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8. 아타락시아 사건(4)
궁금했다.
이번엔 어떤 변수들이 작용할지.
***
최근 로드리게스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일은 방패를 닦는 것이었다.
“아우 때깔 봐.”
워낙 좋은 아티팩트였기에 눈에서는 꿀이 떨어졌고 잘 때도 같이 잘 정도로 아꼈다.
“빨리 사냥 가고 싶다. 사냥 안 가?”
“그토록 쉬자던 놈이.”
“너무 사냥만 하다가 또 막상 며칠 쉬니까 아쉬워서 그렇지.”
“지금 당장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은 없다.
혹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굳이 그러고 싶다면 가고.”
카심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할 정도면 정말로 어려운 곳이었기에 로드리게스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아, 하하. 아니야. 쉴 수 있을 때 쉬어야지!”
카심은 책을 덮고는 일어났다.
“가자.”
“어, 어? 아니 괜찮다니까.”
“밥 먹자고.”
“아!”
방문을 나가자 로드리게스가 다급히 뒤따랐다.
1층 테이블에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자연스레 주변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들었어? 슈퍼 루키 소문.”
“그럼. 나도 직접 확인해봤는데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다른 곳은 그렇다고 쳐도 캐슈람 미로는 도대체 어떻게 클리어 했을까?
거기는 영웅 길드가 도전해도 실패했던 곳이잖아.”
“거기뿐이겠냐?
최근에 나온 던전이긴해도 죽지 않는 마을도 꽤 어렵다고 소문나서 스톤 길드나 나락 길드가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다고.”
“신기하네.
뭐 거기가 몬스터가 강한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던전이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밥을 먹고 있다가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로드리게스는 한쪽 귀를 팔랑거리고 있었다.
“좋냐?”
“으흐흐.”
그토록 원하던 관심을 받고 있으니 로드리게스는 밥을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물론 카심도 주변 테이블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마침 듣고 싶은 것을 들었다.
“너 요즘 흉흉한 소문 도는 거 알지?”
“아타락시아?”
“씨발 그것 때문에 우리 길드 난리도 아니다. 조심하라고.”
“너희도? 우리도 그래. 뭔가 심상치 않다.
왕국 쪽에서도 움직이고 있데.”
그들은 구석에서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카심은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소문을 일부러 풀었군.”
원래는 대형 길드 사이에서만 은은하게 돌던 소문이 이제 저들이 알 정도면 빠르게 움직여 이제 왕국 전체에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의도가 보였다.
원래는 부랑자 길드를 제거하려는 아레스 길드에 덮어씌우는 계획을 막았으니 일부러 소문을 풀어 크게 상황을 만든 다음에 또 다시 아레스 길드를 노릴 것이다.
영웅 길드와 드래고니안이 주도하는 게 맞다면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에서 아레스 길드에 무슨 짓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
그런데 문득 정말 아레스길드일까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영웅과 드래고니안이 아닌 또 다른 놈들이라면, 그저 혼란을 줄 목적으로는 다른 쪽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떠올랐다.
“잠깐, 만약에 그대로 아레스 길드로 간다면... 이번에도 역사에 대해 아는 놈들과 연관이 있을까?”
사실 이전 삶에서도 영웅과 드래고니안 길드가 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었다.
당시에도 시간이 꽤 지난 후에도 들려오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아레스 길드가 아닌 세 곳 중 하나를 노린 것일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움직이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아레스 길드가 몰린다면...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은 그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헉!”
“왜?”
“리, 리게릭이야.”
“헙!”
리게릭의 등장에 한순간에 웅성거렸다.
아레스 길드 간부가 이곳에 왜 왔을까 궁금하던 순간 그는 성큼성큼 걸어 한 테이블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도 되겠나?”
음식을 먹고 있던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리게릭을 보았다.
“앉으세요.”
전혀 놀라지 않는 카심의 모습에 리게릭은 가볍게 끄덕이며자리에 앉았다.
리게릭을 모르는 로드리게스는조심스레 카심에게 물었다.
