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15. 목적(3)
* * *
“로드리게스.”
“어.”
“지금부터는 널 죽이려고 하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
“오케이.”
카심은 정면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로드리게스는 자연스럽게 뒤따라 움직였다.
슝!
그때 날아온 화살이 카심의 얼굴로 향했지만,순식간에 로드리게스가 낚아챘다.
그리곤 날아온 곳을 향해 달려가자마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그것을 시작으로 로드리게스는 사방으로 움직이며 사람을 죽였고 카심은 멈추지 않았고 정면으로 천천히 걸었다.
“뭐야!씨발 당장 화살 쏘라고!”
“아니 쏘더라도 저 새끼가 다 막는다고!”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로드리게스를 보며 옥상에 있던 이들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앞까지 도착한 카심을 보고는 다급히 화살을 쏘려했다.
그런데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이 얼어 붙었다.
“어,모,몸이...”
“안 움직...”
그들은 말을 채 다 이어 할 수 없었다.
어느새 옥상에는 로드리게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
딱!
통조림 하나를 열어서 그대로 입안으로 부었다.
안의 내용물 절반이 밖으로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만족스럽다는 듯 씹어 먹고는 대충 통을 버렸다.
그러자 주변으로는 그 흘린 것들을 먹겠다며 기어온 수십 명이 아수라장이 되었으며 심지어 서로 뺏기 위해 주먹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크크크.”
그는 이곳 대형 마트를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었으며190이 넘는 키에 무려100kg이나 나갈 정도의 거구였다.
그리고 그가 먹다 흘린 음식을 먹기 위해 발악하는 이들은 그에 의해 잡혀 온 생존자들이었다.
저들은 장난감이었으며 자신의 유희를 위해 모은 것이다.
심심할 때마다 서로 싸우게 했으며 재미를 위해 온갖 만행을 펼치게 했다.
“크크.그래 그래.살고 싶으면 처먹어야지.오오~누가 이기나 보자~”
그것을 보며 웃고 있던 그때 부하 한 명이 달려왔다.
“형님.”
“왜?”
“그게...지금 공격 받고 있습니다.”
“뭐?씨발 여기서 우리를 공격하는 새끼가 어디있다고?
배신이야!?레드 새끼들이야?”
“아,아닙니다.
처음 보는 놈입니다.”
“씨발 당장 준비해!몇 마린데?”
“두,두 명입니다.”
“뭐?”
“두...크악!”
그는 그대로 부하의 얼굴을 후려쳤다.
“씨벌럼이 장난치나.”
“지,진짭니다 형님!”
“그럼 죽이면 되잖아!”
“버,벌써10명이 죽었습니다!”
“...”
10명이 죽었다는 말에 잔뜩 인상을 쓰던 그는 근처에 있던 도끼를 들었다.
“애들 데리고 와.”
도끼를 어깨에 걸친 채 문을 열고 나오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100명 정도가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터덜터덜1층 로비로 내려왔다.
콰앙!
“헙!”
“뭐야!”
바리게이트 쳐져 있던1층 로비의 문이 박살 나면서 그들 앞에 날아온 세 명이 자신의 부하임을 본 그는 천천히 들어오는 카심과 로드리게스를 보았다.
“와~너희들 누구냐?
다른 지역 생존자 집단이야?”
흉악한 얼굴을 한 그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고 위협하며 카심과 로드리게스를 보았다.
그리고 쓰러진 자신의 부하를 툭툭 차더니 신기해했다.
“진짜 둘이야?둘 만으로 입구를 뚫고 왔다고?야이 씨발 말이 돼!?어떤 새끼야!배신한 새끼가!”
그는 쓰러진 부하의 얼굴을 그대로 도끼로 내려 찍었다.
콰직!
“배신한 새끼 딱 걸려라.그 새끼들도 돼지 우리 안에 넣을 테니까.”
카심은 그것을 보다가 한 걸음 앞으로 더 걸어왔다.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뭐?푸하하!기회?네가 지금 나한테?”
“생각이 바뀌었다.그냥 너희들 전부 죽어라.”
리더는 어이 없어하며 자신의 부하를 바라보다가 이내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
“이 새끼 또라이 새끼네.형님 제가 저 새끼들 죽...”
