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1화 〉 15. 목적(4) (91/119)

〈 91화 〉 15. 목적(4)

* * *

“지형도 변하고 많이 무너져서 잘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쪽으로 가면 될 거다.”

안내판이 무너지지 않은 곳이 있었기에 도로위 차를 밟으며 달렸다.

중간중간 몬스터를 만나기는 했으나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지금 두 사람의 속도는 차보다 빨랐던 터라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몇 개 표지판이 어떻게 된 건지 어디로 날아가 보이지 않는 바람에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풀 속에 가려져 찾는다고 시간이 걸렸으며 또 지형도 바뀌어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 걸린 게 겨우 2시간이었다.

이곳 생존자들의 경우엔 아마 최소 한 달은 걸릴 거리를 2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여기까지 오니 몇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아파트 뒤쪽에 있는 산책로와 도로를 건너, 보이는 또 하나의 공원.

여기서부터는 이제 특별히 위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기에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비록 이곳도 수많은 차가 뒤엉켜 있었으며 건물들이 무너졌고 온갖 식물이 자랐지만, 분명히 눈에 보였다.

어릴 때부터 걸었던 그 길의 모습이.

“...”

오랜만에 걷는 이 길.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이다.

비록 달라지긴 했지만,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자신의 앞에 솟아 오른 아파트.

“와, 엄청 높다.”

아버지 사업이 성공하면서 바로 앞에 생긴 신형 아파트.

처음에 왔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다.

지어 진지, 오래되지 않아서 인지 몰라도 아파트는 건재한 것을 보자 미소가 그려지며 발걸음이 빨라졌고 105동이라 적힌 건물로 들어갔다.

12층까지 올라가 집, 문 앞에 섰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 카심.”

처음 보는 카심의 긴장한 모습에 로드리게스는 신기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드러난 집의 모습은 심각했다.

모든 가구가 어질러져 있었으며 다급하게 도망치려는 흔적이 훤하게 보였다.

갑자기 머릿속으로 가족의 움직임이 그려지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안에서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번에 아파트를 살필 때 안은 자살한 이들과 그 흔적이 심심치 않게 봤었기에 어디엔가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천천히 돌아보며 살피다 보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그런데 어째서 인지 생각했던 것만큼 감정의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우하하학! 카심 이거 네 어릴 적 모습이야?”

들려오는 웃음 소리에 다가가니 로드리게스는 어릴 적 자신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래.”

“진짜 지금이랑 너무 다르잖아.”

“그땐 개구쟁이였지.”

앙증맞은 미소와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지은 채 가족과 찍은 사진.

카심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품속에 넣었다.

“그런데... 카심 부모님.

살아 계실까?”

“... 가능성이 낮겠지.”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인데 생각했던 것만큼 그립지 않았고 막상 가족이 죽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는 슬프긴 해도 그렇게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너무도 긴 시간이었고 너무 많은 일을 겪으면서 자신도 이젠 너무 많이 변해버린 탓이라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니 찾아봐야지.

일단 근처 돌아다니면서 생존자가 있는지 찾아보자.”

“알았어.”

우선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갔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억지로 뜯어 올라가는 순간, 무언가에 먹힌 인간의 뼈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

“어... 여기에 사람이 올라왔었나 봐.”

로드리게스는 카심의 눈치를 살폈다.

카심은 천천히 뼈들 사이로 보이는 옷가지를 살폈는데 낯익은 옷이 보였다.

“아버지 옷이다.”

“...”

“상처를 보니 비행할 수 있는 몬스터에 당한 모양이네.”

“괜찮아?”

“왜?”

“너무 침착하잖아. 아무리 너라도 이건...”

카심도 순간 자신의 행동에 당황했다.

“...”

아버지의 죽음이다.

그런데 마치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것처럼 냉정했다.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가 죽어서가 아닌, 자신이 너무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대해서.

“후우.”

몸을 일으키던 카심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

그의 눈이 반대편 아파트로 향했다가 순식간에 눈동자가 움직이더니 말했다.

