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5. 복수(1)
- 복수 -
또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동기들의 표정이 피곤함이 가득해 보였다.
슬슬 하나, 둘 팀을 이루고 사냥을 시작한 것이다.
“나도 이제 포인트 벌써 500이야~ 어제 시작하자마자 대박이었어.”
“오 왜?”
“몬스터 잡았는데 생활용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지 뭐야!”
“와! 진짜?”
저마다 사냥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는 전보다 서로 친해진 모습이었다.
물론 여전히 그런 분위기에 끼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혼자 움직였는데 그 중 한 명에게 카심이 다가갔다.
“로드리게스.”
로드리게스는 습관적으로 화들짝 놀랐다.
“어, 어? 내 이름을 알아?”
“카심이다.”
“로, 로드리게스야.
아! 내 이름 알지?
그나저나 깜짝 놀랍네.
너 같은 얘가 날 안다니까.”
“영광으로 알아라.”
“아하하.”
“진담이다.
그런데 매일 혼자 연습하던데.”
원래 보통 농담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로드리게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재능이 없어서 말이야.
솔직히 테스트 통과한 것도 신기해.”
“그래.
그렇다면 내가 좀 가르쳐줄까?”
“엉?”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때 카심은 갑자기 손을 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때마침 그곳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저런 놈 정도는 박살 내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어때?”
로드리게스는 그 손이 향한 곳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그곳에는 그레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근처에 있던 그레이는 그 손짓에 웃으며 다가갔다.
“이거 최근 유명한 분께서 저에게왜 손짓을 하셨는지?”
“별거 아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하하.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해지는군요.”
로드리게스가 더욱 당황해 손을 저었다.
“아, 아니야. 아무것도.”
그런데 그 반응을 보니 그레이는 오히려 불쾌감을 느꼈다.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그렇게 놀라?”
“진짜 아무 것도...”
“로드리게스. 말 안 해?”
한순간 싸늘해지는 분위기에 로드리게스는 급격히 눈동자가 흔들렸다.
“묻고 있잖아?”
“... 그, 그게.”
마침 프툰과 루나도 뒤따라 왔고 프툰은 카심을 보자마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형! 안녕?”
“병신아 이 상황에서 왜 인사해.”
“그치만...”
루나는 눈이 마주치자 칫 하며 껄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그레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친구가 생각보다 재능이 있어 보여서 가르쳐준다고 했다.”
“풉, 푸하하하! 로드리게스가요?
과연. 실력 만큼이나 눈도 좋으시네요.
맞습니다.
로드리게스가 재능이 있죠.
집사로써.”
그레이는 웃으며 다가와 로드리게스 앞에 섰다.
“우리 집사 아들이거든요 이 친구가.
그래서 어릴 때부터 봤습니다.
아주 성실하죠.
말도 잘 듣고.
그치?”
“...”
“대답 안...”
카심이 대신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너 정도는 밟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거든.”
그레이는 자신의 말을 끊어버리는 것에 눈썹이 움찔거렸다가 순간 그 말에 급격히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하, 하... 그거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카심이란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실력이 있다면 그래도 회유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적대적으로 나오니 오히려 고마웠다.
그레이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자 옆에 있던 로드리게스는 본능적으로 겁을 먹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재미없을 건데?”
이어진 카심의 말은 더욱 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아이언 나이트 길드 마스터의 아들인 제가, 우리 집에서 일하는 집사의 아들에게 진다?
흐음.
재미 없을 수가 없지 않나요?”
“다른 사람은 재미있어도 넌 재미 없을 거라고.”
“그 말은 제가 무조건 질 거라고 확신하는군요?
이야. 좋습니다.
그럼 우리 내기할까요?”
“좋지.”
로드리게스는 갑자기 내기가 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대화에 끼어들 새도 없이 이미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나와 저 로드리게스가 붙어서 로드리게스가 이기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
어때요?”
“심플하군.”
“좋습니다.
아카데미 생활이 재미있어지겠어요.
앞으로 3년...”
“1년.”
“예?”
“1년 되기 한 달 전에 저놈이 널 이길 거다.”
뒤에 듣고 있던 로드리게스는 자신이 그레이와 붙어야 한다는 것도 충격이었는데 겨우 1년이라는 소리에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그레이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푸하핫!”
결국 그레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아, 씨발. 좋아.
그럼 내 소원은 너희 둘 다 당장 불명예 졸업과 동시에 전 생도가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대가리를 처박으며 죄송하다고 비는 거다.
솔직히 저런 버러지 새끼와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는 게 역겹기도 했고, 그렇지 않아도 네놈은 내가 머지않아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도와주네?”
“그러지.”
