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 16. 실패(1) (93/119)

〈 93화 〉 16. 실패(1)

* * *

실패 ­

어두운 밤.

이제 막 17살 정도 되었을 남자는 조심스레 몸을 내밀었다.

“하아, 하아.”

잔뜩 긴장했는지,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무너진 건물 사이로 조심스레 몸을 들이밀고는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통조림 하나를 찾고는 해맑게 웃었다.

“돼, 됐다.”

너무도 위험한 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침에는 오히려 사람들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통조림을 가지고 몸을 돌리려는 그때 갑자기 몸이 얼어붙었다.

“크룽!”

거친 콧바람.

인간이 아니었다.

등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오싹함에 몸을 돌렸을 때 달빛 사이로 보이는 흉측한 얼굴을 보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놈은 인간을 손으로 찢어버릴 만큼 괴력을 가진 괴물이었다.

그렇게나 열심히 살아남았건만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싶어 절망에 빠졌다.

“아, 안 돼.”

“크라앙!”

절망에 빠져 몬스터가 달려들고 있음에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촤악!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몬스터의 몸이 갈라지더니 그 피가 온몸을 적셨다.

“어?”

뜨거운 피에 정신을 차렸을 때 달빛 사이로는 누군가 서 있었다.

“밤에는 돌아다니지 마라.”

“... 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는 분명히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멋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처럼 다시 사라졌다.

“우, 우와아... 진짜였구나.”

이 일대에 이미 카심은 유명했다.

영웅.

구원자.

등등 낯간지러운 수식어가 가득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미 카심은 아래 지역에서부터 모든 생존자를 마트 주위로 모으고 있었고 벌써 모인 인원만 천 명은 넘어갔다.

구석구석까지 찾았으며 소문까지 흘렸던 것이다.

벌써 3개월째였다.

마트를 중심으로 근처 아파트는 물론 상가와 주택이 모여 있는 곳까지 싹 다 정리했고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로드리게스는 무식한 힘으로 무거운 것들을 모조리 치워버리면서 이제 얼추 옛날 모습까지 보였다.

도로도 깔끔해졌고 꽤 넓은 수준까지 벽도 쌓아 두니 안전하기로는 예전과 전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변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생존자들의 표정은 전부 행복함이 가득했다.

너도나도 웃으면서 떠들고 마음대로 거리를 돌아다녔고 어린 아이들도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아하하하!”

“와아! 내가 덕배님이다!”

덕배는 카심이 지어준 한국인 이름으로 로드리게스는 너무나 멋있는 이름인 줄 알고 있었다.

발음만 본다면 나름대로 착착 감겼으니 말이다.

“난 그럼 신우님이다!”

“힘은 내가 더 쎄다구!”

“아니야 신우님이 짱이야!”

서로 소리치며 싸우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이들을 보며 모여 구경했다.

“어 다른 지역 생존자들인가봐.”

뛰어가 그들을 구경했고 그들 역시 행복해 보이며 이렇게 아파트 밖으로도 저렇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나 신기해했다.

그리고 몇 명은 울기까지 했다.

이 소문이 사실이고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맞이했다.

“고생하셨어요.”

“아이고. 잘 살아남았습니다.”

“흑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우님 덕배님.”

카심과 로드리게스는 이들에게 있어서 수호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것은 철수였다.

철수 아래로 사람을 나누어 각자 분담을 맡겼고 빠른 결정을 위해 개인적인 사항은 직접 처리할 수 있게 위임했다.

물론 그 모든 사항도 철수에게 보고는 다 올라왔다.

어찌보면 왕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군림하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게 카심에 의해 가능한 상황이었다.

압도적인 존재가 버티고 있었으니 그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그랬지만 카심은 단순한 수호신이 아니었다.

“아~ 그러니까 좀 먹어도 되잖아! 어차피 식량도 이제 많잖아!”

“안 됩니다...”

“아이 씨발 진짜!”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사람들이 다가왔다.

중년인으로 보이는 그는 팔에 문신도 가득했다.

“이번에 오신 분인 거 같은데 적당히 하세요.

그러다가 수호신께서 오십니다.”

