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11. 위험한 자(10)
이상했다.
기분이 이상하게 나빴다.
잠시 후, 안토니오가 떠나고 코냐도 돌아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 때 카심과 드로얀 진 레첼, 그리고 코냐는 물론 이제는 천인장이 된 푸르송과 함께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붉은 깃발은 안토니오라는 젊은 인물이며 거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들어 온 정보에 의하면 두 사람은 꽤 친한 듯했기에 서로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원하시면 언제든지, 공격이 가능합니다.
천인장 한 분씩만 움직여도 시간이 들겠지만 동시에 공격도 가능할 것이라 보입니다.
거기에 진 레첼님과 드로얀님께서 움직이신다면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이런 식으로 우회해서 공격하며 이쪽 지형을 이용해 그들을 압박해서 카심님께서 보여주신 회유책을 사용하면 또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다가 여기는...”
코냐가 이런저런 전략에 대해서 설명했고 카심은 가볍게 끄덕였다.
“훌륭하다. 그 짧은 사이에 시야가 넓어졌군.”
“감사합니다.”
“코냐의 말대로 움직이고 드로얀 진 레첼도 그녀의 지시에 따르도록.”
“알겠어요!!”
“그러겠습니다.”
“옙!”
문득 코냐는 그들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
심지어 그들은 공주와 그 대단한 기사였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지휘에 따른다는 것은 굉장히 느낌이 달랐다.
무엇보다 카심의 칭찬이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복잡해져만 갔다.
그는아직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로 붉은 깃발의 왕이 안토니오라는 인물이라면서 모른 척했다.
그런데 그게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것일까?
바로 배신이었다.
배신하거나 누군가를 속일 때 느꼈던 감정이다.
문제는 안토니오가 아닌 카심을 배신한다고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당황스러웠다.
자신을 영웅 길드라는 대단한 곳에 들어가게 만들어 준 그 안토니오가 아니라 겨우 미션에서 만난 이 인물을.
“회의는 여기서 끝.”
“읏차. 오늘은 푹 쉬어야겠어요.”
“저는 몸을 가볍게 풀어야겠군요.”
“그럼...”
코냐가 마지막으로 일어섰다.
“코냐는 남도록.”
그 순간 코냐는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드로얀과 진 레첼은 무슨 말이 더 있나보다 싶어서 나갔고 둘만 앉아 있을 때 코냐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북쪽에 관한 정보는 있나?”
“예? 아,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들어왔습니다.
그쪽의 경우에는 카심님의 회유책이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워낙 끈끈하다고 하네요.
특히 왕으로 보이는 이는 먼저 앞으로 나서서 모든 전투를 벌인다고 합니다.
그의 방패는 성스러울 정도로 빛나며 모든 공격을 막아내서 철벽이라고도 불립니다.”
“...”
카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북쪽은 내가 움직인다.”
“혼자서 말인가요?”
“그래.”
“위험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는...”
코냐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카심님께선 계획이 있으시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 코냐는 문을 나서려 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이 미션을 오래 끌 생각이 없다.”
“예?”
카심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고 코냐는 의아한 표정으로 숙소를 나왔다.
“혼자 북쪽을 처리할 테니 그때까지 알아서 끝내놓으란 소린가?
도대체 혼자서 어떻게 하실까 궁금...”
그러다 문득 멈칫하고서는 자신도 모르게 되뇌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혼자서... 가는 길.”
그 사실을 굳이 자신에게만 말해 줄 이유는 없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자신을 처벌하지 않는 것도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자신에게 하는 테스트일까?
안토니오에게 이 소식을 알려 움직이게 한다면 일부러 병력을 기다리고 있다가 움직여 처치하고 자신을 처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안토니오에게 알리지 않아야 할까?
그러나 알리지 않으면 또 현실적인 문제로 치닫게 된다.
미션이야 또 도전하면 된다.
영웅 길드처럼 대단한 곳은 두 번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낙인찍힐지도 몰랐다.
아무리 카심이 대단하다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랬기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품에서 아이템을 꺼내 사용했다.
