마웬은 그 남자답고 당당함에 크게 웃었다.
“푸하하! 겨우 두 달 된 놈이 이렇게 간이 부어서야.
네놈은 오래 살지 못할 거다.
내가 아닌 다른 놈이었다면 건방지다고 죽였을 거야.”
“벽에 똥칠할 생각은 없습니다.”
“큭큭큭! 그래. 아무튼 좋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않으마.
질문을 바꾸지.
그렇다면 여기를 클리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이번에도 자연스레 카심에게 시선이 쏠리며 집중했다.
신기한 현상이었다.
리톰 영지 최고의 길드라고 할 수 있는 이들.
그것도 간부와 심지어 마스터인 마웬마저도 지금 겨우 두 달 된 유저의 말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예.”
그 말에 어느새 듣고 있던 이들은 희망을 가진 듯 웃음을 지었다.
뮬은 이 상황을 직접 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언제나 냉철하게 분석했던 자신의 머리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어느새 이들과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
콰직! 쐐에엑! 푸욱! 콰아앙!
“조심해!”
“옆에!!”
“이쪽 좀 도와줘!”
“으아아! 더럽게 많아 진짜!”
비록 밖에서 만난 수에 비하면 적지만 여전히 수백에 가까운 개미의 수와 이 제한된 공간에서 사방에서 계속해서 달려드는 개미들 공격에 체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개미는 압도적인 수로 밀어붙였고 끊임없이 체력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이 큰 동굴에 있는 몬스터 외에 늘어나지 않았기에 악으로 버텨내며 마지막 한 마리까지 죽여 나갔다.
“허억, 헉.”
“더럽게 힘드네.”
“이러다가 지쳐서 죽겠어.”
이곳에 있는 모든 개미를 잡고 나자마자 지쳐 쓰러지듯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된 개미 굴에 들어온 지 벌써 5일이 지났고 이곳은 두 번째 개미의 굴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수 때문에 벌써 지쳐버린 상태였고 마웬은 카심이 왜 클리어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는지 알 거 같았다.
“앞으로 이런 게 몇 개는 더 있다니.
그렇게 도착해야 여왕이라... 지독한 곳이군.”
뮬도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무래도 시간을 조금 더 늘리는 게 좋겠어요.
체력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행하다가 정말로 위험해질 거 같아요.
여왕개미는커녕 그 전에 죽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하자.
자! 우선 전리품을 모으고!
혹시 개미 몸에서 먹을 수 있는 부위를 구할 수 있는지 자세히 살펴!”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마리엘은 자연스레 카심에게 다가갔는데 카심은 벽 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다가오는 마리엘을 느끼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오늘도 이러고 있어?
그 자세 진짜 엄청 불편하던데 대단하다.”
마리엘은 오늘도 옆에서 괜히 자세를 따라 하며 앉았다가 5분도 버티지 못하고 풀었다.
“왜 이런 자세를 취하는 거야?”
“몰라도 돼.”
“왜 몰라도 돼?”
“...”
“자꾸 아무것도 말 안 해주니까 그런 거 아냐.
말해주면 귀찮게 안 할게.”
뻔뻔한 표정으로 들이미는 마리엘을 보며 카심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첼과 리나, 데인은 그것을 보며 웃고 있었는데 한 명은 그것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씨발 누구는 목숨 걸고 있는데 저 새끼는 참여하지도 않고 저렇게 히히덕 거리고 기여도까지 받는다고?”
브랜든이었다.
두 번째 굴 이후에 불만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
“저도 마음에 안 듭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해도 됩니까?”
그들의 부하도 불만이 쌓여만 가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뮬을 통해 마웬도 알고 있었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것들. 정보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하니 에잉.”
“어떻게 할까요?
저러다가 결국 터질 거 같은데.”
“흐음...”
잠시 곰곰이 생각에 빠지더니 뭔가 떠올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보고 싶군.”
“... 어휴.”
뮬은 그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또 하나의 굴을 정리했다.
오늘도 마리엘이 카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고 있었는데 지쳐있던 브랜든을 그것을 보고 참지 못했다.
그럴 것이 부하 중 한 명이 다쳤기에 쉬고 있는 모습이 더 열 받았기 때문이다.
마웬은 그것을 보고도 모른 척 했고 브랜든은 그것을 알고 기고만장한 얼굴로 다가갔다.
“어이!”
그 모습을 보고 음식을가지고 카심에게 다가가던 마리엘이 다급하게 뒤따랐다.
“이 새끼야 다른 사람들은 다 목숨...”
“뭐하는 거야!”
“마, 마리엘!”
“지금 뭐하는 건데! 우리 오빠 지금 집중하는 거 안 보여!?”
“너는 저게 안 보여!? 남들은 어?
목숨 걸고 지금 던전을 클리어하려고 하는데!
저 새끼는 지금 며칠째 저러고 있냐고!
그렇다고 음식을 만들어?
짐을 들어 뭘 하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여기에 올 수 있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너라면 여기 올 수 있었어? 어?
아니 아빠도 아무런 말을 안 하는데 니가 뭔데 지금 난린데?”
나름대로 마리엘과 친분이 있어서 그래도 함부로 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가 이토록 적대하니 더욱 당황했다.
브랜든은그게 마리엘이 싫어지는 게 아닌, 카심에 대한 반감이 더 커졌다.
때마침 카심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 앞에 떠오른 창이 있었다.
<아벨리우스 시스템>
마력이 올랐습니다.
그것을 보고 손을 저어 없애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너 이새끼...”
“오빠!”
카심이 일어나자마자 브랜든에게 다가갔다.
“기지배마냥 그만 징징거려라.”
“뭐, 뭐? 기, 기지배? 이 새끼가 감히...”
