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5. 복수(3)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가 있었다.
***
380기 생도의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것을 본 리오나는 한 명을 잡아 물었다.
“안녕?”
“어, 아, 안녕하세요.”
“혹시 카심 오빠는?
요즘 안 보여서 말이야.”
“아, 그게 듣기로는...”
“누나!”
그때 들려오는 소리에 안을 보니 그레이가 달려 나왔다.
유난히 밝아 보이는 표정으로 달려온 그레이는 리오나와 대화하던 녀석의 어깨를 잡았다.
“넌 바쁘지?”
“어? 어. 그럼.”
리오나가 처음에 붙잡았던 생도가 빠르게 걸어가자 리오나는 그레이를 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 카심 오빠가 안 보여서 혹시 봤냐고 물어보려고...”
카심의 이야기가 나오자 순간 미간이 찌푸러졌다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그 새... 친구. 죽었을 걸?”
“응? 죽다니?”
“벌써 3주 동안이나 수업에 참여 못 하고 있어.
듣기로는 아벨리우스 세계에 있다는데 3주 동안이나 못 온 거면.
죽었을 거 아니야.
그리고 로드리게스라고 병... 아니, 동기 한 명 있는데 둘이서 지금 못 돌아오고 있거든.
그래서 트레이너도 지금 파견된 상태야.”
리오나는 별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음 알았어.”
“누나 혹시 시간...”
“아 미안, 없어.”
멀어져가는 리오나를 보았고 그녀 옆에어느 남자가 자연스레 서는 것을 보며 그레이의 콧잔등에 주름이 생겼다.
한편, 뒤쪽에서 보고 있던 라이안은 그런 그레이를 보며 누군지 알아보았다.
“저 녀석 아이언 나이트 길드 아들 아냐?”
“맞아. 어릴 땐 귀여웠는데 크니까 그게 사라졌네.”
“그나저나 어딨데?”
“아벨리우스 세계에 있다네.
벌써 3주 넘었데.”
“뭐? 그럼 죽은 거 아냐?”
리오나는 피식 웃었다.
“너도 쟤랑 같은 소리하네.
그랬다면 너나 나도 이미 죽었을 걸?”
“뭐?”
걸어가는 리오나를 보며 라이안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대로 보여준 적도 없는데.
쩝. 아니야. 아직은.”
라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뒤따랐다.
그 시각.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아직도 아벨리우스 세계에 있었다.
“허억, 헉!”
로드리게스는 철퍼덕 주저앉았다.
“으하하! 잡았어! 드디어!!!”
“... 25일 걸렸네. 1단계 통과하는데.”
카심은 할 수 없다는 듯 계획을 변경하기로 하고 쓰러진 로드리게스에게 다가갔다.
“여기 공개하자.”
“하긴 이제 며칠 안 남았지? 역시 너라도 힘들까?”
“글세. 최종 보스는 꽤 강하겠지.”
잠깐 고민하던 카심은다시 말했다.
“아쉽긴 하지만 포기할 건 해야지.”
“미안. 내가 너무 약해서.”
“그래.”
“... 매정한 놈. 위로 한 번 안 하네.”
카심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로드리게스는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위로는 내가 할 게 아니라 니가 해야지.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라고.”
“그래. 내가 한다 해! 나 때문에 많...”
“지금이 아니라.
니가 충분히 강해졌을 때.
그때 해라.”
로드리게스는 놀란 눈으로 보았다.
이 말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미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 꼭 할게.”
두 사람은 주먹을 맞닿았다.
그래도 25일 사이 로드리게스의 눈빛은 제법 바뀌어 있었다.
화요일이 되는 날, 던전을 공개했고 아카데미는 새로운 던전이 나타나자 한순간에 화제가 되었다.
던전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마치 이곳은 누가 더 최강인지를 가리는 곳이었기에 혈기 왕성한 그들에게 불을 지피는 격이었다.
너도나도 한 명씩 도전해 몇 단계까지 갈 수 있는지 내기까지 걸리며 순식간에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혀갔다.
몇몇은 4명을 이끌고 도전했는데 오히려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면서 오히려 혼자서 클리어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아카데미 내 재미있는 소문이 퍼졌는데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이가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 솔로 클리어가 나오게 되면서 역사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이다.
바로 안토니오가 바라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지그하르트가 나타났다.
