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17. 대격변(2)
* * *
마리엘도 성벽에 올라와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제 어엿한 길드 마스터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빠르게 몬스터를 정리하고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러 가죠.
파이어스톤 길드 마스터께서도 빨리 준비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마리엘은 지시를 하고 성벽에 내려오자 꽤 잘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마스터.
준비되었습니다.
당장 출발할까요?”
“일단은 뮬 언니가 준비되는 대로 출발...”
말을 하고 있던 마리엘은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오빠!!!!”
“오랜만이다.”
카심과 로드리게스였다.
마리엘은 미친 듯이 달려가 그대로 카심에 뛰어올라 안겼다.
“어엿한 길드 마스터가 이런 모습 보여도 돼?”
마리엘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더욱 손에 힘을 주었고 카심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칼라리스 길드원은 처음 보는 마리엘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냉정하고 차가웠던 자신들의 길드 마스터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잘생긴 남자는 더욱 충격 받은 듯 했다.
“오랜만에 오셨네.”
그때 마침 뮬이 내려오자 그는 다급히 물었다.
“저, 저 사람은 누구기에 마스터께서 저러는 겁니까?
저런 모습은...”
“처음 보죠? 뭐, 그럴 만도 하네요.
그래도 역시 길드 앞에서 저러니 에휴.”
뮬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뮬과 함께 잘생긴 사내도 같이 다가갔다.
“오랜만이에요.”
“예 뮬씨 오랜만이네요.
그 동안 더 예뻐지셨군요.”
그 말에 더 놀란 건 잘생긴 사내였다.
뮬은 길드 내에서 마스터 보다도 무서운 인물이었다.
“훗. 고맙네요.”
그런데 이어진 반응에 잘생긴 사내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봐도 자신과 또래로 보이는 인물에게 어떻게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뭐야 나는 왜 그런 이야기 안 해줘?”
“넌 멋있어졌다.
그나저나 잘하고 있나 보네.”
“그럼. 다시 여기 리톰 영지를 대표하는 길드가 되었어. 후후후.”
카심은 칼라리스 길드원을 대충 훑어보았다.
그때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는 이가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우선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뮬씨도 오세요.”
마스터와 뮬이 너무도 자연스레 따르는 모습에 잘생긴 청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
칼라리스 길드 저택.
“그러니까... 이곳에 공주님을 잠시 숨겨달라고?”
“그래.”
“... 오빠...”
“부담스러우면 어쩔 수 없고.”
“아니 그게 아니라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공주님이라니... 스케일이 갑자기 너무 커졌잖아.”
뮬도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 공주는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수준의 위치였다.
“그런데 카심. 괜찮아? 잘못 했다간 리톰 영지가 위험할 수도 있어. 이들은 전부 다 죽을 수 있고.”
“확실히 그렇겠네. 역시 이 이야기는 없는 거로...”
“무슨 소리야! 원래 우리는 오빠가 아니면 다 죽었을 거야.”
“맞아요. 그때 카심님께서 그 길드를 처리하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돈도 그렇구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럼 오기 전에 준비를 해야겠네?
우리 길드의 힘은?”
“아니. 아는 사람은 극비가 될 거다.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너희가 위험할 테니까.
그리고 너희 길드가 끼어들기에는 너무 위험해. 전부 다 죽는다.”
카심의 말에 뮬과 마리엘은 화난 표정을 지었다.
“... 왜 이래! 우리 나름대로 강해졌어!
뮬 언니도 무려 특화 레벨 6이란 말이야!”
“무시하지 마시죠?”
뮬도 기세등등한 표정을 짓는 순간 카심은 무심한 표정으로 기세를 내뿜었다.
화아악!
“헉!”
“흡.”
두 사람은 어마어마한 기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겨우 이 정도 기세에도 벌벌 떨면서 무슨.”
“어...”
뮬은 특히 충격이 컸다.
특화 레벨 6이 되면서부터 자신감이 정말로 커졌다.
마리엘의 아버지이자 이전 길드 마스터도 레벨 6이었는데 자신은 보다 더 빨리 되었으니 자신감이 가득했다.
동시에 레벨 6이 되면서 달라진 힘과 이곳 리톰 영지 내에서 같은 6이라 할지라도 자신보다 강한 유저가 없었기에 자부심은 더 큰 상태였다.
그런데 이것은 수준이 다른 게 아니라 차원이 달랐다.
“며, 몇인 거죠?”
“이 친구는 7이고 나는 8입니다.”
“... 아... 그렇... 뭐라구요!? 자, 잠깐만요. 특화 레벨이... 8이라구요?”
“예.”
“그게 말이 됩...”
그 순간 카심의 몸에서 초록빛이 번쩍이더니 몸으로 흡수되면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내비치자 뮬은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저 나이에 특화 레벨 8일 수 있을까?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었다.
“오, 오빠... 진짜 미쳤어! 어떻게 된 거야! 응!?
역시 오빠는 놓치면 안 돼!
나랑 당장 결혼하자!”
카심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던전 브레이크는 여기 몇 번째야?”
머리를 문지르며 마리엘은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벌써 두 번째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
오빠는 아는 거 있어?”
“...”
카심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뮬은 놀라며 물었다.
“알고 계신 건가요?”
“망상일 뿐입니다.
우선 나도 지금 정보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일단 여기 머무를 생각인데 던전 브레이크가 어디지? 여기 있는 김에 처리해줄게.”
“뭐야 뭐냐구 말해 줘!”
“나도 모른다. 그냥...”
머뭇거리는 카심을 보며 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곳도 아벨리우스 세계처럼 변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오히려 좋은 거 아냐?”