***
안토니오와 지그하르트 그리고 라이안은 높게 솟아오른 절벽 사이 길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부터 한다.”
“웃기지 마라. 괜히 혼자 까분다고 나섰다가 처맞지 말라고.”
“왜? 내가 잡아버릴까 겁나나?
하긴,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내 밑이 되는 거 같으니까?”
라이안의 비아냥에 안토니오는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어차피 그 이후에 이 미션의 승리는 내가 될 터인데.”
“아~ 지친 나를 공격하려고?
하지만 이미 우리는 공격하지 못하는 아이템을 사용했을 텐데?”
“푸하하하! 내가 너를 상대로 그렇게 치사하게 할 필요는 없지.”
라이안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뭐 가위바위보네.”
안토니오는 붉은색 도끼날이 달린 할버드를 어깨에 걸치고는 손을 내밀었다.
“어이 지그하르트 너는?”
“관심없으니 둘이서 알아서 해.”
“오호~ 역시 내 신하인가?”
“지랄. 난 편하게 가고 싶을 뿐이다.”
“하긴 내 밑에 오면 편하긴 하지.
푸하하! 라이안 네 밑이 아니라.”
“그저 나보다 너를 일찍 만난 것뿐이다.”
“아이고~ 그렇게 생각하시던지요~ 가위바위! 보!”
두 사람은 같이 가위를 내고는 다시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지그하르트는 절벽 아랫길을 보고는 씩 웃더니 갑자기 뛰어내렸다.
“어?”
“뭐야?”
갑자기 뛰어 내리는 지그하르트에 두 사람은 의아해하다 저 멀리 걸어오는 카심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 저 싸가지 없는 새끼!”
“요즘 것들은 하여간 건방지군.”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가위바위보를 이어 나갔다.
그 사이에, 지그하르트는 대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때의 굴욕.
이제 드디어 갚을 수 있었다.
자신은 아직 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이겨내서 역사상 가장 이른 나이에 특화 레벨 7을 달성한 천재보다도 한 살 느렸다.
그로 인해 자신감을 회복했다.
천재.
압도적인 재능.
비록 저 위에 있는 두 놈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지만 자신은 그들보다 더 어렸다.
그러니 자신이 더 대단했다.
붉은빛이 그의 몸을 휘감았고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붉은빛 검이 떠올랐다.
비록대인전에는 효과적은 이능은 아니나, 데미지만큼은 그 어떤 이능보다도 뛰어났다.
거기다 장소는 협소한 곳.
피할 수 없었다.
그때의 치욕을 떠올리며 온 힘을 다해 이능을 이용해 공격했다.
“흐아!!”
제법 강한 힘이 담긴 이능이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걸어오던 카심은 멈추고는 고개를 들더니 천천히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지그하르트는 이상한 감각과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정적을 느꼈다.
“...”
이윽고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을바라보았을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 있었다.
자신의 몸 반쪽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아아아앙!!!
그리고 뒤늦게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 소리에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던 라이안과 안토니오는 화들짝 놀라며 서로를 보고는 다급히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사라져가는 지그하르트와 땅과 절벽 사이에 완전히 박살 난 것을 보며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어, 없다.”
“뭐?”
그런데 아래쪽에 보여야 할 카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순간 당황하던 차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특화를 끌어 올리며 뒤로 돌아 무기를 들었다.
채챙!!
어느새 뒤쪽에 나타난 카심의 창을 막아냈지만, 몸이 뒤로 쭉 밀렸다.
“오랜만이군.”
카심은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지만 두 사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들은 그동안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졌다.
그런데 이놈은 도대체 뭘까?
걸어오는 놈은 감히 덤벼들지도 못할 만큼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변 공기가 어깨를 짓눌렀으며 당장이라도 도망치라는 듯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가졌던 자신감이 순식간에 박살났다.
걸어오는 카심을 보며 두 사람은 수천 번을 고민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
하지만 결정하기도 전에 눈앞에 있던 카심의 모습이 사라졌고 두 사람은 다급히 주변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다시 앞.
