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7. 수리에바 왕국(2)
***
수리에바 왕국.
넓었다.
지구의 면적으로 따진다면 이곳은 서울의 절반 면적이 된다고 보면 되었다.
“...”
로드리게스는 침을 꿀꺽 삼킨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입구부터 바글거리는 사람의 수는 왕국에서 사람에 끼여 죽는다는 농담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님을 말했다.
심지어 이루 말할 수 없이 넓었고 건물은 크고 웅장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고 있는 것은 이러한 크기 때문이 아니었다.
애당초 그것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로드리게스의 시선은 위로 가 있는 상태였다.
“마, 마차가 어떻게 하늘을...”
하늘길.
왕국에는 하늘길이라는 게 존재했다.
바로 마차는 물론 다양한 형태의 도구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기 때문에 만들어진 길이다.
심지어 이곳의 마차는 말이 아니라 자동으로 가기도 했다.
왕국은 다른 영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달랐다.
이 모든 게 아벨리우스 세계에서 나오는 아티팩트로 인해 생겨난 모습이다.
“진짜 왕국은 별천지라더니.”
“그러고 있다가 고아 된다.”
사람은 발에 치일 만큼 많았고 워낙넓은 왕국이다보니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서로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겼다.
장난삼아 떠도는 이야기 중에는 어느 모험가는 1년 만에 다시 만났다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었기에 왕국에는 이렇게 서로 길을 잃었을 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메시지라는 업체도 생겨났다.
그래서 로드리게스는 다급하게 카심의 뒤를 따라가면서 주변을 구경했다.
주변도 재미있었지만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도 상당했다.
특히 영지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형태의 장비를 낀 유저들이 많았는데 현재 왕국에서는 일명 커스텀이라고 해서 개성을 드러내는 게 유행한 것이다.
“헉. 존나 멋있다. 나도 저거, 저거 사고 싶다.”
한눈파는 로드리게스의 뒷목을 잡고 끌고 온 곳은 허름한 여관이었다.
“왕국까지 왔는데 왜 영지보다 더 허름한...”
“왕국에서 10골드는 한 달이면 사라지는 돈이다.”
다가오는 직원을 보며 남은 돈을 주고 방과 식사를 준비하라 시켰다.
“어쨌든 진짜 왕국이라니 두근거린다.
나도 나중에 유명해지는 건가? 흐흐.”
카심은 빵 하나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로드리게스. 주변을 봐라.
“...”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비슷한 처지의 유저가 많이 보였다.
사실 여기도 이용하지 못해 외곽에서 길거리에서 자는 유저도 많았다.
왕국에서 유저 생활은 모든 이들의 꿈과도 같은 곳이지만 동시에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유저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근심, 걱정, 두려움, 공포.
모든 게 들어있었고 제대로 씻기는커녕 잠도 자지 못한 얼굴이었다.
저 상태로 또 사냥터로 나가서 일당을 벌어야 그나마 오늘처럼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것도.”
테이블에 그려져 있는 광고.
[좋은장비를 입고 내 목숨부터!]
이세계에서도 대출은 있었다.
처음 왕국에 오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좋은 장비를 갖게 해서 사냥해 갚으면 된다며 친절한 서비스처럼 말하지만 결국 이 돈을 갚지도 못하고 죽어 나가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화려한 빛 속에 감춰진 이 어둠이 사실 왕국의 절반을 감싸고 있는 사실이었다.
“너처럼 그런 얼굴 하고 돌아다니면 너 내일 숨도 못 쉰다.”
들떠 있던 로드리게스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 눈빛이 이상했다.
“이야... 오늘 막 온 유저인가보네?
어때 이 선배님이 잘 가르쳐 줄 의향이 있는데.”
때마침 다가온 두 명의 유저.
험상궂게 생긴 외모는 처음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여긴 니가 생각하는 그런 꿈같은 곳이 아니다.
이런 벌레들이 언제든 너에게 기생하려고 하지.”
“뭐? 벌레? 기생? 푸하하! 이야 이거 재미있는 후배님께서 오셨네.”
