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6. 예상치 못한 변수(1)
예상치 못한 변수 -
다그닥, 다그닥.
조용히 울려 퍼지는 말발굽 소리.
마차 안에 있던 로드리게스는 왠지 들떠있었다.
“난 이렇게 마차를 타고 모험을 떠나보고 싶었는데.”
들뜬 로드리게스는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심을 보고 머쓱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무슨 일인데 그래?”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아.”
“응?”
카심은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올림푸스 아카데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편지는 마리엘에게서 온 것이었다.
내용은 간단히 말하자면 칼라리스 길드가 망했고 마웬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전 삶의 역사에서는 분명히 칼라리스 길드가 망하고 마웬도 죽었다.
이번엔 그것을 막으려 했었는데 원래의 역사대로 흘러갔다.
역시 역사라는 거대한 강물을 일개 인간인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아니었다.
그렇다면 레온은 어떻게 된 것일까?
어째서 프레드릭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맘같아선당장 접근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미친놈 취급할 게 뻔했다.
그래서 지금 리톰 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런데 여기서 리톰 영지인가? 거기까지는 얼마 걸려?”
“세 달.”
“헉. 세,세 달이나 걸려?”
“중간에 텔레포트 장치 타고 갈 거다.”
“... 돈은?”
“난 있지.”
“난 없는데.”
“그래 그럼 걸어와.”
“... 빌려 줘.”
결국, 비싼 이자로 카심에게 돈을 빌려텔레포트 장치 앞에 섰다.
투명한 유리관처럼 되어있는 것으로 이것도 당연히 아벨리우스 세계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래전에는 꽤 많이 나왔지만, 최근에는 거의 나오지 않아서 생활 아티팩트 중 가장 비싼 것 중 하나였다.
리톰 영지에는 이 텔레포트장치가 없었기에 근처 영지까지 이동하고 거기서 다시 움직여야 했다.
비용은 무려 5골드.
돈을 제법 버는 유저도 쉽게 내기 힘든 비용이었지만 카심은 주저 없이 비용을 지불했다.
텔레포트 장치 안에 들어가자 직원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시기를.”
오색 빛이 아래서부터 차오르더니한순간 번쩍였고 눈을 떴을 때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하리볼 영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느새 바뀐 직원을 보며 로드리게스는 신기해했다.
“와, 나 처음 이용해보는데 신기하다.”
“바로 이동한다.”
“밤인데?”
“시간 없어. 괜히 이 비싼 걸 이용한 게 아니잖아.”
“어? 지금 시간 마차 없잖아.”
“뛴다.”
“... 예?”
파바밧!
칠흑같이 어두운 밤.
희미한 달빛 사이로 두 인영이 숲을 빠르게 가로지르고있었다.
카심과 로드리게스였다.
두 사람은 꽤나 무거운 갑옷이었음에도 그 속도가 상당했다.
“잘따라 오네.”
“후후후! 내 능력치 보면 놀랄걸!?”
“그래 그럼 속도 높인다.”
슈아악!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을 보며 로드리게스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웃었다.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 때 마침내 리톰 영지 앞에 도착했다.
“허억, 헉. 도, 도착했다. 드디어...”
로드리게스는 그대로 쓰러졌고 목을 잡고 일으켜 세운 뒤 입구로 걸어갔다.
“멈춰라. 신분... 헛. 들어가도 좋습니다.”
신분증을 제시하려다가 두 사람이 입고 있는 갑옷에 올림푸스 아카데미 마크를 보고는 바로 열어주었다.
“오 여기가 리톰 영지구나.
적적하니 좋다.”
로드리게스는 어느새 체력을 회복했는지 몸을 움직였다.
딱히 리톰 영지의 분위기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카심은 곧바로 칼라리스 길드 저택으로 향했다.
그런데 저택에 도착한 카심은 입구에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럴 것이 이미 저택은 무너져 내린 상태로 그야말로 폐허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 뭐야여기. 무슨 일이 있었나 본데?”
로드리게스는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때 카심은 몸을 돌렸다.
“우선 밥부터 먹자.”
“어? 어.”
