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11. 위험한 자(8)
그리고 나타난 것은 카심의 뒤였다.
슈악!
“?”
너무도 간단히죽일 거라, 생각했는데 손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곧바로 옆으로 칼을 들어 막았다.
캉!!
“...”
그녀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지는 공격을 막아야 했다.
슈슈슉!
순식간에 창이 수차례 움직였지만, 그녀는 이번엔 막지도 않고 피하면서 순식간에 파고 들어 검을 휘둘렀다.
한 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 몇 차례 이어졌다.
그러나 카심 역시 그 엄청난 공격 속도 속에서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피해냈다.
두 사람은 바위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공격을 퍼부었다.
벌써 수십을 넘어 백이 넘는 수의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서로 스치기는커녕 막지도 않고 있었다.
“꽤 빠른 속도이기는 하나 이 정도...”
파앗!
무시하려던 찰나 얼굴 옆을 스치며 볼에 살며시 피가 튀어 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창이 어느새 눈앞에 나타나자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자신과 똑같이 따라붙었다.
카캉! 채앵!
점점 창의 속도가 빨라지자 마치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흥!”
그러나 주웬은 순식간에 창을 쳐내고는 뒤로 물러서더니 갑자기 공중으로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슈악!
붉은빛이 반원을 그리며 카심을 향해 날아갔다.
촤아악!
전에 보았던 문신 있는 놈과 같은 이능으로 일명 검기였다.
가볍게 피할 수 있지만 카심은 훨씬 거리를 벌렸다.
드로얀에게 얻은 정보로, 클루마쿤이 보여준 것 정도는 아니지만, 폭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검기는 무려 5개가 훌쩍 넘어섰다.
퍼퍼퍼펑!!
카심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고 그녀는 계속해서 검기를 날렸다.
퍼퍼퍼퍼퍼펑!!!!
보통 이능을 사용하면 꽤 많은 체력을 사용해 저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녀의 체력은 거의 미동도 없는 수준이기도 했다.
카심은 그것을 느끼고는 오히려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피식 웃더니 엄청난 속도로 검이 움직였고 검기가 거의 사방을 뒤덮었다.
“이런.”
카심도 순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닿으려는 순간 그녀는 손을 내밀어 폈다가 접었다.
콰과과과광!!!
연쇄 폭발이 사방에 덮쳤고 그곳에 있던 바위를 완전 박살 냈다.
주웬은 그것을 보며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Lv 7의 특화.
스피드 강화치고는 나쁘지 않은 공격을 할 줄 알았지만 가소로운 상대였다.
그렇게 몸을 돌려 가려는 순간 그녀는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다른 바위 위에 서 있는 놈을 보고는 미간이 좁혀졌다.
“호, 그걸 피했어?”
카심은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이용해 눈앞을 살며시 가리는 앞머리를 위로 넘겼다.
“역시. 쉽지는 않네.”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신체의 비약]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올린다.
단, 효과가 끝난 후에 극심한 통증이 전해진다.
맘 같아서는 사용하고 싶지 않았고 한 번 소닉붐을 날려보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극심한 체력을 소비한 상태로 상대해야 했다.
상대는 그저 그런 Lv 8도 아닌 완숙의 단계로 가려는 수준.
허세를 부려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꿀꺽.
단, 음료의 맛이 느껴지는 순간 몸속의 활력이 오르며 터질 것 같은 힘이 솟아올랐다.
“아이템인가? 그걸 먹으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카심은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걷다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주웬의 눈이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순간 왼쪽을 돌아보며 검을 휘둘렀다.
스악!
베었다고 생각하려는 순간 갑자기 흐릿해지더니 사라졌고 옆에 나타났다.
“우선은 한 방.”
“!!”
파아아앙!!!
주웬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그대로 바위에 부딪혔다.
콰아앙! 콰지직!
거대한 바위는 주웬의 몸 주변으로 균열이 일어났다.
“크윽.”
온 몸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주웬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이게 스피드 강화 그것도 Lv 7이 낼 수 있는 공격이라고?”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왼쪽 어깨에 제대로 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뼈가 박살 났음을 알았다.
당황하는 사이에 어느새 눈앞으로 놈이 나타나 창을 찔렀다.
“큭!”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얼굴을 옆으로 틀었고 볼을 살며시 스치며 창이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곧바로 발로 걷어차며 바위를 차고 뛰어올라 거리를 벌렸다.
왼손이 축 처졌지만, 눈빛은 이전보다 더욱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화아아악!!
그녀의 몸 주위로 거센 힘의 파동이 터져 나오더니 빠르게 다가오던 카심의 몸을 밀어냈다.
“...”
카심은 그 파동을 느끼자마자 몸을 숙였는데 어느새 주웬이 옆에 나타나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검기를 내뿜었다.
콰과광! 쿠웅!!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공격했다.
단단한 바위는 마치 두부처럼 터져나갔고 일대가 쑥대밭이 되는데 겨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슉!
“윽!”
하지만 그 속에서 카심의 속도는 너무나도 매서웠기에 주웬은 인상을 찌푸렸다.
거의 최대한 힘을 끌어내고 있음에도 속도 만큼은 따라가지 못했다.
몸에 맞는다면 버틸만 하면서도 저 창의 날카로움이 자신의 유니크급 아티팩트마저 뚫고 들어오려 했다.