“생존자가 있는 모양이다.”

“어? 진짜?”

반대편 아파트에 커튼이 살짝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튼이 있는 곳은 한 곳이 아니었다.

“25곳인가.”

“응?”

“그런데... 어차피 별 상관은 이제 없으니까.”

“그래도 모르잖아.

혹시 어머니가 살았을 수도 있잖아!”

“...”

로드리게스 말에 카심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다.”

어차피 99층을 통해 다시 돌아갈 것이다.

괜히 지금 만나서 슬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슬퍼할까?

사실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모든 게 다 원래대로 돌아간다 치자.

과연 다시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다시 지구로 돌아왔지만, 자신은 이제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벨리우스 세계가 ‘이제 너도 이쪽 세계의 인간이다’ 라고 보여주기 위해 이 지구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인정하고 싶지 않기 위해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주 작게나마 부정할 수 있는 희망이라도, 가지고 싶어서.

결국, 도망치듯 살던 곳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바로 다시 마트로 돌아가지 않았다.

옛 기억을 추억하고 이 감정을 조금이라도 되돌리고 싶었기에 주변을 걷다가 일주일 정도 뒤에 다시 마트로 돌아왔다.

그런데 두 사람은 달라진 마트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좀 늘어 보이네.”

“그러게?”

옥상과 주변을 돌아다니는 이들이 꽤 많이 보였고 그들의 복장도 훨씬 상태가 좋았다.

주변 약탈자란 것들은 모조리 죽인 상태였기에 마트가 빼앗길 리는 없었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가가는데 바로 역시나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경고했다.

“누구냐! 멈춰라!”

괘씸한 로드리게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쟤들? 죽여버릴까?”

“... 철수님은 어디 있습니까?”

“철수? 아~ 파랑 상가 생존자 리더? 아는 사이인가?”

“그래.”

“새끼가 반말이네?”

그는 창을 들며 위협하자 카심은 갸웃거리며 말했다.

“진짜 약탈자인가?

분명히 전부 다 죽였는데.”

“뭐?”

전부 다 죽였다는 말에 순간 움찔하며 두 사람을 다시 훑어보며 살폈다.

“으흠. 설마 진짜야? 에이. 거짓말이지?

철수가 그런 말 하긴 하던데.

그걸 어떻게 믿냐고~”

갑자기 바뀐 태도에 카심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다급히 말했다.

“일단 기다려봐.

철수도 있으니까.”

뛰어가는 그는 잠시 후, 누군가와 함께 다가오는데 철수였다.

“신우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선은 들어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철수와 함께 움직이니 주변에서 시선이 확 쏟아지더니 수군거렸는데 그 얼굴엔 거의다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마트를 얻은 뒤에 저들이 와서 점령했다는 겁니까?”

“아, 점령이라기보다... 같이 생존해 나가는 것이지요.

이럴 때일수록 뭉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말을 하는 철수의 표정에는 조금 어두웠다.

“딱 봐도 인원으로 밀어붙였나 보군요.

그래서 지금 철수님의 위치는 어떻게 됩니까?”

“... 다 같이 살아가는 생존자 아니겠습니까?”

어색한 웃음 안에 담겨 있는 건 안 봐도 뻔했다.

1층으로 들어오려 하자 입구를 지키는 놈들이 막았다.

“뭐야?”

“누군데 데리고 오는 건데? 허락은 맡았어?”

“아, 저번에 말했던 이 마트를...”

“아. 그 개소리?”

그는 카심과 로드리게스를 위아래 훑어보더니 비웃었다.

“어쨌든 기다려라.

우리는 믿을 수 없는 놈들이니.”

“...”

철수는 침울한 표정으로 끄덕였고 한 명이 안으로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리더에 명을 기다려야...”

고민했다.

당장 죽여버릴까?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만약 집을 보고 오지 않았다면 당연히 고민도 없이 이들을 죽였을 것이다.