“한 번이라도 그 세계에서 사람이 발견된 적 보거나 들은 적 있고?”
이어진 카심의 말에 마리엘과 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너희들은 몰랐겠지만 아벨리우스 세계는 다른 대륙이 아니다.
다른 세상이지.
아벨리우스 세계의 대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어느 대륙에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 무, 무슨 말이야 그게?”
“이해할 수 없군요.”
카심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잠깐... 그럼, 오빠 말이 맞다면,
내가... 저런 고블린이나 오크처럼 변한다고?
너무 싫어!”
“인간형 몬스터라고 생각하고는 있다.
뭐, 네 말처럼 오크도 어쩌면 다른 세상의 인간이었을지도 모르지.”
“사실이라면... 끔찍하네요.
지금까지 인간끼리 싸우고 있던 거니까.”
뮬의 말에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카심도 잠깐 생각에 빠질 정도였다.
아벨리우스 라는 놈이 만들어 놓은 경기장에 인간들이 놀아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다.
알 수 없는 것을 사실인냥 받아들이는 것만큼 멍청한 건 없으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마리엘 너는 비밀스럽게 저택 내에 공주님을 모실 곳을 만들고 뮬씨는 저와 함께 던전 브레이크로 가죠.”
***
뛰어난 재능.
잘생긴 얼굴.
왕국으로 진출하기 전, 경험삼아 이곳 리톰 영지에 왔다.
당연히 가장 이곳에서 잘나가는 길드인 칼라리스 길드에 가입했고 빠르게 전투 대장의 지휘에 올라서 길드 내에서 세 번째로 높은 지위에 앉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원래라면 왕국에 가려고 했지만 사실 길드 마스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예뻤다.
차갑고 도도했기에 더 마음에 들었고 꼭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까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테리블랑님. 움직이면 되겠습니까?”
“어? 아, 그래.”
테리블랑은 어느새 준비된 인원을 보며 끄덕였다.
자신 뒤에는 약 50명이 있었고 옆으로는 뮬과 함께 원거리 부대 50명이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저 뒤로 두 명이 또 따로 오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도도했던 길드 마스터가 생전 본적 없는 모습을 보이게 한 남자.
거기다 당연하다는 듯 그 차가운 뮬 마저도 자연스레 명령했다.
딱 봐도 자신과 또래로 보였기에 당연히 질투와 호승심이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잠시 후, 도착한 던전 브레이크를 보며 뮬에게 다가갔다.
“바로 들어가는 겁니까?”
“잠시만요.”
뮬은 뒤쪽으로 다가가 그 남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는 왔다.
“출발해요.”
“...”
마음에 들지 않은 테리블랑은 끄덕이면서 일단은 안으로 들어갔다.
휘이잉!
바람이 불어오는 거친 대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절벽이 있었고 그곳에 틈 사이로 동굴 하나가 보였다.
그곳을 향해 걸어가려는 순간 카심이 말했다.
“멈춰. 그쪽이 아니다.”
뮬은 당연히 멈췄지만 테리블랑은 이때다 싶었다.
“무슨 소립니까?”
“저긴 아무것도 없으니...”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말을 잘랐음에도 카심은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다 아래를 툭툭 쳤다.
“이 아래다.”
“그게 무슨 개...”
그때 로드리게스는 주저하지도 않고 특화를 내뿜었다.
레벨 7의 특화에 보고 있던 모든 이들의 표정이 쩍 벌어졌다.
특히 테리블랑은 더욱 충격이 컸다.
자신의 특화 레벨은 6.
젊은 나이임에도 정말로 대단한 재능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아닌 옆에 따라다니는 부하 같은 녀석이 자신보다 높은 레벨 7이라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레벨 6과 7의 차이는 정말로 컸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드리게스는 주먹을 땅으로 내려쳤다.
콰앙!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그 힘에 놀람도 잠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으아악!”
“으헉!”
순식간에 지면이 뻥 뚫리더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래는 꽤 깊었기에 테리블랑은 다급히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모두! 떨어지는 파편을 이용해 속도를 줄여라!”
떨어지는 파편과 혹은 벽을 이용해 속도를 줄여 나가기 시작했고 뛰어난 자신의 실력 덕분에 안정적인 자세를 취했을 때 마침 카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한 가운데서 그저 여유롭게 팔짱을 낀 채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내 바닥에 도착했을 때 테리블랑은 멋들어지게 착지하며 땅에 구르면서 충격을 줄였다.
쿵!
“큽!”
하지만 그럼에도 충격이 있어서 통증을 느껴야 했고 몇 명은 제법 다치기도 했다.
그래도 덕분에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때 테리블랑은 카심이 착지하는 것을 보았다.
“...”
툭.
너무나도 가볍게 깃털처럼 떨어져 내렸다.
아무런 동작도 없었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신기했다.
그리곤 이 어두운 곳을 둘러 보지도 않고 걷기 시작했다.
“카심님!”
“뮬님께선 불을 이용해 오세요.
로드리게스 가자.”
“응.”
두 사람이 먼저 움직였고 테리블랑과 뮬은 우선 다친 이들을 수습하고 빠르게 횃불을 만들고 뒤따라 나섰다.
테리블랑은 아까 봤던 카심의 모습만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에 뮬에게 다가갔다.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굽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예?”
“처음엔 그냥 재능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뮬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짓기만 할 뿐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거대한 개미의 모습이 보였다.
여왕개미.
잡기 위해서는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쉽지 않을 만큼 위험한 보스 몬스터였다.
그런 거대한 생명체가 이미 머리는 사라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심지어 주변엔 100마리가 넘는 전투 개미도 있었다.
그들은 그 사이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며 그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