쾅!
그는 거세게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려쳤고 음식이 튀어 올랐다.
“다시 말...”
푸욱!
그는 자신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내려다보니 젓가락이 자신의 손등을 뚫어 테이블에 박혀 있었다.
“끄아악!”
“이 새끼가!!”
옆에 있던 동료가 달려들어 그대로 주먹을 내뻗었지만 카심은 가볍게 의자를 뒤로 젖혀 피했다.
“어?”
크게 앞으로 몸이 휘청한 놈의 뒤통수를 잡고 그대로 젓가락이 박힌 손등에 내려찍었다.
“크헉!”
“으아아악!”
두 놈은 순식간에 피를 흘리며 바닥을 나뒹굴었고 주변은 조용해졌다.
로드리게스 역시 멍한 얼굴로 상황을 보고 있었다.
이곳에 오면서 봤던 멋진 왕국의 모습.
그리고 여기에 오자마자 겪은 이 상황.
그 갭 차이는 너무 컸다.
그때 카심은 쓰러진 두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새끼가 감히 우리가 누구인 줄 알아!?”
“카심.”
“뭐?”
“내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에 둘은 조금 당황스러워 하다가 웃었다.
“큭큭. 멍청한 새끼 넌 이제 죽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너를 찾아내서...”
“그러라고.”
사아악.
순식간에 주변 공기가 바뀌었다.
비웃음을 짓던 둘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갔다.
“그러라고 가르쳐 준 거다. 날 찾으라고.”
그리고 천천히 몸을 숙였고 둘은 내려오는 카심의 눈동자를 감히 마주치지도 못했다.
“또 내 앞에 나타나라고.”
다음 날.
카심은 아침 일찍 일어나 로드리게스 방문을 두드렸다.
“왔어!?”
로드리게스는 풀이 죽어 있을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의외로 의지가 넘쳐 흘렀다.
“바로 출발할 거다.”
“이미 준비했지!”
여관을 나와 길을 걸었다.
중앙으로는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고 사람이 다니는 길로 거니는데 너무 사람이 많아 움직임이 더뎠다.
“으, 사람이 너무 많아.”
“따라 와.”
카심이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다가 골목길로 향했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어느 길 쪽으로 빠져나오니 훨씬 사람이 줄어있었다.
그 길로 다시 향하다가 이번엔 오른쪽으로 골목 사이를 건너 나왔을 때는 더 사람이 없었다.
“... 와. 너 어떻게 이 길을 다 아는 거야?
역시 너 왕국 출신 유저였지?”
“마음대로 생각해.”
의심하는 눈빛을 무시하고 걸었다.
그런데 지름길로 왔음에도 한 참이나 걸었는데도 아직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이야?"
"그래."
로드리게스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이 왕국은 얼마나 큰 거야?”
“하루는 꼬박 걸어야 할 거다.”
“미친!”
“그래서 거기 주위 여관들의 경우 시설이 구려도 더럽게 비싸지.
뭐 어차피 오늘만 참아.
오늘 지나면 우리도 거기서 지낼 거니까.”
“헉. 진짜?”
“그래.”
남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곳.
하지만 카심에게 있어서는 집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하니걸음에 자연스레 속도가 붙었다.
그렇게 밤이 될 쯤, 이곳 수리에바 왕국의 아벨리우스 수정이 눈에 들어왔다.
“... 워.”
그것은 거대했다.
다른 곳에서 보던 것과는 수준이 다른 크기.
족히 10미터는 훌쩍 넘는 초거대 수정이었다.
<아벨리우스 시스템>
(수리에바)
[사냥터]
[던전]
“뭐해?”
“어? 어. 아니 너무 커서 주변도 그렇고.
사람도 엄청 많아서 신기해.”
로드리게스 말대로 왕국의 광장은 정말로 컸다.
그래서 이곳은 유저들의 커뮤니티나 다름없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꽤 많은 정보가 흐르고 동향을 살필 수도 있었다.
“파티 하실 분?”