당연히 불리한 상황인데 아카데미에 쫒겨날 위기에 처했음에도 전혀개의치 않다는 카심의 반응은 더욱 그레이의 심경을 건드렸다.
카심은 로드리게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가자.”
“어, 어? 자, 잠시만 나는...”
로드리게스는 결국 말도 하지 못한 채 카심의 손에이끌려갔고 멀어지는 둘을 보며 그레이는 천천히 표정을 풀었다.
“큭큭, 푸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네.
그래도 잘 됐어.
오히려 편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갈아 마시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품위가 떨어지지.
거기다 리오나 누나가 마음에들어 하는 놈이니 괜히 밉보일 수도 있고.”
리오나.
아레스 길드 간부의 딸로 그녀와 인연을 맺는 순간자신의미래는, 밝은 빛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의 아버지는 그 간부와 긴밀히 친분을 유지했으며 언제나 자신보고 리오나를 꼭 잡으라 했다.
자신도 얼굴도 괜찮은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으니 당연히 좋았다.
그런 자신의 앞길에 방해하는 것들은 모조리 치워야 했다.
***
올림푸스 아카데미의 졸업은 한 기수당 겨우 1명에서 2명 정도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다.
대부분 그저 3년을 채우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곳에서 모든 것이 포인트로 되는 만큼 포인트를 버는 족족 사용해서 3년 동안 2만 점을 채우는 게 정말로 어려웠다.
하지만 그만큼 졸업을 하게 되는 순간 거의 모든 길드에서 권유가 올 만큼 대접을 받게 된다.
현재 3년 차에 접어든 이들중에 가장 졸업에 가까운 이는 안토니오라는 인물이었다.
-크하아앙!
족히 3미터에 이르는 키에 성인 남자 두 명을 합친 것보다 큰 덩치.
배가 튀어나오긴 했지만 제대로 뚫리지 않을 만큼 질겨 보이는 가죽과 주먹으로 철근도 부술 것 같이 크고 단단해 보였다.
거기다 이빨 사이로 솟아난 송곳니는 입으로도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크.
지구에서 알고 있는 오크와 달리이곳의 오크는 굉장히 강하고 위험한 몬스터였다.
아직 아카데미 생도가 잡을 수 있을 만한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었지만,안토니오는 홀로 앞에 서 있었다.
거기다 무려 오크 두 마리.
그는 할버드라는 창을 어깨에 걸친 채 여유롭게 서 있었다.
“크항!”
“크커헝!”
거친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두 마리 오크를 보고 있음에도 안토니오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마리 오크가 달려드는 순간, 그는 어느새 공중에 도약했는데 그 높이가 무려 10미터는 되었다.
그리고 떠오른 그의 할버드는 붉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심지어 그 붉은빛은 안정적인 상태였다.
Lv 6의 특화.
그게 겨우 20살의 안토니오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두 마리 오크 시체 위에 앉아 있는 안토니오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안토니오.”
“왔어?”
“또 혼자 무모하게 그러고 있어!?”
“보자마자 왜 이렇게 잔소리야.”
오크에서 내려온 안토니오는 금빛 눈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를 마주하고 있는 여성은 초록색 눈으로 아주 단아하지만 똑부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무슨 일인데 그리 급하게 온 거야?
애들도 안 데리고 오고.”
“급한 건 아니고, 리오나는 이번에 완전히 거절했어.”
“왜? 우리랑 함께하면 확실히 도움이 되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스읍, 라이안 그 녀석을 끌어들이려면 리오나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휴가 갔을 때 딱 좋았는데 말이야.”
“그게 아마... 이번 380기로 신입 들어온 거 알지?”
“알지. 거기에 꽤 유명한 놈이 있잖아.
지그하르트.
그놈이라면 확실히 제의를 거절할만하네.”
그녀는 안경을 고쳐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엥 지그하르트가 아닌데 신입생이랑 움직인다고?”
“카심이라는 녀석이야.”
“카심...?
내가 들어 본 적 없는데.
하긴 뭐 전 대륙에서 오는데 그중에서 뛰어난 놈은 있겠지.
그래봐야 지그하르트에 비하면 형편없을 거 아냐.
맞다.
그놈한테도 애들 보냈다며.”
그녀는 안경을 고쳐잡았다.
“우리가 보낸 애들 두 명을 밟아버렸어.”
“... 프레드릭과 론을?
그래도 아카데미 10위 안에 드는 실력자들인데.
과연 난 놈은 난 놈인가보네.
역시... 재밌겠어.
가기 전에 확실히 밟아 놔야지.”
안토니오는 씩 웃으며 그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전투에 있어서는 광기에 젖을 정도로 좋아하는 안토니오의 성격은 좋지 않았으나 동시에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안토니오는 단순히 졸업을 목적으로 두고 있지 않았다.
