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6. 예상치 못한 변수(4)
“귀, 귀신.”
푸욱.
***
로드리게스는 눈치를 보며 카심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카심.”
“어.”
“왜 안 죽인 거야?”
“스페르 길드가 해체되어야 하니까.”
로드리게스는 끄덕이려다가 갸웃거렸다.
“응? 그럼 죽여야 하는 거 아냐?”
“마스터 자리가 없으면 쉽게 자연스럽게 부 길드 마스터가 자리에 앉지만, 힘을 잃은 마스터가 있다면 서로 싸우기 위해 치고, 박고 하면서 빠르게 힘이 약화 되고 결국에는 무너지게 된다.”
“아...”
로드리게스는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 그래서 아킬레스건만 잘랐구나.”
“내가 살던 곳에선 아들이 잘못하면 부모가 벌을 받아야 하거든.”
그 말에 로드리게스는 끄덕이다 갑자기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혹여나 그레이 놈이 약속을 깨고 자신의 부모를 해코지할까 봐 걱정된 것이다.
“카심 오빠!!”
그때 저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로드리게스는 화들짝 놀라 앞을 보았는데 한 예쁜 여자가 달려와 그대로 카심에게 안겼다.
“헙! 누, 누구?”
“...”
“오빠.”
“마리엘.”
“왜, 왜 이제 온 거야. 왜...”
카심은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고 오묘한 분위기에 로드리게스는 그런 둘을 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바쁠 뿐이었다.
마리엘과 함께 도착한 곳은 리톰 영지의 구석에, 위치한 아주 낡은 집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많이... 더럽지.”
“...”
마리엘은 이전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입고 있는 장비는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었고 얼굴은 깨끗해 보였지만 목 사이로 보이는 떼의 흔적과 푸석한 머리.
무엇보다 그 눈빛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자신있고 당당했던 마리엘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뮬씨는?”
“뮬 언니는 지금 사냥 갔어.
사실 뮬 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서 있지도 못했을 거야.
언니 덕분에... 흑흑.”
말을 하던 마리엘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었다.
그러나 카심은 위로하지 않았다.
“울지 마라.”
“...”
“넌 강해져야 한다.”
마리엘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보았다.
“네가 칼라리스 길드 마스터가 되어야 할 테니까.”
그 말에 마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멈추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편, 리톰 영지에 훤히 보이는 호화스러운 저택이 있었다.
스페르 길드의 저택으로 영주 성만큼이나 크기가 넓었는데 스페르 길드가 얼마나 영향력을 지녔는지 또 알 수 있는 예였다.
그러나 그 대단한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씨발, 씨발!!”
우당탕! 콰직! 쨍그랑!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절뚝거리며 기물을 던지며 모조리 부쉈다.
“으으, 끄으... 감히, 감히... 씨발.”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자 양 뒷꿈치에는 붕대로 휘감겨 있었고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크흐흐.”
이제 제대로 된 유저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기에 충혈된 눈으로 실성하듯 웃음을 흘렸다.
“날 살려둬? 후회하게 될 거야.
그분께서 찾아오시게 되면 크흐흐흐.”
쾅!
그런데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어 뭐야? 마스터... 아니 이제 병신 됐네?”
부 길드 마스터였다.
그와 함께 온 이들도 20명이 넘었고 그 안에는 팔머도 있었다.
“이 새끼들이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뭐하기는? 병신새끼가 아직도 지가 마스터인 줄 아네.
그리고 너도 이전 마스터 배신하고 된 거잖아?
억울해 말라고 큭큭.”
그들은 카심에게 공격하려다가 뒤로 빠진 이들이었다.
힘이 약해진 마스터를 쳐서 자신들이 스페르 길드를 먹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그 말대로 자신 역시 같은 짓을 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둔 상태였다.
포섭해둔 이들이 그것을보며 급히 뛰어왔고 그 덕분에 저택 안에서는 순식간에 칼부림이 일어났다.
가까스로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부 길드 마스터의 반란을 잠재웠지만, 그 피해가심각했다.
그로부터 10일이 지났지만,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도저히 이 피해를 복구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영주까지 찾아와서 핍박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악행을 일삼은 덕분에 다른 길드도 스페르 길드원을 보면 즉각 공격하는 등, 그들의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멍한 표정으로 밤하늘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했다.
