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14. 이유(4)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는 동굴 전체를 울렸다.
콰쾅! 콰직! 쿠우웅!! 카앙! 카카카캉!!!
물론 로드리게스와 주웬의 눈엔 두 사람의 움직임이 잡혔다.
“저 몬스터는 뭔데 저렇게 빨라.”
로드리게스는 눈에 보이더라도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하고 공격을 당할 것임을 알고 괜히 카심이 혼자 상대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고 느꼈다.
주웬도 처음 보는 데스 나이트를 보며 몹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저 덩치에 저런 빠름은 물론이고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검이 움직일 때마다 벽과 땅이 움푹 파였다.
절대 혼자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런데 저렇게 빠른 공격을 카심은 너무도 간단하게 피했다.
오로지 더 빠른 스피드로.
“빨라. 빨라도... 너무.”
몬스터가 아닌 카심의 스피드를 보고 말했다.
충격적이었다.
빠르다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빨라도 너무 빨랐다.
스피드 강화라 해도 저건 말이 되지 않았다.
움직임뿐만 아니라 아직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섬뜩한 그 파괴력까지.
멍하니 구경하다가 로드리게스를 보며 말했다.
“위험한 순간에 난입하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과연 위험해질까 싶었다.
한편, 카심은 지금 계속해서 ‘신속’을 사용하고 있었다.
“흠.”
데스 나이트의 붉은 안광이 번쩍일 때마다 엄청난 공격이 이어졌지만 카심은 한 박자 더빠르게 공격을 피해내고는 순식간에 접근해 말의 다리를 창으로 가격했다.
빠악!
관절을 공격하자 말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공격받음에도 말은 다리를 들어 찍었다.
콰아앙!!
말이 한 공격임에도 동굴 전체가 울릴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동시에 타고 있는 데스 나이트의 공격도 같이 이어졌지만 카심은 그 모든 공격을 너무 여유롭게 피했다.
“후우.”
하지만 표정은 여유롭지 않았다.
신속을 유지하고 있는 게 마냥 쉬운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상태에서 소닉붐을 사용할 수 없었다.
마력의 운용이 너무나도 하드했고 한순간 마력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몸이 버티질 못할 거라는 걸 느꼈다.
신속만해도 몸에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최근 늘어난 신체 능력치 덕분에 지금도 이 정도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신속을 한 번 정도 쓰는 게 다였던 걸 생각하면 사실 엄청난 성장이었다.
괜히 주웬이 그것을 보고 충격을, 먹은 게 아니었다.
벽을 타고 달리던 카심은 뛰어올랐고 그 자리에 검은색 검기가 날아와 박혔다.
데스 나이트 역시 같이 벽을 달리다가 뛰어올라카심을 뒤쫓았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쫓고 쫓기는 전투는 로드리게스와 주웬의 눈동자와 얼굴을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만들었다.
파파팟! 콰앙! 콰지지직! 쿠우우웅! 쾅!! 빠박! 파직!
동굴이 울릴 정도로 큰 충격이 이어지기도 했고 카심과 데스 나이트는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서로 공격을 주고받기도 했다.
“후우, 후우.”
덕분에 카심의 체력이 빠르게 빠졌고 반대로 데스 나이트는 여전히 맹렬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로드리게스와 주웬은 조금 걱정이 앞섰다.
“우리가 도와야겠는데요?”
주웬 말에 로드리게스가 소리쳤다.
“카심!”
하지만 카심은 손을 올렸다.
아직 오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시작된 싸움.
그리고 카심의 표정은 더욱 더굳어졌고 턱까지 오는 긴 머리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아, 하아!”
숨소리도 훨씬 거칠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난입하지 말라고 했고 또 전투가 시작되었다.
콰앙!
쉴 새 없이 진동이 이어졌고 이미 이곳은 더는 신전이라 할 수도 없을 만큼 파괴되었다.
땅 곳곳이 크게 파여있었으며 까딱 잘못하면 잘못 밟고 넘어질 만큼 파괴된 상태였다.
“헉, 헉. 크윽...”