“씨벌 수호신이 어? 우리 잘 먹고 살기 위해 있는 거잖아!

그럼 이런 거 다 공유해야지 어!?

자기 마음대로 쓰면 그게 수호신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수호신 덕분에 이렇게 사는 건데.”

“당연하지! 그러라고 그런 능력도 준 거 아냐!

그럼 당연히 우리가 누려야지!”

한참 소란이 일어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누군가 다가왔다.

“수, 수호신님이시다!”

카심이었다.

카심이 오자마자 주변에서 모두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이 분이...”

“아니, 어이 수호신 양반. 배가 고파 뒤지겠어서 식량 좀 달라고 했더니 어? 안 주잖아!

당신은 우릴 위해서 있는 양반인데 부족하면 더 식량 가지고 와야 하는 거 아냐?

배불리 먹여야 하는 게 당신 역할이잖아!”

카심은 그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그는 막상 다가오니 움찔했다.

하지만 설마 수호신이란 존재가 자신을 죽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네.”

그때였다.

그 말과 동시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은 후다닥 움직이더니 모두 몸을 숨겼고 특히 어린아이들은 빠르게 데리고 숨었다.

그 상황에 그 중년인은 뭔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했다.

잠시 후 이어지는 비명이 이곳 일대를 울렸다.

­끄, 끄아아악!!!!!

너무도 처절한 그 비명은 생존자들 귀와 뇌리에 깊게 박혔다.

이것이 이 생존자들이 불만이 없는 이유였다.

수호신은 때론 사신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그에 대해서 이런 판결을 내릴 자격 없다는 둥 이야기 하지 못했다.

만약 이 세상이 된 초기였다면 그런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아남은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 여기는 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매일 세끼씩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식량이 넘쳐났다.

로드리게스와 카심은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을 수 있는 몬스터를 잡아왔고 이 안에서 농작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개인의 기술이 있으면 더 우대를 받고 식량도 많이 받을 수 있었으며 일을 하면 역시나 더 대접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

이들에게 여기는 천국이었고 그래서 이런 소문이 서울까지 퍼졌다.

서울.

대한민국의 수도였지만 이제 그 찬란했던 시절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변해버린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찬란한 곳이었다.

유일하게 확실한 생존 지역을 만들었으며 독자적인 방어선도 구축했다.

지속해서 이 방어선을 돌며 수호했고 몬스터도 인간의 영역임을 인정했는지 더는 침입은 없었다.

이 상황을 만든 것은 바로 군대였다.

처음에 제법 화기가 통했고 특히 공용 화기는 꽤 큰 힘을 냈다.

그러다 점점 화기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가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눈을 공격하거나 위력이 강한 총은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 정도 크기의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에도 지속해서 사람이 죽어 나갔다.

거기다 문제는 너무 많이 사용한 총은 망가졌고 총알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더는 구할 수 없는 게 제일 컸다.

그 사이 이미 몬스터가 군부대를 점령한 곳도 많았으며 뚫고 가려면 더 많은, 피해를 봐야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겨우 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잘 살아가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또 문제가 터졌다.

결국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몬스터를 먹게 됐는데 이미 그 전에 잡은 수많은 몬스터 시체는 버린 뒤였다.

지금에서는 총이 아닌 것으로 몬스터를 잡고 있었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점점 식량에 허덕이고 있었다.

와그작!

고기를 한 입 베어 먹고는 질겅질겅씹다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뱉었다.

“씨발. 좆 같아서 못 먹겠네.”

겉모습만 본다면 비싼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스테이크였다.

하지만 아무리 소스로 속인다고 해도 고블린 고기는 역하기 그지없었다.

“오크는 씨발 진짜 돼지처럼 맛있다고. 어? 왜 없냐고!”

“오크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음식을 내온 요리사는 쩔쩔매며 말했다.

“아직 대형 화기랑 좀 남아 있잖아!”

이 시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한 사무실에서 별 네 개가 달린 군복을 입은 중년인이 음식을 내팽개쳤다.

그 앞에는 또 다른 별 세 개와 두 개가 달린 두 사람이 앉아 있었고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이고~ 그거 썼다가 반군이랍시고 설치는 새끼들 막아내지도 못합니다.

