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15. 목적(2)
* * *
동시에 갑자기 자라난 식물 때문에 동물들도 산에서 내려와 몬스터의 식량이 되면서 인간은 살아남을 기회를 얻게 되면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었다.
철수와 혜진은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다 겪었을 것을 왜 묻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차마 그런 의문도 물을 수 없었다.
“생존자들은 어느 정도죠?”
“일단 이 일대 주변에는 저희 말고도 서로 힘을 합치며 살아가는 생존자 무리들이 몇 있습니다.
그리고 저런 약탈자들이 있지요.
다른 지역은 모릅니다.
이곳에서만 살아가기도 바빠서... 다만 듣기로는 서울에는 꽤 크게 유지하고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동하지 않으시고?”
“약탈자도 약탈자지만... 길도 막혔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갈 수는 있지만 가는 길에는... 물이 갑자기 범람하더니 늪지화가 되었고 그곳엔 리자드맨이 있습니다.”
“리자드맨?”
“도마뱀 같은 놈인데 2미터나 되며 엄청나게 무서운 몬스터입니다.
그 누구도 리자드맨 만큼은 잡은 적이 없을 정도로 피부도 단단한 괴물이죠.”
저쪽 세계와 언어가 다르니 대충 무슨 몬스터를 말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밤이 되었을 때는 우선 같이 지내기 위해 식사도 대접받았다.
그런데 이들은 하루에 한끼만 먹었기에 몸이 성치 않았다.
그래서 카심은 가지고 있는 식량을 꺼내야 했다.
어차피 지금 식량은 몇 달을 마음껏 먹어도 될 만큼 많이 있었다.
“우아아아!”
“헉!”
“가, 감사합니다!”
“영웅이다 영웅! 아저씨 영웅이에요!? 우리를 구원해주는!?”
어린 아이들은 카심과 로드리게스를 보며 영웅이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확실히 어린 아이들 눈엔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애들이 뭐라는 거야?”
“너보고 영웅이란다.”
“오. 하하하. 맞아 이 형님이 영웅이다.”
로드리게스는 아이들에게는 맛있는 간식도 건네 주자 여기저기서 달려 들어 안겼고 즐거워 했다.
카심은 피식 웃으며 건물 옥상으로 혼자 올라갔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지구의 밤하늘.
이것을 보기 위해 그렇게나 악착같이 살아남았건만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후우.”
유난히도 밝은 달.
“나보고 어쩌란 건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지구가 이렇게 되었으니 빨리 가서 구해라?
아니면 지구가 이렇게 되는 것을 막아라?
그래서 회귀를 보냈고 이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걸까 싶다가도 그냥 혼자 망상처럼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자신은 그렇게 감성적이지 않았다.
그랬다면 저 판타지와도 같은 세계에 갔을 때 좋아했을 것이다.
허나 만화책에서나 보던 그런 게 아니었다.
저쪽도 그저 현실과 다를 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상황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해석할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된 삶, 영생교와 만나면서 그들이 이전 삶과 비슷한 흐름을 느끼면서 어쩌면 모든 게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자연스레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머리가 너무 아팠다.
너무도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은 채 휘몰아치고 있었다.
“저기...”
그때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가장 처음 만났던 혜진이란 여성이었다.
밤 하늘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아까와 달리 깨끗했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도 그랬고 옷도 장비가 아닌 연노란색 원피스였다.
카심의 눈에는 여전히 지저분한 수준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그렇게 되니 숨겨있던 그녀의 외모가 드러났다.
제법 예뻤다.
저쪽 세계의 미와 달랐지만 역시 자신은 지구인이었는지 그녀의 외모가 훨씬 와닿았다.
“예.”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그냥 머리 좀 식히러 왔습니다.”
“아...”
우물쭈물 거리는 그녀를 보며 카심은 가방에서 음식을 꺼냈다.
“더 먹고 싶으시면...”
“아, 그게 아니라. 그건 그렇고 정말 신기하네요.
어떻게 그런 자그마한 곳에서...”
“몬스터도 나오는 세상인데 이런 물건도 그리 이상하지 않겠죠.
