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6. 예상치 못한 변수(2)
그렇게 밤은 더 깊어져만 갔다.
촤악!
“크읍. 쿠, 쿨럭!”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는 감각에 정신을 차린 그는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느껴지는 통증에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자신은 누군가에게 맞고 끌려온 것이다.
흐릿한 정신 속에서 주변을 보니 창고라는 것을 알았고, 앞으로는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누군가 앉아 있었는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큭큭.”
하지만 웃는 소리를 듣는 순간 누군지 바로 알았다.
의자에 있던 이가 일어나 천천히 다가오자 창고의 작은 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의해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루얀이었다.
다가온 루얀은 머리카락을 잡고 당겼다.
“내가 말했잖아. 크크큭. 감당하겠냐고?”
“끄으...”
짜악!
“묻잖아. 감당할 수 있겠냐고 어?”
“모, 못 한다. 미안...”
쫘악!
“다? 다?”
“죄, 죄송합니다...”
“크크큭. 그래야지.”
하지만 위로 솟구친 루얀의 팔은 무자비할 정도로 내려쳤다.
짜악! 짝! 짜아악! 짝!
능력치로 인해 아프지 않을 줄 알았지만, 뺨에 난 상처와 계속 뺨을 때리니 점차 통증이 커지면서 결국 피가 터져 나왔다.
“커헉. 그, 그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인상이 험하고 강해 보이던 놈이 자신 앞에서 얼굴이 망가진 채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며 루얀의 얼굴에는 짜릿함이 가득했다.
머리를 조아리는 놈의 머리를 다시 쥐어 잡고 들어 올리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싫어. 크크큭”
그때 루얀의 손에 단검이 떠오르며 달빛에 반사됐다.
히죽 웃는 루얀은 가차 없이 그 손등을 내려찍었다.
푸욱!
“끄아아악!”
이윽고 그 단검은 다른 손도 찍었고 천천히 일어나 뒤쪽으로 향하더니 뒷꿈치를 잡았다.
“그, 그것만은... 제, 제발!”
다급하게 사정했지만 루얀은 그것을보며 오히려 더 흥분하며 즐거워했다.
아킬레스건을 그대로 잘랐다.
“끄아아아악!!!!”
잔혹했다.
잔혹함에 뒤쪽에 있던 동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반대쪽 아킬레스건마저 끊어버리고는 심지어 손의 힘줄까지 끊어버리면서 비명은 밤새 울려 퍼졌다.
아침이 되었을 때, 네 사람은 처참한 몰골로 절뚝거리며 영지를 떠났고 그 모습을 모든 이들이 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에 혀를 차며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이것은 스페르 길드가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도 여전히 주점에 들어서서 웃으며 시끄럽게 떠들고 술을 먹었다.
“그래서 그 새끼가 어떻게 했는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아~ 살려주세요오~”
“푸하하하하! 나도 봤어야 했는데!”
“야 루얀! 너만 즐기지 말라고 했잖아!”
“크크큭. 다음에 또 생기면 같이 놀자.”
그때 –주정뱅이 고블린- 주점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당연히 루얀은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웃으며 술을 먹었다.
이곳에선 자신이 신경써야 할 인물은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런데 둘은 앉지도 않고 루얀에게 다가갔다.
한 명은 앞쪽에 섰고 다른 한 명은 걸어 루얀에게 다가가자 맥주를 먹으려던 루얀은 눈을 치켜 세우고 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에선 그 누구도 자신을 건들 수 없었기에 무시하고 맥주를 들이키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의 머리가 뒤쪽으로 휙 당겨져 먹으려던 맥주가 쏟아졌다.
“...”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정적이 흘렀다.
주변에서 술을 먹던 이들은 또 무슨 일이 터지겠구나 싶어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고 옆에 있던 친구들은 재미있겠다는 듯 큭큭 웃었다.
“하아. 씨발.”
루얀의 눈빛이 가라앉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보았다.
