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13. 달라진 상황(5)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검을 가볍게 손에서 회전시켰다가 다시 잡았다.
“으하하하!”
그때 무슨 미친놈마냥 칸이 달려오고 있었고 알베이안은 그것을 보면서 검을 휘둘렀다.
촤악!
검기가 날아갔지만 칸은 팔로 휘저으며 쳐버렸다.
그러나 이능조차도 특성의의 영향을 받아 전혀 다른 곳에 타격을 입혔다.
물론 데미지가 떨어지는 그 이능 공격으로 지금 칸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없었다.
“흡!”
알베이안은 숨을, 들이키고는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수십을 넘어 수백의 검기가 한순간에 생성되어 칸을 향해 날아갔다.
칸은 그것을 보고도 씩 웃고는 더욱 속도를 높였는데 순식간에 앞으로 나타난 알베이안을 보고는 의아했다.
“이건 조금 따끔할 겁니다.”
그의 검이 움직였고 칸 역시 주먹을 내뻗었다.
주먹과 검이 맞부딪히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칸의 몸이 무려 100미터는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우지지지직!!!
수십 그루의 나무가쓰러지고 나서야 멈췄다.
“...”
그리곤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고 손가락 두 개가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수백 개의 검기의 이 한 점에 모여 공격했고 그러자 자신의 보호막이 일순간 옅어지는 그 순간 알베이안의 묵직한 공격이 들어온 것이다.
“씨부럴, 아프네.”
칸은 뒤틀린 손을 다시 맞췄다.
우득! 우드득!
“아오 씨불!”
만약 자신의 특화인 정화가 발동되지 않았다면 이 손이 잘려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씩 웃었다.
“어이~ 알베이안!”
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해봐 이 씹새끼야.”
또 아까처럼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알베이안은 그것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무식한 놈.”
그러면서도 똑같이 자세를 취하고는 달려오는 칸을 보며 더욱 힘을 끌어 올렸다.
통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번에는 확실하게 데미지를 입힐 생각이다.
될 수 있다면 죽음까지.
알베이안에게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의 파동이 터져 나왔고 달려오는 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칸의 주먹에 붉은빛이 더욱 진해지다가 이내 갑자기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완벽한 흡수.
특화 레벨 MAX에 해당하는 현상이었다.
알베이안 역시 그 검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둘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이번에도 알베이안은 똑같은 방법으로 수백 개의 검기를 뿌렸다.
칸은 더욱 스피드를 올려 뛰어올랐고 알베이안은 아래에서 위를 향해 바라보았다.
온 힘을 다해서로 공격하려는 그 순간.
“음!?”
“헙!?”
알베이안과 칸은 화들짝 놀랐다.
자신들 앞으로 갑자기 난입한 카심과 로드리게스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미 이루어진 행동이었기에 공격을 회수할 수 없었다.
한편, 그 사이를 파고 든 로드리게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다가오는 칸에게서 느껴지는 압박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
로드리게스는 괴성을 내지르며 압박을 이겨내고는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카심 역시 다가오는 알베이안의 공격을 정면으로 느끼고 있었다.
알베이안은 천천히 눈이 커지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검은 카심의 눈앞까지 다가간 상황.
너무나도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어떠한 사고를 할 수 없이 그저 본능적인 느낌만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알베이안의 눈이 갑자기 흔들렸다.
인식은 하지 못했지만 그의 등에서는 천천히 소름이 끝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이것은 아까 느꼇던 바로 그 감각이었다.
이윽고 눈앞에서 빛이 번쩍였다.
파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네 사람은 각각 마주하며 서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누구도 날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는데 그 정적을 깬 것은 먼저 로드리게스의 비명이었다.
“크아아악!”
방패를 놓치며 로드리게스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의 양팔의 어깨가 박살 나버린 것이다.
칸은 그런 로드리게스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마지막에 힘을 줄였다지만 이걸... 막았다고?”
황당함에 바라보고 있는 사이 알베이안 역시 충격을 받았다.
“... 상쇄했다? 내 공격을?”
겨우 특화 레벨 7.