이미 미국에서는 많이 보급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정말인가요?”
“예. 생각보다 인간은 잘 살아남고 있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런 희망은 아주 훌륭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녀 역시 앞으로 살 수 있는 희망이 생기자 어느새 웃음꽃이 피었다.
“감사합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말이 얼마나 개소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런 희망을 논리적으로 거짓말이라고 부정하기에는 너무 절망적인 상태였다.
“저... 혹시 떠나실... 건가요?”
그 의미를 알았기에 카심은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혜진씨라고 하셨습니까?”
“네...”
“저 사람들이 시킨 일입니까?”
“...”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세계는 완전히 양육강식의 세계였다.
여기서 강한 자를 어떻게든 잡아두고, 싶어한다.
그게 남자의 경우 가장 편한 건 역시 여인이었다.
물론 몸만 더럽히고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다.
몸을 주고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일말의 희망.
이들에게는 지금 그만큼 절망적이고 간절한 상황이었다.
“아직 알아야 할 게 많긴 하니까 당장 떠나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내려가세요. 저는 생각 좀 해야 해서.”
“아! 네! 가, 감사합니다!”
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하다 내려갔고 카심은 다시 몸을 돌려 달을 보았다.
“일단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다음 날.
카심은 일부러 그들에게 장비를 받았다.
이곳에서 이 장비를 입고 있기에는 너무 위화감이 있었기에 그들이 입는 어설픈 복장을 입었다.
“으으. 이 옷은 뭐야?”
로드리게스도 같이 장비를 입고 있었는데 안에 복장을 입는 와중 이 세계의 옷에 인상을 찌푸렸다.
청바지와 이제는 회색이 되어버린 흰색 티셔츠였다.
“이 세계의 복장이다.
어색하겠지만 입어 봐.
생각보다 멋있을 걸.”
다 입은 로드리게스는 확실히 몸이 워낙 좋기에 잘 어울렸다.
“으, 이상한데?”
하지만 워낙 낯설었기에 어색해하는 걸 보며 웃던 카심은 카고 바지를 입고 위에 조잡한 흉갑을 착용했다.
원래 바지 안에도 안전을 위해 이것저것 집어넣거나 나무 혹은 철로 만든 어설픈 방어구를 묶어야 했지만, 그것은 거추장스러워 거절했다.
둘 다 무기는 어설프게 철을 깎아 나무에 고정해 만든 창이었다.
“특화는 웬만해선 사용하지 마.
애초에 특화를 쓸 필요도 없을 거다.”
“그런데 여기 창도 안 떠.”
“그래?”
카심도 이제야 한 번 확인해 보니 확실히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고 특화를 사용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아벨리우스 세계는 다른 세계가 합쳐진 세계였다.
그렇다면 지구가 이렇게 된 것도 역시 아벨리우스 세계의 영향일 것이다.
애초에 그곳에서 지구로 여기에 왔다.
점점 정말로 이 지구를 구해 달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일까?
이 사실을 보여주고 다시 99층으로 돌아와 이 사태를 막으라는?
확실히 이쪽 그림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걸 믿어야 할까?
그러면 영생교는?
그렇다면 영생교는 자신에게 이것을 알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이다.
“점점 모르겠네.”
“뭐라고? 왜 자꾸 이쪽 언어 써!
못 알아듣겠잖아.”
그토록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언어인데 오랜만에 썼다고 자연스레 나오는 거 보면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지구인이라는 게 느껴졌다.
장비를 갈아 입고 나오자마자 아이들이 보더니 격렬히 반대했다.
“으아! 왜 그거 입었어요! 멋없어!”
“맞아!”
어린 아이들의 실망에 로드리게스는 근육을 자랑하며 아이들을 들어 올리며 괴력을 자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꺄르르 웃었다.
아이들 말고도 철수와 혜진 그리고 몇 사람들이 더 있었다.
“아 그런데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카... 아니, 신우라고 부르세요.”
“예! 신우님. 저는 철수입니다.”
문득 철수라고 하니 찰스가 떠올랐다.