브랜든은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고 살기까지 내뿜었다.
그는 칼라리스 길드 전투 간부로 실력은 리톰 영지에서도 상위권이었다.
그런 그가 내뿜는 기세는 이제 겨우 두 달 된 유저가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랬어야 했다.
분명히.
자신의 기세를 받고도 아무렇지 지나가는 것을 보며 브랜든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
겨우 두 달이라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기세에도 아무렇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허세였다.
브랜든은 그렇게 믿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공격하려 했다.
“이 새끼가!!”
“그만!!!”
칼을 내뽑고 내려치려는 순간 마웬의 외침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날아와 덮쳤다.
브랜든은 순간 움찔하며 몸을 멈췄다.
마웬은 천천히 걸어오는데 그 눈빛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무서웠다.
브랜든은 오랫동안 그를 봐왔음에도 저렇게 진지하게 화를 낼 때는 두려움에 떨었다.
“마, 마스터. 죄송합니다.”
“우리 딸 말대로다.
저 녀석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여기 올 수 있었나?
네놈은 정보의 가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부 길드 마스터 자리를 주지 않은 것이다!
이 멍청한 놈! 그리고!
저 녀석이 사냥하지 않는 게 마음에 안 든 것이면 사냥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어야지!
공격하려는 멍청이가 어딨어!?”
왠지 모르게 뒤쪽 말이 유난히도 감정이 실린 느낌이었다.
“... 죄송합니다.”
“하아, 됐다. 카심에게 사과해라.”
“예? 하지만 마스터!”
자존심이 상했는지 브랜든은 곧장 불만을 표시했다.
“됐습니다.
별 관심도 없고.
어차피 이제 슬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마웬님과 뮬님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뭐?”
“...”
예상치 못한 카심의 말에 마웬은 깜짝 놀랐고 상황을 보고 있던 뮬도 깜짝 놀랐다.
자연스럽게 상황을 지시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지시 사항이 당황스러웠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나와 뮬이 참여하지 말라니?”
“체력을 관리하란 말입니다.”
“푸하하! 내 걱정은 하지 마라. 겨우 이런...”
“여왕개미는 겨우 그런 생각으로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닙니다.
지금도 특화 발동하는 순간도 줄이고 있잖습니까.”
“...”
특화.
유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힘이었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특화를 사용하는 순간 체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얼마나 더 특화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느냐가 유저 실력을 판가름하기도 했다.
단순히 특화 수준이 높은 게 다가 아닌 것이다.
“크흠. 자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보구만.”
“여왕개미는 단둘. 두 사람만 공격이 통합니다.”
뮬과 마웬은 그 말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미간을 동시에 찌푸렸는데 겨우 두달 된 유저에게 인정받아서 스스로 기분이 좋아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발언에 옆에 있던 브랜든은 멍하니 있었는데 그때 카심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지목해서 놀란 눈으로 카심을 보았다.
“당신!? 이게 감히!”
“당신이 이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주, 중요한?”
“그래. 이제부터 제일 필요한 힘이라는 거다.
할 수 있겠어? 못하겠다면 말하고.”
“하, 할 수 있지!”
“진짜야?”
“당연하지!”
“좋아. 만약 그것을 못하면 이번 클리어는 실패하는 거와 다름없어.
그만큼 중요하다.”
브랜든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에 어느새 분노보다 이 감정에 더 충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미워하던 놈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는 것을 본 마웬과 뮬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터무니없는 놈이야.”
“정말... 놀랍긴 해요.”
그리고 며칠 쉰 뒤에 그들은 네 번째 굴에 도착했다.
이곳은 식량 창고였는지 온갖 시체가 보였는데 최근 사람들이 도전을 많이 해서 인지 사람의 시체가 아주 많았다.
당연히 썩은 내가 나서 거의 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정도로 환경이 좋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개미의 수는 못해도 200은 훌쩍 넘겼고 전투 개미가 5마리는 되어 보였다.
“좋아 이제 어쩔 생각이지?”
마웬과 뮬은 뒤쪽에 앉아 있었고 브랜든이 카심 옆에 서서 물었다.
카심을 바라보는 그 눈엔 여전히 짜증이 섞여 있었지만, 아까처럼 적의는 아니었다.
그때 카심은 갑자기 한 발 앞으로 먼저 걸어나갔다.
갑자기 혼자 앞으로 걸어나가는 카심을 보며 모두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제 막 두 달 된 유저.
그러니 눈에 띄고 싶어서 저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에 조롱이 담긴 눈으로 보았다.
물론 전부다 그런 눈으로 보지는 않았다.
특히 뮬과 마웬은 흥미로운 얼굴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카심! 뭐 하는 거야!”
동시에 마리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며 소리쳤지만 카심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제법 걸어가다 보니 멀리 있던 개미 중 몇 마리가 인식하더니 순식간에 수백 마리 개미가 카심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모두 공격해!”
결국 브랜든은 카심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판단하고 소리치며 달려나갔다.
뒤이어 100명이 넘는 길드원들이 움직이면서 마리엘도 온 힘을 다해 따라 달렸다.
그때 가장 앞에 있던 카심은 다가오는 개미들을 바라보았다.
이대로라면 혼자서 저 수백 마리를 잠시 상대해야 함에도 전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오는 개미를 보고도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전 삶.
동료 중 한 명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맞기 전에 어? 내가 먼저 공격하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사실상 그 말은 상대보다 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니야, 아니지.
상대가 전체적으로 보면 나보다 강할 수 있어.
하지만 말이야 내가 딱 하나, 딱 하나만 더 뛰어나면 그 전체를 압도할 수도 있다니까?’
그 순간 카심의 몸에서 초록색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