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7. 수리에바 왕국(5)
그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티티팅티잉!
카심의 창이 빠르게 실드를 때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검은 구체가 전방과 옆에서 날아와 몸을 틀어 가볍게 피하고는 다시 실드를 가격했다.
티팅! 티티티팅!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는 창에 광신도 몬스터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아무리 단단한 실드 속에 있다지만 앞에서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엄청난 속도로 창을 찔러 오니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 것이다.
심지어 창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이내 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쉴 새 없이 실드를 때리더니 결국 균열이 가면서 쩌적 소리와 함께 깨졌다.
“!!”
광신도는 실드가 깨지자마자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어느새 자신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빛으로 변하더니 붉은색 수정구로 변해 굴러 카심의 발에 닿았다.
그것을 줍고는 옆을 돌아보니 로드리게스는 아직 열심히 사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상태>
근력: 43
체력: 45
마력:38
특화: 스피드 강화 Lv 5
특성: [완벽한 육체] [미지의 힘]
한 달 사이에 제법 오르긴 했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목적으로 온 것이니 감지덕지하며 로드리게스를 보았다.
“허억, 헉.”
이곳의 사냥터는 인간형이었기에 지능이 좋아서 로드리게스는 굉장히 힘들어했다.
같은 몬스터라고 해서 전부다 같은 움직임이 아니었다.
걔 중에는 훨씬 뛰어난 움직임을 보이는 놈도 있었는데 로드리게스의 힘을 느끼고는 갑자기 움직임을 바꾸기도 했다.
“주, 죽을 뻔했다.”
“대신 좋은 경험이 되었을 거다.
한 달 정도 했으니 슬슬 움직이자.”
“으으, 한 달이나 있었더니 지겹긴 해.”
카심이 움직이자 로드리게스가 따라가려는데 방향이 이상했다.
“어? 우리 반대쪽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아니.”
“뭐야 어디 가는데?”
“방패 하나 구하러.”
***
던전 보스는 보통 한 달 주기로 리셋이 된다.
이것 때문에 길드 사이에서는 던전을 확보하기 위해 제법 치열하게 싸우기도 했다.
부패한 신전을 독식하고 있는 길드는 푸른 사냥꾼이라는 길드였다.
3대 길드에 비하면 약하다 할 수 있지만 이곳 말고도 또 다른 던전을 독식하고 있을 정도로 왕국에서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강한 길드였다.
그리고 오늘.
부패하는 신전의 보스가 나오는 날이었다.
이 시간이 되면 근처에서 사냥하던 유저들은 모두 구경하기 바빴다.
100명 정도 마지막 보스가 나오는 제단 구역 입구에서 구경하고 있었고 제단 앞쪽에는 30명 정도 되는 푸른 사냥꾼 길드가 있었다.
“저기 보이는 푸른색 검을들고 있는 놈.”
“가운데?”
“잘 봐라.”
로드리게스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찾았다.
어깨까지 머리를 기른 사내로 큰 덩치는 아니지만, 그들 중에서 단연코 눈에 띄었다.
이 멀리서도 느껴지는 존재감에, 가르쳐주지 않아도 눈길이 갔을 것이다.
-오오... 신세계의 신이시여 영생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던전 전체를 울리는 목소리.
제단 위에 붉은색 로브를 입은 이가 손을 하늘로 내뻗으며 나타났다.
그리고 그 주위로 수백 마리 광신도가 나타났다.
쿠웅! 쿠웅!
광신도는 일제히 발을 내려찍으며 괴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어어어
그 소리와 행동은 섬뜩하기 그지없었기에 로드리게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몬스터가 내뿜는 기운은 굉장히 불쾌하기도 했다.
그 순간 로드리게스는 눈 앞에 떠오르는 창에 놀랐다.
<아벨리우스 시스템>
광신도 교주의 아우라에 닿았습니다.
신도가 아닐 경우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능력치 감소 : 10%
“뭐, 뭐야 이거.”
“앞으로 저런 몬스터도 종종 만나게 될 거다.”
