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9. 전사의 탑(3)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원에 오르지 못한 이들은 자동으로 한 팀으로 묶이면서 관객석으로 이동되었다.
관객석에는 각 5명씩 뭉쳐 있었고 기회를 잡지 못한 이들은 랜덤으로 서로 배정되어 뭉쳐 있었다.
카심은 옆에 있는 이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이었다.
모두가 힘이 없고 자신 없는 이들.
“하하, 우리 열심히 해봅시다.”
“맞아요. 뭐 진짜 죽는 것도 아니고 7일 뒤에 다시 도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맞습니다 하하하.”
서로 힘내자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이미 반 포기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경기장으로 두 팀이 소환되었다.
다른 팀이 경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구경하다 보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그토록 지겨웠던 곳이지만 왠지 조금은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만, 확실히 층수가 낮으니 아직까지 수준은 떨어졌다.
물론 그중에서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나름 유명한 길드원과 뒤늦게 온 실력자들이었다.
혹은 1층에서 봤던 것처럼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던 실력자도 많았다.
거기다 이전 삶의 기억 속에서 보이던 인물도 보이기도 했다.
물론 특별한 인물은 아니었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카심의 팀 차례가 되었다.
“푸하하! 이거 완전 꽁승인데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조드.
그는 카심을 보고는 웃고 있었고 그의 팀에는 1층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 준 이도 있었다.
“헉, 저, 저 사람은...”
카심 팀원 중에 1층에서 같이 했던 이가 있었는지 그의 활약을 말해주었고 같은 팀원들의 표정은 더욱 암울해졌다.
이번 미션은 딱 한 팀만 이기면되는 것이라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누가 먼저 나갈래요?”
“매도 먼저 맞는 게...”
서로 이야기하는 사이 카심이 걸어 나갔다.
그들은 의아해하며 카심을 보았지만 그 누구도 말리지는 않았다.
그것을 보자마자 조드는 씩 웃으며 자신이 먼저 나왔다.
조드는 카심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히죽 웃었다.
“사람은 말입니다. 줄을 잘 서야 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나도 동감하는 말이다.”
눈 앞에 창이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줄을 잘 서는 것 역시 능력. 1층에서도 그랬듯, 저는 올라가고 당신은 떨어지겠죠.”
“병신.”
“뭐라구요?”
“그렇게 해서 올라가면 다음 층에는?”
“...”
“네 실력도 아닌데 올라가봐야 의미가 있나?”
“큭큭.”
조드는 웃더니 이내 특화를 사용했다.
레벨 6의 신체 강화.
“내가 못 올라가는 게 아니라... 조금 더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다.”
푹.
“...”
조드는 자신의 허벅지에 느껴지는 통증에 내려다보니 어느새 창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느껴지는 통증.
보이지도 않았다.
거기다 신체 강화임에도 뚫어버렸다.
공포에 질리려던 찰나 상대에게 보이는 초록빛 빛에 갸웃거려야 했다.
“스, 스피드 강화?”
그 순간 눈앞으로 뭔가 희미한 게 보인다 싶은 순간 조드의 몸이 빛으로 변하며 사라졌다.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우, 우아아!”
“잘한다!!”
“우리팀 이겨라!”
그러다 카심과 같이 된 팀은 소리쳤다.
처음 신체 강화 6인 것을 보면서 시작부터 망했구나 싶었지만 그런 상대를 아무렇지 않게 죽여버렸으니 흥분하지 않을 리 없었다.
카심은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사실 조드나 저들이나 다를 바 없는 입장이지만 적어도 같은 인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상대로는 그 인물이 걸어 나왔다.
“놀라워.
방금 속도는 제법이더군.
저층인데도 그 정도라면 머지않아 위층에서 만나겠지.
다만 오늘은 내가 먼저 올라가도록 하지.”
그 역시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그럴만한 실력을 지니고있었다.
그의 검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는 품에서 단검 다섯 개를 갑자기 공중으로 날렸다.
그런데 공중에 떠오른 단검은 다시 떨어지지 않고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레벨 7의 특화 이능이었다.
리게릭과는 흡사하지만 다른 이능.
그의 몸 주위를 마치 보호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특화의 레벨이 7 정도가 되면 40층까지는 운이 없더라도 언젠가는 무난하게 올라 갈 수 있었다.
그런 이를 이곳에서 만난 것은 그야말로 운이 없는 일이었기에 카심의 팀은 다시 한 번 침울해졌다.
카심의 등 뒤로 흐르던 거친 빛이 조금씩 안정적으로 변했다.
“호오. 7레벨인가?
스피드 강화는 무시하지만, 생각보다 좋은 특화지.
특히 대인전에서는.”
그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거센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진심으로 다하겠다는 의미였다.
그 안에는 자신이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도 가득했다.
카심은 가볍게 창을 돌리며 주위로 돌았는데 그는 여유롭게 먼저 공격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상대의 무기는 아티팩트로 보였다.
가죽옷을 입고 있었는데 역시 아티팩트인지 자세히 보면 주위로 묘한 물결무늬가 흘렀다.
공격을 흘리는 역할을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볍게 돌던 카심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간 상대는 놀랐지만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칼을 움직였다.
챙!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공격이지만 상대는 막아냈다.
그리고 떠도는 단검이 막아낸 카심을 향해 순식간에 쇄도했다.
슈아악!
다섯 개의 단검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것을 본 카심은 빠르게 빠졌다.
