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12. 변수 창출(2)
“... 뭐 내가 널 이해는 못하지만 당연히 믿지.
무슨 이유가 있겠지.
네가 이유 없이 어떤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럼 됐다.”
또 다시 어깨를 으쓱인 로드리게스는 밖으로 나갔고 계속 책상을 톡톡 쳤다.
“만약 로드리게스에게 접촉한 게 계획적이라면... 이전에도 계획적이었나?”
믿었다.
누구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이 세상 큰 힘을 준 놈이었다.
“그 모든 게... 거짓이라.”
그때 자신의 고통은 정말로 당장이라도 목에 칼을 쑤셔 박고 싶을 만큼 괴로웠었다.
그런데 그 감정을 이용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더러워졌다.
의자 등받이에 등이 닿고는 천천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목적이 뭘까...”
그러다 책상을 톡톡 치던 것을 멈췄다.
“물어보면 되겠지.”
***
“짜, 짱이다.”
로드리게스는 카심에게 받은 흉갑을 보고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성능도 좋다.
몸을 가볍게 만들어주고 쾌적한 온도 유지해주면서 내구력은 웬만한 갑옷보다도 좋아.”
“새, 생긴 것도 너무 멋있잖아.”
“네 방패에 맞춰서 디자인 한 거다.”
남은 재료로 만든 것이다.
“다른 부위는 네 돈으로 비슷하게 디자인해서 맞춰.”
“응. 흐흐흐흐. 진짜 너무 좋다.”
웃고 있던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어? 누구지? 내가 나가볼게.”
로드리게스가 후다닥 나가 문을 열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인물이 서 있었다.
“누구...”
그때 후드를 천천히 벗자 은빛 머리카락이 드러나며 아름다운 미모에 로드리게스는 화들짝 놀랐다가 그게 누구인지 알고는 순식간에 몸을 숙였다.
“고, 공주님.”
“당신이 로드리게스군요? 반가워요.”
“제, 제 이름을 어찌?”
“카심씨에게 들었거든요.”
그때 뒤에서 다가온 카심은 진 레첼을 보며 인사했다.
“왔나?”
자연스러운 하대에 로드리게스가 입을 쩍 벌리며 카심을 보았다.
“미, 미쳤어? 공주님이라고.”
“근데?”
“너 인마 네가 아무리 미친놈이지만...”
“푸흡. 괜찮아요.
제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거든요.”
로드리게스는 멍한 얼굴로 카심을 바라보았다.
“저 계속 여기 둘 거에요?”
“드, 들어오십시오!”
로드리게스가 후다닥 안내하자 진 레첼이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카심이 물었다.
“무슨일이냐?”
“너무하네요. 제가 카심씨 보고 싶어서 온 건데.”
“겸사겸사겠지.”
“치. 하여간 뭘 감출 수가 없다니까.”
“왕이 되기 위해 움직이겠다며 다짐했으니 시간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바쁠 텐데 그 시기에 날 찾아왔으니 목적이 있다는 거지.”
“진짜 카심씨 보고 싶은 게 컸다니까요?
자존심 상하게 자꾸 이런 말 하게 만들 거예요?”
카심은 피식 웃었다.
“그래 고맙다.”
“치. 뭐 그 말도 거짓은 아니에요.
최근 진 레이널에 관해 정보를 얻다가 느낌이 이상해서요.”
카심은 말해 보라는 듯 바라보았다.
갑자기 양피지를 하나 펼쳤는데 그곳에는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어?”
로드리게스는 그것을 보자마자 아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눈을 크게 뜨고 카심을 보았다.
“이, 이거 너 그때 영지에서 봤던 그 놈 꺼 아냐?”
“맞다.”
“알고 계시는 거예요?”
바로 리톰 영지에서 만난 전사와 프레드릭이 가지고 있던 문양이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이걸 얻었는데.”
“저희가 은밀하게 진 레이널에 대해 조사하던 중, 이 문양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서 결국에는 어느 종교의 집단임을 알았죠.