여기가 와해 된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정권을 잡았는데 날리고 싶습니까?”

“크흠... 그래서 이제 어쩌자는 건가?

몬스터를 잡으면 식량과 집을 나누어주는 정책 때문에 다소 안정화를 찾긴 했다만 이것도 시간 문제 일 거 아니야?”

그들에 비해 머리숱이 적은 별 두 개인 그가 고기를 썰어 입에 넣곤 말했다.

“최근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오? 뭔데?”

“남쪽에 꽤 크게 생존자들이 모여 있다고 합니다.”

“뭐? 어떻게? 우리도 이렇게 개고생했는데! 살아있는 놈들이 아직도 있다고?”

“예. 그래봐야 수는 그리 많은 거 같지는 않습니다.

최근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이제 1500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뭐야 겨우 그거밖에 없어?

에잉 이러다가 우리쪽으로 온다고 지랄하는 거 아냐?

몰래 가서 다 죽여버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천국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뭐?”

“으잉?”

“식량에 대한 문제도 없으며 몬스터 걱정도 할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식량? 어떻게?”

“통조림등, 아직도 꽤 많은 식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각종 농작도 잘되어 있고 특히 오크 고기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탈자도 꽤 생기고 있습니다.”

인상을 찌푸려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별 네 개 군인은 갑자기 히죽 웃었다.

“이런이런... 세상이 이렇게 됐다고 나라를 세우려는 반란종자들이 있구먼... 안 그런가 다들?”

분위기도 달라진 그의 모습에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오싹해지며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그의 직책은 원사가 되지 못한 상사인 행보관이었다.

뛰어난 상황 판단과 정치.

그리고 인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잔혹함으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이를 모두 죽이고 결국 이 자리에 앉았다.

그는 운이 좋게 이 자리에 앉은 게 아니었다.

***

카심은 로드리게스와 함께 밖을 움직이고 있었다.

“어우 요즘 안에 들어가면 여자분들 눈길 때문에 너무 힘들어.”

최근 여성 생존자들에게 카심과 로드리게스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실수 하지 마라.

네가 받아주는 순간 그 여자는 다른 여자에게 질투를 받게 될 것이고 또한 다른 여자들도 너와 잠자리를 가지고 싶어서 난리를 칠 거다.

그렇게 되는 순간 남자들 역시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내가 무슨 발정 난 놈인 줄 알아?

그리고 너도 그때 어?

옥상에서 그러고 있었잖아.”

“뭐, 나도 남자니까.”

“그래서 그 이후로 안 만났어?”

“그래.

이 상황에 대해서 방금 똑같이 설명해주었다.”

“하여간 냉철한 놈.

그런데 어디 가는 거야?”

“서울. 위쪽에서 요즘 피난민이 많다고 하더군.”

“어? 거기라면 생존자들이 모여 있다면서.”

“그래.”

“뭐 때문에 그렇지?”

“뻔하지. 독재라서 그렇다.”

로드리게스는 그때야 끄덕이며 이해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 구조하러 가는 거야?”

“그래.”

“그런데... 벌써 3개월째인데 언제까지 이럴 거야?”

현 상황에 대한 질문이었다.

처음에 카심은 저들을 지키는 데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3개월째 오히려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로드리게스는 조금 의아할 수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우리 말곤 없는 거 같다.

다른 나라에서 아마 모든 인간을 죽이고 나면 이쪽으로 올 거다.”

“잠깐. 그럼 설마...”

“그래. 미끼다.”

“아~ 미끼구나.

난 또 저들이 다 죽이면 한순간에 싹 죽여서 빨리 끝내려는...

아니 뭐라고? 미끼? 야이 악마야!”

“누가 누구보고?”

카심은 피식 웃으며 마지막 넝쿨을 없애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앞으로는 강을 잇는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차피 영생교와 싸우려면 더 강해져야 한다.

이곳에 나갈 때 너는 특화 레벨 8.

그리고 난 완성 시킨다.”

로드리게스는 저 멀리 보이는 석양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될까?”

“돼.”

너무나도 확신에 찬 대답.

로드리게스도 입술을 질끈 깨물며 끄덕이려 했다.

“존나게 구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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