“너 뭐...”
콰직!
말을 하던 루얀은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더니 그대로 테이블로 얼굴이 찍혔다.
“아이고~ 아프겠다.”
“이야~ 우리 루얀 고생하네.”
“야! 이번엔 우리도 그 창고에 데려다 주라. 같이 놀자고!”
루얀의 친구들은 그 상황에도 웃고 있었다.
그때 루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여유롭게 몸을 털고는 몸을 돌려 웃으며 노려 보았다.
“큭큭, 푸하학. 아 씨발 이거 어이가 없네. 어이 너 감당...”
짜악!
루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웃고 있던 친구들도 이번에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입을 다물었고 어느새 싸늘함이 감돌며 조용해졌다.
“하!”
루얀은 혀에서 느껴지는 피 맛에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다시 날아온 손에 얼굴이 돌아갔다.
짜악!
“이 씨발!!”
결국, 참지 못한 루얀은 순식간에 품에서 단검을 꺼내 무기 강화를 펼치며 휘둘렀다.
목표는 놀랍게도 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단 한 번도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루얀의 손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탁!
그러나 닿기도 전에 손은 너무나 간단하게 상대에게 막혔다.
짜악!
“너 내가 누군...”
짜악! 이번에도 맞은 루얀은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씨발 너 내가 누군...”
짜악!
“내, 내가 누군...”
짜악!
매섭게 노려보던 루얀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신은 왕이다.
“씨바아알!! 내가 누군지 아냐고오!!”
결국,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의 몸이 붕 떴음을 알았다.
철퍼덕!
“이 개색...!”
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루얀은 등에서 압박과 함께 머리채를 잡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얼굴이 바닥에 찍혔다.
퍼억!
“크억!”
퍽!
“컥!”
퍼억! 퍽! 퍽! 콰직!
“끄, 끄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루얀의 친구들조차 입을 쩍 벌린 채 그 장면을 아무런 말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리톰 영지에서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루얀을 저렇게 처참하게 공격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을 잡힌 루얀의 얼굴이 들렸을 때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박살 나, 코뼈는 물론 광대뼈까지 모조리 내려앉았으며 피는 얼굴을 완전히 적신 상태였다.
그리고 얼굴이 들린 루얀은 상대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 눈은 지금까지 자신이 봤던 이들과는 달랐다.
마침내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저음에 흔들림이 없는 목소리.
“지금부터.”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루얀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한마디라도 하면.”
그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루얀은 무슨 의미인지 알았기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끄덕였다.
그리고 머리가 질질 잡힌 채 끌고 와 벽에 던졌다.
퍼억!
“끄으...”
루얀의 친구들은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그 사내가 루얀이 앉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다섯 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루얀처럼 기세등등했던 그들이었지만 더 이상 그러지 못했다.
단순히 방금 보여준 것 때문이 아닌앉는 순간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기세와 서늘함 때문이었다.
입을 여는 순간 죽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정적이 흘렀다.
몇 분이 지났을까?
하지만 그 누구도 말은커녕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 속에서 두려움은 더 커졌다.
그러나 잠시 후 누군가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거칠게 문을 열고들어왔다.
“누구야!! 어떤 새끼가 씨발 마스터 아들을 건드려!”
스페르 길드원이었다.
세 명이었고 소리치며 들어온 이는 거구의 인물이었다.
그들이 오는 순간 다섯 명은 어느새 두려움에서 벗어나 히죽 웃었다.
“팔머 형!! 씨발 너는 이제 좆...”
다섯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손이 얼굴을 잡았고 그대로 바닥에 찍혔다.
콰직!
남은 루얀의 친구인 네 명은 한순간 자신들도 일어나 소리치려고 했다가 그것을 보고는 급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뛰어온 스페르 길드원 셋 역시 그 동작이 워낙 빨라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알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때 카심은 뒤쪽에 쓰러져 있는 루얀에게 다가가더니 머리를 잡고 질질 끌고 와 그대로 던졌다.
