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7. 수리에바 왕국(3)
“어, 어? 서, 설마 이 아래? 에이, 농담이이이으아아아아아악!!!”
카심은 말하고 있는 로드리게스의 갑옷을 잡고 그대로 뛰어내렸고 두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하강했다.
저 밑에 보이는 바닥에 떨어지려면 최소 몇 시간은 떨어져야 할 정도로 이곳은 높은 산이었다.
“꽉 잡아라. 놓치면 너 그대로 죽음이야.”
그 말에 로드리게스는 다급하게 카심의 등에 달라붙어 온 힘을 주었다.
꽈아악!
“커헉! 적당히 힘 빼!”
그러거나 말거나 로드리게스는 겁에 질려 듣지도 않았기에 카심은 어쩔 수 없이 마력을 끌어 올려 버텼다.
지금 자신의 능력치로는 로드리게스의 힘을 이겨내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그 덕분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금 곤란해졌지만, 마력을 끌어 올려 로드리게스의 힘을 버티며 몸을 비틀어 방향을 틀었다.
떨어져 내리는 절벽으로 점차 가까워졌다.
그리고 제법 지났을 때 절벽 아래에 피어난 나무가 보였다.
그 순간 들고 있던 창을 벽에 박았다.
콰드드드득!!!
엄청난 충격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로드리게스 때문에 쓰고 있는 마력이 순식간에 사라져갈 정도로 충격이 강했다.
“크윽!”
예상보다 충격이 더 커서 조금은 위기감을 느끼려던 찰나 다행히 완벽한 육체로 인해 버티면서 점차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후우.”
마침 완전히 멈췄을 때 아직도 매달려 있는 로드리게스를 보며 말했다.
“더럽게 아프니까 그만 힘 풀고 빨리 안으로 들어가.”
“어, 어?”
그때야 로드리게스는 살며시 눈을 떴는데 자신의 앞에 동굴 하나를 보고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래를 보고는 히익 하며 다시 힘을 주었다.
“커헉! 들어가라고 인마!”
결국, 소리치고 나서야 엉거주춤 들어갔고 카심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창을 뽑았는데 완전히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너, 무기가...”
“괜찮다. 가자.”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던전이야?”
“아니. 사냥터.”
“사냥터?”
카심은 한 번 더 말했다.
“숨겨진 사냥터.”
“... 수, 숨겨진 사냥터?”
“그럼 등록 가능한 사냥터야?”
“아니 말 그대로 숨겨진 사냥터다.
천공의 섬 안의 사냥터라는 셈이지.”
사냥터에도 이렇게 특별한 위치에 숨겨져 있는 곳이 있었다.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기에 몬스터는 무수히 많았고 가끔 신비한 광물이나 재료는 물론 아티팩트도 얻을 수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신기하다는 듯 동굴 안으로 들어가다 나온 아주 큰 동굴의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
“... 뭐, 뭐야 여기는.”
천장까지 훌쩍 넘을 정도로 높았으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이도 엄청났다.
무엇보다 안에는 또 다른 자연이었다.
여기저기 바위 사이에 자란 독특한 형태의 식생들. 그리고 저 구석에 보이는 거의 호수 수준의 물까지.
“잊혀진 사냥터.”
로드리게스는 도대체 이런 곳을 어떻게 알았냐고도 이제 묻지 않았다.
이제는 그냥 마냥 신기해할 뿐이었다.
“잠깐, 그런데 너 무기도 없잖아.”
“애당초 여기서 우리가 사냥이 가능하다고 보여?”
로드리게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벽을 타고 다니는 10미터 수준의 지네.
5미터는 되어 보이는 괴상한 벌레.
2미터~ 3미터도 있었지만, 온몸에 가시가 돋아나 있는 등 하나 같이 생김새가 정말로 기상천외했다.
“그러면 어떻게...?”
카심은 무한의 가방에서 자루 하나를 꺼냈다.
“뭐야?”
“독.”
“헉! 독? 어떻게 구한 거야.”
사실 이곳에서 독은 구하기가 꽤 어려웠다.
이세계에서 독은 꽤 엄격하게 관리하는 물품으로 특수한 목적이 아닌 이상 소지하고 있으면 불법이었다.
대게 독을 사용하는 것은 의학적 혹은 암살 시도 외엔 없기 때문이다.