“실력자만 모집합니다~”
“던전 도실 분~ 작업팀은 있습니다~”
밤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여기도바글거렸다.
리톰 영지나 자신의 영지에서 봤던 것과는 역시 비교도 되지 않았다.
당연히 유저들은 너무나 강해 보였다.
과연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다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로드리게스를 보며 카심은 어깨를 쳤다.
“어제 유명해질 수 있냐고 했지.”
“어? 하, 하하 역시 객기였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아니. 너 유명해질 거다.”
“...”
로드리게스는 놀란 얼굴로 보다가 웃었다.
가끔 보면 너무 무자비하고 매정하지만, 분명히 자기 사람에게는 정이 있었다.
괜히 리톰 영지에서 마리엘에게 그 큰 돈을 준 게 아니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하긴! 너랑 함께라면 유명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아니.”
“응?”
“내가 아니어도 너는 유명해졌을 거다.
적어도 이 왕국을 흔들 만큼.”
카심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
지금 눈빛 역시 그저 자신을 위로해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리고 카심은 가슴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라.”
로드리게스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몰랐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이토록 기분 좋은 일인지.
그리고 그게 꼭 받고 싶은 이에게 받으니 정말로 가슴에 무언가로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
천공의 섬.
사냥터 중 하나로 천공의 섬이라고 해서 진짜로 하늘을 나는 섬이 아니다.
정말로 어마 무시한 높이를 지닌 산이다.
어떻게 여기에 올라왔는지 신기할 따름인 사냥터지만 이곳은 꽤 인기 있었다.
그리폰.
무려 그리폰이 나오는 사냥터였다.
그리폰은 가죽부터 뼈와 이빨은 물론 깃털까지 고급 재료중 하나였다.
물론 그리폰만 있는 게 아니었는데 이곳에 나오는 비행형 몬스터는 대부분 꽤 값비싸게 팔린다.
그래서 인기가 많아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여기 딱 보아도 어려운 사냥터 같은데... 여기서 우리가 사냥을 어떻게 해?”
“아니.”
“응? 그럼 왜 온 거야?”
“너 고소공포증은?”
“그게 뭐야?”
“모르면 됐다.”
카심은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꽤 많은 유저가 각자 공간에서 비행형 몬스터를 잡고 있었고 로드리게스는 그런 이들을 보며 감탄했다.
“와. 죄다 특화 레벨이 5 이상이네.
이제 겨우 레벨 4가 되었는데 역시 여기는 장난아니구나.”
로드리게스는 지나가면서 싸우는 유저들의 수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들도 왕국에서 이름도 내밀지 못하는 이들인데 정말로 움직임이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얼마 전에 싸웠던 격투가가 훨씬 강하긴 했지만.
구경하다가 카심이 이상한 곳으로 향하고 있으니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뭘 찾는 건데?”
카심은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계속 둘러보고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땅을 살폈다.
그리고는 뭔가를 찾은 듯 다시 계속 걸었는데 그 움직임이 한눈에 보아도 이상했다.
직선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틀었고 다시 오른쪽으로 가는 등 이리저리 방향을 비틀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낭떠러지였다.
“여기군.”
밑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이곳은 높았다.
그래서 앞으로 펼쳐진 풍경은 정말로 환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끝없이펼쳐진 대륙. 그리고 왼쪽으로는 아주 멀리 바다도 보였다.
오른쪽에는 큰 산맥 하나가 있기도 했는데 소름이 돋는 것은 그토록 먼 곳인데도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는 점이다.
얼마나 큰 몬스터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와... 진짜 장난 아니다.”
잠시 로드리게스가 감탄하는 사이에 카심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는데 이곳 근처에는 몬스터가 없다 보니 유저가 보이지 않았다.
저쯤에 보이는 곳이 있긴 했지만 몬스터 사냥으로 바쁜 상황이었다.
“가자.”
“응? 어딜?”
고개를 까딱하는 순간 로드리게스의 눈이 진동했다.
“어, 어? 서, 설마 이 아래? 에이, 농담이이이으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