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14. 이유(10)
* * *
그게 뭐냐는 표정에 알베이안은 조용히 속삭였다.
다음 날.
진 레첼은 진 레이널에게서 받은 편지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야?
오라버니?”
“왜 그러십니까?”
“드로얀.
카심씨를 불러주세요.”
잠시 후, 카심이 오자 진 레첼은 드로얀을 내보내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거 보세요.”
편지를 본 카심은 별다른 변화 없이 다시 건네주었다.
“봤어요?”
“어.”
“그런데 왜 아무 반응이 없어요!
이거 누가 봐도 카심씨 노리는 거잖아요!”
“알아.”
진 레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 절대 거절해야겠어요.
그리고 카심씨도...”
“아니, 그대로 해.”
“예? 위험해요!”
“괜찮아. 이걸 이용하면 된다.”
진 레첼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와 로드리게스는 최근 속도를 높이려고 고생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소드 마스터 길드와 나머지 두 길드 역시 마스터와 간부들이 앞장서서 움직였지.
덕분에 시간은 앞당겼으나 체력이 많이 소비했어.
다음 던전에 들어갈 때가 되면 꽤 위험한 상황이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이용해.”
“예?”
“저놈은 너를 이용하려 하면 너도 이용하라는 말이다.”
“어떻게요?”
카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이 상황은 인류에 위험이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저놈은 그것을 아직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려고 하지.
하지만 너는 인류를 위해 움직인다는 식으로 포장하면 돼.
그런 작은 소문을 흘린다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인식에 제법 큰 영향을 끼칠 거다.”
“아...”
“상대가 비열하게 나온다고 해서 너는 비열하지 않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교만이다.
내가 압도적이지 못하면 자신 역시 비열하게 나가야 해.
특히 네가 사는 세상은 더욱.”
진 레첼은 짧게 감탄했다.
최근 자신도 많은 성장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카심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아까 말했다시피 정말로 이 상황은 좋지 않아.
멍청하게 둘이서 경쟁하다시피 하는 이 상황 때문에 속도가 늦어.
적절한 인원 배치가 되어서 이 상황을 빨리 타개해야 한다.
지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이 상황에서 너희들의 왕 싸움에 이용하지 마라.”
진 레첼은 입술을 깨물며 끄덕였다.
그것을 보며 카심은 이해했음을 알고 나가자 밖에 서 있는 로드리게스와 드로얀이 물어왔다.
“어떻게 됐어?”
“예상대로 흘러가는 거 같다. 고생했다.”
“후우. 뭐 그래도 그 덕분에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빛도 달라져서 재밌었어 흐흐.”
옆에 있던 드로얀은 의아했다.
“무슨 소리 십니까?”
드로얀에게 상황을 대충 설명해주었다.
“그럼 일부러 그렇게 무리하신 겁니까?”
“예. 드로얀님께서도 고생했습니다.”
말해준 이유가 바로 드로얀도 앞선에서 고생했기 때문이다.
주웬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허. 참. 저는 그저 공주님을 유리하게 해주려는 거 같았는데 그런 의도셨다니.”
“뭐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겁니다.
생각보다 몬스터가 많습니다.
거기다 던전의 수준도 상상 이상으로 위험할 곳도 있을 테고.”
드로얀도 앞선에서 움직였으니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도도 있었다.
빨리 이곳에 오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황이 진행된 이후에 두 진영이 합쳐지게 되었다.
진 레이널이 나서서 이 상황에 대해서 열거했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등 연설을 했으며 모두가 편이라는 것처럼 포장했다.
재미있게도 카심이 말했던 것을 진 레이널이 표면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자신이 이 어려운 상황에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되기에 합치게 만들었고 진 레첼이 암묵적으로 이렇게 분리시켰다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장했고 당연히 진 레첼은 카심의 말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정보원을 이용해 아주 미묘하고 미세하게 소문을 퍼트렸다.
그 부분에 있어서 카심을 이용해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래야만 소문에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실히 두 진영이 뭉치자 몬스터 사냥은 이전보다 훨씬 힘이 생겼다.
제대로 된 인원이 배치되는 순간 체력 유지는 물론 속도에 있어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당연히 이제 장군의 위치에 있었다.
심지어 세 길드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카심의 명령에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불만이 없었다.
그럴만도 했다.
두 길드는 물론 새로 합류한 길드도 카심의 능력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쪽 지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알베이안과 영웅 길드 부 길드 마스터인 킴, 지금 이곳 드래고니안 길드를 이끄는 간부인 안데르나도 카심을 보고 있었다.
“와~ 진짜 신기해.
우리 그때 전사의 탑에 있을 때 눈여겨보던 녀석이잖아.
그런데 벌써 저런 위치에 올랐다고?
안 그래 알베이안~?”
알베이안도 피식 웃었다.
“그러게요. 참 신기한 청년입니다.”
“오홍! 흠흠. 알베이안 쟤 우리가 데리고 간다?”
“할 수 있다면 해보세요.
캄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사람이니까.”
알베이안의 표정이 사뭇진지해지자 캄은 깜짝 놀랐다.
그가 이런 식으로 표현한 인물은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특화 레벨 7일 때도 자신의 공격을 막았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났더니 레벨 8이 되었다.
역사상 저 나이에 레벨 8이 된 인물은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사실 지금 자신들은 역사적인 인물을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그렇다 해서 무섭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알 수 없다고 느낀 이는 처음이거든요.
무슨 생각인지는 어렴풋이 알겠지만... 딱 마지막 가장 깊은 의도는 모르겠거든요.”
“으음... 그렇다면 나도 패스.
난 알베이안 같은 속이 시꺼먼 것들은 딱 질색이거든!”