유저들의 경우 독으로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피부에 닿는 독을 던지면 전리품이 상하게 되고 내부에서 먹는 방식의 독의 경우에는 특수한 조건이 붙지 않는 이상 몬스터가 먹어주지 않았다.
후각도 예민한 놈들이라 음식에 독을 뿌리면 먹지도 않았고 설사 먹는다 하더라도 내부에서부터 망가뜨리니 전리품의 기능이 손실된다.
물에 뿌려서 물속에 사는 몬스터를 대량으로 죽인다고 하더라도 능력치가 오르는 게 아니었으니 더더욱 유저는 독을 쓰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수준이 높은 몬스터에게는 웬만한 독도 통하지 않으니 구하기도 어려운 독을 굳이 몬스터 사냥이 쓸 이유가 없었다.
“독으로 해봤자 전리품은 얻을 수 없잖아.”
“아무래도 줄어들긴 하지.”
카심은 그 자루를 어깨에 걸치고는 특화를 사용하자 등 뒤로 초록빛이 솟아올랐다.
입구는 바닥에서부터 약 30미터 높이에 있었다.
“갔다 오마.”
그 말과 함께 가볍게 뛰어내렸고 빠르게 낙하했다.
낙하하면서 주변을 빠르게 살피며 몬스터의 위치를 보았다.
그리고 땅에 닿는 순간 앞으로 튀어나갔다.
파바바바박!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기척을 느끼자마자 사방에서 달려왔다.
오랜 동굴 생활로 감각이 워낙 발달해 먼 곳에서조차 인식하고 모였다.
그 수가 순식간에 200마리는 훌쩍 넘겼다.
다리 수가 많아서인지 속도도 상당했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스피드 강화인데도 그 속도를 따라오고 있었다.
살짝 뒤를 보았다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정면에서 튀어나온 지네가 갑자기 등에서 촉수가 튀어나오더니 공격했다.
다섯 개의 촉수가 위에서 내려오는 순간 방향을 틀어 순식간에 피하고는 지나쳐 크게 오른쪽으로 돌았다.
큰 기둥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을 밟고 뛰어올라 방향을 전환하고는 빠르게 달렸다.
피슝!
이번엔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벽에 붙어 있던 온몸에 가시가 난 몬스터가 가시를 쏜 것이다.
피슈슈슈슝!!!
그것을 시작으로 수십여 개가 날아오자 뛰어올라 피했다.
그런데 위로 바위 같은 무언가가 내려왔다.
콰앙!
5미터나 되는 거대한 사족 보행 몬스터의 꼬리였다.
다리 사이를 빠르게 지나치며 마침내 호수 앞까지 도착했다.
콰직! 콰직!
들고 있던 자루 안에 담긴 유리병을 발로 밟아 모조리 깼고 좋지 않은 냄새가 올라오며 자루가 축축해지자마자 바로 호수로 던졌다.
그런데 그 순간 호수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그것을 낚아챘다.
촤아악!
무려 6미터는 훌쩍 넘는 거대한 몬스터였는데 이빨이 살벌할 정도로 솟아올라 있었다.
“... 맛있게 먹어라.”
자루를 낚아채고 떨어진 곳을 주위로 빠르게 그 색이 변하기 시작했고 카심은 뒤로 돌아보았다.
“후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몬스터가 못해도 400마리는 넘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 자루도 없기에 조금 더 속도를 올려도 상관없었다.
화아악.
그의 몸에서 다시 한번 초록빛이 터져 나오며 몸속에서는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쪽이 벽과 가까웠던 탓에 왼쪽으로 몸을 틀고는 달렸다.
파아앗!!
무서운 속도로 왼쪽으로 달려나가자 다가오던 몬스터는 다급히 방향을 전환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리 제대로 따라오지도 못했고 그나마 왼쪽에 있던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슈아악!
그러나 그 사이를 순식간에 지나쳐가더니 이내 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와!”
그 모습을 보던 로드리게스는 그 속도와 과감한 움직임에 감탄했다.
벽을 타고 쭈욱 달리다가 뛰어올라 아까 밟았던 기둥을 발판 삼아 한 번 더 크게 공중에서 이동하고는 착지하며 순식간에 다시 로드리게스가 있던 곳에 도착했다.