푸욱!촤악!
리더 옆에서 같이 웃던 얼굴에 큰 상처가 난 놈이 말하던 와중 갑자기 멈췄다.
리더는 자신의 얼굴에 쏟아지는 차가운 액체에 천천히 손으로 닦고 보았을 때 눈동자가 커졌다.
피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려던 그때 앞으로 고꾸라지는 부하.
그런데 얼굴이 없었다.
“...”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100명 모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사고가 정지해버렸다.
“로드리게스.전부 죽여라.”
말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섬뜩하기 그지 없었다.
우득!콰직!우드드득!!!
그들은 자신의 옆에서 말 그대로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여전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고 있다가 이내 사방으로 터지는 피를 보고는 소리쳤다.
“으,으아아악!”
“괴,괴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리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려왔던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몇 명은 일부러 입구 쪽으로 달렸다.
입구가 이쪽만 있는 게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저 멀리 있던 카심이 어느새 자신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어,어?”
그들의 입장에서 카심은 지금 귀신처럼 보였다.
하지만 채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다섯 명의 얼굴이 동시에 터져 나갔다.
위로 도망치던 리더는 그것을 보며 더욱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고 아주 은밀한 곳에 몸을 숨겼다.
바로 배변을 치우는 곳이라 냄새는 지독했지만 가장 은밀한 곳이었다.
으아악!
끄억!
사,살려...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몸을 숨긴 부하들이 발견되면서 죽임을 당하고 있었기에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엄청난 공포가 생겼다.
“뭐,뭐냐고 저 새끼들...씨발!”
인간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는데 인간일리 없었다.
“이,인간형 몬스터?”
분명했다.
세상이 이렇게 됐는데 저런 게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몬스터라면 멍청할 테니까.
시간이 지나 못 찾으면 사라질 거야.”
그렇게 냄새나는 그곳에서 이를 악 물고 버텼다.
한편.
카심은 하나하나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문 하나를 열었다가 안에서 나오는 악취에 인상을 찌푸려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히익!”
“아아...”
“으...”
안에서 들려오는 고통에 찬 소리.
천천히 들어가는 순간 카심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사람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마르고 상태가 좋지 않은 이들이 방금 죽은 듯한 사람의 시체를 먹고 있었다.
시체마저 앙상했지만 어떻게든 그 살을 뜯어 먹었다.
“...”
처참한 수준이 아니었다.
작은 지옥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이곳은 참기 힘들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더 이상 생기라고는 보이지도 않았다.
까드득.
“실수했네.
모조리 불태워 죽였어야,하는데.”
아포칼립스.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남는 영화들이나 소설들의 내용은 흥미로웠었다.
그런데...역시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
점점 소리가 사라졌음에도 최대한 참을 만큼 참았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을 때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가자 어느새 어두워져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삼아 위치를 계산하고 움직여야했다.
“후우.”
긴장감에 작게 숨을 내쉬며 움직이던 그때 갑자기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
사람의 형체가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얼어붙으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데5분동안 가만히 있어도 움직이지 않자 천천히 다가가 대충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놀랬잖아.마네킹이었네.”
그리곤 다시 몸을 돌려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푹.
“어?”
그때 날카로운 무언가 자신의 몸에 박히는 감촉에 놀라 바라보는 순간 마네킹인 줄 알았던 것의 팔이 움직여 자신의 배에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 자세히 보는 순간 그것은 마네킹이 아닌 아주 삐쩍 마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것도 자신이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던 인간이었다.
“이,이 새끼가!”
퍼억!
“끅.”
힘이 없는 그는 리더의 주먹에 맞고 피를 잔뜩 흘렸다.
“어떻게 빠져 나왔...”
푹!
이번엔 등 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장난감들이 전부 자기를 둘러싸고 있음을.
“뭐,뭐야 이 개새끼들이!!감히!감히!!”
푸부부북!푸북!!
그 소리는 쉴 새 없이 이어졌고 결국 그는 피를 잔뜩 흘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끄,끄으...감히...”
피의 양은 엄청났고 점점 그의 눈이 감기더니 결국 죽었다.
