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10. 동상이몽(3)
참으로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런데 남은 재료는 어느 정도 있습니까?”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았어.
자네 장비를 만들다 보니 워낙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크푸푸.
그래도 장비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네.”
“당장은 아니고 나중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에르베르세르는 언제든지 오라는 말을 했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문 앞에는 몇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왔군. 어이... 음?”
카심을 부른 이는 씩 웃고 있다가 완전히 바뀐 카심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다.
아까는 장비 때문에 무시했지만, 지금은 한눈에 보아도 엄청난 장비로 바뀐 상태였기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러나 아까 자신의 말에 쫄았던 놈이기에 다시 얼굴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이야... 어떻게 저 드워프를 구워삶냐? 그렇게 하면, 그런 좋은 장비도 얻을 수 있나 보네?”
“...”
카심은 다섯 명을 바라보았다.
“어이, 앞으로 편안하게 살고 싶으면 저 땅딸보 새끼와 친해졌던 방법과 그리고 지금 네놈이 입고 있는 그 장비들 모두 내놔라.”
너무나 어이가 없을 정도로 뻔뻔한 태도에도 카심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새끼가 운이 좋게 올라온 놈이...”
카앙!
갑자기 울려 퍼진 소리에 그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씨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네 앞에서 스파크도 터졌어.”
캉!
그 순간 또 다시 울려 퍼지는 소리.
“마을에서는 다른 상대를 공격할 수 없지.”
동시에 이어지는 카심의 말.
그때야 그들은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했다.
놈은 가만히 서 있었다.
카앙!
또 울려 퍼지는 소리.
즉, 자신들 눈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다는 의미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그는 버럭 소리쳤다.
“이, 이 새끼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아! 동료구나!”
카앙!
“헙!”
또 자신의 눈앞에서 터지는 스파크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동시에 카심도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갔다.
카캉!
“이, 이 새끼가...”
카앙! 카캉!
“...”
카카캉! 카카카캉!!!
이어지는 소리에 비로소 눈에 희미하게 보였다.
그의 팔과 함께 창이 자신의 눈앞까지 왔다가 사라지더니 스파크가 튀었다.
동료 따위가 아니었다.
또 다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창은 순식간에 사라지곤 스파크가 튀었다.
이윽고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스파크를 보고는 공포에 물들었다.
카카카카카카카캉!!!!
파지지지지직!!!!
“허업!”
마을에서는 이렇게 막이 있었기에 상대를 공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왠지 모르게 이 막을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해볼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세가 바뀌면서 힘이 들어갔다.
화아악!
“히이익!”
그런데 자세를 바꿨을 뿐인데 놀라서 자빠지는 상대를 보면서 김이 확 빠져버려 천천히 자세를 풀었다.
무심히 내려보자 귀신 보듯 바라보며 공포에 질려 있었기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며 창을 보았다.
성능은 직접 사용해보니 완전히 최상이었다.
특히 공격 속도 상승과 유일하게 끼고 있는 캐슈람 팔찌의 효율은 엄청났다.
특화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마력만으로 너무도 만족스러운 속도였다.
여기에 특화까지 사용한다면 어느 정도의 수준이 나올지 궁금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에 골목에서 나와 인도로 걸어가려는데 이번에도 누군가 앞을 막았다.
진 레첼이었다.
“반가워요. 저는 진 레첼이라고 해요.”
“그래서?”
“에, 예? 저, 저는 공주에요! 예를 갖추세요!”
카심은 피식 웃으며 다가갔다.
진 레첼은 그의 눈빛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넌 그러면 지금까지 공주라고 예를 갖추라는 말로 여기까지 올라왔나?”
“그, 그건 아니지만.”
“여긴 전사의 탑이다.
너의 지위는 아무런 상관없다.
밖에서 만나면 예를 갖춰주지.”
지나쳐가는 것을 보며 진 레첼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처음 겪는 감정.
뭔가 짜증나고 분하고 성질이 났다.
태어나서 정말로 단 한 번도 무시를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분함이 머릿속까지 솟아 올랐다.
“저기요! 잠깐만요!”
그래서 그녀는 오기가 생겼다.
왕족으로써 가지는 프라이드가 있었기에 무시당하고 넘길 수 없었기에 다시 막아섰다.
“좋아요.
전사의 탑에서 만큼은 인정하겠어요.
여기서는 말 그대로 전부다 전사니까.
하지만! 같은 전사면 서로 도울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왕족이라 그런가? 뼛속까지 이기적이군.”
“예, 예!?”
“내가 힘겹게 안 정보를 당연하다는 듯 자기에게 갖다, 받치라고 하고 있네.
아닌가?”
“...”
진 레첼은 또 진 느낌에 화가 난 얼굴로 표정을 찡그렸지만 처음 짓는 표정이라 그런지 꽤 귀여웠다.
“그, 그래도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구요!”
“...”
카심은 이들이 하고있는 착각이 무엇인지 알았다.
“드워프와 친해지는 것과 다음 층으로 가는 것은 연관이 없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죠?”
“믿지 마.”
다시 지나쳐가는 그를 보며 진 레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으으,왜 이렇게 얄밉지?
왜 이렇게 짜증나지?
너무 분해! 으으으!”
멀어져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꼭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말대로 한 달이 지났을 때 정말로 드워프가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며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40층에 올랐지만 가지 못했던 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카심도 다시 40층에 모습을 보였다.
“로드리게스. 슬슬 올라올 때 됐을 텐데.”
그 사이 40층에서 아직 본 적이 없었고 연락도 전혀 되지 않았다.
