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14. 이유(9)
* * *
그 덕분에 모두 안전하게 반대편 육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기둥을 잡고 있다가 아래를 바라보며 주변을 둘러 본 카심은 특별한 위험이 없는 것을 알고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떨어진 카심을 향해 소드 마스터 길드 마스터와 다른 길드 마스터가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하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오?”
“아티팩트입니다.
일회용으로 거대한 몬스터라도 피하게 해주는 것이지요.
단 확률이 10퍼센트였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거짓말이었지만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납득이 될만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아티팩트 같은 게 있을 거라고.”
플륨은 비웃으며 말했지만 두 길드 마스터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도망친 그는 그들의 입장에선 비겁자나 다름 없었다.
“그대의 용기도 대단하오.
우리도 무서웠거늘.”
“맞습니다.
백인장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그대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두 길드 마스터는 확실히 그 위치에 올라 올만 한 인물들이었기에 카심은 가볍게 끄덕였다.
“내려오면서 위치를 봤을 테지만 아직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여기에는 나무도 있으니 나무를 이용해 위쪽 몬스터의 시선을 피해 이동하죠.”
어느새 자연스레 길드 마스터 둘에게도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로드리게스는 그것을 보며 오히려 더 감탄했다.
“...”
힘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저 대단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다루고 있었다.
대단했다.
봐도 봐도 너무 대단한 사람이었다.
때마침 카심과 눈이 마주쳤다.
“왜?”
“아니. 그냥.”
“나 게이 아니다.”
“미친놈아 나도 여자 좋아하거든?”
“안다. 쓰레기였지.”
“아니 그건... 크흠.”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자.”
카심은 웃으며 가슴을 쳤다.
“그리고 아직 긴장 풀지 마라.
나도 여기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곳이니까.”
“오케이!”
그러나 걱정과 달리 출구로 나가는데 그 어떤 위험도 없었다.
하나둘, 밖으로 나가면서 카심은 주변을 보았다.
보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했다.
원래 이 던전은 이런 조건이 아니었다.
사실 카심이 이용한 길은 절대로 갈 수 없는 함정 같은 곳이었다.
물속에서 그들은 몬스터의 먹이가 될 운명이었지만 마력을 가진 카심이었기에 아주 특별히 이동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었기에 카심은 미련 없이 출구로 들어갔고 던전 브레이크 현상은 사라졌다.
모두 되돌아오자 환호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몬스터와 싸우지 않았지만, 너무도 무력할 수밖에 없는 조건의 던전이 오히려 더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각자 지친 얼굴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각 길드 마스터는 길드원들을 정비하고 있었다.
카심은 같이 온 백인장 셋에게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 카심님 덕분입니다.”
“맞습니다.
아니었으면 죽었을 겁니다.
그리고 로드리게스님 덕분에 또 편했습니다.”
백인장 셋은 로드리게스를 보며 또 칭찬하자 로드리게스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으흐흐, 아닙니다. 저는 그저... 어 어디가?”
그때 카심은 갑자기 어디론가 걸어가자 의아한 얼굴로 백인장 셋과 로드리게스는 바라보았다.
한편 소드 마스터 길드 마스터와 다른 길드 마스터 또한 정비하고 있는 와중에 카심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바로 다시 다가갔다.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렇소. 길드원끼리도 그대가 아니었다면...”
웃으며 다가가 인사를 나누려 했지만 카심은 그런 둘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두 사람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는데 그가 향하는 곳을 보았다.
플륨이었다.
“후우, 엿 같은 던전이었다.
다음 던전 때...”
“어? 마스터.”
“야? 미쳤어?
내가 말할 때 끼어든 거냐?”
“뒤에...”
“뭐? 뒤에 뭐... 커헉”
뻐억!!
플륨의 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기습에 정적이 흘렀다가 플륨을 공격한 것을 알고는 사고가 정지 되었다.
플륨.
3대 길드 아래 지만 10대 길드 중 하나로 거대한 길드의 마스터였다.
특화 레벨 8에 그 앞에 무릎 꿇은 강자도 한 둘이 아니었다.
개인 실력만 따진다면 3대 길드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공격한다?
그것도 한 두명이 아닌 수백명이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상황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은 무슨 상황인가 싶어 웅성거리며 구경했다.
플륨도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쓰러진 채 있다가 그 웅성거림에 천천히 몸을 들었다.
“하!”
그리곤 설마 자신이 생각하는 그게 맞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카심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하... 하.”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순식간에 특화를 사용해 카심의 뒤에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빠악!
그런데 울린 소리는 타격음.
그리고 또 구른 것은 플륨이었다.
“???”
플륨은 자신이 왜 바닥에 또 구르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어서지도 못한 채 멍하니 땅과 입을 맞대고 있었다.
분명히 베었다.
놈은 반응도 하지 못하고 목이 잘려야 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플륨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카심을 보았다.
카심은 여전히 자신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을 보자마자 이해고 나발이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곤 다시 순식간에 접근해 검을 내려쳤다.
이번에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내려치는 검이 얼굴에 닿기 전 뭔가 번쩍이며 자신의 팔을 툭 치고 얼굴로 향해 직격하는 것을.
빠악!
또 플륨은 굴렀고 이 일대는 정적이 흘렀다.