처음에 방심하지 않았다면 데미지는 받았더라도 왼팔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카심 입장에서는 팔이 저렇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까보다 더 까다롭게 움직이니 속으로 역시나라며 더욱 집중을 끌어 올린 상태였다.
슈슈슉!
창이 전방으로 10번 정도 움직였지만 주웬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뒤쪽 바위에 나타나 뛰어 오르며 거리를 벌렸고 검기를 수십 개 날려 보냈다.
콰과과과광!!!
폭발이 일어나며 먼지가 피어 올랐지만 주웬의 눈은 빠르게 움직이며 살폈다.
아주 미묘하게 먼지가 변화만 일어나도 감지할 수 있었는데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 말은 이미 피했다는 뜻이었기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눈을 부릅뜨며 검을 들어 막아야 했다.
카아앙!!
가까스로 들어오는 창을 검의 면으로 막아냈다.
조금이라도 판단이 늦었다면 이번에도 제법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주웬은 창을 튕겨내며 뒤로 뛰었고 카심 역시 뒤로 뛰며 자연스레 대치 상태로 전환되었다.
“너.”
그녀는 카심을 보며 진심으로 말했다.
“기사가 될 생각 없나?”
이곳은 미션이다.
지금 싸우는 이유는 전혀 적대가 아니라 미션 때문이었기에 이 제의는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진 자였다.
특화 레벨 7, 거기다 스피드 강화.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물론 특성이 있으리라고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 전투 센스는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제의는 고맙군.”
“너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 내가 특별히 지도해주지.”
주웬은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카심은 피식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었기에 주웬도 딱히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조금은 천천히 사용해보려 했는데, 좋다.
만약에 네가 이것을 막는다면, 그렇게 하지.”
“...”
자신도 모르게 주웬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겨우 특화 레벨 7의 유저였음에도 말이다.
그녀는 가볍게 자세를 취했고 카심은 여전히 창을 가볍게 들고 서있었다.
정적이흘렀다.
아주 고요함 속에서 아주 조그마한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 카심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런 움직임도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더욱 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럴 것이 주변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기묘해진 감각.
마치 모든 것이 느껴지는 것과 같았다.
어떤 감각인지도 아주 잘알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만 느끼는 이 감각은 모든 세상이 느려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헌데 어째서일까?
가볍게 자세를 취하는 그의 움직임은 너무도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자신의 눈동자가 아주 살짝 옆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윽고 그의 창 끝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공간이 일그러진 것 같이 보였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순간 번쩍이더니 보고 있던 세상의 감각이 산산조각이 났다.
파아아아앙!!!!!
주웬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뒤로 날아가 그대로 벽에 부딪혔다.
콰지지직!!!
바위가 박살나며 부서졌고 그대로 파편이 그녀의 몸 위로 떨어져 충격을 주었다.
주웬은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바위를 치우고 몸을 일으켰지만 이내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쿠읍. 푸확! 하아, 하.”
그리고 충격받은 얼굴로 고개를 휙 들어 올려 어느새 앞 바위에 서 있는 카심을 보았다.
“이게... 아까 보여준 그 일격인가?”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녀의 눈이 카심의오른팔로 향했다.
마치 모든 뼈가 박살 난 듯 덜렁거리고 있었고 창은 어느새왼손으로 향해 있었다.
“과연. 막지 못했군.”
“신체의 비약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다.”
“훗, 그래도 훗날에는 가능하다는 거겠지.”
“보다 더.”
“풉, 푸하하.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네.”
카심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시 붙는다면 내가 이긴다.”
“그렇겠지.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면... 웬만하면 다음엔 만나지 않길 바라야겠군. 그것도 미션이 아닌 곳에선...”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이미 그녀의 하반신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였고 이내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나도 당장은 만나고 싶지 않네.”
그녀 말대로 다시 붙는다면 처참하게 당할 것이다.
뛰어난 장비.
신체를 상승 시켜주는 미션의 아이템.
그리고 방심.
이 세 가지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아직은 저런 괴물 같은 것과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가장 우려했던 상황을 해결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몸에 갑자기 근육이 끊기는 통증이 전해졌다.
“크윽!”
처음 그녀의 이능을 피할 때 신속을 사용하고 동시에 소닉붐을 사용할 때 몸에 큰 부담감이 왔었다.
그리고 마지막 소닉붐을 사용도 기존보다 훨씬 강한 힘을 사용했다.
지금 당장은 한 방을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3번이나 사용했으니 몸이 고장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신체의 비약으로 인한 후유증까지.
“끄으윽.”
생각보다 고통이 컸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어진 고통에 입술에서 피가 세어 나올 정도로 안간힘을 주며 참았다.
[완벽한 육체]가 빠르게 회복을 시작했고 차츰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천천히 일어섰다.
“후우.”
입가에 흐른 피를 슥 닦고는 전방을 바라볼 때 저 멀리서 드로얀이 다가오고 있었다.
“카심님! 하아, 하. 주웬 기사는...?”
“바르바프로는?”
“이겼습니다.
본래라면 상대가 되지 않았겠지만 카심님께서 주신 근력 상승 과일과 체력, 그리고 1회 방어 실드를 이용해서 겨우 승리했습니다.
덕분에 명예도 자존심도 없는 더러운 놈이라는 욕을 한바가지 먹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잘했다.”
“그건 그렇고... 주웬 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카심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죽였다.”
“... 예?”
드로얀은 멍하니 걸어가는 카심의 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