잠시 후,횃불을 들고 나타난 카심은 그 시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온몸에는 나지 않은 구멍이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 두 눈조차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잔혹하고 참혹했지만 그만큼 이들의 원한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결국 복수 했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허망한 표정을 짓기도 했으며 여전히 죽은 놈에게 칼로 쑤시는 이들도 있었다.
아직도 카심이 보기엔 이곳은 지옥이었다.
그래서 돌아서려는 그때였다.
“주...”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멈칫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죽여...주...세...요.”
힘겹게 내뱉은 그 말에 카심은 천천히 다시 돌아보았다.
“제...발.”
그 이유를 물을 필요 없었다.
10명이 넘는 이들 모두 어느새 자신을 보고 있었으며 그 눈엔 희망이 없었다.
더 이상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몸도 아니었다.
심지어 시신까지 먹었다.
이미 자신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10명 모두 같은 의견이라는 것에 카심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겪은 고통은 감히 자신도 헤아릴 수 없었기에 천천히 끄덕였고 해줄 수 있는 것은 고통 없이 죽여주는 것이었다.
천천히 든 창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고10명의 머리가 동시에 터져 나갔다.
그들은 죽었다는 인지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곳 일대에서 약탈자 중 가장 큰 조직이었던 이들을 소탕한 이후에 정리는 손쉬웠다.
아니 애초부터 이미 이곳에서는 초인이나 다름 없는 카심과 로드리게스였기에 어려운 일 따위 없었다.
거기다 근처 주택단지를 지배하고 있던 고블린 무리도 싹 정리했다.
그 사이에,미리 철수와 혜진이 있는 생존자 무리들을 마트를 주었다.
그들은 이 큰 약탈자 무리가 사라졌음을 알고 충격을 받았으며 수많은 시체에 두려워했다.
그러길 잠시 엄청난 식량을 보고는 소리를 지를 정도로 좋아하며 서로 부등켜 안았다.
얼마 전에도 배고픔에 죽은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도 생기가 없었지만 이 이후엔 어느새 눈엔 생기와 함께 희망이 가득해졌다.
철수는 빠르게 방어할 수 있는 위치와 장치를 만들었고 식량 배분과 감시등 빠르게 인원을 분배하며 움직였다.
세상이 이렇게 된 지, 2년이 되었으니 그들은 욕심도 부리지 않고 식량도 막 쓰지 않았다.
카심은 물건 옮기는 것도 도와준 뒤에 철수를 불렀다.
“시간이 얼마 걸릴지 모르겠지만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아...그럼 떠나시는...?”
“아닙니다.마지막으로,한 번은 더 들릴 겁니다.잠시 가볼 곳이 있어서.”
“아!그렇군요.알겠습니다.”
카심은 철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저를 의지하려 하지 마세요.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럴 인물도 아니고.”
“...알겠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터라...의지하고 싶었습니다.
하하하.”
“저보다 당신이 이 사람들에게 더 영웅이 될 겁니다.”
카심의 말은 그의 가슴 깊이,박혔다.
철수 입장에서 카심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인물로 그런 인물이 한 말이니 더 용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카심은 이제 주변을 정리했으니 이제 더 이상 자신이 관여할 게 아니었다.
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얼마 전 떠올렸던 것을 할 생각이었기에 나가려던 순간 갑자기 뒤쪽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시,신우씨!”
혜진이었다.
“가시는 거 아니죠...?”
“예.철수님에게 말해뒀습니다.다시 잠깐 들린다고.”
“아...잠깐 들리시는...거죠?”
“예.”
“네.그럼 나중에 봬요.”
해맑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카심도 가볍게 웃었고 몸을 돌렸다.
로드리게스는 그런 카심을 보며 씩 웃었다.
“뭐?”
“뭐긴 뭐야 이 녀석...이런 상황에서도 응?언제 그랬던 거야?”
“아니야 인마.내가 너같은 쓰레기인 줄 아냐?”
“...쳇.그나저나 어디 가려고?”
“내가 전에 살던 곳.”
“오!정말?궁금하다.”
“지형도 변하고 많이 무너져서 잘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이쪽으로 가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