캄은 푸른색 머리를 찰랑이며 귀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언제는 제가 제일 좋다면서.”
“그것도 맞아~”
두 사람이 웃고 있을 때 드래고니안 간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안데르나.
그녀 역시 카심을 보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분의 오라비이자 현 기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엘룬님마저 관심을 보이는 남자.”
안데르나는 자신이 보기에도 그럴만하다고 느꼈다.
난다긴다 하는 이들도 아무리 빨라도 30세 이후에 대게 특화 레벨 8에 오른다.
그런데 저자는 20세 그것도 초반에 올랐다.
그것이 비록 스피드 강화라고는 하지만 대단했다.
거기다 그들은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던전마저 클리어 한 인물들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 플륨을 압도적으로?”
안데르나는 플륨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이 손을 봐줄 생각이었었다.
“재밌네. 과연 어느 정도 실력인지 보고 오라 했으니.”
이렇듯, 모두의 관심 속에서 3대 길드 인물들은 카심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 따가운 시선에 로드리게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우. 뒤통수가 따갑네.”
“이제부터 네가 진짜 원하는 인기를 얻을 시간이다.
힘 아끼지 마라.”
“후우. 알았어.
너 그리고 좀 나랑 떨어져.
너무 가까이 있으면 비교되잖아.”
“알았다 인마.”
두 사람은 장군의 위치에 있었지만, 이제는 사실 두 진영이 합쳐지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특별히 가장 앞쪽 위치에 있었다.
진 레이널 진영에 있다가 온 지원자들은 그런 둘을 보며 아니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5천은 가까이 되는 인원이었지만 두 사람은 당당히 가장 앞에 서 있었다.
전방에는 몬스터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아직 공격하라는 지시도 내려오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천천히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진 레이널은 그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 건방진...”
“제가 준 특권이에요.
어느 지시에도 따를 필요 없다는.”
“어리석구나. 항상 모든 선택은 높은 곳에서 가져야 한다.
역시 너는 자격이 없어.”
“아니요. 예외는 필요한 법이에요.”
예전과 달리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그녀를 보며 진 레이널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다면 어디 저 둘이서 저것들을 상대하게 놔두도록 해야겠네.”
“...”
진 레첼은 아무런 말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진 레이널은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는 웃었다.
이 모든 게 이미 카심과 입을 맞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걸어나가던 카심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것을 보자마자 로드리게스를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 시선에 로드리게스는 씩 웃더니 서로 양쪽으로 퍼져 달려나갔다.
덕분에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수천명이 뒤에 서서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아직 두 사람에 대한 것을 소문으로만 접한 이들은 비웃었지만, 둘의 전투를 본 이들은 다른 의미로 웃고 있었다.
이들의 표정 변화가 어떻게 될지 말이다.
알베이안과 킴, 안데르나는 물론 3대 길드의 간부들과 길드원들도 그것을 재미있다는 듯 구경했다.
먼저 시작된 것은 오른쪽인 로드리게스였다.
“우와!!”
“뭐야 저거!!”
시작부터 사람들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럴 것이 로드리게스의 이능 때문이었다.
그의 이능은 거대한 붉은 검을 만드는 것.
지금 상황에서 분명히 굉장히 좋은 이능이었지만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흥분하는 것일까?
바로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데스 나이트의 검은 이능마저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로드리게스는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알베이안과 킴 그리고 안데르나 마저 화들짝 놀랐다.
“이건 좀... 놀라운데요?”
“아티팩트겠지?”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이능의 영향을 주는 아티팩트라니... 들어본 적도 없군요.”
“저 방패도 예사롭지 않은 거 같은데?”
그 화려함 속에 시선이 빼앗겨 있다가 시작된 로드리게스의 전투는 한 방 한 방에 몬스터의 몸을 베어 넘기는 것을 보며 또 놀랐다.
“대단한... 힘이군요.”
“... 쟤 정말 특화 레벨 7 맞아?
아니 저 나이인데 무슨 힘이.”
“특성인 거 같습니다.”
문득 알베이안은 그때를 떠올렸다.
그 역시 무지막지한 칸의 공격을 막았었던 걸 떠올랐다.
그것 역시 어이없는 일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괴물이 괴물을 키우고 있었군요.”
“오 쟤도 시작하네.”
이번엔 시선이 카심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세 사람의 표정이 완전히 굳더니 점점 입과 눈이 벌어졌다.
세 사람의 눈엔 보였다.
아주 흐릿하지만, 그의 움직임이 뭔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벌어지는 풍경.
앞의 몬스터의 최소 수십 마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인지하고 충격을 받게 한 것은 뒤이어 들려온 소리였다.
파아아아앙!!!!!!
“...”
“...”
“...”
분명했다.
소리보다 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살아생전 저런 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우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울려퍼지는 함성.
이것 역시 진 레첼과 카심의 계획이었다.
본래라면 의도적으로 함성을 내지르는 것이었는데 카심이 보여준 것은 지금까지와는 수준이 달랐기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흥분했다.
심지어 그 함성 속에 자신도 모르게 진 레이널 진영의 지원자조차 따라 소리치고 있었다.
카심이 말했던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눈치 챈, 진 레첼이 앞으로 나서 소리쳤다.
“전군!! 진격!!!”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
진 레이널은 순간 당황했지만 비웃으려 했다.
자신의 명령이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이미 전달해놓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천 명의 지원자가 일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진 레이널의 미간이 급격히 주름이 생겼고 진 레첼은 미소를 지었다.
“...”
알베이안은 이 모든 상황의 변화를 느끼며 카심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위험해... 너무.”
다시 한번 카심이란 존재에 대한 경고가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