“누구야...?”
“아레스 길드 간부.”
“아~... 어? 뭐라고!?”
너무 놀라 소리치는 바람에 리게릭을 보지 못했던 이들까지 시선이 쏠렸다.
그 덕분에 모든 시선이 쏠려 리게릭과 마주하는 카심과 로드리게스를 궁금해했다.
리게릭은 자리를 앉으며 카심을 보았다.
“딸에게 물어보니 자네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군.”
“다행이네요.”
“거기다가 개인적으로도 알아보니 대단한 일도 벌였어.
설마 우리 길드도 못 깬 캐슈람의 미로를 클리어했다니”
카심은 어깨를 으쓱이며 빵을 하나 집어 먹었고 주위에서는 카심과 로드리게스라는 말에 웅성거렸다.
“묻고 싶은 게 많아.”
“말씀하세요.”
“여기서 해도 괜찮은가?”
“저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불편하시면 옮겨드릴 수는 있습니다.”
“부탁하지.”
상황이 상황이긴 했지만, 그때와 달리 굉장히 정중했다.
리게릭과 함께 방으로 돌아와 창문 앞 테이블에 앉았다.
“흐음, 먼저 어떻게 그 던전들을 클리어 했는지 궁금하군.
특히 캐슈람의 미로는 우리도 도전했다가 실패한 곳이라서 길드에서도 꽤 관심이 많아.
죽지 않는 마을 역시 스톤 길드와 푸른 사냥꾼 길드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었지.
그런 곳을 자네는 며칠 만에 모조리 클리어해버렸어.”
“운이 좋았습니다.”
무신경한 말과 표정만 보아도 리게릭은 말하지 않겠다는것을 알았다.
“좋아. 그것은 자네 개인적인 것이니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지.
하지만 전에 말했던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아타락시아에 관한 거 말입니까?”
리게릭은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는 부랑자 길드를 공격하면 그것을 이용해 우리 길드를 노린다고 말했지.
당시 아타락시아에 관한 소문도 아직 널리 알려지기 전인데 알고 있었어.”
리게릭의 예리한 질문에 카심은 가볍게 끄덕였다.
오히려 로드리게스가 불안한 표정으로 카심을 바라보았다.
말은 끝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은... 미리 알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눈빛이 날카로웠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경계할만했다.
지금 카심은 영웅이나 드래고니안 혹은 어떠한 비밀스러운 단체의 인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도우려 행동했으니 혼란스러울 것이다.
“마음대로 생각해도 됩니다.
어떠한 이유로 정보를 얻었고 그대로 두었을 때 아레스 길드는 공격을 받게 되면서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오나와 친분이 있으니 그냥 볼 수 없었습니다.”
평소 카심에게서 볼 수 없던 말투와 행동이었지만 그 덕분에 리게릭의 경계심이 확 줄어들었다.
딸에 대한 영향도 분명히 컸다.
사실 카심의 입장에서 리게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놈들은 아레스 길드를 노릴 것이고 그때 도우려면 이런관계가 필요했기에 적절한 거짓을 섞었다.
“그건 그렇고 그 이후 마치 의도적으로 소문이 풀린 거 같은데 혹 아레스 길드 쪽에서는 알아내신 게 있으신지?”
“안 그래도 이 움직임에 나도 조금은 의심을 품고 있다네.
정말로 우리 길드를 노린다면 머지 않아 어떠한 수를 쓰겠지.
그래서 지금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
“영웅이나 드래고니안 쪽에서는 움직임이 어떻습니까.”
“주시하고 있지만 대놓고 할 수 없어.
의심한다고 그들도 반응을 보일 테니.”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을 텐데요.”
리게릭은 고개를 저었다.
“후우, 없네. 정말로 특별한 움직임을 찾을 수가 없어.”
“그렇다면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겠군요.”
“대비하고 있네.”
“저 역시 도와드리겠습니다.
혹시 리오나도 부를 수 있습니까?”
“리오나를?”
“아무래도 리게릭님께 계속 연락을 주기보다 리오나를 통하는 게 편하고 빠를 테니까요.”