이어지는 공격에 허겁지겁 막아야만 했다.
채채챙! 카캉! 푸부북!
그러나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몸 곳곳에 깊지는 않지만, 상처가 생겨났다.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지만 둘은 그 잠깐 사이에 숨이 벌써 턱까지 차올랐다.
“허억, 헉.”
“크윽...”
압도적이었다.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분하다는 감정이 느껴지지도 않고 그냥 절망적이었다.
이제야 완전히 알았다.
절대 저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되자 눈빛의 초점이 사라져갔고 카심은 그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찾아와라.”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에 잃어가던 초점이 돌아왔다.
“가르쳐 주마.
물론 지금은죽고.”
카심이 또 사라지는 순간 두 사람의 머리에 두 개의 구멍이 생겼고 그들의 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져가는 그들을 보며 카심은 가볍게 창을 돌리며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완전히 습관도 바뀌었군.”
그동안 이전 삶의 기억 때문에 창과 스피드 특화에 대한 움직임에 부자연스러움이 있었다.
기사와의 전투 이후 그 습관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그로 인한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상태>
근력: 110
체력: 115
마력: 130
특화: 스피드 강화 Lv7
특성: [완벽한 육체] [미지의 힘]
사실 이 세명의 근력 체력만 따진다면 자신보다 더 높을 것이다.
기사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강함은 단순히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상태 창이 전투에 모든 부분을 절대 설명하지 못했다.
***
북쪽의 땅은 거의 매일 눈이 내리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척박할 거라, 생각하지만 이곳에는 아주 많은 열매가 자라고 있었기에 자연에만 잘 적응한다면 생각보다 지낼만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몬스터가 떨어뜨리는 아이템의 양도 많았다.
혜택인 셈이다.
그 덕분에 <굳건한 의지>는 약 600명 정도는 되지만 굉장히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북쪽을 완전히 점령하면서 그들의 사기는 대단했다.
특히나 그들은 왕에 대한 충성심이 굉장히 높았다.
언제나 가장 앞에 서서 싸우는 그는 불가능하다 여긴 상황에서도 홀로 버텨냈다.
“저놈 혼자다! 저놈만 잡으면 돼!”
100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들었지만 가운데 서 있는 사내는 굳건하게 서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붉은빛이 검에 물들었고 이내 방패에도 물들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졌다.
혼자 거대한 방패와 거대한 검을 든 것처럼 그곳에 서서 달려드는 이들을 막아섰다.
쿠우웅!!
그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수십 명씩 날아가며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압도적인 힘과 아무리 공격해도 절대 뚫리지 않는 절대 방어에 기가 죽어갈 때쯤 뒤쪽에서 두 명의 사내가 Lv 7의 특화를 뿜어내며 다가왔다.
“비켜! 방해다!”
“건방진 어린놈 새끼가 아주 설치고 있네.”
천천히 걸어오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그의 앞과 뒤에서 나타나 동시에 공격했다.
콰아앙!!
앞의 공격은 검으로 막고 뒤로는 방패로 막은 그는 이내 눈빛이 번쩍이더니 힘을 주고 휘둘렀다.
후우웅!!
공격했던 이들은 어마어마한 힘에 화들짝 놀랐다.
“허업!”
“헉!”
자신들의 신체 능력도 좋은 편인데 너무도 허무할 정도로 몸이 밀려났다.
이번엔 <굳건한 의지> 왕이 움직였고 앞쪽에 있던 이를 향해 달려들어 검을 내려쳤다.
막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는데 순간 느껴지는 압박감에 호흡이 멈췄다.
“힉!”
마치 거대한 산 하나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저 무지막지한 검 안에 실려 있는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기에 온 힘을 다해 방어하려했다.
그러나 검이 닿는 순간 허리가 급격히 꺾이며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쿠허억!!”
단 일격에 무력화시켜버리는 어마어마한 괴력.
그것을 보고 있던 이들은 전투를 상실했다.
그렇게 <굳건한 의지>는 북쪽은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