“후우.”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배고프니 챙겨온 음식이나 좀 먹자.”
“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래.”
이곳에서 구경만 하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 말대로 3일이 지났을 때 로드리게스는 소리치고 있었다.
“빨강아 죽여! 죽이라고! 으아!!”
“뭐하냐?”
“아니. 내가 응원하는 빨강이 있는데 두 놈 잡더니 결국 지쳐서 죽었어.”
안은 지금완전히 생태계가 파괴된 상태였다.
카심이 뿌려 놓은 독으로 인해 그것을 먹고 이상해진 몬스터는 점점 이상해지더니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카심도 저렇게까지 심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그저 독을 먹고 오랫동안 물을 못 먹으면 지쳐서 죽을 거라 생각했지 자기들끼리 싸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어쩌면 독의 영향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새 카심도 구경하기 시작했다.
“오오. 이겨라!”
“내가 이길 거 같은데?”
“아닐 걸? 제발! 죽여어! 아싸!”
“...”
“카심이가 생각보다 눈이 별로네 하하하하!”
은근히 로드리게스는 얄미웠다.
“육포 내놔.”
“한번 더 하자. 난 이번에 저 놈.”
“난... 음 쟤가 좋겠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을 때 로드리게스의 얼굴빛이 어두워져 있었다.
“...”
배에서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저, 저기 카심. 하나만...”
“그러게 보는 눈을 길렀어야지.”
“...”
로드리게스는 처음 이후 전부 다 져버린 것이다.
우울해하는 로드리게스를 보며 결국 웃으며 육포를 주자 거지처럼 허겁지겁 받아서 먹었다.
“헉, 헉. 역시 도박은 하는 게 아니야.”
“이제 슬슬 움직여도 될 거 같다.”
다른 몬스터는 뒤쪽에 한 곳 더 있는 물 쪽으로 이동해서 앞에는 이제 움직이는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조심해.
생명력이 질긴 놈들은 갑자기 공격할 수 있으니.
혹여나 꿈틀거리면 칼로 한 번 쑤시고 해.”
“알았어.”
그렇게 내려온 두 사람은 앞에 놓여 있는 약 500마리는 되는 몬스터 시체를 보았다.
카심은 그것을 보며 아쉬워했다.
“이게 게임이면 내 경험치가 올랐겠지.”
“어?”
몬스터 한 마리를 잡고있는 로드리게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놈의 경우에는 이마에 난 뿔은 쓸 수 있다고.
그러니 너는 이 몬스터의 이 뿔만 뽑아.”
“알았어.”
“아직 독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라.”
그 작업만 무려 일주일이 걸렸고 땀을 닦으며 족히 5자루나 되는 곳에 모든 전리품을 쓸어 담았다.
“후아. 끝난 거 같은데?
그래도 500마리인데 이 정도면 작다.”
“아무것도 안 하고 얻은 것 치고는 엄청 많은 거지.”
“그건 그래.”
모조리 챙기고 로그아웃을 통해 로드리게스가 간 이후에 잠시 카심은 옆을 보았다.
저쪽 끝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
바로 이곳에 있는 필드 보스로 당장은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미련 없이 나와야 햇다.
“로그아웃.”
***
짤랑거리는 돈주머니를 들고 로드리게스는 흥겨움이 가득했다.
“전리품만으로 90골드나 나오다니.”
“우선은 이 돈으로 우리 둘 다 조금 쓸만한 장비를 갖춰야 한다.”
“저기 어때? 사람 엄청 많아.”
-레드 스케일-
꽤 유명한 가게였다.
“비싸다. 쓸데없이 비싸기도 하고.”
카심은 다음 골목에 있는 가게로 향했다.
-브라몬드-
이곳 역시 꽤 좋아 보이는 가게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도 꽤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건물 내의 디자인도 상당했다.
흔히 판타지 세계를 떠올리면 볼 수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 정말로 세련되어 있었다.
“오. 여기도 비싸 보이는데?”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그렇게 품질은 좋지 않지만 지금 우리 돈으로 나쁘지 않은 상태로 맞출 수 있지.”
로드리게스에게 30골드를 주었다.
“알아서 맞춰.”
“헉, 30골드나 주는 거야?”
“웬만하면 아끼지 마라.”
로드리게스는 신나서 돌아다녔고 카심은 2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