아직 고군분투하고 있겠구나 싶어 먼저 조금 더 올라갈 생각에 천천히 문을 통해 걸어갔다.
그런데 문 앞에는 거의 수천 명이 넘는 이들이 몰려 있었기에 조금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번쩍!
나타난 곳은 숲이었고 바로 창이 떠올랐다.
<전사의 탑>
10000명.
현재 5782명.
10000명이 모이면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지금까지 했던 것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재밌겠네.”
물론 카심은 이게 뭔지 알고 있었다.
그 사이에 주변 지형을 살펴봐야 했다.
일찍 대기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혜택이었다.
그리고 약 1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 10000명이 되었고 다시 빛이 번쩍이며 위치가 바뀌면서 창이 다시 떠올랐다.
<전사의 탑 41층>
왕이 되어라.
곳곳에는 몬스터 군락이 있습니다.
몬스터를 몰아내고 군락을 차지해 자신만의 영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영지를 키워 왕이 되어 통일하십시오.
통일 한, 왕과 그 신하는 단번에 50층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왕에게는 또 다른 혜택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왕이 될지, 왕의 검이 되어 통일에 앞장설 것인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왕이 된 자는 패배시 바로 탈락하지만, 신하는 다른 왕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 미션은 최소 1년 이상 진행된다.
심지어 3년까지 진행된 적도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제대로 한 이들의 경우굉장히 재미있다는 평이 많은 미션이기도 했다.
먼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자세히 보니 나무의 잎 모양이 처음 있던 곳과 달랐다.
“활엽수.
아까는 침엽수였으니 최소 거리가 있겠네.
아쉽군.
괜찮은 장소가 있었는데.”
활엽수는 기본적으로 온대 지역에 활발했다.
이러한 정보로 대략적인 위치를 그렸고 우선은 주변에 군락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
나뭇가지 하나를 잘라 땅에 세워 놓았다.
툭.
“오른쪽이군.”
장기적인 미션은 처음부터 기를 뺄 필요가 없었기에 평소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오른쪽으로 걷다보니 조금씩 식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부스럭.
문득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빠르게 군락... 응?”
“어?”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 익숙한 얼굴이라는 것이다.
“다, 당신은?”
“...”
진 레첼이었다.
너무도 뜻밖의 만남이었다.
그녀 역시 웃었는데 그것은 진심이었다.
“반갑네요. 정말로 만나고 싶었는데.”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여기서 만나니까 갑자기 말이 없어지셨네요?
마을에서는 엄청 건방지시더니?”
“그냥 딱히 할 말이 없을 뿐이다.”
“호호호. 무서운 게 아니고요?”
그녀의 주위로 순식간에 붉은빛의 검이 한 개 떠올랐다.
리게릭과 같은 이능이었다.
즉, 레벨 7의 특화 능력자였다.
“그렇지 않아도 저는 꼭 당신을 신하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죽기 싫으면 당장 제 신하가 되세요. 아~ 맞다.
밖이 아니면 예를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어쩌죠?
밖이 아님에도 예를 다해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오호호!”
그녀는 지금 또 새로운 격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통쾌함.
언제나 항상 승자의 위치에 있던 그녀가 패자에서 다시 승자로 올라섰을 때의 감정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달콤한지도 말이다.
“후후훗!”
입을 가리며 웃던 그녀를 보며 카심은 피식 웃었다.
“뭐죠? 왜 웃는 거죠?”
“왕족인 네가 신하가 되면 꽤 재미있을 거 같아서.”
“푸흡. 정말 재미있는 생각이시네요. 미안하지만...”
순식간에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카심의 뒤에 나타났다.
“그럴 리는 없어요.”
목에는 그녀의 칼이 닿아 있었고 앞쪽에는 붉은빛의 검이 미간에 닿아 있었다.
같은 7레벨이라도 숙련도에 따라 아주 큰 차이가 있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숙련도였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그녀의 실력은 진짜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왕족.
아무리 3대 길드가 난다 긴다 하지만 그녀에게 쏟아지는 투자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애당초 지금 그녀의 무기와 갑옷만 하더라도 유니크급 아티팩트 중에서도 최상급이었다.
“어때요? 이제야 예를 갖출 거 같...”
웃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멍해졌다.
분명히 잡고 있었다.
감촉도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앞에 있던 이가 귀신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그리고 목에 닿는 차가운 감촉.
“...”
“진짜 죽지 않으니, 딱히 내 손에 주저함은 없을 거 같은데.”
오싹!
진짜다.
이 자는 왕족인 자신을 죽이려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귓가에 들리는 차가운 목소리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 항복이에요!”
결국, 그녀는 신하가 되었다.
<왕이 되어라>
[나라 이름을 정해주세요]
왕 : 카심
신하 : 진 레첼
진 레첼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억울함과 분함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창을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 소리쳤다.
“히끅! 왕족인 내가 신하라니! 흐이잉! 하필이면 이 인간에게! 분해!”
그리곤 휙 돌아 카심을 노려 보았다.
“바, 방심 하지만 않았어도! 스피드 강화인 줄만 알았어도!”
“실전에서는 자기보다 약한 이에게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나도 알아요!”
진 레첼은 스스로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이 큰 약점이었다.
분한지 발로 식물을 차며 분을 삭혔다.
그런 모습이 사실 카심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신선했다.
원래 이런 성격인가 싶었다.
이전 삶에서는 정말로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품위가 흘렀었다.
물론 지금보다 20년 뒤의 모습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