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5. 복수(6)
“아니다. 천천히 확인하자.”
***
“으아아아!!”
로드리게스는 괴성을 내지르며 털이 잔뜩 솟아 있는 괴생명체를 향해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두르고 동시에 방패로 강하게 가격했다.
이윽고 살며시 몸을 숙인 채 회수한 검을 쓸어올렸다.
파앗! 퓨슉!
피를 쏟아내며 쓰러지는 몬스터를 보며 로드리게스는 거친 호흡을 내쉬며 기분 나쁜 푸른색 피를 닦아냈다.
“헉, 헉. 죽여줘.
더 이상 못 움직여.
그냥 죽여.”
“그래.”
“아, 아니야.
살아볼게.
악마 같은 놈...”
로드리게스는 지친 몸으로 쉬려던 순간 리오나가 또 한 마리를 데리고 오는 바람에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리오나는 카심 옆에 서서 지켜 보았다.
“왠지저 괴성 속에 오빠 욕이 있는 거 같은데?”
“개새끼라는군.”
“쿡쿡. 그런데 진짜 저러다 로드리게스 오빠 지쳐서 죽는 거 아냐?”
“확실히 저 얼굴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다.”
로드리게스의 얼굴은 거의 시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약속까지, 이제 겨우 3개월 남았다.
“어쩔 수 없다.”
“차라리 던전 클리어는?”
“아니. 지금 저 놈에게는 능력치 상승이문제가 아니야.”
리오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대결까지 한 달이 남았다.
너무 지친 로드리게스를 위해 일부러 잠시 쉬고 아주 오랜만에 수업에 참여했다.
그동안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얻게 된 손해도 있었지만, 그간 번 포인트를 생각하면 신경쓸 것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수업에오자마자 시선이 확 느껴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레이가 다가왔다.
“이야~ 이렇게나 열심히 하다니 내가 다 기쁘다.
나로 인해 네가 이렇게 성장하는 거 아니야 응?”
로드리게스는 그레이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너네 아버지가 들으면 얼마나 기분 좋아하실까?
아들이.
그 대단한 나와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나로 인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말이야.”
히죽 웃는 그 표정에 지쳐있던 로드리게스의눈빛이 달라졌다.
“아~ 맞다.
그거 알아?
얼마 전에 집에서 연락을 하나 받았는데 너 동생 말이야.
곧 성인이 된다더라?”
그레이는 로드리게스의 멘탈을 터뜨리기 위해 의도적인 발언이었다.
로드리게스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레이는 더욱 웃음이 짙어졌다.
“와~ 정말 많이 컸네.
감히 네놈이 내 앞에서 그런 표정도 짓고 말이야.
하하하.
재미있겠어.
그 표정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 너무 기대 돼.”
하지만 로드리게스는 그레이를 보며 이빨을아득아득 갈며 카심에게 말했다.
“수업 필요 없을 거 같은데.
계속 들어야 해?”
카심은 로드리게스의 눈을 보고는 일어났다.
“충분히 들은 거 같네.”
로드리게스는 그레이를 지나쳐 걸어갔고 카심은 천천히 그레이를 지나쳐 가려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놈이야 내가 내기에서 죽여버릴 수 있는데 당신은 그냥 쫓아내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아쉽잖아요.
어때요.
당신에게도 기회를 내가 주고 싶은데?”
“마음대로 해.”
관심도 없다는 듯 고민도 없이 대답하고 지나가자 그레이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상하리만치 저놈의 반응은 신경을 건드렸다.
한순간 핏줄이 터질 만큼 분노가 튀어나왔고 몸을 휙 돌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놈의 등에 박아버리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지만 참았다.
자신은 귀족이다.
저런 벌레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저런 것들에게 휘말려서 분노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머지않아 놈들은 절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레이와 만남 이후.
로드리게스는 남은 시간 동안 정말 잠도 줄여가며 몬스터를 사냥했다.
죽이고 또 죽였다.
마치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미친 듯이 몬스터를 죽여 나갔다.
“오, 오빠. 진짜 그러다가 죽겠어.”