카심은 한 번도 공격에 당하지 않았지만, 육체의 한계로 인한 통증에 고통스러워했다.
“야!! 진짜 위험하다고!”
그러나 또 카심은 손을 올렸다.
정말로 위험해 보이는 상황이었기에 로드리게스는 무시하고 달려들려고 했지만 주웬이 막았다.
“그라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로드리게스가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잘 알지만 정말 위험해 보였다.
그렇게 또 10분이 더 이어졌을 때 이제 카심은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비틀거리며 창을 지지대 삼아 미친 듯이 숨을 헐떡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데스 나이트도 조금 지쳤는지 아까보다는훨씬 움직임이 느려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카심에비하면 여전히 체력이 넘쳤다.
그때 데스 나이트의 검이 움직였고 카심은비틀거리는 몸으로 힘겹게 피해냈다.
쾅!
“크윽!”
그러나 그 충격에 몸이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는 그때 어느새 데스 나이트는 앞에 나타나 말의 앞발이 들었다.
콰앙!
“크흡!”
몸을 채 일으키기도 전에 몸을 날려 피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도 참으며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갑자기 다리가찌릿하더니 엄청난 통증과 함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계였다.
특화는 물론 마력까지도 이제 거의 희미할 정도였지만 마지막 한 줌까지 뽑아내고 있었다.
신체도 이제 완전히 한계였다.
모든 것이 극한까지 치달은 상황.
그 사이 어느새 데스 나이트는 앞에 서 있었고 그 검이 위로 향했다가 움직였다.
웬만한 유저라면 지금의 공격도 눈에 보기 힘들 정도로 빨랐을 테지만 지금 카심의 눈에는 그 모든 동작이 아주 느릿하게 보였다.
한계였지만 감각은 평소보다 배는 더 또렷하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하기 위해 특화와 마력을 마지막 한 줌까지 뽑아냈다.
그러나 더 이상 고갈 났기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건드렸다.
그때.
극한으로 끌어올린 감각은 갑자기 변화를 일으켰다.
더 이상 없을 것만 같은 자원을 찾기 위해 맹렬하게 움직였고 마침내 어느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감각은 깊고 깊은 곳까지 움직였고 마침내 발견한 그곳에는 어마어마한 자원이 숨겨져 있었다.
한순간 카심의 몸이 초록빛이 번쩍였고 그와 동시에 데스 나이트의 검이 카심의 목을 그었다.
“카심!!!!”
“...”
로드리게스는 충격에 소리쳤고 주웬 역시 눈동자가 급격하게 커졌다.
“크헉!”
그런데 두 사람은 자신들 바로 앞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휙 내렸을 때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
“야, 야 인마!! 어떻게 된 거야!”
“시, 시끄러... 저거나 처리 해.
난 이제... 됐으니까.”
주웬은 쓰러진 카심을 보며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그녀는 지금 아까 받은 충격에 몇 배나 되는 충격을 받고 있었다.
아니, 충격을 넘어 경악이었다.
“도대체... 당신은 뭐죠?”
말이 되지 않았다.
방금 그 빛.
그것은 명백히 특화 레벨 8에 해당하는 빛의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올 때는 자신의 눈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카심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주웬은 검을 들고 뛰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데스 나이트가 이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두사람은 정말로 죽을 힘을 다해 싸웠고 다행히 카심에 의해 많은 체력이 빠진상태였기에 주웬과 로드리게스는가까스로 잡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주웬은 다시 한번 로드리게스에게 놀라야 했다.
자신도 막기 힘든 공격을 저 방패로 손쉽게 막아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두 젊은 청년들은 볼수록 믿기지 않았다.
<죽음을 내리는 자의던전을 클리어 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아벨리우스 세계와는 또 다른 느낌의 문구였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능력치 보상이 없었다.
뭔가 다른 느낌에 두 사람은 다소 당황하는데 서로 앞에 빛이 떠올랐다.
로드리게스 앞에는 금빛이었고 주웬 앞에는 푸른빛이었다.
“이게...”
어색해하며 로드리게스는 천천히 손을 뻗었을 때 뻔쩍이더니 무언가 땅에 떨어졌다.