“... 무서워.”
로드리게스는 고개를 젓고 있을 때 카심도 눈앞에 뜬 창을 바라보았다.
<아벨리우스 시스템>
광신도 교주의 아우라에 닿았습니다.
신도가 아닐 경우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미지의 힘]에 의해 저항합니다.
능력치 감소 : 5%
마력 수치가 낫기 때문에 반 정도밖에 저항하지 못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창을 없애고 시선을 다시 앞으로 주었다.
푸른 사냥꾼의 바벨리스.
그는 이전 삶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린 인물로 실제, 같이 사냥한 적도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그의 이능.
화아악!
그의 어마어마한 기세가 사방으로 터져나가더니 뒤쪽에 구경하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위로 향했다.
위에는 족히 5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검의 형태인 붉은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건... 뭐여.”
로드리게스는 입을 벌린 채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 거대한 붉은빛 검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 주변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파괴력과 그로 인해 일어난 충격파에 로드리게스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다시 보았다.
“...”
100여마리가 넘던 신도가 반 토막이 났으며 제단은 완전히 박살 난 상태였다.
“카심.”
“어.”
“진짜 스펙빨로 밀어붙여도 되는 거... 맞지?”
이제야 진짜 왕국의 수준을 본 로드리게스는 다시 자신감을 잃어갔지만 이어지는 전투에 넋을 놓았다.
보스의 전투력은 대단했다.
검은 구체가 아닌 붉은 구체를 날리는데 그 크기도 5배는 컸다.
닿거나 혹은 터질 때마다 아찔할 정도로 큰 폭발이 일어나서 주변에만 있어도 몸이 터져버렸다.
그럼에도 푸른 사냥꾼 길드는 지금 한 명 빼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그들은 벽을 타고 오르거나 뛰어내렸고 여기저기 움직이며 한 번에 사방에서 보스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사방에서 특화 레벨 7이 넘긴 이들의 이능이 날아 들어와 공격했는데 보스의 실드는 무려 10미터에 이르렀고 그 단단함은 광신도와는 비교 불가였다.
콰쾅! 쿠우웅! 파지직!
보스 구역뿐만 아니라 주변 구역까지 진동을 줄 정도로 전투는 치열했다.
로드리게스는 아까 이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입도 다물지 못한 상태였다.
반면에 카심은 팔짱을 끼고 바벨리스의 움직임을 살폈다.
“사냥에 특화된 움직임이라 딱히 어려울 거 같지는 않네. 그건 그렇고...”
보스의 실드가 점점 흔들리는 게 보여서 로드리게스의 어깨를 쳤다.
“가자.”
“어, 어? 어디를? 저거 안 봐?”
“곧 끝날 거다.
그리고 지금까지 봤으면 충분해.
저 정도 수준이면 왕국 내에서 명함 정도는 내민다고 보면 된다.”
“저게... 명함 정도야?”
로드리게스는 질색하며 카심의 뒤를 따라갔고 어느 한 구역에 도착해 주변을 살폈다.
보스 레이드를 구경하러 가서 주변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빠르게 벽을 바라보다가 다시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위를 살폈다.
“뭐 하는 건데?”
“흔적 찾는다.”
“흔적?”
“그래. 이쯤이었던 거 같은데.”
카심은 석상을 살피다가 옆에 있는 부서진 기둥을 보았다.
“로드리게스 이 기둥 조금 더 부숴 봐.”
“어, 알았어.”
온 힘을 다해 검으로 내려쳐 부서진 기둥을 더욱 부쉈다.
“한 번 더.”
쿠웅!
완전히 박살 난 기둥의 바닥을 치우던 카심은 말했다.
“찾았다.”
“뭔데?”
그리고는 다시 뒤쪽 벽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손으로 만지더니 무언가를 툭 쳤는데 갑자기 벽이 돌아가며 문이 생겼다.
“헉!”
“가자.”
로드리게스는 화들짝 놀라며 들어가는 카심의 뒤를 따라갔고 두 사람이 들어가자마자 문이 다시 닫혔다.