저는 이전부터 정보에 대해서 꽤나 중요하게 여겨서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단체가 있었거든요.
어쨌든 처음에는 이런 비밀스러운 집단이 많아서 그저 그런 줄 알았는데...”
진 레첼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갔다.
“그들의 위치를 찾던 와중, 기사 셋이 죽임을 당했어요.”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기사 셋을 죽일 정도로 힘이 크다는 것도 있었고 또 다른 것도 있었다.
“왕국 내에서도 꽤 많은 이들이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는 거군.”
“맞아요. 그래서 지금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너무 답답해서 나를 찾았고.”
“예. 그런데 카심씨도 이것을 알고 있다니... 조금 놀랐어요.”
“나도 놀라고 있다.
설마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으니까.”
카심은 문양을 톡톡 쳤다.
“종교 이름은 알았어?”
“영생교.”
“영생... 영생?”
잠시 곱씹던 카심은 갸웃거렸다.
그리곤 갑자기 생각에 빠졌고 진 레첼이 무엇을 아느냐 물으려는 순간 로드리게스가 막으며 집중을 방해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은 카심은 다시 진 레첼에게 말했다.
“우선 이 영생교는 절대 네 편이 아니다.
그들은 진 레이널을 왕위로 올리도록 만들려고 할 거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리고 앞으로 나를 찾아 오지 마라.”
“예? 왜요?”
진 레첼은 진심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위험해지니까.
어쩌면 최대의 적이 진 레이널이아닌 이 영생교가 될 거다.”
“... 역시 위험한 집단이네요. 더 자신이 없어져요.”
고개를 푹 숙이는 진 레첼을 보며 카심은 양피지를 들어 올리고는 걸어가 화로에 던져 태웠다.
“걱정 마.
나도 도움을 줄 테니까.
간접적으로나마.”
“정말요?”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나도 이 새끼들한테 관심이 꽤 있거든.”
이로써 확실해졌다.
확실하게 이들은 역사에 대해 관여하고 있었다.
의심에서 확신이 되었다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였다.
거기다가 더 이상 자신과 관련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이제 이들을 무시할수 없다.
아니 무시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진짜 찾아오면 안 되나요?”
흔들리는 눈빛에 카심은가볍게 웃었다.
“당분간은 아마 바쁠 거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럴 거고.
무엇보다 네가 위험하다는 건, 머지않아 놈들은 나에 대해서 알게 될 거다.
내가 그놈들이랑 어쩌다보니 엮인 게 있거든.
그리고 또 하나 엮을 생각이고.
그러니 저들도 나에 대해서 알게 되면 너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너의 입지에 더 큰 위협을 받을 지도 몰라.
그때는 단순 방해를 넘어설 수도 있고.”
“...”
침울한 표정에 카심은 어깨를 두드렸다.
“전에도 말했지만 오히려 네 감정이 큰 약점이 될 거다.
만약 누군가 알게 된다면 너의 적이 나를 위협하려하겠지.”
“아...”
오히려 자신의 감정이 상대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진 레첼은 그 사실에 더 마음이 아팠다.
“넌 왕이 될 사람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처음이네요. 제가 이 신분이 원망스러운 게.”
가볍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안엔 씁쓸함이 가득했다.
그렇게 진 레첼이 떠나고 로드리게스는 멍하니 카심을 바라 보았다.
“왜?”
“뭐야 너?”
“뭐?”
“그러니까 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게 맞냐?”
카심은 피식 웃었다.
“어, 나 좋아해.
뭐 보다시피 이제는 그러지 않겠지만.”
로드리게스의 턱이 끝까지 내려갔다.
“턱 올리고. 사냥이나 갈 준비해.”
“갑자기? 사냥은 왜?”
“지금 설명해줘도 어차피 알아먹지 못할 테니 직접 보면 된다. 그리고 프레드릭도 부르고.”
“알았어.”
움직이는 로드리게스를 보며 카심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져 갔다.