팔머는 자신의 옆으로 떨어진 루얀의 상태를 보았다.
처참했다.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마 평생 죽을 먹어야 할 것이다.
팔머는 긴장한 얼굴로 상대를 노려 보았다.
“누구냐! 지금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카심.”
“뭐?”
“카심이다.
마스터에게 전해.
찾아오라고.”
팔머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우선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문득 얼굴이 낯이 익어 자세히 보는순간 이내 히죽 웃었다.
“뭐야 이거. 설마 너 그때 울보 새끼 아냐?”
팔머가 아는 척을 하자 카심은 자세히 그를 보았다.
“아, 너구나.”
“너구나? 푸하핫!
이 새끼가 그래 뭐 꼴에 어디서 실력 좀 키워 왔나 보네?
야 이 새끼 개 좆밥 새끼야.
괜히 쫄았네.
뭐 씨발 마스터에게 전해라고?
찾아오라고?”
팔머는 웃으며 다가왔다.
“이 씨발놈이!”
그리곤 주저 없이 주먹을 내뻗었다.
퍽!
“컥?”
그런데 분명히 먼저 주먹을 내뻗었던 팔머의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카심은 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의 얼굴을 가격해 주먹을 막은 것이다.
“이 새끼가!”
팔머는 다시 한번 공격하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려 했는데 어느새 눈에 주먹이 보였다.
퍼벅!
그러나 한 방이 아니었다.
두 방이었다.
“큭!”
하지만 별로 아프지않았다.
그래서 더 수치스럽고 화가 났다.
“넌 죽었...”
퍼버벅!
“큭!”
아프지 않지만 세 번 연속 몸 곳곳에 주먹이 박히자 주춤했다.
그리고 다시 앞을 바라봤을 때 이미 또 주먹은 날아오고 있었다.
곡선이 아닌 직선의 공격.
퍽!
상대의 얼굴에 박힌 주먹이 그대로 쭉 돌아왔다.
그 반발력으로 다시 왼손이 튀어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이번엔 오른쪽 다리가 움직였다.
오로지 직선의 형태로 이루어진 그 공격은 몸이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빠르기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빠르게!
그렇게 속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라졌다.
퍼버버버버버버버벅!!!
팔머의 몸이 스스로 의지와 상관없이 요동쳤다.
한순간에 해일처럼 쏟아지다가 주먹이 얼굴 앞에서 멈췄다.
“...”
“...”
둘은 말이 없었다.
턱!
팔머의 무릎이 바닥을 찍었고 이내 앞으로 고꾸라졌다.
쿠웅!
***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아들을 보고 있었다.
“...”
그의 눈의 실핏줄이 터지면서 붉어졌다.
“누구라고?”
“카심이라고 했습니다.”
“당장 내 앞에 잡아... 아니, 찾아오라고 했지?”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입에 힘을 준 그는 몸을 돌렸다.
***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아벨리우스 세계의 사냥터 중 한 곳의 들판에 있었다.
“로드리게스.”
“어, 어?”
로드리게스는 놀라며 카심을 보았다.
카심이 보여준 그 잔혹한 행동에 충격을 먹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봤던 그와는 너무도 달랐고 무서웠다.
“지금부터 너는 진짜 유저의 세계를 보게 될 거다.”
“...”
로드리게스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을 때 잠시 후, 저 앞으로 수십 명이 번쩍이며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족히 100명은 넘었으며 모두 스페르 길드였다.
나타난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고개를 돌렸을 때 카심과 로드리게스를 보고 두 사람인 것을 알자마자 분노하며 괴성을 내질렀다.
“당장!! 저 놈을!! 내 앞으로 데려...”
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던 순간.
쉬이익! 푸욱!
순식간에 날아온 창 하나가 스페르 길드원의 가슴에 박히며 그대로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소리치던 스페르 길드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때 카심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고, 몸에선 초록빛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