일단은 기다려보자는 생각에 잠시 후, 중년인이 내려왔다.

그리곤 카심과 로드리게스를 훑어보고는 똑같이 비웃었다.

“얘들이야? 몸은 좋네.

일단 따라와.

리더가 기다리니까.”

철수는 여전히 미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았고 따라갔다.

위쪽으로 올라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고 주변으로는 몇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혜진도 보였다.

혜진은 카심을 보더니 반가워하다가 이내 어두워졌다.

회의를 하고있는 그들은 일제히 카심과 로드리게스를 보았음에도 계속 회의를 이어 나갔다.

카심은 우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30분 후 회의가 끝나자마자 리더로 보이는 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고 간부들로 보이는 이들은 두 사람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당신들인가?”

그는 카심과 로드리게스를 바라보더니 끄덕였다.

“확실히 뛰어나 보이는군. 몸도 좋고.

좋은 자리를 하나 주도록 하지.”

너무 뻔뻔함에 헛웃음조차 나지 않았다.

“지내면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다면 말해라.

너희들 위치는 경비 대장으로...”

“철수님이 사용하라고 준 곳이다.

왜 너희들이 여기에 앉아 있나?”

결국 계속 듣지 못하고 말을 끊어버리자 그의 표정이 굳었다.

“푸하하!”

그때 아까 내려온 중년인이 웃었다.

“같이 쓰고 그러는 거 아냐? 어?

생존자들끼리 힘을 합쳐야지 안 그래?

거, 젊은 양반이 참.”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혜진과 철수의 표정은 더 굳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리더는 카심을 보며 안경을 고쳐 잡았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군.

지금 이 세계는 주인이라는 게 없다.

그래서 소수끼리 살아갈 수 없지.

만약 우리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이들은 모두 죽고 빼앗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약탈자들과 다르다.

앞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생존자 집단을 만들 생각이다.

이들 역시 동의했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대로 저들끼리만 있으면 분명히 결국 또 기존 생존자 집단끼리 서로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약탈자로 변한다.

이들의 삶이었다.

자신이 더 이상 개입하는 게 오히려 더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됨으로써 두 사람은 오히려 생존력이 높아지게 된다.

가장 큰 생존자 집단과 합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카심은 말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이곳은 내가 철수님이 운영하라 준 곳이다.

고로 철수님이 리더로 움직인다.”

그 말에 철수와 혜진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이곳은 싸늘한 공기로 바뀌었다.

“하아.”

그는 안경을 고쳐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멍청한 것들이란.”

그 말과 동시에 간부들은 일어나며 품에서 식칼을 꺼냈고 중년인이 다가와 위협하듯 눈 앞에서 움직이며 어깨를 툭툭 쳤다.

참고로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입구 앞에서 이미 무기를 빼앗긴 상태였다.

“어이 젊은 친구. 그러다가...”

촤악!

갑자기 사방으로 퍼지는 피.

한순간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식으로 전혀 이해 안 되는 일이 벌어지니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툭.

머리가 사라진 중년인이 그대로 쓰러졌음에도 그들의 눈동자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않았다.

특히 리더의 눈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

“지금부터 입을 벌리는 놈은 죽는다.”

그 누구도 끄덕이지조차 못했다.

“철수님.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모두 죽일까요?”

“어, 예? 어...”

철수도 너무 두려운 눈으로 카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묻는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겠다면 제가...”

“아, 아닙니다!

죽이지 마세요!

며, 명수 리더님의 말대로... 생존자들이 줄어들수록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카심은 다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철수님께서 살려주셨으니.

오늘부터 모두 철수님 말을 들어라.

나중에 다시 왔을 때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그땐 철수님이 봐준다 하더라도 모두 죽인다.

명심해라.”

얼어붙은 그들은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애당초 지금 그 누구도 카심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심은 안경을 쓴 그를 보았고 그는 눈을 내려 깔고 있음에도 화들짝 놀라더니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 이해하려 하지 마라.

이미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미친 듯이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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