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 14. 이유(11) (87/119)

〈 87화 〉 14. 이유(11)

* * *

다시 한번 카심이란 존재에 대한 경고가 각인되었다.

***

임시로 만든 회의장에는 지금 코냐, 알베이안, 캄, 안데르나, 그리고 카심이 있었다.

“이쪽을 이용하게 된다면 조금 더 편한 위치에서...”

코냐의 말에 알베이안이 부정했다.

“그렇게 되면 위쪽에 있는 몬스터가 인식해서 쏟아질 겁니다.

그럼 제법 피해를 입겠지요.

여기 이 지형을 보세요.”

이어진 알베이안 설명에 코냐는 끄덕였다.

거의 알베이안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아무런 말 하지 않았고 카심 역시 묵묵무답이었다.

그때 알베이안은 카심을 보았다.

“카심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카심은 주저 없이 말했다.

“코냐의 의견이 훨씬 좋습니다.”

“...”

대놓고 반대하니 알베이안의 표정이 조금 굳었으며 다른 이들은 놀랐다.

“왜죠?”

“코냐 말대로 이쪽을 점령하는 순간 오히려 몬스터 정리가 훨씬 쉬울 테니깐요.”

“하지만 이 지형을 보면...”

“그건 인간 기준입니다.

몬스터가 인식한다 한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영부영하거나 혹은 몇 마리만 움직일 겁니다.

특별한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지형을 얻게 되는 순간 이쪽부터 이쪽은 원거리 유저들을 이용해 훨씬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쪽에 있는 몬스터의 특성의 경우에는......”

이어진 카심의 설명은 모두를 납득 시킬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알베이안 역시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하고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쪽은 알베이안님, 그리고 여긴 킴, 여긴 안데르나님께서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그때 코냐는 자연스레 추가했다.

“로드리게스님을 이쪽에서 시선을 끄는 건요?”

“음. 훌륭합니다.

그럼 안데르나님의 진영이 훨씬 편해지겠군요.”

코냐는 자신의 의견을 칭찬받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상대는 몬스터입니다.

인간과 싸우는 게 아니라, 이 몬스터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이상 큰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알베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끄덕였다.

“그럼 더 이상 의견 없는 거로 알고 여기서 끝내고 바로 내일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합시다.”

결국 카심의 말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일이 진행되자 캄은 굉장히 놀랐다.

“와. 진짜네? 엄청 순탄한데?”

“...”

알베이안은 혹시나 했지만, 그 결과는 정말로 카심이 말한 그대로 일어났다.

그리고 이후에 또 던전을 같이 들어갔을 때 충돌이 일어났다.

“왼쪽으로 가야 합니다.”

“전 오른쪽으로 갑니다.”

알베이안과 카심의 의견이 달랐다.

그런데 알베이안은 이번에 만큼은 어이가 없었다.

이 던전에 들어온 인원은 약 100명.

그중 대부분이 자신과 같은 생각이었다.

“일부러 그러시는 겁니까?

일부러 저와 반대 의견을 내며 억지 부리시지 마시죠.”

카심은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러면 뭐 각자 움직이는 거로 하죠.”

“좋습니다.

저와 의견이 같은 분들은 왼쪽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알베이안이 왼쪽으로 움직이자 거의 90명이 따라나섰다.

그래서 씩 웃는 와중에 의외의 인물에 놀랐다.

“캄님?”

“왱?”

“왜...”

“음... 그냥? 재미있을 거 같잖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평소에는 느끼지 않는 서운함이 느꼈다.

“어! 표정 뭐야? 설마 서운한 거야?”

“제가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돌아서서 가는 알베이안을 보며 캄은 큭큭 웃었다.

그리곤 카심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이쪽이 맞아?”

“알아서 판단해라.”

“뭐야 왜 반말이야!”

“넌 왜 반말인데?”

“내가 너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데!”

“겉으로 보기엔 나보다 어리고 예뻐 보인다.”

어리고 심지어 예쁘다는 말에 캄은 화났던 표정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씩 웃었다.

