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 15. 목적(1) (88/119)

〈 88화 〉 15. 목적(1)

* * *

­ 목적 ­

“그럼 영생교는... 이걸 알고 있던 건가?

이걸 보고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돌아가는 것임을 알게, 만들려고?”

만약 예언 같은 거라면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되면 결국 향하게 되는 게 99층이라는 사실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전 삶에 프레드릭이 99층에 가면 된다고 알려 줬던 것과 같은 의미였다.

결국 비슷한 흐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망해버린 지구의 모습은 이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수많은 건물이 내려앉았거나 혹은 식물에 뒤덮여 있었다.

이젠 낯선 모습의 동식물들도 보였고 이곳에는 있으면 안 되는 몬스터도 보였다.

“카심! 여기 진짜 엄청 특이해.

이 건물들도 그렇고. 우아... 높은 거 봐.

성도 높지만 여기는 이렇게 크게 높으니까 엄청 신기하다.”

5층 높이 되는 건물 옥상에 올라와 있던 카심은 옆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호들갑 떠는 로드리게스를 보지도 않고 한숨이 쉬었다.

“하아. 어쩌라는 건지 원.”

갑자기 앞이 콱 막힌 것처럼 막막했다.

“잠깐.”

그렇다면 자신이 회귀한 이유도 이것 때문일까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그렇다면...”

바로 99층으로 향해야 할 게 아니었다.

“로드리게스!”

“어?”

“따라와.”

옥상에서 내려와 빠르게 아파트로 달렸다.

온갖 식물로 뒤덮인 아파트 입구를 뚫고 들어갔는데 몬스터 몇 마리가 튀어나왔다.

“카아악!”

푸푸푹!

특별히 위험한 놈이 아니었기에 가볍게 처리했다.

“여기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안에서 글자가 적혀 있는 모든 걸 다 가져와.”

“알았어.”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끼긱! 콰드득!

문도 온갖 식물들로 뒤덮여 열리지도 않아서 힘으로 뜯어야 했다.

안으로 들어가 바로 찾으려다가 갑자기 멈췄다.

“...”

문득 지구의 물건을 보는 순간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우면서도 낯선 아주 이상한 감정.

천천히 쓰다듬으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던 와중 또 이상한 점을 느꼈다.

생각보다, 오래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외로 가전이나 옷 등이 많이 보였으며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딱히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었기에 책장을 살폈다.

그렇게 무려 10개의 집을 뒤졌지만 특별히 현 상황에 대해 썼던 글 같은 건 볼 수 없었다.

“다른 곳을...”

“카심!!!”

로드리게스의 부름에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런 거?”

로드리게스가 보여준 것은 달력이었다.

역시 크게 훼손된 느낌이 아니었다.

“2015년... 8월.”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건만 보자마자 떠올릴 수 있었다.

2015년이라면 자신이 이곳에 오기 전 이년 후의 일이다.

“... 2015년 8월? 잠깐만.”

순간 위화감을 확 느꼈다.

지금 지구의 풍경은 최소 수십 년은 지난 것처럼 보였는데 어째서 2년밖에 지나지 않았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잘했다.

이것 말고도 이런 식으로 작은 책 같은 게 있으면 꼭 찾아줘.

진짜 중요하니까.”

“알았어.”

그 아파트를 온종일 뒤졌고 로드리게스는 신기하다며 이것저것 가지고 왔지만 쓸만한 건 없었다.

“와. 이건 뭐야?”

“TV라는 거다.”

“TV? 그게 뭔데.”

“간단히 파티를 하고 있으면 그 장면을 TV에서 볼 수 있다는 거지.”

“오~”

“그것만 있으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다.”

“헉! 미친 아티팩트네?”

또 다른 걸 보고 있었는데 의류였다.

“여기 옷은 왜 이래?”

카심은 그냥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다시 다른 아파트를 살펴보았고 다음 날까지 아파트 동 전체를 찾았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후우, 오늘도 없...”

문을 나오는 그때 복도식 아파트였기에 전방으로 무언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동물일 수도 있었고 몬스터 일 수도 있었는데 뭔가 달랐다.

파앗!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15층 높이 되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앞으로 달려나갔고 무너진 바위를 뛰어올라 그 위로 솟아오른 나무를 밟고 더욱 높이 떠올랐다.

높은 위치에서 아래로 내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아무 말 없이 다시 몸을 돌린 카심은 갑자기 사라졌다.

“허업!”

그때 들려온 의문의 음성.

그리고 그 음성의 위에 카심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

카심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져 있었다.

“어, 어, 어... 사, 사람이에요?”

심지어 한국말이었다.

카심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때 뒤에서 로드리게스가 달려왔다.

“카심~~~ 뭐야 거기 뭐 있어?”

로드리게스도 아래에 있는 사람을 보곤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헉, 뭐, 뭐야! 사람이잖아!

우리 말고 먼저 온 사람이 있었어!?”

“아니, 아마 여기 사람이다.”

“뭐?”

로드리게스는 입을 벌린 채 그녀를 보았고 그녀 역시 로드리게스까지 보자 입을 벌렸다.

“외국인...?”

“어? 뭐라고 하는데?”

로드리게스는 당연히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카심은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어설프게 나무로 만든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손에는 창이 들려 있었고 밧줄과 단검도 허리띠에 걸려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이 사람은 이 세계에 적응해 살아남은 인간이었다.

그녀는 자신들을 보자마자 경계하며 창을 쥐고 뒤로 물러섰지만, 눈빛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럴 것이 지금 카심과 로드리게스의 복장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뭐야. 인간형 몬스터야?”

“아니. 진짜 인간.”