만약 카심이 그 짧은 시간에 3개의 던전 클리어라는 압도적인 전적이 없었다면 리게릭은 미친놈 취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업적과 동시에 미리 알고 있던 정보력 때문에 그 제안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 카심의 위치는 아레스 길드에게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었고 그 업적으로 인해 길드 내에서도 관심을 가지니 이렇게 친분을 만들어 훗날 길드 영입을 해야 하는 인재였다.
“내 그리 하지.
그렇지 않아도 리오나도 나오고 싶다더군. 곧 연락이 갈 것이야.
아 참. 부탁하나 해도 되겠나?”
“말씀하세요.”
“아마 자네가 굉장히 귀찮아질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움직이는데, 많은 제약이 있을 터.
그러니 조금 도움을 주고 싶은데.”
의도를 눈치 챘기에 카심은 피식 웃었다.
“그러시죠.”
“하하.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보지.”
리게릭이 나가고 카심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보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난 뭔 소린지도 모르겠다.”
“이거 막지 못하게 되면 꽤 큰 피를 흘리게 될 거다. 그 안에 우리 피도 있겠지.”
“... 우, 우리도?”
“그래. 리게릭은 우리를 아레스 길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식으로 소문을 낼 거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린 아레스 길드와 연관이 되는 거고 아레스 길드가 아타락시아와 관련있다고 확정이 되는 순간 우리 역시 공격 대상에 집어넣겠지.
지금 우리 수준으로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죽을 거다.”
동시에 아레스 길드와 연관이 있으니 다른 길드에서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헉! 그러면 안 되잖아.”
“괜찮다. 막으면 되니까.”
어차피 해야할 일이다.
막지 못하면 결국에 같은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을 막으면 분명히 아주 크게 비틀어질 것이다.
동시에 아주 크게 비틀어버릴 생각이었다.
***
며칠 지나지 않아 리오나가 도착했다.
“오빠! 오~ 로드리게스 오빠.
어때 내가 가르쳐준 거 했어?”
“야! 그거 이상한 거였잖아.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쪽팔렸는데!”
“푸하핫! 하긴 했구나.”
웃으며 로드리게스에게 장난을 치다가 카심에게 다가왔다.
“그나저나 진짜 오빠 미친 거 아냐?”
오랜만에 보자마자 하는 소리에 카심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보았다.
“아니 던전 클리어 세 곳이나 했다며?
진짜 아카데미에서도 혼자 클리어한 것도 쇼크지만 어떻게 왕국에서... 진짜 뭐야?
뭐하는 사람이야?
막 미래 알고 그런 거야?”
“그래. 너의 미래도 알고 있지.”
“헐! 진짜!?”
“너는 노처녀로 늙을 거다.”
“에이 그건 거짓말이다.”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 넘치는 자세에 카심은피식 웃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덕분에 예정에도 없던 한 달 휴가를 하게 생겼다고.”
“네 아빠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
리오나는 한순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아타락시아는 들었겠지?”
“대충.”
“아마 아레스 길드를 노리고 있을 거다.
그 빌미로 영웅과 드래고니안 길드는아레스 길드를 공격할 거고.”
“미친! 그럼 그 두 길드가 벌인 작전이야?”
“아직 몰라. 또 다른 곳일 수도 있지.
다른 곳이라면 아레스가 아닌 다른 길드를 노릴 수도 있지만 어떤 이유든 나오는 순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리오나는 더욱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혼란을 노리는 거네.
그럼 나는 뭘 하면 되는데?”
“중간 연결.
아레스 길드를 노린다면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오빠 말대로 다른 단체에서 다른 길드를 노리는 거라면?”
“그러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봐야겠지.”
어느새 분위기는 침울해져 있었다.
하지만 카심은 걱정 말라는 얼굴로 말했다.
“걱정 마라.
아마 아레스 길드를 노릴 거니까.”
“... 그게 좋은 소식인 거야 나쁜 소식인 거야?”
고민하던 카심은 어깨를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