“... 그럼 반말해!”

웃으며 움직이는 그를 보며 로드리게스는 웃었다.

“뭐야 엄청 귀엽잖아.”

“귀엽다고 까불다가 죽을 수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마.”

“헙, 알았어.”

캄.

작고 어려 보이지만 그녀는 칸과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그렇게 약 한 달이 흘렀을 때 알베이안은 마침내 마지막 지점에 도착했고 아직 카심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는 웃었다.

“역시 이 길이...”

그리고 거의 동시에 카심 일행도 도착했다.

그런데 그들을 본 알베이안의 표정이 굳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지금 굉장히 지치고 힘든 상태라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 저쪽은 전혀 그런 거 없이 상태들이 너무 좋았다.

사실 두 길은 크게 상관없었다.

이곳 던전에는 이상한 시스템이 적용 되어 있었는데 들고 온 식량이 대부분 먹을 수 없는 아이템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갈림길이 있었으며 그 누구도 확인해 보려 하지 않았지만 아주 우연찮게

그 덕분에 자급자족을, 해야만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리했다.

카심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일부러 반대로 가려는 것이었다.

“아하하하! 알베이안 얼굴 봐! 완전 반쪽이 됐네? 배고프면 이것 좀 줄까?”

캄이 꺼낸 고기를 보더니 뒤쪽에 있던 다른 이들의 눈빛이 빛이 났다.

당장이라도 뺏고 싶은 표정과 욕망이 깃들자 순간 캄의 표정이 굳었다.

“너희들은 그 표정 뭐야?”

그때 캄에게서 흘러나온 기세가 그들을 덮쳤고 엄청난 압박에 모두 일제히 고개를 숙여야 했다.

으르릉거리는 캄을 무시하고 알베이안은 카심에게 다가갔다.

“알고... 계셨습니까?”

“대충.”

“이거 참... 자존심 상하는군요.

아주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편했습니다.

‘억지’만 부리지 않았다면 반으로 나눠서 적당히 편했을 텐데.”

“하하하. 후우. 인정하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억지를 부리지 않겠습니다.”

카심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3달이 지났다.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알베이안은 카심을 노리라는 진 레이널의 지시를 지킬 수 없었다.

지금 카심은 지원자들에게 있어서 영웅처럼 대접받고 있었기에 쉽지 않은 것은 물론, 실력도 이제는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할 수 없었다.

혹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신은 지금까지 얻은 모든 이미지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애초부터 알베이안은 진 레이널의 지시를 따를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알베이안이 원하는 건 그런 관계가 아닌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관계였다.

이런 것 하나하나 전부 다 들어주게 되는 순간 그 관계는 정말로 상하 관계가 되었다.

그러니 놈이 지시한 것은 오히려 하지 않는 게 좋았기에 오히려 이것을 명분 삼아 불가능하다고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상황이었다.

“흐음. 알겠습니다.”

진 레이널도 받아 들였고 그의 움막에서 나오자마자 캄이 다가왔다.

“알베이안~”

“캄.”

“드디어 내일인가?

그나저나 카심 쟤 진짜 대단한데?

단순히 실력만 있는 게 아니야.

쟤가 말한 대로 움직이니까 너무 편해.”

“저도 배우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말이 돼? 쟤 아무리 봐도 경험이 너무 많아.”

“같은 생각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설마 그런 방식으로 던전을 클리어할 줄은... 거기다가 순간순간 판단 능력과 지휘 능력은 저도 상대가 안 되더군요.”

“푸흡. 그러니까 왜 억지 부려서.”

“크흠... 어쨌든 저 던전 브레이크가 마지막이군요.”

“저걸 없애면 끝인 거야?”

“아닐 겁니다.

아마 저 뒤에... 진짜가 있을 겁니다.”

“오~”

캄은 작은 키로 이리 저리 움직여보면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카심님께서는 참여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고 합니다.”

코냐의 말에 알베이안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왜일까?

설마 저쪽 너머에 있는 계시를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일전에 예언자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말이다.