카심은 여행하는 구름 주점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어! 카심씨? 와~ 진짜 오랜만이네요.
소문을 들었는데 대단해요.
진짜 올림푸스 아카데미생이 되었군요?”
“오랜만이네요. 안나씨.”
안나는 반가움에 웃으며 다가왔다가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칼라리스 길드 때문에 오셨군요.”
“예. 안 그래도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설마 공짜로요?”
눈웃음을 치는 안나를 보며 카심은 가볍게 웃었다.
“우선 제일 비싼 것부터 시키죠.”
카심은 웃으면서 주방으로 향하는 그녀를 보다 로드리게스에게 말했다.
“대충 설명 해줄...”
로드리게스에게 말을 해주려는데 그는 입을 헤벌쭉 벌린 채 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 분은 누구야?
엄청 아름다우신데?
근데 뭐라고 말하려 했어?”
“... 됐다. 밥이나 오면 먹어라.”
잠시 후, 밥이 도착했고 안나에 의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떠난 이후에 칼라리스 길드는 활발하게 모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곳에 갑자기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이 나타났고 단 혼자서 칼라리스 길드를 상대해 마웬을 죽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전력이 빠졌다지만 혼자서 마웬을 죽일 정도면 상당한 실력자인데 어째서 이곳 칼라리스 길드를 갑자기 공격했을까?
“스페르 길드를 알아봐야겠어.”
“어?”
“스페르 길드요?”
어느새 안나는 자리에 앉아 로드리게스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넌 안나씨 말동무나 해주고 있어.
난 잠시 들릴 데가 있으니까.”
“어? 어. 그래. 안나씨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냐면요......”
로드리게스를 두고 나와 걸었다.
스페르 길드.
이전 삶에서도 칼라리스 길드가 망하면서 자연스레 스페르 길드가 이곳을 점령했다.
그런데 이번 삶에서는 분명히 다시 재기하기 힘든 수준의 피해를 입었는데 어느새 그 피해를 복구하고 리톰 영지를 먹었다.
“스페르 길드가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있다.”
단순히 볼 수 있는 계산.
사실 마웬이 죽은 건 안타깝긴했지만 칼라리스 길드가 망했다고 하지만 큰 감흥이 없었다.
어쨌든 이것도 충분히어느정도 역사에 관해 영향을 준 셈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찜찜함이 이곳까지 이끌었다.
그래서 스페르 길드에 관한 것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정보 길드를 이용하면 좋겠지만 이곳엔 정보 길드가 없어서 직접 움직여야 했다.
3일이 지났을 때 대략적인 정보를 모았고 로드리게스도 그 사이 제법 같이 움직이며 이런저런 소식을 가져왔다.
“듣자하니 스페르 길드가 썩 좋은 취급 받는 건 아닌 거 같아.”
“꽤 무서워하던 분위기더군.”
정보를 모을 때 스페르 길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무서워했다.
“완전히 왕처럼 군림하고 있다던데?”
“믿고 있는 구석이 있다는 거겠지.”
카심은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여기서 얻는 건 한계가 있다. 확실하게 파봐야겠어.”
“으음... 위험하지 않을까?”
“위험할 거다. 그런데 왠지 해야만 할 거 같으니 너는 빠져.”
“무슨! 그런 소리 하지 마. 섭섭해?”
“그래.”
“어쨌든 뒷놈이 있다는건데 그럼 그놈들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데?”
카심은 몸을 뒤로 젖혔다.
“그거야.”
그리곤 씩 웃었다.
“간단하지.”
***
리톰 영지에는 몇 개의 주점이 있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 –여행하는 구름-이긴 했으나 그곳은 조금 더젊은 분위기여서 젊은이들이 많이 갔고 또 다른 –주정뱅이 고블린- 이라는 주점은 훨씬 나이가 있는 이들의 아지트였다.
“크아! 역시 고된 여행 후에 먹는 맥주가 죽이지.”
“흐흐. 그러게요 형님.”
“오빠! 이게 뭐야.
안주도 좀 맛있는 거 시켜 줘야지!”
“야이년아. 우리가 이전 영지에서 사고 쳐서 그렇잖아.