특히 충격을 받은 인물은 바로 크작스였다.
“어...”
분명히 그는 자신과 같은 스피드 강화였다.
심지어 이능 또한 자신과 같은 가속이라는 것도 알아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가속은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방식의 이능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보기에는 그러한 일련의 동작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스피드 강화의 경우 일반적인 특화보다 훨씬 눈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의 눈으로도 잔상이 보일 정도로 공격이 빨랐다.
“으아아아아!!”
결국 분노가 터진 플륨이 소리를 내지르며 이능을 펼쳤다.
그의 이능은 붉은 검 여러개가 생겼고 그대로 카심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카심은 플륨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 충격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저 걸어가고 있는 카심은 날아오는 다섯 개의 붉은 빛 검을 그냥 지나쳤다.
말 그대로 정말 통과되고 있었다.
“오, 오지마 씨발!”
결국 기세 등등하던 플륨도 더 이상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카심의 모습은 누구라 할지라도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맞지 않았고 공격을 하더라도 자신이 먼저 맞으니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앞에 서는 순간 플륨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슈야아아아악!
그의 공격이 강풍을 일으킬 정도로 거셌음에도 불구하고 카심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모든 공격을 피했다.
“...”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음을 느꼈을 때 플륨의 마음속에는 어마어마한 공포가 생겨났다.
카심의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 동작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런데 플륨은 차마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동물을 가둬 전기를 내보내면 처음에는 반응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가만히 있게 되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느리지만 그는 절대 피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 손이 걸국 얼굴 앞에 도착했다.
주먹이 펴졌고 그대로 플륨의 볼을 때렸다.
짜악!
“죄송합니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 플륨은 카심의 말에 놀라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 순간 다시 손이 날아와 볼을 쳤다.
짜악!
“죄송합니다.”
그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즉, 자신보고 하라는 의미였다.
치욕스러웠다.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그토록 기세등등했던 자신이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뺨을 맞는 것도 미칠 거 같은데 심지어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저 말을 해야만 했다.
그 순간 다시 터지는 열불에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상대는 감히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단 번에 깨닫게 해주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 다.”
“뭘?”
“예?”
“뭘 잘못했냐고.”
“그, 그게...”
짜악!!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면서도 당황스러웠다.
플륨이 누구인가?
그의 악행을 알고 있었기에 사실 정말로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젊은 청년에게 뺨을 맞으면서도 공포에 떨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 힘든 광경.
그리고 이어지는 플륨의 말은 더욱 더 믿기 어려웠다.
“가, 감히... 제가 알아 뵙지 못해...”
짜악!
“됐다. 지 잘못이 뭔 지도 모르겠지. 그럼 그냥 몸으로 댓가를 치루면 되겠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때서야 갑자기 그는 무릎을 꿇고 대가리를 박기 시작했다.
카심은 그것을 보며 손을 내렸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그 말을 하고 돌아서서 다시 걸어갔고 사람들은 일제히 카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로드리게스는 카심이 오자마자 말했다.
“뭐야 죽인다더니 왜 안 죽여?”
그 소리는 당연히 플륨의 귀에도 들어가 몸이 움찔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몸을 일으켜 빠르게 도망쳤다.
그의 체면으로는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 도망친다.”
“저런 류의 인간은 보통 자기보다 더 강한 상대와 마주치면 얄짤 없이 숙이기 마련이다.”
사실 플륨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것을 미리 앞당겨 줬을 뿐이었다.
“그리고... 겨우 그런 일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이게 되면 앞으로 왕국에서 생활하기 어려워질 거다.”
“그런데 보복하려면 어쩌려고?”
그때 카심의 입꼬리가 올라갔는데 순간 로드리게스는 흠칫 했다.
“그럼... 고맙지.”
“무서운 놈.”
***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진 레이널은 인상을 찌푸렸다.
항상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던 그는 최근 들어 이렇게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가 인원이 저것들보다 대략 3배는 많은데 어째서 진행 속도가 비슷한 게!”
왕자의 큰 소리에 몇 이들은 침묵했지만 알베이안이 나섰다.
“왕자님. 저희 쪽은 인원이 많아 적절한 휴식을 이용해 체력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반면에 저들은 저희와 같은 속도를 위해 무리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힘을 아껴야 하는 인력조차 가장 앞선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장은 그렇게 보이더라도 결국 차이가 나게 될 겁니다.”
차분한 그 설명에 흥분했던 왕자는 체통을 지키듯 진정했다.
“후우. 역시 알베이안입니다.
상황을 정확히 보는군요.
그런데... 저쪽에 재미있는 소문이 있더군요.”
“카심이라는 자이옵니다.”
“그 자는 분명히...”
“예 맞습니다. 공주님과 함께 미션을 진행했던 인물이옵니다.”
“허, 나와 또래 아닙니까?
플륨이라는 인물은 상당한 실력자로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로군요.
끌어들일 수 있으면 끌어들이도록 하세요.”
“아마... 힘들 겁니다.”
“... 만난 적이 있습니까?”
“예.”
진 레이널은 알베이안을 굉장히 신뢰했다.
“아쉽군요. 흐음, 방법이 없으려나?”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뭐냐는 표정에 알베이안은 조용히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