“괜찮아... 괜찮으니까 얼른 몬스터좀...”
로드리게스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아니야. 이런다고 당장 강해지...”
“괜찮다니까!!”
로드리게스가 소리치자 리오나는 놀란 얼굴로 보았다.
지금 그의 눈빛에는 너무도 많은 감정이 실려 있었기에 리오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카심을 보았다.
카심 역시 끄덕였고 리오나는 하는 수 없이 몬스터를 유인하러 움직였다.
“...”
카심은 그런 로드리게스를 보았다.
“조금 더 일찍 할 걸 그랬나? 역시 빡쳐야 해.”
일주일이 남고.
3일.
2일.
그렇게 마지막 남은 하루까지 쉬지 않은 로드리게스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
그런데 로드리게스의 반응이 이상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이, 이게... 뭐야?”
로드리게스는 자신 앞에 떠오른 창과 자신의 몸을 번갈아 보았다.
“왜 그래 갑자기?
몬스터 잡더니.
능력치 오른 거야?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리오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카심은 그것을 보면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됐다. 그리고 난 내일 할 일이 있다.
그래서 아마 보지는 못할 거고 리오나 니가 가서 응원이라도 해줘라.”
“뭐? 오빠는? 그렇게 노력했는데 우리 새끼 성장한 거 봐야 하잖아.”
“안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로드리게스.”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로드리게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내일 흥분해서 온 힘을 다해서 공격하지 마라.”
로드리게스는 여전히 멍했고 리오나는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보았지만 카심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침내. 로드리게스와 그레이가 훈련장에서 서로 마주 섰다.
380기 생도는 물론 소문을 듣고 구경하기 1년 차 2년 차들도 구경 왔다.
심지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트레이너도 왔는데, 사실 아카데미에는 이런 일이 간혹 있는 이벤트였다.
특히 이번에 들어온 381기 생도들도 거의 다 모였는데 그들은 바로 한 기수 위인 그들의 실력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딱 380기 생도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았다.
스스로 강하다 생각하고 자만심이 가득했다.
“... 까득.”
그레이는 여유로우면서도 로드리게스와 함께 있는 리오나를 보며 이를 부딪쳤다.
리오나는 저곳이 아니라 자신의 뒤에 있어야 했다.
“그래. 씨발 주위에 있는 것들 모조리 죽이면 저년도 정신 차리겠지?”
참을 만큼 참았다.
그레이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래도 내가 말이야.
우리 집에서 일한 니 애비 정을 봐서 살려는 주려고 했거든?
그런데 너무 괘씸해서 안 되겠어.”
그레이는 사람이 보는 앞이기 때문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넌 죽어야겠어.
그리고 니 애비와 니 동생까지도.”
파아앗!
그레이의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무려 특화 레벨 5.
이전에는 특화 레벨이 4였던 그도 그사이에 성장한 것이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특화 레벨 5는 많지 않았다.
그만큼 그레이는 분명히 재능이 있는 유저였다.
381기 생도들은 그것을 보며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겨우 6개월 먼저 온 놈들이라 별 차이 없을 줄 알았더니 특화 5레벨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어느새 눈빛이 달라졌다.
그것을 보고 마치 믿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레이의 웃음은 더 진해졌다.
“놀랐구나. 하긴, 달콤한 꿈을 꿨겠지.
그래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그래 한 발톱 정도까진 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어떡해? 내 재능이 이렇게 뛰어난 걸?”
어깨를 으쓱이며 연민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끊임없이 발버둥 쳤겠지.
헛된 희망 하나를 가지고 말이야.
방패를 보아하니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버텨볼 생각을 했나보네?
에휴. 더 안쓰럽게.
마음이 아프다.
로드리게스.”
천천히 다가오던 그레이는 여유롭다는 듯 끄덕였다.
“그래. 그래도 노력했으니 어디 한 번...”
파앗!
“막아 봐!”
한순간에 도약하며 거리를 좁히며 달려든 그레이는 붉게 빛나는 검으로내려쳤다.
콰앙!