그의 주위로 도는 단검은 마치 기계같은 움직임이었다.
“네놈은 절대 뚫지 못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방어형태의 이능이라 보면 된다.
“이 이능은 공격할 땐 내 의지가 발현되어야 하지만 방어는 내 의지가 발현되지 않아도 되지. 대인전에서는 같은 무기 강화의 다른 이능 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특히 자신과 실력 차가 나는 이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였다.
아주 적은 운조차 없애주는 이능이었기에 그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실험해보고 싶었는데.”
카심은 그것을 보면서 오히려 흡족해했다.
그리고 다시 가볍게 움직였다.
파앗!
챙!
그렇게 시작된 공격은 날아오는 단검을 피해가며 더욱 빠르게 파고 들었다.
채챙! 카앙! 채채채앵! 카카캉! 채채채채채챙!
“...”
구경하고 있던 이들의 입이 벌어졌다.
그들은 이렇게까지 엄청난 전투를 본 적이 없었던 탓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허...”
“난 이제 안 보인다...”
“스피드 강화가... 저렇게 좋은 특화였어?”
카심의 빠름에 무시하고만 있던 스피드 강화 특화의 강력함에 특히 놀랐다.
“그래도 저 사람은 저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다고!”
하지만 그 말대로 엄청난 속도로 계속 주위를 돌며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는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른 공격에 어느새 표정엔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흐읍!”
그러다가 회심의 일격으로 공격을 시도했고 정확히 미간을 꿰뚫으려는 찰나 자신의 공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챙!
그리고뒤에서 울려퍼지는 막히는 소리에 고개를 휙 돌리는 순간 어느새 또 눈앞에 있는 창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뒤로 피해야 했다.
그러나 뒤로 뛰었는데 창은 똑같은 속도로 계속 따라왔다.
“큭!”
캉!
다급히 검을 휘둘러 창을 쳐내고는 단검으로 공격했다.
슈슉!
하지만 역시나 단검도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창에 다급히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려서 겨우 피해내고는 바로 무리하게 들어온 카심을 응징하기 위해 공격하려는데 분명히 위로 향했던 창이 다시 앞에 나타나자 숨이 멈춰질 정도로 놀랐다.
“헙!”
그 순간 날아온 다섯 개의 단검이 겨우 막아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급격히 떨리고 있었다.
빨랐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심지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채채채채챙! 카카카카캉! 채채채채채채채채챙!!!!!
“이, 이익!”
이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하물며 단검은 이미 한참전부터 고장난 것처럼 허공만 움직일 뿐이었다.
상대의 창은 마치 30개가 동시에 움직이는 게 환영처럼 보이더니 모든 게 동시에 사방에서 찔러 들어왔다.
채챙! 푹!! 채채채챙! 푸푹! 채채채채챙! 푸푸푹!
“크아아악!”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그는 이젠 움직이지도 못하고 괴성만 내질렀다.
특화: 스피드 강화 Lv 7
카심에게 생긴 이능은 가속도였다.
움직일수록 점점 더 빨라졌다.
그러나 카심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흘러나오던 마력이 더 폭발하기 시작하면서 잠시 창을 움직이지 않았고 도는 속도만 높였다.
안에 있던 그는 이제 경악했다.
갑자기 멈춘 카심이 자세를 취하는 순간 30개였던 창이 50개까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카심의 창이 움직였다.
푸푸푸푸푸푸푸푸푹!!!!!!!
“끄아아아악!!!”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처절한 비명.
그것은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공격이었다.
그리고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그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카심은 일부러 깊게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실험을 위함이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괜찮네. 다음에는 다른 방법을...”
그런데 장비가 찢어진 놈의 어깨 사이에 보이는 문신의 한 부분.
그것은 분명히 알고 있는 문양이었다.
손을 뻗어 조금 더 자세히 확인하려 했지만 결국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그는 죽으면서 빛으로 변했다.
“로그아웃!”
카심은 급히 로그아웃을 외쳤지만 대기방에서만 할 수 있다는 창이 떠올랐다.
당장 나가야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였기에 상대 팀을 보았다.
“지금부터... 기권하지 않으면 살점 하나하나 떼어주지.”
살벌한 멘트와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눈빛에 그들은 순식간에 기권했고, 다급히 로그아웃 했지만 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 그래도 수확은 있다.”
단체.
놈들이 정말로 역사를 아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떠한 목적을 지닌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알베이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단체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나와 같은 회귀자는 아니다. 신탁... 인가?”
규모는 어느정도 될 것인지도 궁금하면서 경계심이 생겼다.
알베이안이 맞다고 했을 때, 아레스 부 길드 마스터의 위치에도 심어져 있다면 다른 길드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과 싸우게 된다면 위험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싶은 순간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그들과 싸워야 하는 걸까?
자신은 그저 이곳으로 다시 보낸 것에 대한 사소한 복수로 역사를 바꾸려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으면서 왠지 재미있을 거 같아서 더 크게 비틀어버렸다.
그저 기존의 역사대로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
즉, 그들과 딱히 대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전사의 탑으로 들어가 탑을 보았다.
99층.
자신의 목적은 저곳이었다.
이제 역사가 다시 본래대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궁금했다.
이전 삶에서 본 적 없던 역사를 알던 단체.
무엇보다 프레드릭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레온.
동시에 앞으로 더 변하게 될 힘.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다시 전사의 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