유저로써 능력도 잃었고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이대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데 달빛이 무언가에 가려졌다.
“...?”
놀란 얼굴로 창문을 바라보니 검은 로브를 입은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 아아. 드디어 오셨군요!”
“...”
“도와주세요! 갑자기 어느 미친놈이 갑자기 공격했습니다! 그리고는......”
그간 일어났던 상황을 묻지도 않았는데 털어놓았지만 창문에 서 있는 그는 다 듣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스페르 길드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묵직한 목소리.
그 말에 스페르 길드 마스터의 얼굴이 환해졌다.
“거, 걱정 마십시요! 제가 꼭 다시 일으키겠습니다!”
“난 한 번 실패한 놈을 믿지 않아.”
“예?”
팟!
스페르 길드 마스터는 갑자기 시야가 바뀌면서 달이 보였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달이 갑자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 달이 아니라 내가 떨어져 내리...”
툭, 투둑.
잘린 그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굴러 멈췄을 때 눈도 스르르 감겼다.
“...”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정원을 지나 입구로 나가려 했지만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 네놈들이냐?”
“어~ 뭐야. 마무리하려고 왔더니?
아~ 네가 그 스페르 길드 마스터가 말하던 놈이구나?”
카심과 로드리게스였다.
그런데로드리게스는 갑자기 달라진 목소리의 카심을 보며 당황했다.
“질문은 내가. 대답은 너희가 한다.”
“뭐? 와~ 완전 오만하네?
하긴 스페르 길드 마스터가 그~ 렇게 믿고 깝친 이유가 있겠지.”
“너희는 왜 이들을 공격했나?”
카심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내가 마웬 형님이랑 친군데 이 새끼들이 건방지게 공격했다잖아.
동생이 되어서 가만히 있으면 동생이야?
개새끼지 안 그래?”
“... 그렇군, 그런 변수였나?”
카심은 그 말에 잠깐 눈빛이 변했다.
“...?”
그 순간 검은 로브 역시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의아했다가 너무 순간이라 그냥 그러려니 넘겼다.
“그런데 말이야 왜 마웬 형님을 공격한 거냐?”
“질문은 내가 한다.”
“단호하네. 단호박인 줄.”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로드리게스 마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카심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지 않아도 저런 단호한 놈의 경우에는 유도 질문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 그만 하지 연기는.”
다시 순식간에 바뀌는 분위기에 검은 로브의 사내는 눈이 가늘어졌다.
“스페르 길드 마스터를 죽인 걸 보니.
친분은 아닌 거 같고... 그냥 의도적으로 칼라리스 길드를 공격했나?”
검은 로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미묘한 반응이 있었다.
그런데 카심은 그 반응에 순간 멈칫하던 자신도 모르게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 왜? 칼라리스 길드가 원래는 망해야 하니까?”
혹시나 싶어 내뱉은 말.
그런데 그 반응이 이상했다.
검은로브는 순간 눈에 띌 정도로 움찔했다.
오히려 더 당황한 건 카심이었다.
“뭐야... 설마 역사를 알고 있나?”
그러나 그 말과 동시에 더 이상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단체냐?”
몇 번을 더 흔들어 보았지만 역시 대답은커녕 반응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너는 누구냐?”
꽤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카심은 그 안에 긍정의 의미도 읽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자신 외에 역사를 아는 이가 있다니?
이상하리만치 찝찝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싶었다.
어이없다는 듯 웃던 카심은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먼저 자신을 향했다.
“질문은 내가.”
그리고 손가락은 검은 로브에게 바뀌었다.
“대답은 네가.”
하지만 검은 로브 사내는 천천히 팔을 내뺐고 달빛에 의해 그의 건틀렛이 드러났다.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장비였다.
“진정해. 아직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잖아.”
“아니. 끝났다. 네놈은 위험하다.”
조금 더 멍청한 놈이었으면 좋았을 것이건만 놈은 현명했다.
마음 같아선 묶고 놓고 질문을 하고 싶었다.
이건 너무나도 예상에 벗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싸워야했다.