“헉! 정말? 이런 경우는 없었잖아.”

“그래.”

그때 그녀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어. 도망간다. 잡아?”

“몰래 따라가자.”

카심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아주 침착해 보였지만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미세하지만 극렬히 떨리고 있었다.

망해버린 지구.

그리고 생존자.

사실 지금 카심은 제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

“철수 오빠! 헉, 헉!”

“혜진아! 왜 그래! 몬스터야!?”

어설프게 쌓아 놓은 담벼락 뒤쪽에서 철수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혜진과 비슷한 복장에 나무로 만든 활을 들고 있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 외, 외국인을 봤어!”

“뭐? 외국인? 한국에서 살던 놈인가보네.”

“그게 아니야!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언어였어.”

“무슨 소리야 그게?”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위험해 보였어. 혹시 위쪽에서 내려 온 또 다른 약탈자 일수도 있으니까! 거기다 장비가 정말 위험해 보였다니까?”

워낙 흥분한 혜진의 모습에 철수는 우선 진정시켰다.

“일단 잠시 진정하...”

말을 하던 철수는 천천히, 뒤로 시선이 향했고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혜진 역시 그 반응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때 입을 벌렸다.

그곳엔 카심과 로드리게스가 있었고 그녀가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철수는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화살을 날렸다.

탁!

날아온 화살을 가볍게 잡아버린 카심을 보며 두 사람의 입은 쩍 벌어졌다.

“몬스터 맞네!”

“아니니까 진정해라.”

심지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둘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카심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다가갔다.

“진정하세요.”

놀랍게도 흘러나온 한국말에 둘은 정신이 돌아오며 단숨에 경계심이 절반 사라졌다.

“헉! 한국인입니까?”

“예.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무슨...?”

자신의 질문에 괴리가 있음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일단은...”

“어이!!!!”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30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들은 위협한 듯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딱 보아도 양아치나 건달 무리와 흡사했다.

그들을 본 철수와 혜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저, 저 새끼들이 결국은...”

“도망쳐야 해!”

두 사람은 주저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덩그러니 남아 뒤돌아보았다.

“뭐야 저 새끼들은?

난 지금 무슨 상황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아까 그 언어 뭐야?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조금 있다가 설명해줄게.”

카심은 뒤돌아보며 30명을 보았다.

“헉! 저 새끼들 복장 뭐야! 존나 좋아 보이는데?”

“오오오!”

“형님! 저 덩치 있는 놈 꺼는 제껍니다!”

“으흐흐.

마음대로 해 난 저 새끼께 존나 멋있군.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몬스터 잡아서 얻은 거 아닙니까? 게임처럼 푸하하!”

“병신아. 딱 봐도 코스프레잖아.

어디서 얻었겠지.”

“진짜 씹덕 새끼들은 이런 세상인데도 저러고 다니는구나.

아주 그냥 지가 뭐 날아다니는 줄 착각하는 거 아냐? 우하하학!”

“주인공이라도 되는 줄 알겠지.

원래 이런 세상 원했을 거 아냐 크크큭.”

“칼 처맞고 나면 아 씨발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알겠지.”

“지금까지 산 것도 용하다 용해.”

그들의 이야기에 카심은 대충 지금 현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죽여야 하나...”

살아남은 이들끼리 힘을 합쳐야 하기도 바쁠 텐데 저들은 분명 약탈하는 놈들이었다.

죽어 마땅한 이들.

살인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지만, 막상 죽이고자 마음 먹어 지지가 않았다.

이들은 지구인.

그토록 만나고, 싶던 사람들이었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알아야 할 것도 많았다.

“로드리게스.

죽이진 말고.

가볍게 살살.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약하게 때려야 할 거다.

여기 사람들은 많이 약할 테니까.

여기는 우리처럼 능력치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돼.”

“음... 알았어.”

로드리게스는 대충 알았다며 그들에게 다가갔고 카심은 나무로 뒤덮인 상가로 걸어갔다.

나무로 어설프게 만든 바리게이트를 지나가려는 순간 안에서 2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나왔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과 여성과 남성 등 다양했으며 그들은 뒤쪽에 나타난 약탈자들과 달리 무장의 상태가 더욱 형편없었다.

“이, 이놈이야!?”

“뭐야 코스프레야? 미친놈인가?”

“레드 약탈자 중에 저런 놈이 있었나!?”

그들은 카심을 보자마자 경계하며 각자 무기를 들었다.

카심을 본 철수와 혜진도 카심을 보고 여전히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잠깐. 기다...”

그때 갑자기 위에서 무언가 날아와 철퍼덕 쓰러졌다.

“으악!”

“뭐, 뭐야!”

“헉!”

그들이 말했던 레드 약탈자 간부 중 한 명이었다.

한순간 말을 잃은 그들은 멍한 표정으로 카심을 보았다.

***

“2년 전에 갑자기 큰 지진과 함께 몬스터가 튀어나왔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이유를 알기도 전에 이미 지구의 전 나라가 그냥 망해버렸습니다.

그 대단한 과학 기술조차 소용이 없었지요.

핵도 사용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냥 고철덩어리가 되었고 총도 처음에는 통하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통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남은 생존자들끼리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마는...”

“아까 같은 약탈자들이 설치고 있군요.”

지구의 몬스터는 굉장히 약한 놈들만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너무 위협적이었다.

차츰 사람들이 살아 남을 수 있던 이유는 처음에는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이 어느새 아파트나 상가 같은 곳에 군락을 지어서 일정한 거리 이상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갑자기 자라난 식물 때문에 동물들도 산에서 내려와 몬스터의 식량이 되면서 인간은 살아남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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