이제 루키나 다름 없는 녀석이 자신의 일격을 상쇄시켰다.
심지어 자신은 힘을 빼지도 않았다.
충격을 넘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자신이 느꼈던 오싹함.
잠시 눈동자가 떨리며 카심을 바라보던 알베이안의 눈빛이 갑자기 차갑게 식었다.
“너는... 위험하다.”
지금도 이러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까?
정말로 영생교에게 위험한 존재였다.
그랬기에 지금 당장 죽여야만 했다.
물론 카심이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카심 역시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서로의 공격이 닿는 순간 카심의 창을 쥔 어깨는 버티지 못해 박살나버린 것이다.
알베이안이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음성이 먼저 파고들었다.
“그만.”
그 음성에 알베이안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가 입을 벌렸다.
“예, 예언자님.”
어째서 이곳에 예언자님이 있는지 너무 당황스러움에 그 알베이안이 말까지 더듬었다.
“그만하도록.”
“알겠습니다.”
그것을 보자 칸이 고개를 돌렸다.
“씨벌 뭘 그만둬? 어이 동상.
이거 뭔 짓인지 모르겠는데... 나 못 참...”
그때 예언자가 갑자기 얼굴을 뒤덮던 검은실크를 드러냈다.
드러난 그녀의 얼굴.
검은색 머리가 허리까지 웨이브치며 내려왔고 너무도 매혹적인 외모가 드러났다.
“그만둬주지 않겠나?”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스러운 그녀의 분위기에 칸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네. 누님.”
***
카심은 지금 부서진 저택에서 그녀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녀?”
“그렇다. 정확히 21대 성녀지.”
“21대?”
“그대는 우리 영생교가 이제 막 생긴 사이비 교인 줄 아는구나.”
“...”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말대로 사이비교인 줄 알았다.
거기다가 미래를 아는 게 아니라 그들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말하는 옳은 미래.
이것에 대해서도 크게 반박할 수 없는 게 이전 삶에서 인간이 엄청나게 죽는다든지 하는 그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크게 본다면 정말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영생교는 이 세계에 어떤 거대한 음모를 지닌 단체라고 여겼는데 그런 믿음이 깨지려고 하고 있었으니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당장 믿는 건 아니었기에 카심의 겉모습은 흔들림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난 너와 대화를주고 받고 싶지 않다.
아까 말하려고 했던 거나 말해.”
“이거 어쩌나... 난 그대에게 꽤 호기심이 있는데.
어떻게 우리 영생교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
혹... 그대도 예언을 받나?”
재미있다는 미소.
모르고 만났다면 저 미소에 홀라당 넘어갔을지도 모를 만큼 매력적이고 몽환적이었다.
“그렇게 믿어라.”
“거짓이구나.
그렇다면... 그대 뒤에도 누군가 있나?”
“그래.”
“역시 거짓이구나.”
“...”
카심의 미간이 좁혀질 수밖에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는 걸까?
뭔가 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면 혹시...”
“그만.”
카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역시 뭔가 비밀이 있구나.”
“특성인가?”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성녀들만 가지는 특성이지.”
카심은 가볍게 끄덕였다.
“지금부터 다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즉시 일어서서 나간다.
나는 계속해서 너희들이 적이라 여길 것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해하고 너희 교를 없앨 것이다.
이 말이 거짓으로 보인다면 실험해봐도 좋아.”
“...”
그녀는 잠깐 카심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할 정도로.”
“...”
“그곳에 그대가 원하는 답이 있을 것이니.”
잠깐 정적이 흐르자 카심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끝인가?”
“끝이다.”
“어이가 없군.”
그때 그녀는 일어섰다.
“곧 알게 될 것이다.”
돌아서서 나가는 그녀를 보면서 카심은 여전히 앉아 있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이 상황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이전 삶에서 레온이 자신에게 답을 찾았다며 전사의 탑을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때와 달리 레온이 아닌 예언자이자 성녀가 직접 전달했고 전혀 다른 대안이었다.
“그런데 왜지?”
천천히 등을 기댔다.
