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14. 이유(3)
데나는 지나가는 카심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 대하기가 갑자기 너무 어려워졌다.
로드리게스는 그 모습을 보며 웃으며 나가 카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무슨 소리야? 기사가 왔다니?”
“얼마 전에 팬 놈이 주웬 기사동생이라는군.”
“아~ 그럼 오십인장을 인맥으로 받은 거네?”
“그건 아닌 거 같다.
그럴 성격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그런데 진짜 별일 없었어?”
“어.”
로드리게스는 끄덕이다가 다시 말했다.
“근데 계속 네가 안 나서고 있을 거야?
솔직히 말해서 조금 답답해.”
카심은 로드리게스의 어깨를 쳐주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서.”
“응? 여기 중요한 게 있다며.”
“그것 보다... 지금 내 특화 레벨을 올리는 게 중요해.”
“듣기로는 아무리 7에서 8로 넘어가는 순간이 아무리 빨라도 최소 5년은 지나야 한다던데.
가능 하겠어?”
카심은 잠시 뜸을 들이다말했다.
“글쎄, 적어도 5년은 절대 아닐 거같네.”
“하긴 넌 항상 모든 예상을 벗어나니까.”
“...”
평소라면 실없는 소리라며 웃어넘겼을 말이었는데 미묘하게 이상하게 다가왔지만, 당장은 그게 무슨 느낌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젠장! 어떻게 해서든 빨리 동굴 안으로 들어가!”
데나는 다급하게 외치며 소리쳤고 그녀의 뒤로 세 명이 다급하게 제법 큰 동굴 입구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까득! 까득 까득!
데나는 지친 얼굴로 다가오는 몬스터를 보았다.
흉흉한 안광.
소름끼치는 생김새를 지닌 스켈레톤이었는데 놈은 평소 보던 놈들보다 훨씬 컸으며 뼈의 색도 검은색이었다.
뛰어 오른 그 스켈레톤은 무려 10미터 높이에 이르렀고 데나는 입술을 깨물고 온 힘을 다해 막았다.
잠시 후, 널브러진 뼈들을 보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허나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니었기에 자신도 빠르게 동굴로 피신해야 했다.
다행히 스켈레톤 몬스터는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고 네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씨발... 진짜 좆 된 거 같은데?”
“도대체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처음에는 순조로웠잖아.”
찰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조금 진정된 얼굴로 데나를 보았다.
“십인장. 너도 봤지?”
“어. 봤어. 우리가 분명히 제거한 곳에서 놈들이 나타났었어.”
찰스 말에 옆에 있던 동료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젠장! 젠장! 진짜 상황 존나게 심각했잖아!”
“그것도 모르고 씨발 돈이 쭉쭉 벌리길래 꿀인 줄 알았더니. 독이었어! 젠장!”
찰스는 사기를 높이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
“우리 같은 유저들이 원래 그렇잖아.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갈 방법이 있겠지.
로드리게스 그 괴물 녀석이 있으니 어떻게든 구해 줄거야.”
“우리가 여기로 도망 친 거 어떻게 알고?
심지어 우리쪽은 몬스터로 가득 찼었잖아.
겨우 이쪽으로 우회해서 빠져나온 건데 거기를 어떻게 뚫고 오냐고!”
데나도 찰스의 의도를 알고 같이 분위기를 만들었다.
“흥분하지 말고.
우선 찰스 말대로 내일 다시 상황을 보자.
이런 일 한두 번 겪는 거 아니잖아.”
데나와 찰스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끄덕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사기가 떨어지면 안 되었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조 식량이 있었기에 배를 채울 수 있었고 힘겹게 추운 밤을 보낸 뒤에 다시 아침이 되자마자 네 사람은 조심스레 동굴 밖을 바라보았다.
몬스터 한 두 마리가 돌아다니는 게 보였지만 더 보이지 않아서 몰래 접근해 처리하고는 천천히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절벽 아래를 보았는데 그들의 표정이 다시 사색이 되었다.
“젠장.”
“저걸 어떻게 뚫냐고.”