처음 보는 아티팩트지만 이상하게 낯익다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줍는 순간 정보가 떠올랐다.
<데스 나이트의 검>
특화 사용 시 변화.
데미지 상승.
체력 소모 값 상승.
하급 언데드 몬스터 통제.
“어... 와.”
아주 짧은 감탄사.
동시에 로드리게스는 소리를 질렀다.
“우아아아아!!!”
주저할 것도 없이 특화를 사용했는데 무기는 붉은빛이 아닌 데스 나이트가 사용한 것처럼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으하하하. 야! 카심 이것 봐라! 존나 멋있어!”
“오.”
카심이 보기에도 상당히 멋이 있었다.
주웬도 조금은 부러운 눈빛을 보낼 정도였다.
“심지어 데미지 상승까지 붙었어!”
“좋은데?”
“근데 체력 소모 값이 상승한데.”
“... 흠. 애매하네. 뭐 그래도 너에게는 딱이겠다.
끄응. 아직도 아프네.”
카심도 얻었지만 아티팩트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장비였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로드리게스는 좋아하던 것을 멈추고 달려와 부축했다.
“야이 미친놈아. 진짜 위험했다고.”
“안다. 하지만 다행히 가치는 있었다.”
그때 주웬이 다가왔다.
“축하드려요.
직접 봤음에도 믿어 지지가 않네요.
아마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저보고 헛소리하지, 마라고 욕을 할 거예요.”
카심은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무슨 말이에요? 왜 갑자기 축하를...? 너 뭐 좋은 거 얻었냐?”
“그런 게 있다.
네 덕분에 얻은 거니 고맙다.”
“무슨 소리야?”
카심은 대답 대신 가슴을 툭툭 쳐주었다.
로드리게스의 예상을 넘는다고 했던 말 때문이었다.
예상을 뛰어넘어 더욱더 극단적인 방법을 시도해버린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미친 짓이긴 했지만 어쨌든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여기는 독특하네요.
기존 방식과는 뭔가 다르군요.
클리어하지 못하는 이상 돌아가지도 못하고 능력치를 주는 것도 아니고.”
주웬도 데스 나이트가 죽은 자리에 떠오른 입구와 같은 이상 현상을 바라보았다.
저기가 바로 출구였다.
“예. 던전 브레이크라고 우선 부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역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지금 이 던전은 너무도다른 궤도였다.
인위적이란 느낌이 강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경고... 인가?”
자신은 이 세계에 개입할 수 있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생각해보면 자신은 이 세계에 있어서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이 역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니 자신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미래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금은 큰 영향을 주고 있으니 만약 정말로 저쪽의 신이라 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자신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더는 깊게 하지 않았다.
너무 신이니 뭐니 그런 존재가 자신을 보내려고 하니 같은 것은 망상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온 세 사람은 지친 표정이 가득했다.
진 레첼은 주웬에게 상황 설명을 듣자마자 카심을 보고 소리쳤다.
“아니! 그렇게 위험한 곳을 막 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정말 큰일 날 뻔했잖아요!
그리고! 여기에 왔으면 저에게 바로 인사하러 와야지 뭐하는 거예요!
왜요? 끝까지 인사 안 하려고 했어요?
참나 그러......”
“...”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말에 카심은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잠깐... 나 너무 피곤하니까... 조용...”
“악! 카, 카심씨!”
진 레첼은 자신에게 쓰러지는 카심을 안았다.
“공주님!”
“그만! 내가 할게요.”
주웬이 다가와 잡아 주려고 하자 진 레첼은 너무도 진지하고 단호한 얼굴로 저지했다.
그리곤 혼자서 끙끙 옮기며 카심을 자신의 침대에 눕혔다.
주웬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로드리게스를 보았고 로드리게스는 조심히 상황을 설명하자 입을 벌려 놀라워했다.
“자자! 이제 다들 일들 보세요!
내가 카심씨 챙길 테니까!”
주웬과 로드리게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나갔고 진 레첼은 흐뭇하게 카심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