주변으로 충격파가 터져 나가며 구경하던 생도들은 한순간 몸을 웅크렸다.
그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고 381기 생도들은 더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죽지 않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상대는 그 자리 그대로 방패를 들어 막아냈다.
방패에는 붉은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겨우 특화 레벨 3이었다.
“오~ 이야.
무기에 강화를 하다가 방패에 강화를 하는 게 조금 달라서 은근히 쉽지 않다던데.
용케도 했네? 잘했어.
그런데 지금까지 겨우 그거 연습한 거야? 큭큭.
그래 그거 꼭 잡고 있어? 알겠지?”
이어지는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인해 구경하던 이들은 이미 승부가 끝났음을 알았다.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압도적인 실력 차에 로드리게스는 그저 막기만 급급했다.
그래서인지 로드리게스의 표정은 넋이 나간 듯 멍해 보였다.
그레이의 공격은 그야말로 폭풍 같았다.
마구잡이처럼 보이지만 공격 한 번 한 번에 실린 힘은 꽤 대단했으며 방패로 힘을 흘리지 못하도록 쉴 새 없이 경로가 바뀌었다.
다양한 경로의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웠으며 빨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는 로드리게스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방패를 완전히 부숴버리면 절망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어서 더욱 거칠게 공격했다.
그 속에서 로드리게스는 방패를 힘껏 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말했다.
“진... 짜야?”
드디어 나온 그 목소리에 그레이는 쾌감을 느꼈다.
“진짜지!
이게 네놈과 나의 차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재능의 차이!
이제야 깨달았어!?
어!?
으하하!”
그레이는 더욱 거칠어졌다.
점점 방패는 심각할 정도로 손상되어 머지않아 방패가 부서지려 하는 순간 갑자기 그레이가 뒤로 물러섰다.
엄청난 그레이의 공격에 넋을 놓고 구경하던 생도들은 갑작스러운행동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아니지~ 이러면 재미없지.
너도 뭘 해봐야 할 거 아냐. 그
래도 지금을 위해서 죽을 힘을 위해 발버둥쳤는데.
최소한 공격은 해 봐야 하지 않겠어?
내가 친히 그 기회를 줄게.”
그레이는 무기를 어깨에 걸친 채 짝다리를 짚고선 여유롭게 서서 손을 까딱까딱했다.
공격할 기회를 준다는 소리에 로드리게스는 그대로 방패를 떨어뜨렸다.
팅~ 팅.
방패가 떨어지며 소리를 울렸다.
그리고는 로드리게스는 가볍게 무게 중심을 앞으로 놓았다.
그것을 본 그레이는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래. 마지막 기회일 텐데 온 힘을 다해서 공격해야지?
니가 낼 수 있는...”
몸을 앞쪽으로 내밀었던 로드리게스의 허벅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꾸득, 꾸드득.
<아벨리우스 시스템>
특성의 [봉인]이 [초인]으로 변경됩니다.
터질 것처럼 솟아오른 허벅지는 예사롭지 않았다.
엄청난 에너지를 머금은 허벅지는 이내 폭발했다.
파앗! 슈아악!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서서 말을 하고 있던 그레이는 갑자기 엄청난 속도의 로드리게스에, 눈동자가 커졌다.
반응도 하기 전에 이미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놀라운 반응은 내려오는 검을 보고 바로 반응하고서 막기 위해 올라가고 있었다.
막았다.
막는 순간 정신을 차린 그레이는 그것을 흘려버리고는 그대로 목을 베어버릴 생각으로 살짝 힘을 주었다.
후욱!
“헙!”
그런데 밀려 들어오는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콰직! 콰앙!!
그레이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가 튀어 올라왔다.
“커, 커헉!”
퍽! 소리내며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 그레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고 어마어마한 위력에 한순간 장내는 침묵이 감돌았다.
단 한 방이었다.
한 방에 그레이는 정신을 잃었다.
<상태>
근력: 152
체력: 161
끈기: 13
특화: 무기 강화 Lv 3
특성: [초인]
이것이 어제 로드리게스가 본 자신의 상태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