“위로는 못 가겠지?”
찰스 말에 데나가 고개를 저었다.
“위쪽은 더 위험해.
가다가 떨어지는 순간 끝이야.
올라갈 수도 없고.”
“그럼 어떻게 하냐고!”
부하의 말에 데나는 인상을 콱 일그러뜨렸다.
아래로는 높은 절벽이 아니지만, 이쪽이 아니면 나갈 수 없었다.
문제는 그 길에 족히 50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깔려있었다.
지나가다가 마주치는 순간 한순간에 몰려들게 되면 무조건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쩔 수 없어.
내가...유인 한다.”
찰스의 말에 데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내가 해야 하는 거야.
찰스 네가 이들을 인도해.
나는 저쪽으로 달려가서 유인할 테니 저쪽 길로 향하면 될 거야.”
“자, 잠깐!”
혹시나 찰스가 마음을 바꿀까 그녀는 다급히 뛰려고 했다.
그러나 찰스는 아주 가까스로 그녀를 잡았다.
“이건 내 역할이라고...”
“저길 봐!”
그때 마침 누군가 근처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거리가 멀긴 했지만, 그들은 그게 누구인지 알았다.
바로 카심이었다.
“씨발! 하필 나타나도 저 새끼냐!”
“야 그래도 저 새끼니까 다행이지!
로드리게스에게 말하면 될 거 아냐! 야!!! 어이!!!”
“잠깐 소리 지르면 안 돼!”
하필이면소리치는 바람에 몬스터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이런 멍청한! 당장 다시 동굴로...”
“씨발! 좆됐어!”
“야이 새끼야! 빨리 로드리게스 불러와! 알겠어!?”
두 사람은 다시 달려서 동굴로 향했고 찰스도 움직이려던 그때 이번엔 데나가 잡았다.
“아, 아니야. 그 덕분에.”
카심의 시선이 이쪽에 닿았다.
“저 놈이 뭐!? 당장은 숨어야지!”
“아마... 괜찮을 거야. 아마.”
찰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았지만 데나도 스스로가 왜 이러는지 몰랐다.
그때 이쪽으로 카심이 다가오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그를 향해 스켈레톤 10마리 정도가 발견하고는 달려들었다.
카심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특별히 어떠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10마리가 달려드는 순간까지도.
그런데 갑자기 10마리가 멈칫했고 카심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
“뭐야?”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있음에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보았다.
카심은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달려들던 스켈레톤이 갑자기 모조리 부서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잘못 봤나 싶었지만 또 달려드는 몬스터도 똑같았다.
“...”
“...”
두 사람은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어느새 카심은 자신들 바로 아래 절벽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자신들 뒤에 나타났다.
“헉!”
“...”
“너희들뿐이냐?”
“동굴로 도망친 두 명이 더 있어요.”
“데리고 와.”
“... 네.”
데나는 빠르게 동굴로 향했고 찰스도자신도 모르게 데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잠시후, 둘을 데리고 왔다.
“이런 미친! 진짜였네!
우하하하! 씨발 살았어 살았다고!”
“근데 진짜 네가 다 잡았다고?”
그중 한 명이 카심에게 다가와 어깨를 휘감았다.
“이 새끼 구라치지 말라고.
로드리게스 그 친구 어딨어 어?”
카심은 자신의 어깨를 올린 그 손을 바라보다가 데나를 보았다.
“이 두 놈은 너희들을 버리고 저쪽으로 도망친 거지?”
“어? 뭔 소리야? 로드리게스 어디있냐니까?”
카심의 말에 데나는 가볍게 끄덕였고 그 순간 카심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에 팔을 올린 놈을 보며 말했다.
“내려.”
“...”
그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 공포를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순식간에 팔을 내렸다.
이 공포를 느낀 것은 앞에 있는 셋도 마찬가지였다.
카심은 돌아서서 걸었고 넷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뒤따랐다.
한참을 걸어서 도착했을 때 로드리게스의 주변에도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 시체가 보였다.
“카심!”
“다른 사람들은?”