여기서 돈 좀 벌고 그때 맛있는 거사 줄 테니 징징거리지 마.”
“칫.”
그들은 나름대로 타 영지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4인조였다.
그때 주점 안으로 들어오는 6명을 보고 술을 마시던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여? 애새끼들이 왜 여기에 와.”
한눈에 보아도 10대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시끄럽게 웃으며 들어오더니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
심지어 한 명은 테이블에 발까지 올렸다.
“푸하하! 병신새끼 그니까 도박장 가지 말라니까!”
“아 루얀! 너도 같이 가 씨발 진짜.”
“하, 꼰대 새끼가 다른 건 다 해도 그건 하지 말라잖아~”
그들은 너무 시끄러웠기에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이 씨발 여기 왜 이래? 어이 주인장.
애새끼들 들어 왔는데 뭐하는거여? 어?”
한순간 시끄럽던 주점이 싸늘해졌다.
그 분위기에 넷은 의아한 얼굴로 주변을 보았다.
“어이 설마 그거 나한테 하는 말이야?”
그때 뒤쪽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이들 중 루얀이라는 이가 여전히 테이블에 다리를 올린 채 건방진 자세로 말했다.
“허어 씨벌. 정신머리가 나간 새낀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덩치가 실로 대단했다.
큰 키는 아니지만 덩치만 보아도 100키로는 훌쩍 넘었기에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얀과 그 주위 녀석들은 전혀 두려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큭큭.”
“병신새끼 장난감이 또 생겼네.”
“이 새끼는 또 어떻게 될까?”
심지어 비웃기까지 했기에 그는 루얀의 머리를 잡고 기세를 내뿜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새끼들 뭐 어대 영주 아들래미라도 되나 보제?”
“그건 쟤고. 둘째긴 한데.”
“그럼 넌?”
“나?”
씩 웃은 루얀은 갑자기단검을 들어 무기 강화를 하더니 그의 허벅지에 박았다.
“큭!”
그는 화끈한 통증에 화들짝 놀라 한쪽 무릎을 꿇었다.
루얀은 그런 그의 머리카락을 이번에 자신이 쥐고는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스페르 길드 마스터 아들.”
마을 내에서 싸우더라도 웬만하면 주먹을 사용한다.
무기를 사용했다가는 당장 쫓겨나는데 이것은 그 어떤 이라도 예외 없이 적용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무기 강화까지 쓴다?
이것은 영주 권한으로 즉시 처형감이었다.
“이런 씨발 또라이 새끼들!”
하지만 그는 겨우 그런 것에 당할 정도로 약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그 얼굴을 잡고 그대로 테이블에 찍었다.
콰직!
“오우!”
“화끈한데?”
“으하하!”
자신의 친구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웃고 있는 것을 보며 그는 불쾌감을 확느꼈다.
“큭큭, 큭크크큭. 어이 돼지 새끼.”
심지어 테이블에 처박혀 얼굴에 피가 나고 있음에도 웃고 있는 루얀을 보며 오히려 움찔했다.
“너... 감당할 수 있겠어?”
씩 웃는 그 웃음에 그는 진짜로 공포심을 살짝 느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런 눈을 가진 놈들과는 아무리 어려도 상종해서는 안 된다.
거기다가 뒷배경도 있었다.
“퉤! 씨발. 별 병신 같은 영지네.
이런 곳은 밥맛이 없지.
애들아 가자!”
그는 즉시 밖으로 나갔고 뒤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설마 저런 꼬마들 그대로 나둘 거야?”
“맞습니다. 형님 당장이라도 다리라도 부숴버려서...”
“오늘 이 영지 뜬다.
느낌이 안 좋아.”
“예?”
그 말에 뒤따라 온 셋은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놈들한두 번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 짓을 하고도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반응조차 안 하고 오히려 신경도 안 쓰려고 하고 있다. 이 영지에서 활동은 접는다.”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고 늦은 밤이지만 당장 영지를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영지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과 비슷한 덩치에 키도 더 컸다.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뒤쪽에도 있었기에 그는 이를 갈았다.
그렇게 밤은 더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