자신도 계시를 받았기에 저곳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카심은 일부러 먼저 가서 확인하려고 하고 있었다.

저런 놈이 아닌, 가장 앞선에서 예언자님의 부름에 움직이는 인물인 자신이 계시를 먼저 확인해야만 했다.

“젠장!”

그러나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은 진 레이널의 명을 또 어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전 카심을 제거하라는 명을 어겼다.

그것도 채 몇 시간 전에.

아무리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왕족의 자존심은 웬만한 귀족들보다도 강했다.

그런데 또 마음대로 움직였다가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계획도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설마... 일부러?”

생각해보니 그는 스피드 강화였다.

심지어 상당한 수준.

이미 진즉에 혼자서 달려나가서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갑자기 진영을 합치자고 했던 것에서부터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에이 설마.”

만약 여기에서 그를 보지 않았다면 그렇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저 멀리서 로드리게스라는 자와 그리고 진 레첼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보았다.

아주 살짝 미소 짓는 그의 입술.

“당했구나.”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자신도 머리가 나쁘지 않다 여겼다.

하지만 저자는 뭔가 달랐다.

단순히 머리 좋은 게 아니라 마치 훨씬 멀리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미래를... 아는 것처럼.”

자기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기에 피식 웃었다.

그만큼 대단했다.

20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지혜와 실력을 가진 신비한 청년.

“저런 자가... 영생교 인물이었다면.”

그저 아쉬움에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

샤샤샥!

카심은 로드리게스와 함께 빠르게 산 하나를 넘었다.

“카악!”

“뀌아아아악!”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무시하고 달렸고 둘은 어느새 해가 저물어 오는 것을 높은 산에서 바라보았지만 어두워 졌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만큼 몬스터는 많았다.

“으아아! 너무 많아!”

“그러게 오지 말라고 했잖아.”

“으으.”

혼자였다면 진즉에 뿌리쳤을 테지만 로드리게스의 속도가 아무래도 떨어지다 보니 꽤 빠른 몬스터는 중간중간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행인 것은 지치지 않는 로드리게스의 체력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는 길었다.

“잠깐 기다려봐.”

카심은 갑자기 나무를 밟고 높이 뛰어올랐다.

그 높이가 무려 30미터까지 뛰어올랐기에 로드리게스는 화들짝 놀랐다.

“우아아아.”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카심은 높은 시야를 이용해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그리고 저 멀리, 산을 넘어 무언가 기묘한 빛이 있음을 보고는 빠르게 떨어지자마자 다시 앞으로 튕기듯 쏘아졌다.

“위치 찾았어?”

“어. 밤새 달려야 할 거 같다.”

그렇게 미친 듯이 밤새 달렸고 아침이 밝고 다시 저녁이 되려던 찰나,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도착했다.

로드리게스는 입을 쩍 벌린 채 놀라워했다.

그것은 카심도 마찬가지였다.

“...”

“와... 뭐야 이거? 아벨리우스 수정 맞지?

그런데... 이건 반이 잘려있네?”

“그런 거 같은데.”

던전 브레이크도 그렇고 이것도 역시 처음 보는 것이다.

조심히 다가가 천천히 손을 올리는 순간 창이 떠올랐다.

하나의 창만 떠올랐고 다른 건 없었다.

“이름 특이하네, 이것도 아벨리우스 세계처럼 로그인하는 건가? 로그인.”

로드리게스가 순식간에 빛으로 변해 사라지자 카심도 조심히 말했다.

“로그인.”

눈앞이 번쩍였다.

원래는 순식간에 적응하는 빛이지만 어째서인지 진짜 빛처럼 눈이 아파서 본능적으로 손으로 가려야 했다.

그리고 차츰 눈의 통증이 사라지고 완전히 공기나 바람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와! 여기 뭐야? 완전 신기하다. 카심! 저것 봐! 장난 아니야.”

그 말에 천천히 손을 내렸을 때 카심도 마침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완전히 아벨리우스 세계, 아니 저쪽 세계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어...”

이제는 낯선 곳이 된 세계.

바로 지구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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