순식간이었다.
1단계 돌파는데 걸리는 시간.
겨우 5분.
그의 거대한 대검이 움직이면서 함께 따라오는 붉은 기류의 선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무려 7단계에서 기권했다.
그 전투를 본 1년 차와 2년 차는 충격에 빠졌고 동시에여기저기 소문을 퍼뜨리면서 지그하르트가 얼마나 강한지 확실하게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안토니오 역시 머지않아 도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7단계까지 클리어했다.
“이야~ 진짜 장난 아니네.
이제 막 온 놈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더 놀랍다.”
7단계를 클리어하고 나온 안토니오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여기는 정말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형태의 던전이었고 클리어하지 못하더라도 너무도 큰 즐거움과 도움이 되었다.
한 번 도전으로 인해 얻은 게 굉장히, 많았다.
“이런 걸 누가 찾은 거야?
당장 가서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
“카심이라고 적혀 있잖아.”
“아~ 누군지 몰라도 고맙네.”
이로 인해서 자연스레 안토니오는 역시 현 아카데미 명실상부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렇게 수업에 돌아온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그동안 어디 있었는지 트레이너에게 설명을 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수업에 참여했고 잠시 후, 수업이 끝났다.
“이야~ 안 뒤지고 살아있었구나?”
그레이는 한껏 비웃으며 다가왔다.
그 옆에는 루나와 프콘도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그런 그레이를 바라보았는데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는 피식 웃었다.
“새끼들 꼴에 어디서좀 열심히 사냥했나 봐?”
“넌 몇 단계까지 통과했지?”
카심은 훈련용 창을 만지며 말했다.
“아~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던전?
나 무려 3단계야.
아카데미 랭킹 2등도 4단계인데 내가 3단계라고 어? 알겠어?
너희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거야.”
“그래? 대단하네.
로드리게스는 겨우 1단계 통과했는데.”
“푸하핫! 것 봐.
저거 병신이라니까.
차라리 그냥 지금 여기서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면 내가 약속 무를지 고민 한번 해 볼게. 어때?”
로드리게스가 살짝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그레이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훈련용 창을 만지던 카심은 툭툭 치며 다시 제자리에 놓고는 로드리게스와 함께 무시하고 지나쳤다.
“뭐야? 무서워서 도망가는 거야?
큭큭. 잘 생각 해보라고.
시간을 좀 줄 테니.”
세 사람의 비웃음에 로드리게스는 결국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카심. 괜찮을까?”
“뭐가?”
“난 겨우 1단계인데 쟤는 벌써 3단계잖아.
심지어 나는 무려 25일만에 1단계를 통과한 건데.”
“너 근력 몇이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로드리게스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보통 이렇게 상대의능력치를 물어보는 건 실례였고 웬만해선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질문이기도 했고 로드리게스는 카심을 워낙 믿고 있었다.
“던전 공개하면서 받은 보상 때문에 39가 되었어.
보통은 지금 60이 넘는다고.”
“꽤 열심히 했잖아.
왜 그거 밖에 안 돼?”
“그, 그게...”
“사실 열심히 안 한 거 아냐?”
“아니야! 진짜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로드리게스는 자신의 특성을 말할지 말지 고민할 때 카심은 어깨를 쳤다.
“안다.”
“... 카심.”
“하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어.
겨우 그런 수치라면 확실히 위험해. 가자.
역시 수업을 듣는 건 아닌 거 같다.
포인트고 나발이고 오늘부터 다시 빡세게 사냥가자.”
감동받으려던 로드리게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래도 역시 수업은... 하, 하하.”
“카시임!!”
그때 갑자기 멀리서 리오나가 손을 흔들려 달려왔다.
“뭐야.”
“오빠가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그런 게 있다.”
“아무튼, 이제부터 나도 같이 가!”
“어디를?”
“어디든!”
“음... 아, 너 사냥터 하나만 추천해주라.”
“응? 사냥터? 갑자기?”
“잘 알 거 아냐. 적당히 약하면서 몬스터가 많은 곳.”
왜그런 곳을 찾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옆 로드리게스를 보고는 알았다.
“아! 나도 들었어.
재미있는 소식이던데.
물론 우리 쪽에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별로 없지만.”
“있냐고.”
“딱 어울리는 곳 있어.
하지만 이번엔 무조건 나도 같이 가는 거야.”
