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4. 올림푸스 아카데미(6)
그것이 원래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무너뜨릴 때 원하던 반응이었는데 자신이 하고있는 줄도 모르고 소리치며 따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그레이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흥! 스피드 강화 따위 그냥 때려 패면 되는 거잖아!
그레이 그냥 나한테 맡겨!”
프툰은 옆에서 근육으로 어필했다.
마침, 이번 수업 때는 대인전이라 해서 사람과의 전투 시 움직임에 대해서 알려주는 수업이었다.
이것 역시 팀으로 이루어진 수업이었고 서로 간단히 움직임을 맞춘 이후 각 팀씩 붙어 대련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과 달리 프툰은 카심과 같은 팀이 되었다.
“흥!”
프툰은 카심을 보며 잔뜩 성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절대 말을 듣지 않는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으니 카심은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네 명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데 그럴 새도 없이
결국, 제대로 손발도 맞추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팀과 대련이 시작되었다.
가장 앞쪽에서 방패를 들고 있는 프툰은 시작하자마자 무식하게 달려나가더니 부딪혔다.
“이런 것쯤은 으어어어!!”
워낙 덩치가 크다보니 스스로 힘을 믿고 행동했지만, 상대는 방패를 제법 다룰 줄 알았기에 땅에 박아버리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 덕분에 자신보다 덩치가 작다고 무시한 프툰은 순간 당황해서 힘을 제대로 주지 못했고 자연스레 뒤쪽은 밀렸다.
카심은 상대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다가 소리쳤다.
“프툰! 오른쪽 다리에 힘을 조금 더 주고 자세를 살짝 낮춰!”
원래라면 듣지 않았겠지만,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고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날카롭게 귀를 때리는 카심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말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왼쪽으로 밀어붙여!”
“우어어!”
“으헉!”
이를 악 물고 버티고 있던 상대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힘의 방향에 한순간 균형이 무너졌고 쏟아지는 힘에 이기지 못해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파고 들어 상대를무너뜨리면서 가볍게 승리를 이끌었다.
“우어어!”
프툰은 기쁨에 소리치고 있을 때 카심이 다가가 엉덩이를 쳐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뭐야 너 생각보다 머리가 좋구나.”
“으, 응!?”
“몸을 잘 쓴다는 건 그만큼 머리도 좋다는 의미다.
넌 충분히 재능이 있다.”
“정말? 으하하! 맞아. 나 재능이 있지! 힘만 쎈 게 아니라고!”
“그래. 누가 너에게 멍청하다고 하면머리 한 대 쥐어 박아버려라.”
“알았어!”
“그리고 말이야 힘을 줄 때 조금 더 허리 쪽으로 이렇게 주고 일부러 왼쪽으로 힘을 주는 척 오른쪽으로 비트는 것도 좋을 거다.
그렇게 되면 너의 그 최대 장점인 힘이 두 배 세 배 더 커지게 될 거다.”
“응, 응응. 알았어!”
어느새 프툰은 카심의 말을 경청하며 끄덕이더니 감탄까지 했다.
그 이후로 만나는 상대역시 카심의 말대로 완벽하게 들어가니 이제는 초롱초롱한 눈으로바라보며 적대감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당연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그레이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루나도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멍청이 뭐하는 거야!
왜 처 웃고 있냐고!
멍청한 놈!”
“... 어이가 없네.”
“아 짜증나. 요즘 나에대한 소문도 이상해!
미친 것들이 자꾸 이상한 소리 하고 다닌다고!
이게 다 저놈 탓이야!”
그레이의 미간이 좁혀졌다.
루나를 이용해 상대의 멘탈을 흔들고 프툰을 이용해 육체적으로 괴롭힌다.
이것은 그동안 자주 써온 방법이었다.
항상 마음에 들지 않은 놈이 있으면 이 방법을 이용했고 언제나 통했다.
둘 중 한 명만 통해도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거슬리게 하는 놈들은 모조리 원하는 대로 요리를 했는데 저놈은 뭔가 달랐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다음 팀이 도착했는데 그중 한 명을 보자마자 씩 입꼬리가 올라갔다.