***
[영원한 고통]
이곳은 아주 독특한 몬스터가 있는 던전이었다.
거기다 작은 마을의 풍경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굉장히 음침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흘러 인기가 있는 던전은 아니었다.
거기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도 없었기에 아주 가끔이 던전을 클리어 해보고 싶어서 오는 이들이 아니고는 거의 찾는던전이 아니었다.
“여기도 눈이네? 이제 눈이라면 너무 지겹다.”
“하하하. 하긴 우리는 거기서 엄청 오랫동안 지냈지.”
프레드릭과 로드리게스는 눈이 내린 마을을 보며 고개를 젓다가 그 스산한 분위기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여기 왜 이렇게 무섭냐?
카심. 여기는 무슨 몬스터가 나와?
여기엔 이상한 목각 인형도 있네.”
로드리게스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목각 인형으로 다가갔다.
“그거.”
“어?”
“그게 몬스터라고.”
“... 으헉!”
로드리게스는 화들짝 놀라며 목각 인형에서 떨어졌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아, 안 움직이는데?”
“보고 있어서 그래.”
“... 그럼 그냥 공격하면 안 돼?”
“그랬다가는 여기 전체 몬스터들이 갑자기 달려들 거다.
그건 나도 못 막아.
도망갈 수는 있지만.”
“허.”
로드리게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해?”
프레드릭도 놀라서 묻자 카심은 손을 들었다.
“저쪽을 바라봐.”
두 사람이 바라보는 순간 카심도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뒤쪽에 있던 목각 인형이 순식간에 움직이려 했는데 그 미간에 카심의 창이 박혔다.
미간에 박히자마자 목각 인형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더니 쓰러졌다.
“이렇게.”
두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괜히 인기가 없는 던전이 아니구나.”
두 사람은 이 황당한 몬스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보고 있을 때 공격하는 건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정면에서 공격하고 싶으면 눈을 감으면 돼.
단, 확실하게 몬스터를 확인해야 한다.
수와 위치, 그리고 예상 움직임까지.”
프레드릭은 짧게 감탄했다.
“대단하다.
너는 어떻게 이런 걸 다 아는 거야?”
“얘는 다 알아.”
“조사는 기본이다.”
“그럼 여기에 온 이유가 있는 거겠네?”
“그래. 보스를 잡아야지.”
프레드릭은 화들짝 놀랐다.
“여기가 아직 클리어된 적이 없는데 너는 안다고?
그건 조사할 수가 없잖아.”
“얘는 다 안다니까.”
“잘못된 접근을 해서 그렇다.
우선은 이곳에서 사냥을 해봐.
꽤 좋은 경험이 될 거니까.”
그런데 그때 이 사냥터에 누군가 또 나타났다.
“어?”
“저들은...”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었다.
바로 지그하르트, 라이안, 안토니오 였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쭈뼛쭈뼛하며 다가왔다.
“왔군.”
“뭐야 카심?”
“내가 불렀다.”
그때 다가온 세 사람은 카심을 보았다.
“가르쳐 준다고 해서... 왔다.”
항상 자신감이 가득하던 셋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거다.”
셋은 그 말에 의지를 가졌다.
자신들 또래이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남자.
그들의 목표는 어느새 카심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냥.
이곳은 카심 말대로 굉장히 도움이 되는 사냥터였다.
눈을 감고 상대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생각해야 했다.
“으억!”
"헙!"
“헉, 헉.”
“집중해라. 힘들다 싶으면 눈을 떠.”
특히 이곳의 몬스터는 집 안에 있었는데 집 안의 형태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집과 같았다.
심지어 목각 인형은 집 안에 단란한 가족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어린 아이는 스피드 했고 엄마처럼 보이는 목각 인형은 유연했으며 아빠 목각 인형은 힘이 굉장히 좋았다.
집이라는 한정적인 장소에 네 마리 개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끌어 올려야 했으니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경험을 주는 사냥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