“알았다. 지금 바로 출발하자.”
로드리게스는 깜짝 놀라 말했다.
“지금? 준비도 없이?”
“준비는 걱정 마라.
이 아빠가 다 해줄게.
너는 그냥 몸만 가면 된다.”
“...”
“풉, 쿡쿡.아빠래.”
리오나와 함께 아벨리우스 수정으로 향하는 도중 저 멀리서 누군가 다급히 달려왔다.
“하아, 하. 역시 여기 있었구나.”
“뭐야 라이안.”
라이안은 리오나 옆에 있는 둘을 보고는 빠르게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쪽이 카심이군요. 반갑습니다.
리오나와 절친인 라이안이라 합니다.”
카심은 자신을 바로 알아본 그의 손을 잡았다.
“카심입니다.”
그런데 손을 놓으려던 카심은 갑자기 손아귀에 힘이 전해지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 힘이 제법 강했던 것이다.
자신의 힘에 카심의 손이 짓눌리는 것을 보곤 라이안은 그때야 손을 빼며 씩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리오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디 가시는지...?”
“갑자기 왜 왔고 그건 왜궁금한데?”
“아니 그냥. 니가 매주 찾아오니까. 궁금하잖아.”
옆에 있던 리오나가 대답을 대신하면서 왜 왔냐고 구박하고 있을 때 카심은 통증이 느껴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하아, 갑자기 귀찮아지려하네.”
카심에게 등을 돌려 리오나와 이야기 하고 있던 라이안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오싹!
갑자기 사고가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온몸의털이 곤두섰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몸을 움직이려 했는데, 움직이면 죽을 것이라는 경고가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울려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라이안 뭐해?”
“어, 어?”
리오나의 말과 동시에 그 감각이 사라졌다.
순간 뭐였지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가 카심을 보고 눈이 마주쳤지만, 지금은 전혀 아까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순간적이었지만 그 감각이 너무도 생생해 사라진 지금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왜 그래 갑자기?”
“아, 아니야. 아무튼 사냥간다고?
그럼 나도 가도 될까?”
“내가 아니라 오빠한테 허락 맡아.”
“저기 카심... 씨?”
라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색하게 웃었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당황했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거 같았다.
“마음대로 하쇼.”
그리고 걸어가는 그 모습을 보며 라이안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뒤따랐다.
잠시 후, 사냥터에 도착했을 때 어느새 라이안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 세 마리 왔습니다!”
“로드리게스 준비해!”
“응!”
라이안은 데리고 온 세 마리 몬스터를 그대로 로드리게스에게 넘겨주고는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리오나 옆으로 튀어 나왔다.
“헉, 헉.”
“뭐야 벌써 지쳤어? 실망인데?”
“아니야! 아직 쌩쌩해!
그런데... 어쩌다 내가 갑자기 몹 몰이를...”
“쿡쿡. 신기하지? 오빠 앞에선 그렇게 돼.”
“... 그런데 정말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래?”
“몰라. 오빠가 된다고 하니까.”
“너무 무식한 거 같은데...”
“음. 뭐 다 생각이 있겠지.”
그러다 리오나는 로드리게스를 보며 소리쳤다.
“오빠! 그게 아냐! 그래! 옆에 조심하고!
방패 확실히 들어 올려! 방패를 방어용으로만 생각하지 마!
앞 다리에 힘 더 주고! 공격하는 순간 앞 다리를 조금 더 내밀어서 하라니까!
뒷 다리는 그대로 고정시켜! 거기가 나의 공간이다 생각 하라고!
아까 원 그려줘서 연습했잖아!
그래서 그레이를 이길 수 있겠냐구!”
“아, 알았어!”
“집중! 지금은 대답하지 말고!”
리오나는 로드리게스의 행동을 모두 교정해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당연해 보였다.
리오나가 누구인가? 아레스 길드 간부의 딸이었다.
절대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근데 그럼에도 이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였기에 라이안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 당사자는 나무 앞에서 독특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한참 눈을 감고 있던 카심이 천천히 눈을 떴다.
<아벨리우스 시스템>
마력이 올랐습니다.
그것을 보자마자 상태창을 띄웠다.
<상태>
근력:33
체력:37
마력: 30
특화: 스피드 강화 Lv 2
특성: [완벽한 육체] [미지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