그리고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대로 기세를 뿜지도 않았음에도 피부가 찌릿할 정도였다.
“죽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도망가라.”
“... 어차피 앞으로 저런 놈들과 수없이 붙을 거잖아.”
스페르 길드와 싸움 이후 확실히 로드리게스는 조금 더 눈빛이 달라져 있었기에 카심도 끄덕이며 조심스레 자세를 잡았다.
스페르 길드의 저택 정원.
달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고 세 사람은 잠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먼저 움직인 것은 카심이었다.
파앗!
카심은 왼쪽으로 크게 돌았고 검은 로브 사내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휙 돌렸다.
오로지 카심에게만 신경을 쓴다는 의미였다.
“!!”
그런데 검은 로브는 갑자기 팔을 들어야 했다.
카앙!
어둠 속에서 날아온 창 하나가 갑자기 눈앞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카심의 창이었다.
일부로 잘 보이지 않는 정면으로 창을 던지고는 왼쪽으로 달려 시선을 분산케 한 것이다.
창을 막자마자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런데 그 순간 검은 로브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흡!”
어느새 카심이 옆에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카심은 속도를 죽이지 않고 바로 앞에서 뛰어올라 무릎으로 가격 했지만 검은 로브는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다시 한번 양손을 들어 막았다.
퍼억!
그의 몸이 뒤로 쭉 밀렸다.
“...?”
상대는 스피드 강화였다.
그런데 손에서 느껴지는 충격은 절대 스피드 강화가 아니었다.
그 사이에 창을 집은 카심의 공격이 이어졌다.
슈슈슉!
달빛 사이로 보이는 창이 번쩍였고 검은 로브 역시 빠르게 움직이며 피하기도 했고 막아냈다.
팅!
창을 쳐내자마자 건틀렛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오더니 주먹을 내질렀다.
카심은 주먹이 움직이는 순간 눈을 부릅뜨며 순식간에 뒤로물러섰다.
후웅! 쿠우웅!
빠르게 뒤쪽으로 거리를 벌리며 피하기는 했지만 주먹이 지난 후에 일어난 소리도 심상치 않았다.
저것은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가는 충격파에 오히려 맞았을 것이다.
“...”
그래서 오히려 검은 로브가 조금 놀라고 있었다.
보통 저런 놈들은 최대한 이점을 살리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피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놈들 전부 다 자신의 이 주먹의 충격파 안에 곤죽이 되었는데 마치 알고 있다는 듯 크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검은 로브는 더욱 확실하게 경계하며 자세를 취했고 카심은 옆으로 가볍게 움직이며 창을 손에서 빠르게 돌렸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목이 날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집중을 끌어올렸다.
마력을 더욱 끌어 올려 몸을 더 활성화시키자마자 다시 움직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것을 본 검은 로브는 반응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라지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오른쪽으로 팔을 들어 올렸다.
카앙!
강한 충격이 팔에 전해졌다.
막자마자 몸을 뒤로 젖혔고 눈 앞으로 지나가는 창을 손을 내뻗어 잡으려했지만 손아귀에 들어오려는 순간 빠져나갔다.
카캉! 쉬쉭! 후웅!
두 사람의 공방전은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로드리게스는 쉽게 파고들 각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카심은 일부러 더욱 압박했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 뒤쪽을 보여주는 순간 로드리게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흐앗!”
허나, 검은 로브는 로드리게스의 존재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게 너무 뻔히 보이는 움직임이었기에 오히려 그것을역으로 노리고 있었다.
어차피 위험한 건 창을 든 놈.
저놈의 공격 따위는 별 것 아닐 게 분명했기에 그냥 공격을 맞아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몸이 저런 공격에 타격을 입을 리 없었다.
그래서 그 순간 앞쪽에서 창을 찔러 들어오면 동시에 공격해서 치명상을 입힐 생각이었다.
반박자 빠르게 앞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앞에서 공격하던 놈이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
콰직!
“!!!”
그런데 어깨에 박히는 순간 엄청난 힘에 한쪽 무릎을 꿇어야 했다.
치명적인 데미지까지는 아니었지만 상상하지도 못한 수준의 힘이었다.
“크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