“저기서 짐꾼이랑 같이 일하고 있지.”
“할 일이 생겼다.”
“역시 가보는 거지?”
“어. 십인장.”
“예, 예!”
십인장은 어느새 달려와 바른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로드리게스는 피식 웃었고 카심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짐꾼이랑 여기 다 정리하고 돌아가.
이 정도면 오십인장은 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저기서 나타난 이상 현상에 대해서 조사해본다고 말해.”
“알겠습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하대.
그러나 당사자인 데나조차도 이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느꼈다.
그렇게 데나는 돌아오자마자 상황을 알렸고 소식을 들은 진 레첼은 깜짝 놀랐다.
당연히 주웬을 통해 이미 카심이 이곳에 있음을 들었다.
다만,다른 이유로 놀라고 있었다.
“주웬 기사님!”
“예. 아무래도 이상 현상에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위험하잖아요.
거기는... 클리어하지 못하면 나올 수도 없는데!”
“제가 가보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주웬은 데나를 보았다.
“위치가 어디랬지?”
“그, 그게 북쪽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갔을 때 나오는산맥 근처 위치입니다!”
주웬이 다급하게 나가는 것을 보며 데나는 이 상황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주님이고 저 대단한 기사님이고 카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물론 걱정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무지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저 멍할 뿐이었다.
***
제법 먼 거리였지만 워낙 주웬의 속도가 빨리 순식간에 도착했다.
주변을 찾던 와중 이상 현상을 목격했다.
공간이 일그러져있었고 푸른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
임시로 부르고 있는 명칭이었다.
주웬은 그곳을 향해 들어가자 출렁이더니 안으로 사라졌다.
나타난 곳은 꽤 크고 깊은 동굴이었다.
원래는 빛 한 점 보이지 않아야 할 곳이지만 환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여기도 아벨리우스 세계인가?”
그녀는 창을 띄웠는데 역시나 떠올랐다.
<상태>
근력: 329
체력: 292
특화: 무기 강화 Lv 8
특성: 없음
“...”
주웬은 이제 이 아벨리우스 세계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다른 대륙의 일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이것을 보면서 문득 이 아벨리우스 세계가 어쩌면 또 다른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가졌다.
이 던전 브레이크는 마치 그 세계에서 이쪽 세계로 빠져나오려는 것처럼 보였다.
쿵!
잠시 잡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앞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고 주웬은 생각을 멈추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어지는 동굴의 길에 빠르게 가던 와중 갑자기 무언가 덮쳤고 검을 들어 막았다.
카앙!!
“!!”
“어, 어... 주웬 기사님? 죄송합니다! 워낙 예민했던 상황이라!”
로드리게스였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묵직한 일격에 깜짝 놀랐다.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주웬은 웃으면서 팔을 빼는데 아직도 느껴지는 묵직함에 조금 놀란 얼굴로 로드리게스를 보았다.
카심과 같이 다닌다는 인물.
카심뿐만 아니라 로드리게스도 역시 평범하지 않음을 방금 일격으로 확실하게 느꼈다.
“카심씨는...?”
“앞쪽에 있어요.”
주웬은 쓰러진 몬스터를 보았다.
“스켈레톤이군요.”
“카심 말에 의하면 일반적인 놈들이 아니라고 했어요.
제 공격도 막을 놈들이라.”
“우선 도우로 가죠.”
“아, 혼자서 한다고 해요.
곧 보스라.”
벌써 보스 몬스터에 도달했다는 말에 놀라 앞으로 가서 살피는데 동굴 끝에는 제법 큰 신전이 나왔다.
그 가운데는 말을 타고 검은색 갑옷을 입은 무시무시한 해골이 있었다.
데스 나이트.
아주 위험한 놈이었다.
놈에게서 흘러나오는 흉흉한 기세는 주웬 조차도 긴장케 만들었는데 그런 괴물 앞에 카심은 혼자서 서 있었다.
데스 나이트의 말이 콧바람을 내며 앞발을 위로 올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동시에 카심의 모습도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는 동굴 전체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