“왜... 느낌이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마치... 쫓아내려는 느낌일까.”
너무 뜬금없었다.
이전 삶에서 레온도.
그리고 지금도.
그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지금 왕국은 수많은 꽃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와아아~~”
“수리에바 왕국 만세!”
“기사님들 힘내세요!!”
출정식.
보여주기식이지만 축제처럼 분위기를 만들어 국민에게는 안도감을 주며 불안을 낮추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기사들은 스스로 더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며 사기를 올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출정식은 수백 년 만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쟁은 아니었지만, 전쟁과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카심은 여관의 창문을 통해 그것을 보고 있었다.
“와 진짜 이게 무슨 일이래.
어떻게 몬스터가 여기에 나타날 수 있냐고.
큰일 난 거 아냐?”
로드리게스의 말에 대답한 것은 카심이 아닌 뒤쪽에 있던 칸이었다.
“큰일 난 거 맞지 이놈 새끼야.
뭐 재미있기도 하고.”
“칸 형님이야 워낙 강하시니까 여유로우시지.
저희 같은 놈들은무섭다고요.”
“무섭긴 개풀. 이 새끼 내 공격도 막은 놈이 무슨.
너 이 쉐끼 근력 300이라며?
이 미친 괴물같은 놈아.
나도 네 나이 때는 코 질질 흘리고 다녔는데.”
“그거야... 여기 있는 카심이 다 해준거라니까요.”
“하여간 괴물 같은 쉐끼들.
너희들 내 밑으로 오라고 엉?”
밖을보던 카심이 고개를 돌렸다.
“칸 형님. 솔직히 계속 여기에 계신 거, 배고파서 그런 거 아닙니까?”
“...”
카심의 말에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갔다.
“으흠. 아니야 인마! 너희랑 있으면 어?
또... 그 누님 만날까 싶어서지.”
“돈 드립니까?”
“야이 새끼가 가오가 있지... 그냥 뭐, 너희들 먹을 때 좀 같이 먹자.”
“그런데 저희도 아마 저쪽에 갈 거 같은데.”
“뭐? 몬스터 잡으러? 왜?”
“심심하니까요.”
칸은 씩 웃었다.
“뭐 있구나?
내가 똑똑하지는 않아도 감이 좋거든.”
“예. 뭐가 있답니다.”
“누님이?”
카심은 갑자기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렸다.
“그런데 아무리봐도 칸 형님이 나이가 훨씬 많은 거 같은데.”
“야 인마. 예쁘면 다 누님이야.”
“음, 동의합니다.”
“역시 우리 동상. 뭘 좀 아는군. 좋다.
이 형님 빽으로 바로 투입 시켜 주마.”
“괜찮습니다. 제가 못 들어갈 것도 아니니까.”
칸은 문득 알베이안의 공격을 카심이 막았던 것을 떠올렸다.
“볼수록 신기한 놈이야.”
“형님은?”
“난 그런 곳 귀찮다.
우리 애새끼들도 관리 해야 하고.
그럼 간... 아, 그 뭐야 으흠.
돈 준다는 거 뭐 조금 받아도될 거 같은데 으흠.”
카심은 피식 웃으며 자루 하나를 던졌다.
“허억.”
안에는 금이 번쩍이고 있었다.
“도와주신 보상입니다.
이 정도면 빛은 사라지는 겁니까?”
“크크크. 당연하지 쉐끼야. 다음에 보자 동상들.”
웃으며 나가면서도 과일 하나를 집고는 윙크를 날리고 나갔다.
“참 호쾌하신 분이야.”
“누구보다도 부랑자 길드 마스터와 어울리는 사람이지.
그리고 너는 칸 형님보다 더 강해져야 하고.”
“야야, 한 방 막았다고 팔이 부서졌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어.”
로드리게스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출정식이 끝나지 않았지만 카심은 이제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알베이안의 공격을 맞받아쳤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겨우 한 방 막는데, 모든 힘을 다해야 했으며 심지어 어깨가 박살 났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미간이 좁혀졌다.
“쪽팔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