로드리게스였다.
딱 쌓인 이 스트레스를 풀기에 너무나도 좋은 상황이었다.
“열심히 해 봐.”
로드리게스는 긴장한 얼굴로 공격을 시도했다.
같은 팀의 방패를 든 이가 와서 막혔고 로드리게스는 바로 뒤로 빠지려는 순간 방패 사이로 보이는 그레이의 눈빛이 보였다.
“이야. 로드리게스... 여기가 아카데미라고 많이 컸다 그지?”
“어, 어? 아니 나는...”
“야! 로드리게스 뭐해! 뒤로 빠지라고!”
로드리게스는 같은 팀의 외침에 뒤쪽으로 빠지려 했지만, 순식간에 파고드는 그레이는 연습용 검으로 과할 정도로 가슴을 때렸다.
퍼억!
“커억!”
찌릿한 통증에 가슴에 주춤하는 사이 그레이는 로드리게스의 다리를 걷어차 넘어뜨리고는 가슴에 밟을 밟은 채 웃었다.
그 덕분에 팀은 한순간에 밀렸고 그레이 팀이 포인트를 부여받았다.
“아 씨발 진짜. 병신 새끼.”
“어휴, 저런 새끼랑 같은 팀이라니.”
로드리게스는 팀에게 쏟아지는 원망과 자신을 밟은 채 비웃음을 짓고 있는 그레이를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며 눈을 감았다.
처참한 기분을 느끼며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로드리게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갔다.
그리고 로드리게스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이때는 저랬구나.”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입구에서 누가 소리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카시임~”
“넌 또 왜 왔냐?”
“사냥 가자고.”
“듣자 하니 너도 꽤 여기서 유명하던데.
왜 나한테 와서 그러냐?”
“그거야~ 꿀을 봤는데 놓칠 수가 없잖아!”
“넌 마리엘보다 더 뻔뻔하네.”
“마리엘? 누구야 그 여잔? 아~ 오빠 여자친구야?
아니다. 말하는 거 보니 전 여친?”
“알 거 없고 그때 얻었던 아티팩트는?”
“당연히 팔았지.”
카심이 걸어가자 리오나가 뒤따라갔다.
“어디 가?”
“포인트 들어 왔잖아.”
“근데?”
“넌 돈 있으면 뭘 할 건데?”
“음... 아! 쇼핑?”
“그래.”
“나도 같이 가!”
“마음대로 해.”
리오나와 함께 도착한 곳은 아벨리우스 수정이 있는 건물의 3층이었다.
2층의 경우에는 사냥을 통해 얻은 전리품들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이었고 3층과 4층은 장비를 판매하고 있었다.
3층에 올라오자마자 끝없이 펼쳐진 장비의 행렬에 조금은 놀랐다.
퀄리티 면에서는 당연히 부족하겠지만 그 종류만 따진다면 왕국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방대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전 대륙에서 사용하는 아주 신기한 형태의 무기나 갑옷도 있었다.
“여긴 좀 괜찮네.”
“오~ 그래도 역시 유저는 유저네.
장비 보고 설레는 걸 보면.”
“예쁜여자 보고도 설레한다.”
“어? 그럼 나보고 설렜겠네?”
“그럴 리가.”
“참나, 오빠도 내 스타일 아니거든?”
카심은 대답도 하지 않고 걸어가며 구경했다.
기본 장비 외에는 다른 곳에서 공수해온 것인데 아카데미 마크가 찍혀 있었다.
“의외로 이 아카데미는 재미있는 장치를 만들어 뒀어.
장비를 보는 눈을 기르도록 말이야.
이렇게 화려하지만 쓸모없는 놈이 있는 반면에, 평범하지만 쓸만하고 싼 포인트를 지닌 장비가 있거든.”
이것은 이곳 생도에게 있어서 꽤나 값진 정보였다.
그래서 매달 새로운 장비가 들어오는 편인데 그 시간을 기다리는 생도들이 있었다.
카심은 주변의 장비를 보고 포인트를 살피고는 끄덕였다.
“과연.”
“어때?”