“여, 여기는 어디야?”
“숨겨진 장소.”
“... 아까 같은 보스급 몬스터가 나오는 건 아니지?”
“아니다. 그랬다면 오지도 않았겠지.
나도 아직 잡지 못하는 건데.”
“헐.”
“왜?”
“아니 그냥 너라면 뭐든 다 잡을 거 같아서.”
카심은 피식 웃고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좁은 통로를 지나고 계단이 나와 올라가니 부패한 신전 한 구역의 반만 한 장소가 나왔다.
이곳은 부패한 신전처럼 기분 나쁜 느낌이 아닌 오히려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어? 제단이 있어.”
이곳에는 초로색으로 만들어진 제단 하나가 있었다.
그곳으로 걸어간 카심은 로드리게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방패 줘봐.”
“어? 방패는 왜.”
“좋은 거로 바꿔 줄게.”
로드리게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카심의 말이라면딱히 의심하지 않았기에 건네주었다.
방패를 받은 카심은 제단 위에 올렸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제단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방패를 휘감았다.
“어, 어어. 뭐야!”
로드리게스는 놀라 호들갑을 떨었고 카심은 가만히지켜보았다.
빛은 점차 방패를 휘감았고 제단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비하고도 황홀한 현상에 로드리게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방패도 내려왔다.
방패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삼각형이었지만 양쪽 끝은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었고 면이 굉장히 매끄러웠다.
은색이었는데 단순히 은색이 아닌 성스러운 느낌을 날 정도로 깔끔했다.
거기다 독특한 붉은색 문양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카심은 방패를 집었다.
[어둠을 밝히는 빛]
30% 충격을 흡수.
몬스터 능력치 저하.
실드 생성.
“받아라.”
로드리게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놀란 얼굴로 방패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서는 손까지 떨었다.
“이, 이거... 내꺼야?”
아티팩트의 성능이 심상치 않았다.
로드리게스라도 이게 얼마나 좋은 성능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등급으로 따진다면 유니크 급일 거다.”
“유, 유니크 급 아티팩트.”
유니크 급 아티팩트는 최소 1만 골드부터 시작된다.
1천 골드면 리톰 영지 1년을 운영할 수 있었는데 이 아티팩트 만으로 리톰 영지를 살 수도 있었기에 로드리게스는 갑자기 두 손으로 방패를 들었다.
“뭐해?”
“생채기도 나면 안 될 거 같아서... 비 내리면 비도 맞으면 안 되니까 내가 몸으로 감싸야 할 것만 같아.”
“... 로그아웃이나 해라.”
로그아웃하려던 순간 로드리게스는 무언가를 보았다.
“카심. 여기 이거 뭐야. 이상한 글이 있는데 시스템으로 떠.”
카심은 로그아웃을 멈추고 제단을 살폈다.
정말로 아래쪽에는 문구가 있었고 손을 올리니 떠올랐다.
[성기사의 제단]
신이시여 부디 이 세계를 구원해주소서.
“별거 없네. 로그아웃 해.”
왕국으로 돌아온 카심는 나오는 로드리게스를 보았는데 한숨을 절로 내쉬었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면서 괜찮은 척하는 모습이, 대놓고 이 방패는 비싸고 귀중한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카심은 잡화점을 들러 필요 도구를 더 샀고 식료품점에 들러 식량도 다시 채워 넣고 바로 움직였다.
도착한 곳은 또 아벨리우스 수정이었다.
“잠깐만. 설마 또 가는 거야?”
“아까 못 봤어?”
왕국 유저의 수준.
로드리게스는 그것을 확실히 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곳에 와서 여관은 첫날 딱 하루밖에 지내지 않았다.
심지어 부패한 신전에서 한 달 동안도 꽤나 강행군이었다.
“그, 그래도 조금은 제대로 된 곳에서 잠을...”
볼멘소리하는 로드리게스를 보며 카심은 단호하게 말했다.
“니 수준에 잠이 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