졸업은 너무 쉬웠다.
그래서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몇 인물들처럼 자신도 그런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것을 못하더라도 최소 자신의 아래로 한참이나 자신의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그 가장 큰 위험이 바로 아레스 길드 마스터의 셋째 아들인 지그하르트였다.
소문은익히 들어왔다.
천재 중에 천재.
그런 놈이 아카데미 졸업은 당연한 것, 그런데 혹여나 자신이 하지 못한 솔로 던전 클리어라는 업적을 남기게 된다면?
자신의 업적은 자연스레 가려지게 된다.
단! 지그하르트를 밟아 놓게 되면 그런 대단한 지그하르트를 이긴 안토니오라며 더 대단하게 볼 것이다.
“지금 밟으면 그땐 약했다라고 할 테니까 딱 졸업 전에 밟아 놓으면 되겠네.”
웃으며 걸어가는 안토니오는 빨리 그 시간이 오기만을 기대했다.
***
카심은 바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이것은 아카데미에 있는 도서관에서 빌린 것들이었다.
과연 크기만큼 도서관도 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고 안에는 다양한 책이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이곳 아벨리우스 세계에서 나온 책만을 가지고 왔다.
“카, 카심! 도, 도와... 줘!”
로드리게스와 카심은 마침 나이도 같아 더 편하게 말을 나누었다.
혼자서 외뿔 드래곤과 싸우고 있었는데 벌써 세 마리째라 굉장히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할 수 있다.
그거 가지고 벌써 징징거리면 너 평생 그 자리다.”
단단한 외피를 지닌 외뿔 드래곤은 아무리 공격해도 쉽게 죽일 수 없었고 사납게 날아오는 꼬리는 한눈을 팔았다간 위험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연습 상대가 좋았다.
“그것보다 나 방패가너무 안 익숙해!”
“아니, 넌 방패가 어울린다.
날 믿어라.”
그리고 잠시 후, 가까스로 잡은 후에 다가와 숨을 헐떡이며 내쉬었다.
“헉, 헉. 언제까지 잡아야 하는 거야.”
“방패를 다루는 데 익숙해지면.”
“도대체 왜 방패를 쓰라는 거야?”
로드리게스의 특화는 무기 강화였다.
하지만 말이 무기 강화지 방패에도 특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방패에 사용했을 때 그만큼 단단하게 막을 수 있으며 심지어 방패로 가격해도 강한 충격을 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기 강화가 방패를 들지 않는 것은 면적이 넓은 만큼 무기에 비해 그만큼 체력이 훨씬 빨리 빠진다.
거기다가 방패가 단단하다 한들, 그 몬스터의 강한 공격을 막아낼 때 육체가 받쳐주지 못하면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무기 강화의 특화는 방패를 드는 게 아주 비효율적이었다.
“너에게 잘 어울리니까.”
“...”
너무 단호했다.
하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날 왜 도와주는 건데?”
로드리게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사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기했음에도 내가 아무런 말 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
카심은 여전히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레이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
어차피 1년도 채 다니지 못한다는 것도 알아.
그놈은 나를 계속 괴롭혀 포인트도 벌지 못하게 할 거거든.
그런데도 왜 내가 거기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냐면.
이렇게라도 그 개자식과 검으로 마주할수 있는 상황이라도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사실 고마웠어.
절대 나는 용기를 내지 못하거든.”
그러면서 카심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는?
듣자하니 비록 좋지 않은 특화를 익히고 있다지만 그래도 나 때문에 같이 불명예 졸업을 할 필요는 없잖아.
왜 그러는 건데?
왜 날 도와주는 거야.
나 같이 재능이 없는 놈에게 네 아카데미 인생을 걸 필요가 없는데.
난...”
로드리게스는 무어라 말하려하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더 이상 말을 내뱉지 않았다.
카심은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복수.”
“어? 너도 그레이와 뭔가 악연이 있는 거야?”
“아니, 다른 대상이다.”
“응?”
로드리게스는 전혀 이해하지 못해 갸웃거렸다.
다른 대상인데 자기와 그레이와 내기가 무슨 말이란 말인가?
“신경 쓸 거 없어.
아주 사소한 이유다.”
역사.
처음에는 같으면 재미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크게 관심이 없었다.
딱히 역사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도 이미 자신이 달라진 시점에서는 충분히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애당초 역사를 완전히 바꿀 생각이었다면 당장 아카데미가 아닌 왕국에서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지만 조금이지만 영향은 주고 싶었다.
이것은 그저, 자신을 다시 이곳으로 보낸 것에 대해 아주 사소한 복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