“뭐가?”
“내 정보 쓸만하지?”
“딱히.”
“에이~ 괜히 칭찬하기 싫어서 그러지?”
“그래. 잘했다.”
리오나는 입을 벌리며 좋아했는데 그 모습이 왠지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너 지금 여기서 랭킹 몇이냐?”
“나? 한 50위?”
“만약 실력으로 따진다면?”
“음...”
잠시 고민하더니 리오나는 한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자신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못해도 10위 안에 들지.”
“근데.”
“응?”
“왜 이러냐?”
리오나는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무슨 말인지 알고는 웃었다.
“그야 오빠는 괴물이잖아.
꿀이 있는데 쪽쪽 빨아야지!”
뻔뻔하게 대답하는 리오나를 보며 카심은 고개를 저었다.
“왜 힘숨찐을 하는지 알겠네.
영 귀찮군.”
“응? 힘숨찐이 뭐야?”
“그런 게 있다.”
“아무튼 놀랐다구~ 스피드 강화인데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거야?
역시... 특성이겠지?”
리오나는 예리한 눈빛으로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카심은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답했다.
“어.”
“헉. 그렇게 쉽게 말해줘도 돼?”
보통 특성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발설하려 하지 않았기에 숨기려 든다.
그랬기에 카심의 반응은 절대 일반적이지 않았기에 도리어 리오나가 놀랐다.
카심은 장비를 하나 들고 살피며 말했다.
“그걸 모르면 니 눈이 삐꾸인거지.”
“그런 시원시원한 성격도 좋아.”
“좋아하지 마라.”
“뭐래? 참나.
그런 의미 아니거든?”
카심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고 저 멀리 창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걸어갔다.
벽은 물론 진열대에 굉장히, 많은 창이 걸려 있었다.
각양각색의 창은 매우 종류가 많았다.
이걸 창이라 불러야 하는 것도 있었다.
“내 포인트가 얼마 정도 있겠냐?”
“음, 던전 클리어 값으로 1만 포인트.
거기에 겨우 네 명이서 클리어했으니 2500.
그리고 아티팩트를 팔았으니 1250면 3750포인트 정도 있겠네.
와~ 이제 막 온 사람이 벌써 3천포인트라니 진짜.
말도 안 돼.”
그때 갑자기 카심이 손을 내밀었다.
“응 왜?”
“아티팩트 팔면 돈 나오잖아.
내 몫 내놔.”
“칫, 설명 제대로 안 들을 줄 알았더니.”
리오나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돈주머니를 던져 주었다.
안에는 금화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생각보다 비싼 놈이 아니야.
정확히 준 거니 의심하지 말라고.”
“안 해.”
“뭐야 벌써 나 믿는 거야? 감동인걸?”
“아니.
날 속이면 니가 손해라는 걸 넌 알고 있으니까.”
“...”
리오나는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언뜻 보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이겠지만 리오나는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되었다.
나는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러니 니가 이렇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마치 조종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혀 기분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 리오나는 이 남자와 어떻게든 친분을 쌓아야 함을 확실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거 별로야!
하아, 내가 또 골라 줘야겠네.
나 진짜 안목 좋아.
우리 집안이 대장장이 집안이거든.
피를 물려받긴 했나 봐.
음... 이거 괜찮네.”
그렇게 리오나가 골라 준 창은 카심이 원하는 형태의 창의 길이가 1미터 80정도로 창날에 파도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다마스커스 형식으로 만든 거라서 아주 튼튼할 거야.
3000 포인트가 제법 비싸긴 해도 여기 중 이만한 창은 지금 없어.
사려면 더 비싸거나 최소 아티팩트 정도는 사야지.”
“4층에?”
“응.
그런데 너무 비싸.
최소가 5000포인트부터 시작이야.
심지어 그런 걸 그렇게 쓸모 있지도 않고.
사실 지금 오빠 그거 사는 것도 이제 신입생이니 가능한 거지.
나중에는 1000포인트 쓰는 것도 벌벌 떨릴 걸?”
잠깐 고민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아직 시간은 있었기에 다음에 구경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