왠지 느낌도 비슷했다.
“예 철수님. 다른 분들은 괜찮으니 철수님만 같이 움직이시죠.”
“저도 가면 안 될까요?”
혜진이었다.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네 사람이 나왔고 카심은 나오자마자 둘에게 물었다.
“여기서 가장 큰 생존자 집단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기 아파트 보이시죠? 다른 건 무너졌는데 저 하나만 멀쩡한데 저기에 자리 잡은 생존자 무리들이 이곳에서 가장 큰 집단입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저희도 제법 도움을 받기도 하고 있고 꽤 잘 관리도 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혜진은 궁금해서 물었다.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저는 여기에 계속 있지, 못 합니다.
그러니 이곳 근처를 정화 시킬 생각입니다.”
정화라는 말에 철수와 혜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저들은 절대 돕지 않을 겁니다.”
“도와 달라고 말하러 가는 건 아닙니다.”
“예?”
아직 카심과 로드리게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니 둘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제법 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로 밖에 생각지 않고 있었다.
“딱히 저들을 만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럼 약탈자 놈들은 어디 어디에 있습니까?”
“약탈자는 좀 더 가야 하는 곳에 있습니다. 저쪽 방향에 있는 대형 마트를 자리 잡고 있죠.”
“가죠.”
그렇게 다시 움직이려는 그때 또 두 사람이 말렸다.
“이쪽으로 가면 안 됩니다.
코볼트 영역이라 위험합니다.
가려면 이쪽으로 완전히 돌아서...”
“괜찮습니다. 어차피 싹 정리할 생각이고.”
차의 무덤이 되어버린 도로를 걷기 시작하자 철수와 혜진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키칵!”
“카아아악!”
그리고 튀어 나온 코볼트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활을 들었다.
그 순간 로드리게스가 앞으로 나가더니 나타난 코볼트 세 마리의 머리를 부쉈다.
말 그대로 정말 머리를 부숴 버렸다.
“어...?”
“...”
상상만으로 했던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니 둘은 더 이상 생각이란 걸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들은 대형 맡트가 한눈에 보이는 곳 앞까지 도착했다.
“저기군요. 알겠습니다. 두 분은 이제 돌아가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아,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카심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아까와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신적인 존재를 보든 신성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던 그들은 죽은 몬스터 시체를 밧줄로 묶더니 끌고 가고 있었다.
“몬스터도 먹는 건가?”
“헐! 몬스터를 먹는 다고? 에이, 가죽을 이용하려는 거겠지!”
“우리 장비 중에 가죽이 있었냐? 아직 가죽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 상태는 좋지 않다. 차라리 나무나 어설프게 만든 철 보호대가 낫지. 그리고... 그만큼 여기 사정이 안 좋다는 의미다. 저들에게는 몬스터라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
“으...”
카심은 다시 마트로 눈을 돌렸다.
가기 위해선 차 무덤으로 변해버린 도로를 지나야 했는데, 일대 근처까지 놈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으며 곳곳에 몸을 숨길 수 있게 인위적으로 만든 지형물도 보였다.
마트 옥상에도 수십 명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둘은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듯 차를 밟고 올라 걷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물체야?”
“자동차라고 있다. 마차와 비슷하다 보면 되지. 속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빠르고.”
“와... 여기는 신기한 아티팩트가 많네.”
“... 이런 게 아티팩트로 되면 재미있긴 하겠네.”
그리고 웃으며 이야기까지 하며 다가오는 두 사람을 발견한 그들은 바로 어이 없다는 듯 웃더니 경고도 없이 화살을 쏘았다.
피슝!
날아온 화살을 보며 카심은 너무도 가볍게 손으로 잡았다.
“음?”
이윽고 가볍게 던지자 화살은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 쏜 놈의 가슴에 박혔다.
푸욱!
“크악!”
그의 몸이 10미터는 날아 올라 쓰러졌고 그 소리에 한순간에 시선이 쏠렸다.
그것을 보던 카심은 로드리게스에게 말했다.
“로드리게스.”
“어.”
“지금부터는 널 죽이려고 하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